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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기를 원한다면
참고말씀: 창1:22,28; 5:2; 9:1; 12:2,3; 민6:24-27; 수17:15,18; 느1:11-12:1; 에4:15,16; 전9:1; 사45:15; 61:1-3; 단10:2,3; 눅1:52,53; 롬1:7,10; 고전1:2; 4:19; 16:7; 고후1:2; 갈1:3; 엡1:2; 빌1:2; 골1:2; 살전1:1; 살후1:2; 딤전1:2; 딤후1:2; 딛1:4; 몬1:3; 약4:15; 벧전1:2; 벧후1:2; 요이1:3
읽을말씀: 대상4:9,10
주제말씀: 대상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첫째, 복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바로 알고 구해야 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대상4:10 상)
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설날에 제일 많이 나누는 인사말이 무엇입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복의 중요성을 깨닫고, 새해에 시작될 때마다 서로 복 받으라는 말로 덕담(德談)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을 받으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옛 습관들처럼, 차례상을 차려놓고 조상신(祖上神, 민간에서 신으로 모시는 조상)에게 구하거나 점치는 무당이나 각종 미신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야베스는 복 주시는 분을 누구로 고백했습니까? 이스라엘 하나님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대상4:10 상) 어째서입니까? 이 하나님이야말로 복의 근원으로써, 창세로부터 계속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창1:22)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2)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9:1)
이 하나님은 단순히 복만 주십니까? 아닙니다. 아예 우리를 복이 되게 하십니다. 옛날 성경대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개역성경, 창12:2 하)
우리가 복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두 가지 일입니다. 먼저, 우리가 복 주심의 기준(基準)이 됩니다. 즉 우리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 사람들이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12:3 상) 또한 복의 통로(通路)가 됩니다. 즉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이 우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로 마구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하)
한편, 민수기에 소개된 제사장의 축복문에는 하나님의 이 같은 복을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로 요약하고 있습니까? 은혜와 평강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 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4-27)
이는 신약시대에 이르러서 고스란히 무엇으로 계승되었습니까? 사도들의 인사말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 하)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2 하)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후1:2) /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엡1:2)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1:2) /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1:2 하)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전1:1 하) /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후1:2) /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1:2 하) /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후1:2 하) /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딛1:4 하)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몬1:3)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1:2 하)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1:2) /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요이1:3)
그러니 ‘복 받으세요’라는 말보다 더 좋은 인사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복이 되세요’, ‘복의 근원이 되세요’, ‘복 주심의 기준이 되세요’. ‘복의 통로가 되세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바라’ 등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진정으로 복 주시는 분이 곧 우리 하나님이신 줄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복을 구하고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복이 인생역전의 복임을 깨닫고 이를 구해야 합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 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4:9)
이처럼 복을 받으려면 어떤 복을 구해야 합니까? 어떤 상황과 처지에 놓였든지 이에 개의치 않고 인생역전의 복을 구해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항상 우리의 인생을 역전(逆轉)시키기 때문입니다.
즉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며, 주리는 자를 배부르게 하시며,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눅1:52,53)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고, 사로잡힌 자가 자유를 얻으며, 갇힌 자가 놓임을 받으며, 슬퍼하는 자가 기쁨과 찬송의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 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1-3)
그러고 보니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곧 역전의 명수입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즉 지금 당장은 행동하지 않으셔서 숨어 계시는 것 같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밝히 드러내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핸디캡(handicap)이 있었습니다. 즉 너무 힘들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 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대상4:9 하) 그래서 아마 그의 유년시절, 아니 인생의 전반기 내내 다른 형제들보다 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인생역전의 복을 구했고, 그 결과 어찌 되었습니까? 그의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대상4:9 상) 이처럼 역대상 4장 9절 상반절은 인생의 시작이 아니라 기도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이 유독 처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인생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야베스가 구했던 인생역전의 복을 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 가운데 유독 가난한 것 같고 다른 자녀에 비해 더 기운 것 같은 이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야베스가 구했던 인생역전의 복을 구하되, 그들이 다른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로 세움 받게 해달라고 그리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 구체적으로 간구하고 집중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상4:10 상)
이처럼 복을 받으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간구하고 또 집중적으로 구해야 할 것입니다. 왜 구체적으로 간구해야 합니까? 막연하게 구하면 기도응답 여부가 불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구하면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지금까지 두루뭉술하게 기도해 왔습니까? 이제부터라도 구체적으로 간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 또 집중적으로 간구해야 합니까? 산발적으로 가뭄에 콩 나듯이 기도하면 기도의 분량을 채우기 힘들지만, 집중적으로 기도하면 기도의 분량을 금방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기도의 응답을 빨리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에스더, 느헤미야, 다니엘 등처럼 집중적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에스더가 죽기를 각오하면서 3일 동안 집중적으로 간구했고,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4:15,16)
느헤미야가 4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했으며,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느1:11-12:1)
다니엘이 세이레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에 나 다나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단10:2,3)
본문에서 야베스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지경의 확장과 당면한 환난의 극복입니다.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상4:10 중)
하나씩 살펴보자면, 먼저는 지경의 확장입니다. 그는 아마도 너무 좁은 기업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좁은 땅만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개척하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함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수17:15,18)
그런데 이 일이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하나님께서 그의 지경을 넓혀주셔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부분을 놓고 구체적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대상4:10 중)
또한 당면한 환난의 극복입니다. 그는 당시 극심한 환난을 겪고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근심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이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구했던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상4:10 중)
한편, 본문의 기도는 일회성(一回性)이었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야베스는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되, 오랜 시간 동안 그리 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기도응답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야베스처럼, 우리도 구체적인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간구하기를 바라며, 또한 집중적으로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허락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하)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결정적으로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허락하심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하) 어째서입니까?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되,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전9:1 상) 특별히 복 받는 일은 더더욱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복 받으려면 결정적으로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허락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승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그 구한 바들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그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 받았을 때에,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가 될 수 있었고, 그의 지역이 확장될 수 있었으며, 환난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끝마다 무슨 말이 입버릇처럼 되어야 합니까? ‘주께서 허락하시면’, ‘주께서 원하시면’, ‘주의 뜻이면’, ‘주의 뜻이 있으면’ 등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1:10) / “주께서 허락하시면(또는 원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고전4:19) /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고전16:7) /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4:15)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오늘도 하나님께 그 허락하심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즐기고 누리되, 아직 더 필요한 것은 그 허락하심을 구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https://youtu.be/z2FlAvmuzB0?si=Lin0ZILPstMFZZ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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