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풍류와 해학의 멋!
佳人解裙聲(가인해군성)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조선 효종때 홍만종의 명엽지해(蓂葉志諧)에
소리의 품격을 따지는데,
우연히 어느 벼슬아치의 환송 회식에 참석한
당대의 학문과 직위가 쟁쟁한 다섯 대신들
한창 잔을 돌리면서 흥을 돋우다가
정철과 유성룡, 이항복, 심희수 그리고 이정구 등
'들려오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 라는 시제로 시 한 구절씩을 읊어
흥을 돋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정철이 먼저 운을 뗐다.
淸宵朗月 樓頭遏雲聲 (청소낭월 누두알운성) -정철(松江)
맑은 밤 밝은 달빛이 누각 머리를 비추는데, 달빛을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의 소리,
滿山紅樹 風前遠岫聲 (만산홍수 풍전원수성) ㅡ 심희수(一松)
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먼 산 동굴 앞을 스쳐서 불어 가는 바람 소리,
曉窓睡餘 小槽酒滴聲 (효창수여 소조주적성) -유성룡(西崖)
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아내가 술을 거르는 그 즐거운 소리,
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 ㅡ이정구(月沙)
산골 마을 초당에서 도련님의 시 읊는 소리,
洞房良宵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ㅡ 이항복(白沙)
깊숙한 골방 안 그윽한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오성대감 이항복의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가 제일 압권이라고 입을 모으고 칭찬했다.
당대에 내노라 하는 대학자요 문장가요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가였지만
그들이 아무리 유학의 궤범에 얽매여 살아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 치열하다 보니 어찌 일개 장삼이사(張三李四)나 무엇이 다르랴?
음란 스럽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려운 멋으로
아름다운 여인은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 받는다
황진이 같은 미모와 서정과 기예를 갖춘 여인을 두고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고쟁이를 열두 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 라는 옛 말대로
한번 품에 안아 본 여인의 모든 것을 설사 다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남자의 귀에는
이항복이 말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된 그 여인이 밤의 어둠 속에서
한 꺼풀씩 옷을 벗어가는 모습을 사그락 대는 소리로 듣는 그 정취(情趣)는
언제나 한 없이 설레이는 꿈으로 반갑기만 하다.
음란스럽기 보다는 얼마나 그윽한 정감과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려운 멋으로 다가오는가?
예부터 ‘사내란 계집 앞에서는 나이를 타지 않는다.’
이 저녁 그 자리에 함께한 근엄한 양반님들도 등불이 꺼진 방안 에서 여인이
한 겹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풀어헤치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보고 별을 따지’
절로 가슴이 더워지고 있었으리라.
‘음양에는 원래 천벌이 없는 법이다.’
첩을 두기도 하고 기생과의 하룻밤 풋사랑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 그 여인이 누가 됐든 상관이 없는 좋은 시대를 살고 있다
사오십 대의 호남아 양반님들이 호젓한 밤의 심연을 같이 유영(遊泳)하면서
가마솥 쳐럼 끓는 밤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고 있었으리라.
선비들의 풍류와 해학과 멋 !
정말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남기에 족하다.
우리는 어찌해야 저들의 그림자라도 쫓아가랴.
천하 미인 황진이가 절집으로 스님을 찾아가
하룻밤 유하기를 청했다
30년 수도한 스님이기에
이미 도의 경지에 있었던 터라 여인과 한방에 있다가
어떤 유혹을 해도 파계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사(山寺)의 방에는 희미한 촛불만 타고 있었다.
돌아 앉아 벽을 보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스님의 등 뒤에
여인은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해군성(解裙聲)' 벗을해(解), 치마군(裙), 소리성(聲)
희미한 어둠 속에서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또 있으랴?
이 소리에 한 순간 무너지고 만다...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에서,
'첫눈'을
'머언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다.
깊은 밤에 눈 내리는 소리 사르르
어둠 속에서 치마끈을 풀어 치맛자락이 사르르 흘러내리는 소리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까?
사랑이 고픈가?
사랑이 그리운가?
옛 시인 묵객들은
해군성(解裙聲)을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