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지가 얼떨결에 자신을 낮추었다.
“이노. 용돈 줄 테니 나중에 내 방으로 와.” 두목이 말했다.
“황송합니다.” 정중하게 말하고 머리 숙여 인사했다. 어느 틈에 땀이 말라 있었다.
젊은이가 단도를 가져가자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굳었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눈치채지 못하게 꾹 참고 엄숙한 표정을 유지했다.
세이지는 자기 연기가 기특했다. 그러나 지금만이겠지. 언젠가 들킬 게 뻔하다. 그러고 나서 간부들의 태도는 묘하게 싸늘했다.
한숨 돌린 것도 잠시, 사무실에 돌아오니 요시야스 파 쪽에서 전화가 왔다. 계약 단계에서 가즈미의 개업 계획이 벌써 그쪽 귀에 들어간 것이다.
“이봐요. 당신네도 그렇겠지만 물장사 개업은 내게 즉각 정보가 들어와. 보증인에 당신 서명이 있던데. 이노 씨, 우리와 싸우자는 거야?”
말투는 나지막했지만, 용납 못 하겠다는 위압감이 있었다. 세이지는 우울했다. 가즈미 저 바보가 말도 없이 내 이름을. 그러나 이쪽도 “아, 그렇습니까” 하며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다. 위세가 필요하다.
“글쎄, 당신 호주머니를 건드릴 생각은 전혀 없어. 계약인은 상납금은 당연하고, 물수건이나 화분 같은 거 당신네에게 맞춘대. 그건 그렇고 나는 상관 없어.”
“이노 씨, 뭔 말을 이상하게 해. 계약인이 당신 여자잖아. 만약에 내 여자가 그쪽 구역에 가게를 내서 내가 들락거린다면 어쩔 거지? 상관 없다고 끝날 일이야?”
실로 지당한 말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는 게 야쿠자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뻔하지. 즉시 해약해. 당신이 이 바닥에서 발을 뺀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알았소. 그럼 이쪽도 이미 돈을 낸 거니 위약금을 그쪽이 보상하는 거로 하는 건 어떠신가.”
“어이, 제정신이야?” 말투가 바뀌었다. “어디서 잠꼬대야?” 상대가 목소리를 착 깔고 위협했다.
아, 짜증 난다. 세이지가 얼굴을 찡그렸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리 없다.
“자지구레하게 굴기는. 가게 하나로 허둥댈 거 뭐 있나. 요시야스 일가도 쩨쩨하군.” 받아쳤다. 습성이다.
“뭐라고? 이게! 전화로는 해결이 안 되겠어. 내일 우리 사무실로 와.”
“멍청하군. 누가 네 놈의 더러운 사무실에 가겠냐! 내 얼굴 뵙고 싶으면 호텔 스위트룸이라도 예약해!”
험악한 말들이 오가다가 번화가 찻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동년배인 요시야스는 ‘칼잽이 야스’로 불리는, 여차하면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유명한 야쿠자다. 가슴속이 잿빛으로 흐려졌다. 설마 군중 속에서 그러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