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지독한 꿈이었다.
아주 먼, 낯선 곳이었다.
지휴스님의 캠프같은 곳이었다.
나는 졸면서, 깨면서 설법을 들었던 것 같다.
설법이 끝난 듯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었다.
나도 짐을 꾸리고 떠나야 했다.
나만 잠에 빠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 둘 빠져 나가는 듯하나
도저히 잠에서 깰 수가 없었다.
이내 다시 잠이 들고 잠시 눈을 뜨면 일어나려고 하다가
도로 잠에 빠지곤 했다.
나는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깨워주라, 나를 일으켜 주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고 떠났다.
하나 둘 거의 빠져 나가고
나는 계속 ”나 좀 깨워주라“고 처절히 부탁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고 애원하다 이내 다시 잠에 빠졌다.
아무리 애원해보아도 모두 나를 모른 체하고
잠에 다시 빠지는 것을 반복하였다.
나는 고통과 좌절감에 몸부림치다 문득 일어나 보니 7시가 넘어있었다.
아, 다행히도 꿈이었구나! 그런데, 세상에나!
나는 꿈속에서 잠을 자고 깨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몸과 마음은 지치고 힘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알맞게 아침 햇살이 내려앉아 있다.
라디오에서는 하프와 클라리넷의 이중주로 ‘백조’가 흐르고 있다.
또 이어서 ‘perhaps love’ 가 나온다.
조금 젊었던 날에 어떤 남자가 이 노래를 녹음해주길래 몹시 가슴 설렜던 기억이 있다.
아름답고 달콤한 꿈이다.
난 서서히 달콤한 낮꿈에 빠져든다.
이런 꿈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흥타령에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꿈깨이니 또 꿈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죽는 인생...“ 라는 대목이 있다.
이제 인생 막바지,
어찌하여 밤꿈과 낮꿈은 이리 어지러울까?
문득 새벽에 꾸었던 꿈을 다시 생각해본다.
예수님과 붓다도 ”늘 깨어있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또 바바도 프상 제 1번에서 “나를 깊은 잠에서 깨워주세요”라고 노래하고 있다.
새벽 꿈은 바로 삶이라는 여정에서 매양 쿨쿨 잠에 빠져 있는 나를 깨우고자 하는 내 깊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처절한 외마디일까?
하루가, 한 달이 이리도 짧고
인생도 이리 짧은 꿈이지만
감기와 한기는 아직 나를 괴롭히고 있고
세상 어디에나 생존경쟁, 적자생존의 투쟁은 치열하고
우크라이나에는 전쟁이, 투르키에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치, 사회에서 힘겨루기 싸움은 그칠 새가 없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 돌아보건대
지나가버린 일은 모두 한줌의 영상, 기억일 뿐이고
미래 또한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어떤 일도 이 순간을 흘러가는 일,
“나”라는 스토리는 ‘알 수 없음(Unknown)’에서 Unknown으로 흐르는 이미지뿐인 것 같다.
마치 하룻밤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