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는 소설이라서 좀 그렇지만,
댓글 정도는...^^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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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골목길.
여기저기 전봇대에 기대어있는 쓰레기봉투들.
역한 냄새가 나는 이곳.
하지만 이곳만 지나면 그 사람이 있으니까 난 오늘도 이 길을 걷고 있다.
난 오늘도 양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이 길을 걷고 있다...
“흠, 흠흠..”
오늘도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녀처럼 얇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딩-동
“지혜?”
“응, 나야.”
“훗, 오늘도 맛있는 거 해줘?”
“알았어, 문이나 좀 열어.”
그렇게나 연습했지만 어색한 표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어.
“올~ 냄새를 보아하니 오늘도 한상 가득 차릴 것 같은데?”
“풋,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으니까.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다.
그사람이 볼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한번도 원망해본 적 없다.
앞을 보지 못해서 맨날 밥을 차려줘야 해도,
냄새 고약한 골목길을 수십번씩 왔다갔다해야 돼도 난 행복하다.
오늘도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칼질을 한다.
그리고 거실에선 그사람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행복하다.
이런 작은 주택에서 손에 물을 묻혀야 해도 난 행복하다.
그사람을 위해서 밥 차려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무도 모를 거다.
나는 열심히 차린 밥상을 들고 그의 앞으로 간다.
“짜잔! 오늘은 고등어 조림이다~?”
“냄새 좋다. 맛있겠어.”
“그래? 얼른 먹어봐.”
탁-
그가 헛손질을 하다젓가락을 떨어트린다.
나는 젓가락을 주우려다 그만둔다.
그는 적어도 밥 정도는 자신 스스로 먹으려 하는 사람이니까.
더 이상 나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면서 열심히 사는 착한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의 어색한 젓가락질에 입을 막는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는다.
어김없이 그에게 말을 한다.
“정우씨, 나 잠깐만 화장실좀 갔다올게.”
“... 응.”
그도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색한 웃음을 지며 답한다.
후다닥-
얼른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선 여느때처럼 핸드폰을 든다.
따르릉-
“아, 정말 싫다니까요!”
신호음이 가자마자 그녀의 신경질 난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아마도 발신자 번호로 나인줄 알았나보다.
“한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짜증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오늘도 사정을 한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에게 빈다.
“정말! 나는 눈 안보이는 남자 따윈 싫어! 너나 만나라구!”
“그냥... 그냥 한번만 만나서 유학간다고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 그럼 니가 하면 될 거 아냐!”
“전 못해요. 그래서 그래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야, 이년아! 내가 창녀인 줄 알아?! 아유, 재수가 없으려니!”
뚝-
일방적으로 끊어진 그녀의 전화에 오늘도 난 쓸쓸하게 혼자 눈물 짓는다.
끼익-
집으로 들어온다.
침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내 굵은 목소리 때문에 정우씨가 알아채면 안되니까.
“어머? 벌써 다 먹었어?”
“응. 엄청 맛있다.”
환하게 웃어준다.
그가 해맑게 웃는다.
비록 내가 아닌 지혜라는 여자를 향해서 웃는 거지만.
시력을 잃기전 엄청 예뻤던 자신의 여자를 향해 웃는 거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정말 행복하다.
“나 이제 갈게.”
“응. 그리고 이제 무리하지 않아도 돼. 밥 정도는 내가 알아서...”
“내일은 된장국 먹자! 알겠지?”
“...”
애써 그의 말을 가로채며 말한다.
「난 괜찮아요.
괜찮으니 오지 말란 말은 하지 마세요.」
그의 집에서 오는 길에 병원에 들린다.
오늘도 의사 선생님께 물어본다.
“각막이 왔나요?”
아무런 희망도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
역시나 아무 말 안하시는 선생님.
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난다.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드디어 왔습니다!”
쩌렁쩌렁하게 큰 의사선생님의 목소리에 어리둥절.
“네?”
“각막이 왔어요! 아니, 온대요! 다음주 일요일에!”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선생님 때문에,
드디어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세방울.
열방울.
스무방울...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이 떨어지고 난 후에야 나는 정신을 차린다.
“그럼 다음 주 일요일에 정우씨 데려오면 되나요?”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인뒤에 나는 병원을 나온다.
그리곤 바로 그녀에게 전화한다.
지혜라는 예쁜 이름의 그녀에게.
들뜬 마음으로 전화를 한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하지만 받지 않는다.
역시나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집에 가서 전화하기로 마음먹는다.
삐익-
그의 집과는 다른 벨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문이 열린다.
“오늘도 그 자식 집에 갔다온거냐?”
“...네...”
못마땅한 듯이 날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길에 또다시 아래를 바라본다.
「네, 그래요.
내 인생은 이렇게 비굴해요.
그에게 떳떳하게 난 지혜가 아니라고 말 못하고,
어머니께 떳떳하게 그가 날 사랑한다고 하지 못해요.
그래서 난 오늘도 신발만 쳐다봐요.
얼마나 왔다갔다 했는지 다 헤진 신발만 쳐다봅니다.
그렇지만 후횐 없어요.
내가 원해서 하는 사랑이니 후횐 절대 없습니다.
가끔씩 눈물이 날 때는 있지만 말입니다.」
거실로 들어가니 아버지께서 쇼파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인사말처럼 되어버린 한마디를 또 하신다.
“언제 끝낼 거냐.”
난 언제나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할 수 있다.
그게 조금 안타깝다...
“다음주 일요일이면 다 끝나요.”
대답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딸이 대답을 하자 아버지가 놀라신다.
좋으시겠어요...
딸이 더 이상 그런 남자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좋으시겠어요.
「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사랑은 해요.
하지만 만날 수만 없는 거예요.
제 사랑은 변함 없어요...」
휙하니 방에 들어와 문을 닫는다.
털썩 주저 앉는다.
양손으로 무릎을 감싸쥐고 얼굴을 묻는다.
슬픈 생각을 한다.
나 이제 그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건가?
나란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그에게 난 뭘 바란 걸까?
이런 결말은 당연한 거잖아?
울지마.
그러니까 울지마.
다 니가 선택한 일이니까 울지마.
후회한다는 듯이 울지말라니까!
...
... 안돼... 아무리 참아도 울음이 나...
...
그렇게 방 문에 기대어 몇시간 동안 울음을 참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우선 무엇부터 해야할까.
그녀에게 전화해서 만나 달라고 해야 될까?
아니, 그것보다 먼저 그에게 말을 해줘야겠지.
그런 다음 그녀에게 전화해서 이 일은 비밀로 해달라고 하고,
그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그리고 결말은 그들만의 해피엔딩...
그 속엔 난 없는 거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난 내 인생이 아닌 정우씨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래, 이제 그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무 생각 없이 딱 그 생각만 하자.
난 해방 된 거다.
그에게로부터 독립한 거다.
웃어야지.
많이 웃자.
그럼 자연히 잊어지겠지.
그래, 그럼 그도 날 잊겠지.
맞아, 그는 내가 있는지조차도 모르지?
그래도 난... 괜찮아.
방문에 기대어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또다시 핸드폰을 드는 바보같은 나.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역시나 그녀는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네.
한 시간뒤에 집 전화로 해야지.
아, 우선 정우씨한테 전화해줘야지.
또다시 핸드폰을 들고 0번을 누른다.
따르릉-
그래... 내게 있어 정우씨는 0번인 사람이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다.
그에 관한건 다 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는 내 이름조차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도 난 그의 행복을 빈다.
이렇게 울면서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에게 한가닥 희망의 빛이 될 소식을,
나에게 이제 악몽의 시작이 될 그 한마디를,
내 입으로 직접 전해준다는 것조차도 내겐 행복이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뚝-
차마 지금은 말할 수 없어서 전화를 끊는다.
입을 막고 오열을 한다.
너무 운 나머지 헛구역질도 나온다.
그래도 참는다.
난 참는다...
「미안, 정우씨.
오늘만 나 질투할게.
딱 오늘만 질투하고 내일 또 지혜로 살아갈게.
그러니까 딱 오늘만 내 멋대로 울게.
미안...」
불도 안 켠 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쭈구리고 앉아 있는다.
내 사랑은 슬픈 이야기.
아무리 목숨바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극.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난 괜찮아.
...
...
정말...
괜찮아?
습관들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와 오붓하게 살고 있는 그를 보아도, 괜찮아?
그 앞에서 서성이다가 그가 누구냐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도,
그래도 괜찮아?
...
... 응... 괜찮아...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잖아...
...
정말... 괜찮아...
...
...
똑똑-
꾸벅-
똑똑-
꾸벅-
“지영아?”
화들짝-
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잠을 깨보니,
아침이다.
딸각, 끼익-
문을 연다.
힘없이 추욱 늘어진 어깨를 다잡는다.
이런 모습 보여서는 안돼.
“왜?”
“어머, 너 여태까지 옷도 안 갈아 입었니?”
“응,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나봐.”
“흠, 그래? 얼른 밥 먹어.”
“옷 갈아입고.”
딱-
다시 문을 잠근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김지영, 너 왜그래?
웃어.
웃어.
웃어!
입고리를 올린다.
안돼. 너무 기분나쁜 웃음이다.
눈까지 웃어야돼.
눈이 감긴다.
저절로 감긴다.
안돼.
눈 떠.
웃으면서 눈 떠!
씨익-
이정도면... 됐나?
그때 저멀리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빨리 밥먹어! 밥 식는다!”
“네! 잠깐만...”
털썩-
이상하다.
몸에 힘이 안들어간다.
...
깜깜해.
안무것도 안보인다.
내 사랑도 암흑일까?
...
흔들흔들-
“지영아, 정신들어?”
“아...”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병원 싫은데...
아, 머리아프다.
“몇시에요?”
“저녁 8시야.”
“나 이제 괜찮으니까 집에 가세요.”
“어머, 무슨 소리니?”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까...”
곤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는 어머니.
저... 정말 괜찮아요.
이런 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휴, 그래 알았다. 몸 조리 잘해.”
“네.”
씨익-
연습해본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습해본다.
그렇다고 그가 봐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 노력한다.
또다시 핸드폰을 든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정우씨, 나에요.”
“아, 지혜?”
나 지혜 아니에요.
나 지영이에요.
내 이름은 지영이야...
하지만 그것도 마음속의 말.
그의 앞에서 난 오로지 여자친구 대용품일 뿐.
“응, 나 지혜야.”
나는 지영이 아닌 지혜로 살아간다.
그를 위해서.
오직 그를 위해서 살아간다.
후횐 없어.
“전화는 왜? 그러보니 오늘 점심에 왜 안왔어?”
“아, 그게...”
“응?”
“늦잠을 자버렸지 뭐야! 나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알았어.”
아차, 가장 중요한거.
“잠깐만, 정우씨.”
“응?”
“... 각...”
“?”
울지말자.
이별따윈 아무것도 아니잖아.
밝게 말하자.
웃으면서 말하자.
농담까지 섞으면 좋아할라나?
지혜라는 여자는 농담을 잘하는 명랑한 여자였을까?
오늘도 그녀가 되기 위해 어이없는 생각들을 한다.
한번에 말한다.
끊었다간 목이 막혀 훌쩍일까봐, 숨도 쉬지 않고 한번에 말한다.
“각막이 왔대, 각막이!”
“...”
“이제 정우씨 눈 뜰 수 있다? 나 볼 수 있어!”
“... 뻥...”
“진짜야! 진짜, 내가 자세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 가서 말해줄게.”
뚝-
전화를 끊자마자 숨이 턱 막혀서 눈물이 난다.
“헉... 헉... 하악... 하...”
링겔을 뽑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다.
아찔-
방이 순간적으로 돌아간다.
침대가 두개로 보이고,
침대 옆 꽃병이 세 개로 보여도 참는다.
문을 열고 그대로 정우씨의 집으로 향하는 한 여자.
그게 바로 나다.
헐떡이며 달려온 정우씨의 집 앞엔 이미 그가 나와 있었다.
나는 얼른 그에게 가서 힘껏 안아준다.
마지막 작별인사.
“하악, 하악... 정우씨...”
“어? 뛰어 온거야?”
“하... 다음 주 일요일이 수술하는 날이야. 그때까지만 기다려.”
“응? 무슨 소리야?”
“우리 그때까지만 만나지 말자.”
갑자기 굳어지는 그의 얼굴.
“왜!”
발악을 한다.
그래, 이 사람은 나 없으면 안된다.
아니, 그녀가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물러나는 거야.
난 이제 필요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들며 얼굴을 찡그린다.
지금은 울면 안돼.
“아니, 그냥. 그때 딱! 내 얼굴보면 얼마나 기쁘겠어.
그날 위해서 우리 보고싶은 마음 계속 묻어두다가 그때 찐~하게 키스하면 안될까?“
“...”
“난 로맨티스트란 말이야.”
잠시 머뭇거리며 양 손에 힘을 더욱 꽉 쥐는 그.
「계속 이렇게 안아주세요.
난 지혜라는 여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보단 당신을 사랑한단말이에요.」
몇 분의 침묵 끝에 들리는 그의 한마디.
“그래. 그때까지만 참을게.”
그러곤 자신의 품에서 나를 떼어놓는다.
나는 잠시 주춤하다가 그대로 뒤돌아 뛰어간다.
그는 잡지 않는다.
이게 마지막인데.
그는 잡지 않는다.
알아, 이게 마지막인걸 모르기 때문이란 걸.
그래도 스스로 알아줬으면 했는데...
마음을 가볍게 갖자.
이제 맨날 그 역한 냄새가 나는 골목길을 걸어다니지 않아도 되잖아?
손에 물묻히지 않아도 돼.
더군다나 나를 다른 여자로 생각하는 남자따윈, 쓸모 없잖아?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난 스스로 나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은 필요없다.
그러니 그도 내겐 이제 필요없다.
그나마 날 필요로 했던 그도 없어졌으니 이젠 내멋대로 하자.
애인도 사귀고,
나이트도 가고,
외박도 해보자.
여태껏 해보지 못한 것들 모두 해버리자...
...
... 지금 생각해보니까...
...
내게 남은 건...
외로움 밖에 없는 것 같아... 슬프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인 채로 헐떡거리며 병원에 도착한다.
천천히 걸어 들어간 내 병실에는,
울고 있는 어머니와 옆에서 다독거리시고 있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리고 곧이어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왼쪽뺨이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조용한 침묵.
고요.
부어오르는 뺨.
부들거리는 팔다리.
주저앉아버린다.
떨어지는 눈물 한방울.
그리고,
그대로 엎으려서 오열을 하는 불쌍한 여자.
사랑을 잃어버린 소녀.
바로 나.
누가 죽은 것 마냥 오열을 터트리는 내 앞에서 안절부절하시는 부모님.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땅바닥으로 고개를 숙인다.
아무것도 없는 내 왼쪽 약지.
그렇게 그를 위해 희생을 했겄만 내 약지엔 싸구려 커플링 하나 없다...
더 서글퍼진다.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숨이 차오른다.
숨쉬기가 힘들어...
“하... 하악... 하악... 하... 흑... 흐윽...”
가슴을 부여잡는다.
놀라는 어머니.
얼른 나에게로 다가와 나를 품안에 감싸안는다.
따스하다...
“지영아 괜찮아. 울지마. 응? 다 괜찮아.”
차분한 말투로 토닥거려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눈이 감긴다.
호흡이 편안해지고 다시 숨을 쉴 수가 있다.
“하...”
“괜찮니?”
끄덕끄덕-
말대신 고개짓을 한다.
“침대에 가서 좀 쉬련?”
끄덕끄덕-
어머니가 아버지께 손짓을 하자 아버지가 부축을 해주신다.
아, 머리가 또 아프다.
어질-
휘청-
탁-
침대 앞으로 고꾸라진다.
다시 침대를 딛고 일어서서 위로 올라간다.
눈을 감는다.
별을 생각한다.
반짝 반짝.
다시 눈을 뜬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인다.
심호흡을 하고 쓸쓸하게 말한다.
“이제 그사람이랑 끝났어요.”
눈이 휘둥그레지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제 더 이상 속 안썩일게요.”
싱긋-
웃어보인다.
난 괜찮다는 뜻으로 얇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꿈속으로 빠져든다.
...
「그가 내 손을 놓고 그녀의 손을 잡는다.
이건 당연한건데...
몇천번이고 가지말라고 속으로 절규를 해버렸다.」
그와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벌써 내일모레가 수술날짜.
이렇게 한가롭게 있을 시간이 없어.
빨리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돼.
나는 핸드폰 대신 병원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를 든다.
오들오들 떨면서 동전을 집어넣는다.
따르릉-
따르릉-
“네. 이지혜입니다.”
“저...”
“뭐야, 또 너야?”
“할말이...”
여전히 쌀쌀맞은 그녀의 목소리에 기가 죽는다.
“끊는다.”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돼.
그의 행복이 달려있는 문제다.
“정우씨 모레 수술해서 시력 되찾아요!”
“... 뭐라고?”
“그러니까 다시 만나주시면 안될까요?”
잠시 침묵 끝에 그녀가 소리를 지른다.
“까약! 정말? 정우오빠 다시 볼 수 있단 말이야?”
조금 안심이 되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아려온다.
“... 네... 그러니까 수술하는 날 같이 병원에좀 가주셨으면...”
“당연하지! 그럼 끊는다!”
허탈하다.
어째서 그사람이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
내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
아, 하지말자.
이런 기대에 부푼 희망따윈 버리자.
난 이제 버려진거다.
난... 일회용품인 거다.
한참동안이나 전화박스안에 서서 멍하게 있는다.
차라리 날 사랑하지.
그런 가벼운 여자보다 날 사랑하는게 덜 아플텐데.
차라리 다른 사람 사랑할껄.
가슴 아픈 짝사랑은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걸.
막아보려 했지만 후회란 감정은 흘러들어와 나를 적신다.
아... 사랑하지 말걸 그랬나봐.
...
... 이런 생각 그만하자.
...
얼른 정신을 차리고 병원으로 들어온다.
이제 막 병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와 아주 많이 비슷한 외모의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는게 보인다.
눈에 붕대를 감고 간호사의 부축을 받은채 걸어온다.
흔들흔들-
고개를 힘껏 젓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우씨는 모레에 수술을 받는데.
그리움도 오래 쌓이면 병이 된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모든 사람이 다 정우씨로 보이니.
한숨을 쉬며 병실로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 꼬박 24시간을 잠으로 채운다.
눈을 떠보니 벌써 토요일 오후다.
어머니는 옆에서 내 손을 잡은 채 주무시고 계신다.
다시 눈을 감는다.
다음 번에 눈을 떴을 땐 제발 월요일이길...
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그래서 오기로라도 잠을 자려 눈을 꽉 감는다.
내일이다.
바로 내일이 그가 새로 태어나는 날이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어서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든다.
지우자.
지워버리자.
이제 지워야 된다.
자자.
이제 자야지.
또 자야지.
그가 없는 꿈속으로 달아나자.
그를 볼 수 없는 어둠속으로 여행가자.
그래, 그러자...
...
...
툭-
쨍그랑-
번쩍-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깨진 꽃병을 줍고 계신다.
뭔가 불길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오늘...”
그때 아버지가 병실문을 열면서 소리치신다.
“일요일인데 이렇게 퍼질러 있다니, 얼른 일어나거라, 딸아!”
안돼.
안돼.
안돼!
“악!!!!!!!!!!!”
한참을 미친 듯 악을 써대다 힘에 겨워 숨을 헐떡거린다.
왜 하필 오늘이...
왜 하필...
시계를 보니 3시.
수술시간이 5시라고 했으니까 아직은 집에 있을 시간이다.
보고싶어.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멀리서 보고 오자.
이게 정말 마지막이다.
딱 한번만 보자.
나는 외투도 걸치지 않은채 어쩔 줄 몰라하시는 부모님을 스쳐 달린다.
뒤에서 부모님의 고함소리가 들려도 끄덕 않는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그렇게 나를 달래며 달린다.
"헉... 헉...“
대낮부터 환자복 차림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나를 사람들이 쳐다본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제 이 길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그 골목길이 나온다.
발걸음이 점점 늦어진다.
이윽고 그의 집 문앞에 다다른다.
차마 들어가질 못하고 앞에서 서성인다.
그때 지혜인 것 같은 여자가 반대편에서 걸어온다.
나는 후다닥 전봇대 뒤로 숨어버린다.
그녀는 당당하게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들어가지 못하는 그 문을 통해...
쾅-
문이 다시 닫히고 나는 고개를 다시 떨군다.
막 뒤돌아 가려는데,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하나는 그의 목소리, 하나는 지혜라는 여자의 목소리.
옥신각신하다 지혜라는 여자가 대문밖으로 쫓겨난다.
그러다 그 둘은 나를 발견한다.
나는 뻘쭘해서 지나가는 행인인 척 태연하게 그들의 곁을 지나간다.
바보같이 환자복을 입은 채로.
내 뒤로 지혜라는 여자의 고함이 들린다.
나에게 들릴 정도로 충분히 컸지만
제정신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윙윙거리기만 할 뿐이다.
“아씨, 그년이 분명 나한테 만나 달라고 해서 만나 줬을 뿐이야!”
“알았으니까 이제 가.”
“뭐? 너 나 사랑하잖아!”
“여태까지 나 돌봐준 거 너 아니지?”
갑자기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는 궁금해서 뒤를 돌아본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핸드폰으로 어디에 전화를 걸고 있다.
그리고 나는 슬픈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그들과 멀어진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으로 들리는 고함소리.
“야, 이년아! 니가 신정우랑 짜고 나 골탕먹인 거지?!”
“네? 무슨 소리...”
“신정우 이새끼 이미 수술받아서 눈 보이잖아!”
“그럴리가...”
“아휴, 내가 니년 말 듣고 이런 재수없는 빈털터리한테 온 내가 잘못이지!”
뭐?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 하지마.
“이봐요,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당신한텐 재수없는 빈털터리지만 나한텐 소중한 사람이라구요!“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
낌새를 채고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둘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병원으로 달린다.
그리고 내 뒤로 누군가가 쫓아온다.
누굴까.
그녀일까.
아님... 그일까.
그일 리가 없지.
분명 지혜라는 여자가 나에게 손찌검하기 위해 날 따라오는 걸꺼야.
쓸데없는 희망따윈 품지 말자.
숨이차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휘청-
다리가 서로 꼬여서 옆으로 넘어진다.
“아야, 아프다...”
그때 내 뒤에 따라오던 사람이 내 옆에 서더니 손을 올린다.
나는 찔끔 눈을 감는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어라?
살며시 눈을 뜬다.
그가 내 앞에서 내게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찢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그 손을 뿌리치고 혼자 일어난다.
뒤돌아 가려는데,
“날 사랑하지?”
라는 그의 물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를 다시 뒤돌아서 그를 보며 말한다.
“누가 그래요? 난 당신 처음봐요. 그럼.”
탁-
그가 내 손목을 잡는다.
“다 알아.”
울컥-
다 안다는 그의 한마디에
뭔가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그동안 쌓아왔던 말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다.
“하... 도대체 무엇을 알아?
너무해. 정말 너무해. 이따위 꼼수로 날 더 아프게 하지마.
이름 따위 상관 없는데,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 따위 상관없는데...
내 아픔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하지는 마.
...
... 그럼 저는 부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셔서.“
탁-
나는 그의 손을 쳐내고 병원쪽으로 걸어간다.
그때 들리는 그의 목소리.
“지영아, 나 너 좀 더 빨리 보려고 금요일에 미리 수술했어.”
지영은... 내 이름.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나를 더 빨리 보고 싶었다고?
휙-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말한다.
"여태까지 나 돌봐준 게 지혜 아니라는 건 진작부터 알았어.
내가 그것조차도 모르는 바본 줄 안 거야?
그리고 수술은 의사 선생님이 전화해서 너 깜짝 놀래켜 주려고
수술을 미리 앞당겼다고 해서, 그래서 빨리 한거야.
그때 선생님께 네 이름 물어봤어."
말도 안돼.
이러면 도저히 포기 못하겠잖아.
그래도 난 이 사람을 위해 혼자가야겠지.
마지막이야.
이말만 하면 그도 내 행동에 정떨어질꺼야.
다 그를 위해서야.
참자.
"그래서요? 안 물어봤어요."
뒤돌아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봐봐, 역시 잡지 않잖아.
이제 질린 거야.
아니, 진작부터 질렸겠지.
툭-
눈치없는 눈물은 또 흐르고, 바보같은 나는 흐느낀다.
그때,
휙-
그가 내 팔목을 잡아 뒤돌이켜서더니 키스를 한다.
나는 얼굴이 눈물범벅이가 된 채 첫키스를 한다.
왜 이렇게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당신은 나의 사랑...
나도... 당신의 사랑인가요?」
얼마나 묻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나 사랑하고 있는데
나는 당신에게 지혜라는 이름으로 밖에 불리워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너무나 물어보고 싶은게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걸 지금에서야 물어보려 합니다.
“나도... 당신의 사랑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입술을 깨물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대답이 들릴때면, 난 당신을 꽉 껴안아줍니다.
“김지영은... 나 신정우의 사랑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웃습니다.
서로 자신의 사랑을 꽉 껴안아 줍니다.
이로써 그들만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우리들의 해피엔딩이 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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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중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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