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종종 회합을 가지곤 한다.
(그리하여 내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위험한 동거'라고 하였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가 살림을 워낙 지저분하게 하기 때문이다.
누차 밝혔듯이 나는 살림을 잘 못한다.
냉장고에선 야채나 과일이 물러지기 일수고,
빨래는 대략 일주일씩 모아서 하는 건 기본이며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래를 삶아본 건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난다.
음식물 쓰레기 제깍제깍 갖다버리는 것도 귀찮고,
한때 매일 청소와 빨래를 하고 이불을 매일 털던 날들도 있었으나
요즘은 설거지도 미루고 미루어서 한다.
그래서 온통 아이가 먹던 과자 부스러기에 음식물쓰레기 냄새에
집안 곳곳에는 우리집에 사는 두 남자들이 아무데나 벗어던진 옷과 양말들이 널려있다.
나만 치우기 억울해서 나도 도처에 마시다만 커피잔, 읽다만 책, 자다 던져놓은 쿠션과 베개, 또 각종 나의 취미생활의 흔적들을 늘어놓는다.
이제 우리집은 발디딜 곳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나는 바퀴벌레를 정말 너무 싫어했다.
결혼 초, 집에 바퀴벌레가 나오면
나는 남편의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남편회사에서 무쟈게 가까웠다.
남편은 우리가 "뽈뽈이"라고 부르던 텍트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그 뽈뽈이로 1분도 안걸리는 거리였다. )
나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와 울먹거림에 남편은 달려와 바퀴벌레를 잡아주고 가곤 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까 남편은 내가 또 회사로 전화해서 바퀴벌레 나왔다고 울면 갖은 신경질을 다 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바퀴벌레가 나오면 가출을 했다.
도저히 내가 잡지는 못하겠고,
누가 잡아줄 사람도 없으니....
그대로 집을 나가서 남편이 퇴근할때까지 집 주변을 방황하다가 남편과 함께 들어오곤 했다.
남편은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하고 의심도 하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웃기도 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자 더이상 집을 나갈 수가 없었다.
바퀴벌레 나왔다고 추운 날 기관지염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퀴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역시 모성은 강하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온지도 어느새 만 3년이 넘었다.
이 집에서 나는 정말 많은 종류의 곤충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바퀴벌레만 보면 자지러지고 집을 뛰쳐나가던 내가
이제 우리집에 살고 있는 바퀴벌레의 종류가 세가지가 넘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개미는 물론이고
각종 모기, 날벌레, 심지어 쌀벌레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벌레들......
나는 개미와 바퀴벌레로부터 내 집, 내 음식물들을 지키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했다.
앞서도 적었듯이
매일 쓸고, 닦고, 빨고,
이불을 털고, 햇볕에 내다 말리고, 쓰레기가 발생하는 즉시 갖다 버리고,
하루종일 손에 물이 마를 틈없이 씻고 닦고 삶았다.
각종 바퀴벌레 약들도 다 써봤다.
각종 메이커의 뿌리는 약, 붙이는 약, 치약처럼 생긴 바르는 약,
곤충학과에 다니는 언니 친구의 조언을 얻어 붕산을 써보기도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개미혁명>책도 사서 읽었고,
온 집안에 고무조각과 붕산을 뿌려놓았고,
박하향이 나는 허브를 잔뜩 사다 키운적도 있다.
(한때 <개미>를 읽은 후유증으로 집안에 개미를 보면 이것이 혹시 모험을 떠나온 103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개미를 죽이지 못한 적도 있긴 있었다...)
나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
개미와 바퀴벌레들은 종종 우리집에서 만남의 장을 열며
집안 곳곳에서 출현했고,
이제는 집안에 바퀴벌레들이 잔뜩 있는 것이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의 모든 노력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 아파트 소독하는 날 아침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차에 태우기 위해 내려갔는데
동네 아낙 몇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 날 소독에 관한 것이었다.
소독할때 어디 가 있을 것인가....뭐 그런....
그 중 유난히도 이쁜 아낙 한 명이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기 살면서 한번도 벌레를 본 적이 없어.
꼭 소독 해야 되니?"
나는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역시..... 내가 지저분해서 우리집에만 벌레들이 들끓는 거구나....
집에 올라와서 나는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느 아낙이 그러더라고...
언니는 깜짝 놀라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외쳤다.
"뭐? 장님이래?"
나는 또 잠시 방바닥에 쓰러져서 데굴거리며 웃었다.
사람 사는 곳에 개미와 바퀴벌레도 살기 마련이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나는 꽤나 지저분하다.
세수나 양치도 잘 안하고
집도 지저분하게 쓴다.
한때 깨끗한 집에서 살아보고자 했던 노력을 이제는 다 포기하고
적당히 지저분하게 늘어놓고 산다.
자고나서 이불도 안개고, 빨래랑 설거지랑 청소도 미루고,
쓰레기도 생각나면 버리고 생각 안나면 안버린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청소때문에 아이에게 비디오를 틀어주며 혼자 놀으라고 하고는
욕실과 베란다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빠는 대신에,
지저분한 집에서 아이랑 뒹굴면서 기차로 변신하는 델타트레인 로보트를 가지고 논다.
그리고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여유를 즐기면서 산다.
내 아이는 바퀴벌레를 <엉금>이라고 부른다.
그 녀석이 막 네살이 되던 무렵(한참 말배운다고 버벅댈때였다.우리 아이는 말이 좀 늦는 편이었다.)
그 녀석의 눈앞에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한 마리 떨어졌다.
그 녀석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바퀴벌레"라고 이름을 가르쳐주었으나, 바퀴벌레를 유심히 살펴보던 아이는 거북이처럼 바닥을 기며 "엉금엉금"이라고 소리쳤다.
(제 딴에는 바퀴벌레 흉내를 낸다고...)
그 후 아이는 바퀴벌레를 <엉금>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도.....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모두 바퀴벌레를 엉금이라고 부른다.....
오늘도 우리집엔 수많은 엉금들이 출현했다.
아이는 바퀴벌레를 보면 손가락으로 척 가리키며 "엉금!"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나는 식탁의자를 딛고 뛰어올라 식탁 모서리에서 도움닫기를 해서
천장에 붙은 엉금을 잡는다.
원래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하하하하,,,전, 왜이렇게 웃기지요?... 전 얼마전 새끼 바퀴놈의 출현으로 집안 곳곳에 붙이고, 바르고.. 설탕과백반을 같이 갈아서 집안 군데군데 숨겨놨어요. 그러면 바퀴놈이 먹고 죽어버리고, 죽은 놈은 또 다른 놈이 먹어치워서 죽어버리고...그러면서 없어진다는 정보하에--> 증말 가토요..그말이.. //..참고로
가장 좋은 방법은 천적인 개미를 적절히 기르는 건데... 안 되겠지요?공동주택이라면 일단 전세대가 함께 소독이나 연막탄을 한 번 터트리는 게 바람직하지 싶어요. 한 집에서 악을 써봐야 안 없어지니까요?그런데 난 바퀴벌레 구경한 지가 벌써 몇 년쯤 된 것 같군요.얼마나 지독하면 우리 집에는 바퀴도 안 살까요?(ㅋㅋ)
어떤.. 제목과 지은이도 잘 기억 안나는데 미국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작가가 쓴 다른 소설이었나 그런데... 하여튼 거기 이런 말이 나왔죠. "따분한 여자는 먼지 한 톨 없는 집을 갖는다." 여주인공 엄마의 가르침이었대요. 그걸 읽은 뒤로 청소나 빨래를 하고 있다 보면 늘 그 생각이 나곤 하죠.
첫댓글 나는 바퀴벌레... 나와도 별로 신경안쓰는데..쿠쿠=_=
재밌고 경쾌한 수필 한 편 읽은 것 같아요. 늘 유쾌하고 공감가는 콘님의 일기 잘 읽었습니다.^^
잼있네요~ 조금 깨끗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세요~ㅋㅋ
정말 벌레들한테 인기 짱이네요 크크크
재밌군요..^^;
아악 ; 저도 바퀴벌레 지렁이 이런것 너무 싫어요 . 곤충들 싫어하고 , 심지어 왕 모기까지 지나가면 무서워서 악악 소리를 지르죠 . 제 동생한테 잡아달라고 하지만 . 동생 왈 , " 니가 알아서 해 . " 일부러 골탕먹여요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연! 아들이 보고 싶대~ 놀러와아아아~ 아님 아들 여름방학때 내가 한번 가든지~ 요즘 울 아들 재롱이 늘어서 귀엽긴 한데, 잔소리가 많아졌어. 여자친구도 바뀌었음. 우리집이 깨끗해지는 그날,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 초대하리라~~~
우리집에도 바퀴벌래가 있는데 나무로 된 집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바퀴벌래는 번식력이 대단한 물건이니 ...
재미있어요^^*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예요. 바퀴벌레는 아니지만 화분이 많은 탓에 엄청난 수의 개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요. 봄이 되서 베란다로 화분을 내놓아서인지 집 안에서는 이제 잘 볼 수 없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예요 ㅋㅋ
우하하하하,,,전, 왜이렇게 웃기지요?... 전 얼마전 새끼 바퀴놈의 출현으로 집안 곳곳에 붙이고, 바르고.. 설탕과백반을 같이 갈아서 집안 군데군데 숨겨놨어요. 그러면 바퀴놈이 먹고 죽어버리고, 죽은 놈은 또 다른 놈이 먹어치워서 죽어버리고...그러면서 없어진다는 정보하에--> 증말 가토요..그말이.. //..참고로
양념등 보관하는 장에는 쓰다남은 식초를 병째 놓고 마개를 열어놓으셔요.. 바퀴놈들 안나타나더라구요..//..초장에 잡아 씨를 말리는 중...(쩜, 표현이 무섭져..ㅎㅎ)
바퀴벌레... 아 말만 들어도 싫다! 콘님 일기는 말만 들어도 좋아요! ^^
자취할 때 생각나네요. 자취하면 동전만한 바퀴벌레도 단호히, 퍽, 내려쳐야 하거든요. 그때 생각나서 몇 자 적어요.
고맙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천적인 개미를 적절히 기르는 건데... 안 되겠지요?공동주택이라면 일단 전세대가 함께 소독이나 연막탄을 한 번 터트리는 게 바람직하지 싶어요. 한 집에서 악을 써봐야 안 없어지니까요?그런데 난 바퀴벌레 구경한 지가 벌써 몇 년쯤 된 것 같군요.얼마나 지독하면 우리 집에는 바퀴도 안 살까요?(ㅋㅋ)
음, 자고로 생명은 고귀한 것이랬으니 함부로 죽이지 말랬슴. 바퀴벌레가 내가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도 먹어 주고 얼마나 좋아요ㅗ? 공생의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상생의 시대잖아요. ㅋ,ㅣㄹ킬킬
어떤.. 제목과 지은이도 잘 기억 안나는데 미국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작가가 쓴 다른 소설이었나 그런데... 하여튼 거기 이런 말이 나왔죠. "따분한 여자는 먼지 한 톨 없는 집을 갖는다." 여주인공 엄마의 가르침이었대요. 그걸 읽은 뒤로 청소나 빨래를 하고 있다 보면 늘 그 생각이 나곤 하죠.
청소랑 빨래랑 설겆이는 죽어라 하면서 정작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 엄마보단, 좀 지저분하게 해놓더라도 아이와 놀아주는 엄마가 좋아요. 그래서 전... 콘님이 좋아요~
나두나두 아웬님 말씀에 동감이예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