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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작업 마무리하고 씻고 나오느라"
K는 젖은 머리를 가볍게 털고선 나를 거실로 안내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벽지에 대리석 바닥으로 이루어져
마치 사람이 살것 같지 않은 모델하우스를 연상시켰고
바닥엔 먼지하나 없을 듯 깨끗했는데
특이한건 거실 곳곳에 조각상들이 놓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정성들여 만든듯한 조각상인것 같아 가까이 가 쳐다보니
자신의 직업이 조각가라 집 곳곳에 조각상들이 있다며
하나하나 작품 설명을 시작하는
K의 얼굴에서 뭔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보여
왠지 모를 인간미가 느껴지긴 하는것 같았다.
K는 플레이팅만 하면 되니 잠시 기다려달라하고
나는 그의 작품들을 천천히 구경하는데
작품들 중 하나에서 이상한게 보인다.
그건
순간 섬찟한 느낌에 좀더 자세히 보려 하는데
언제 다가온건지 K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작품을 만지려던 내 손을 잡는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드시나봐요. 어제 밤에 만든건데"
"아..아뇨 그냥 특이해서. 식사 준비는 끝나셨나요?"
K는 내 물음에 싱긋 웃더니 나를 식탁으로 안내하는데
머릿속엔 온통 조각상 생각 뿐.
어제밤...그리고 작품에서 발견한 이상한 점
연상되는건 하나 뿐이었다.
이 안의 사람의 시체가 들어가 있다는 것...
이 가정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기 굳게 닫혀있는 방은..?
식사 중 나도 모르게 닫혀있는 방을 바라보니
K는 나를 매우 흥미로운 듯 바라보며 말한다.
"저 방은 제 작업실이에요. 궁금하다면 들어가보실래요?"
"아뇨 그냥 제가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흐음. 당신이라면 흥미롭게 느낄 수도 있을거 같은데 아쉽네요."
"그럴수도..있겠죠"
"그거 알아요? 당신에게 관심이 많은거. 다른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서 거기에 끌리나봐요. "
"전 남들과 다를게 없는걸요"
"뭐라할까. 남들은 선악을 구별지으려 하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선이라 생각했던게 누군가에겐 악이 될수도,
악이라 생각했던게 누군가에겐 선이 될수도 있다고"
"그리고 남들에게 선하다는 사람도
내게는 악한 사람일수가 있구요.."
내 대답에 K는 싱긋 웃더니
어떤 얘기를 하나 들러주기 시작한다.
"당신이 A라면 어떤 생각이었을지 말해줄래요?
A는 어릴적 한 아이가 누군가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했어요. 아이의 몸에 폭행당한 흔적을 보니
아마 정당방어로 죽였을거니 생각하게 되죠.
일반사람들은 둘중 하나에요.
못본 척 도망치거나, 신고하거나.
하지만 A는 그 둘중 무엇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아이를 지켜보았죠.
A는 어째서 그 남자를 죽일때까지 지켜보았을까요."
이건 내 첫 소설 내용이자 내 과거의 일인데
어째서..? 혹시 내가 그 소설의 작가라는걸 아는걸까
당황해 아무말도 못하는 내게
생각은 깊게할수록 본심을 감추게 된다며 5초를 준다고 시계를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내 대답에 그는 만족한다는 듯 박수를 치더니
정답이라 외치며 말을 이어간다.
"살인은 악, 구원은 선. 누가 정한걸까요
당장 죽고싶어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면 그건 선?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을 정당방어로 죽이면 악?
이상하잖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 기준에 맞춰 모든걸 판단하는데
전 다르게 생각해요.
남들이 살인은 악이라 생각해도 저는 선일수 있다고."
"......."
"당신을 평생 괴롭히는 누군가를 제가 죽여드리면
저는 당신에게 악일까요 선일까요"
"뭐 물론 정당성 없고 이유없는 살인은 잘못된거지만
정당하다면 잘못된게 아니라고 봐요.
마치 당신의 소설처럼"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남들에게 말하면 나를 미친사람으로 볼까 두려워
늘 소설로만 담아왔던 내 속마음을 누군가 이끌어내 줬으니까.
그래 늘 뭔가가 두려웠고 감추려했다.
아버지가 나를 때릴때,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살인은 잘못된거니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스스로를 자책했고
전연인이 나를 가스라이팅하고 괴롭힐 때,
나도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었지만
같은 사람이 되선 안된다며 스스로를 자책했고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까내리려 할 때,
내가 그들이 싫어하는 글을 쓴거니
내가 잘못된 것이라 자책했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악인이 될것 같아서.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지.
죽이고 싶었고, 되갚아주고 싶었고, 날 욕하는 그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정당성..이유
그래 누군가는 살인에 정당성이 어디있냐 하지만
당장 목숨을 위협받는 누군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누군가가 그 사람을 위해 상대를 죽여버리면
그사람은 정당한게 아닐까.
식사를 마친 후
K는 내게 자신의 첫 작품이라며 조각상 하나를 건냈고
집 현관을 나서려는 내 뒤로 K는
고맙다 인사를 하는데
뭐가 고맙냐는 내말에 아무 대답없이 싱긋 웃더니
손을 흔든다.
그리고 내 뒤로 들릴듯 말듯 한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데
"당신 덕분에 살인을 정당화 할 방법을 알게됐으니까"
집에 돌아와 그가 준 조각상을 바라보며
어떻게 내 소설을 알았고, 내가 그 작가라는걸 안건지 궁금해졌고
그가 진짜 살인자라면.. 그의 살인은 정당한 살인만 한다는건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손가락으로 조각상을 훑는데 조각상 밑부분에 무언가 새겨져있었고, 거기엔.. 내게 메일을 보내온 애독자의 닉네임이 쓰여있었다.
아...K 당신이 그사람 이었어?
나는 순간 당황해 그의 조각상을 책상 밑으로 떨어트려 버렸고, 조각상이 깨지면서 그 안의 피뭍은 칼이 드러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날 밤도 컥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끌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마치 공범이 되어버린듯.
다음날 새벽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문 구멍으로 밖을 보니
도대체 어떻게 이곳을 찾은건가 싶어
멘탈이 나갈것만 같은데
어떻게 된건지 문 잠금장치가 고장나 있었고
(전남친 혹은 아빠)가 들어와
내게 칼을 들이밀며 말한다.
"니까짓게 나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넌 평생 못벗어나."
아...무섭고 징그럽고 토할것만 같다.
매번 반복되는 이상황..
차라리 죽고만 싶어지는데
책상에 놓여진 K가 준 칼이 보이고
늘 상상만 해왔던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하지만 처음 휘두룬 칼, 그리고 떨리는 손 때문이었던지
칼이 깊게 들어가지 못했고
(전남친 혹은 아빠)의 화만 더 돋구어
나를 밟기 시작하더니 칼로 찌르려 하는데
그 순간 그의 목에 칼이 꽂힌다.
K는 나에게
이 남자..언제부터 날 바라보고 있었던걸까
아니 이 상황자체를 일부러 만든건 아닐까
K는 능숙능란하게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시체를 끌고 갔고
나는..
경찰에선 아버지의 실종신고로 나를 찾아왔고
몇번을 경찰서로 들락날락 했지만
K가 내 알리바이를 입증해줬고 평소 아버지의 행실에 사건은 손쉽게 실종으로 마무리 되었다.
늦은 밤, 마지막으로 경찰서를 다녀와
집으로 향하는데
내 집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고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턱을 괸채 흥미로운 얼굴로 노트북을 보고 있는 K가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마치 아이처럼 순수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와 이번 소설 주인공의 모티브가 저에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는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마치 떨지 말라는 듯 내 두손을 잡는데.
"음 하지만 이 소설의 살인마처럼 이 빌라는 제 집도 아니고..
살인마는 주인공을 좋아했기에 그에게 찝적거리는 사람들을 죽인거라 하지만
저는 평소 죽이고 싶은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거죠.
저번에 빌라 앞에서 소주병을 휘두룬 아저씨도
워낙 시끄러워 늘 작업에 방해를 주길래 언젠가 죽이려 했는데
제가 가장 싫어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준거죠. "
"...."
아..! 그래서 그 날 내가 말리려 할 때 붙잡았구나.
저런건 쓰레기니까 죽일수 있다는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그렇다면 저는 왜 당신을 살려두는거라 생각하나요?"
덜덜 떨며 아무말도 못한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를
손가락으로 턱을 가볍게 올려 눈을 맞추고는
차갑게 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 소설 결말이 궁금해 살려두는거야.
당신을 죽일 이유를 만들 수 없게
나를 위해 계속 글을 써줘요"
end
첫댓글 이거 그거같다........ 미연시
너무 좋아요 쓰앵님
와 내주식 박살났지만 그래도 넘 재밌다... 영화같아
돈줘요...돈...
와..이거 영화로 만들면 대박일듯.....
와씨....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