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얼굴의 이 방글라데시 청년은 미르 마흐푸주르 라흐만(25)이다. 지난달 18일 수도 다카에서 장기 집권한 지도자를 축출하는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대에 합류해 물병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생전의 마지막이었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와 구분하기 쉽게 '무그도'란 애칭으로 불린 그는 흩어지는 시위대원들에게 물병을 나눠주고 15분 뒤 따가운 오후의 땡볕을 피해 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그의 이마를 뚫고나가 목숨을 잃었다. 친구와 동료 시위대원이 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하릴 없었다.
쌍둥이 형제 미르 마흐부부르 라흐만, 일명 '스니그도'는 11일 미국 CNN에 "난 그저 그를 껴안고만 있었다. 난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무그도의 차디찬 주검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성난 시민들이 거리에 몰려나오게 만들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가뜩이나 높은 청년 실업난에 국가 유공자 자손을 정부 직책에 할당 배정한다는 정부 발표에 발끈한 대학생들의 평화 시위로 시작했는데 차츰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돼 경찰과 충돌 끝에 적어도 300명이 목숨을 잃었고, 결국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물러났다. 다카의 한 테크 기업에 근무하는 파라 포르쉬아(23)는 "(살인이) 계속 일어났는데도모두가 침묵했다"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시나 전 총리는 지난주 수만명의 시위대가 자신의 집을 향해 행진에 나서자 헬리콥터를 이용해 인도로 탈출했다. 이에 따라 경제학자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뉴스 가 헌법에 규정된 대로 90일 안에 총선을 치르기 전에 임시정부를 꾸리기 위해 다카로 돌아왔다.
포르쉬아는 “몇년 동안 우리 모두는 권력이 없다고 느껴 왔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권력의 크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달의 소요는 잠시 불편한 소강 국면에 들어섰지만 많은 가족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부른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무그도는 수학 학사학위를 딴 뒤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공부하고 있었으며 스니그도는 법학 학사학위를 땄다. 쌍둥이는 올 가을 이탈리아로 건너가 공부를 하면서 모터바이크로 유럽 전역을 누빌 계획을 갖고 있었다. 여행 경비를 모으려고 온라인 프리랜서 허브 '파이버'(Fiver)를 위해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스니그도와 맏형 '딥토' 미르 마흐무두르 라흐만은 무그도 없는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그들은 무그도가 죽을 때 걸고 있어서 핏자국이 묻은 대학 학생증 목걸이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 그들은 무그도가 시위 운동에 끼친 영향력에 위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스니그도는 "그 덕분에 사람들은 힘을 내 시위에 나섰다”면서 “그는 늘 ‘내가 언젠간 우리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순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무그도가 죽기 이틀 전에는 아부 사예드(25)가 죽는 순간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널리 돌았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동영상을 분석해 경찰관들이 12발 산탄총을 의도적으로 조준 사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의도적이며, 아무런 도발이 없는 공격으로 보인다"며 당국이 “불법적인 완력”을 썼다고 규탄했다. CNN은 경찰의 코멘트를 듣고 싶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예드와 무그도의 충격적인 죽음은 학생 주도의 시위에서 각계 각층이 모두 나서는 시위로 발전시켰다. 포르쉬아는 "모두가, 모든 인종이, 모든 종교가, 모든 부족이, 모든 연령대가, 직장인과 학생, 어린아이까지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유니셰프(UNICEF)는 지난 몇 주 동안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 적어도 32명은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카 중심지 낡은 오두막에서 13세 희생자 무바라크의 부모는 지금도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당국이 밝혀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고 있다. 엄마 파리다 베굼은 휴대전화로 아들의 틱톡 동영상을 보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오열했다. 그게 아들이 남긴 유일한 것이라고 했다. 네 자녀 중 막내였으며 유일하게 집에서 함께 지내던 무바라크는 소들을 키우고 우유를 팔아 생계를 잇던 부모를 돕는 착한 아들이었다.
부친 모함마드 람잔 알리는 “아들은 잘 웃고 행복한 소년이었다. 당신이 일을 시키면 싫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해내는 아이였다”면서 "약간 장난스럽긴 했다"고 말했다.
무바라크는 지난달 19일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있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위가 벌어진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일어 돌아다니다 변을 당했다. 부모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야 총격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을 확인했다.
아내는 남편 팔에 안겨 눈물을 떨궜다. 알리는 “우리 아들은 이 운동을 위해 순교한 셈"이라면서 "난 처음에 이 할당제 항의 시위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시위가 학생들만이 아닌 모든 방글라데시인을 위한 시위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