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16살 춘태 여고 3년생 박금희양도 계엄군의 총탄에 숨졌다. 5월21일 오후 2시 수미다실 앞에서 사망한 박양은 오른쪽등 가슴 부위에 총알을 맞았으며, 왼쪽과 오른쪽 허리부분에 심한 타박상을 입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박양 역시 허리를 개머리판 혹은 곤봉으로 심하게 얻어맞은 후등 뒤에서 쏜 총을 맞고 사망했는지, 그 거꾸로 인지는 분명치 않다.
박금희양은 당시 기독 병원에서 부상자를 위해 헌혈을 하고 귀가하던 중에 계엄군의 총에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헌혈등 부상자 구호 활동을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던 이광영씨는 5월21일 오후 6시경 양림동에서 헌혈을 하고 싶다는 여학생을 만나 기독 병원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어떤 여학생이 헌혈을 하겠다고 졸라 기독 병원으로 데려다 준 뒤 또다시 부상자 수송 작업에 나섰다. 잠시 뒤 기독 병원에 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며 울부짖고 있었다. 어느 여학생이 총탄을 맞아 즉사했다는 것이다. 시체를 확인 해보니 조금 전에 내가 실어다 준 그 여학생이었다.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내가 병원으로 실어다 주지 않았다면 그 여학생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지금도 괴롭다.
당시 기독 병원 간호 감독을 맡고 있던 안성례씨도 박금희양을 기억했다.
『병실에서 환자를 돌보는데 밖에서 통곡 소리가 들려 왔다. 이곳에서 방금 헌혈을 하고 돌아갔던 금희가 가마니에 덮인 시체로 돌아왔다. 피투성이가 된 금희의 시체를 보며 울기보다는 「전두환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박금희양보다 나이가 더 어린 당시 14살의 박기현군 (동신 중학교 3년생)은 타박사로 숨졌다. 검찰 기록에 의하면 박군은 5월20일 동구 대의 동의 시민 회관 부근에서 사망했는데 머리와 가슴, 복부를 집중적으로 맞았고 뇌죄상 (멍든 현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또 다시 19살의 김경환군은 곤봉 등 구타에 의한 타박상, 칼에 의한 자창, 총알에 의한 총창 등 「다양한」흉기로 숨졌다. 검찰 기록에 의하면 점포를 운영하는 삼촌 밑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김군은 5월20일 오후 8시경 점포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전남대 병원 부근 로터리에서 사망했다. 김군의 사인은 머리를 얻어맞아 뇌가 멍든 것 (뇌좌상)이 직접 사인이었고, 이외에도 왼쪽 어깨 부분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복부에 는 깊이가 2cm되는 자창이 세 군데나 발견됐다.
머리를 때리고, 칼로 찌르고, 결국에는 총알로 확인 사살까지 한 공수부대들의 잔인성은 검찰 기록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첫댓글미개인들의 시간 개념부터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5월21일 오후 2시 수미다실 앞에서 사망한 박양은> <이광영씨는 5월21일 오후 6시경 양림동에서 헌혈을 하고 싶다는 여학생을 만나 기독 병원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님도 의사로서 환자의 사망시간 기록을 그렇게 미개하게 하는지요. 오후 2시에 사망한 여학생이 어떻게 오후 6시에 자원 헌혈하러 올 수 있다는 것인지요? 설명 바랍니다.
첫댓글 미개인들의 시간 개념부터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5월21일 오후 2시 수미다실 앞에서 사망한 박양은> <이광영씨는 5월21일 오후 6시경 양림동에서 헌혈을 하고 싶다는 여학생을 만나 기독 병원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님도 의사로서 환자의 사망시간 기록을 그렇게 미개하게 하는지요. 오후 2시에 사망한 여학생이 어떻게 오후 6시에 자원 헌혈하러 올 수 있다는 것인지요? 설명 바랍니다.
광주의사들은 사망진단이 난지 4시간이나 지난 사람으로부터 헌혈을 받는다는 것인지요.
괜히 트집 잡기는..게시판에 시간 기록을 수정하면 조작이 되나요?ㅋㅋ 알아보고 댓글에다 다시 시간 정확히 올리겠음
19살 김경환군은 머리를 얻어맞아 뇌출혈에 , 왼쪽 어깨 부분에 총알이 ..,복부에는 깊이가 2cm되는 자창이 세 군데나 ......때리고 쏘고 찔렀군요.
<김군은 5월20일 오후 8시경 점포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오후 8시경 출근하는 직장이라는 말인가요? 그리고 그 시간에 전남대 병원 부근 로터리에 군인들이 있었습니까? 총기로 무장한 시민군이 장악한 거리였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