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첫날의 파상적인 폭격이후 이라크 영토에 진입한 미/영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돌격하며 당장에도 바그다드를 함락할 기세였으나 바그다드 남쪽에서 이라크군의 강력한 반격에 부딫혀 예상외의 고전을 하고 있다. 점령한 것으로만 알았던 움·카사르에서도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원들의 시가전에 연이어 사상자를 내고있고 심지어는 미국의 군인들이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혀 TV화면에 공개되는 망신을 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보았을 때 이라크군은 훌륭히 전투를 이끌어가고 있는 반면에 미·영 연합군은 허우적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유리한 쪽은 잘해서 유리한 것이고 불리한 쪽은 상대적으로 못해서 그러한 것이다. 본인은 국제정치/군사학 전공자로서 이번 이라크전의 상황을 분석하고 쌍방이 승리를 위하여 택할 수 있는 전략/전술도 아울러 유추하여 본다. 이 글에서는 정치적 분석은 가급적 배제하고 논지를 전략/전술에만 제한시킨다.
1. 미·영군의 고전
미·영 연합군이 고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될 수 있다.
A. 전략변경
원래 미국의 계획은 '충격과 공포'전략을 통하여 이라크에 엄청난 수의 전략무기를 투하하여 이라크군의 전투의지를 꺾고 이라크 지도부의 붕괴를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이 충격과 공포작전은 호전적인 국방부 장관 럼스펠드와 차관 울포위츠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뜻 밖에도 미행정부의 대표적 온건파로 알려진 국무장관 콜린·파월이 주장을 한 것이다.
파월 장관이 비록 걸프전 당시의 합참의장이긴 했지만 이러한 대대적 폭격작전 아마 그의 베트남전 경험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싶다. 파월 장관은 1미국의 협상요청에 부정적이던 월맹지도부가 미국의 맹렬한 북폭(北暴)을 보고 협상테이블로 나온 것을 기억하며 약한 상대에게 '극복불가능'한 화력의 우위 과시가 전략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그는 전쟁을 하려면 처음부터 '바위로 계란을 치듯' 처음부터 확실하게 공격을 하여야지, 지금도 많은 군사연구가들이 지적하듯이 적의 위협수준에 따라 대응수위를 높인다는, 베트남전에서 사용된 유연한 대응(Flexible Response)와 단계적 확대(Gradual Escalation) 전략으로는 실패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첫날부터 '충격과 공포'작전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대적인 폭격이라고 할 만한 것도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오히려 정권붕괴를 기다리며 폭격을 '자제하는'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이라크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죽었다던 지휘관들까지 TV에 출연하여 결사항전을 외친다. 물론 그 뒤에 대대적인 폭격을 하기는 하였지만 '유연한 대응'때문에 이미 이라크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인식시킬 기회는 지나간 것이다. 이미 이라크군의 머리 속에는 '충격과 공포라더니 그거밖에 못하냐'라는 인식이 자리잡힌 것이다.
B. 전선의 제한
① 북부전선의 폐쇄
물론 이는 전술의 실패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외교적인 실패라고 해야하겠지만 전선의 제한이 미군의 전략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원래는 미·영연합군이 남쪽에서 진격하고 미국의 제 4기갑사단과 특수부대가 쿠르드족 병력과 힘을 합쳐 북쪽에서 남진하여 바그다드를 남북에서 협공을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쿠르드족의 독립국가가 생기는 것과 EU가입 가능성이 낮아질 것을 두려워한 터키가 터키영내 미국 지상군의 진입을 불허하자 제 4기갑사단은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지나 페르시아만으로 돌아가서 나머지 부대들과 마찬가지로 쿠웨이트에서 북진을 하게 되었다. 러·일 전쟁 당시 영국이 러시아 발틱함대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불허하여 멀리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먼길을 가게 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비록 아직도 미국의 특수부대들이 이라크 북부에서 쿠르드족과 같이 싸우고 있고 이러한 전략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는 하였으나 탈레반 군사들은 게릴라에 가까운 병력이었고 지금 이라크 북부에 포진하고 있는 이라크 1군단과 5군단은 비록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정규군 병력이다. 아무리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중화기가 부족한 경보병에 지나지 않는 쿠르드족 페시메르가('죽음에 맞서는 자들': 전사)와 미군 특수부대가 85000명의 이라크군을 물리치고 바그다드로 진공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설사 그렇다 할 수 있더라도 바그다드 북부에 포진하고 있고 기갑사단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제 1군단(약 40000명)과 맞닥뜨려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군과 쿠르드족 연합부대의 '남진'은 물 건너간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군은 남북으로 나누어 진격하여 전선의 확대와 이라크 전력의 분산을 유도하려 하였지만 터키를 완전한 우군으로 끌어들이는데 실패하여 북부전선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고전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북부의 이라크군이 남부전선에 투입되는 것을 막음으로서 전황에 일정정도의 기여는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② 남부전선의 좁은 전선
그러면 미·영 연합군의 주력이 북진하고 하고 있는 남부전선을 한 번 살펴보자. 처음에 포 반도를 기세 좋게 함락하고 이라크 남부를 장악하며 수천명의 포로를 잡았던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현재 유프라테스강의 요충인 나시리아와 바그다드 외곽인 카르발라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사우디 아라비아의 영토사용거부로 '넓은 전면(戰面)'대신 일직선상의 직공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 거점들만 공략하면서 진군하고 있다. 이는 미군이 2차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취하였던 '건너뛰기(Leap-frogging)전법'을 상기시킨다.
문제는 태평양에서는 공격의 대상이 섬들이었기에 후방의 큰 도서에 있는 보급기지가 무너지면 전방의 섬들은 고립될 수밖에 없었지만 육지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보급은 육로로 통할 수밖에 없고 만약 후방의 위협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공은 진격의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보급에 약점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이라크군에 포위되어 일부는 전사하고 포로로 잡힌 미군들이 전투부대가 아닌 정비부대 소속이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여 준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보급선은 적의 소규모 부대의 공격에 지극히 취약하며 실제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상당수의 전력이 전선에 투입되지 못하고 후방확보에 '낭비'되고 있다.
그리고 아울러 미국의 가공할 공중전력이 지상군부대의 지원에 투입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지금 미·영 연합군의 지상군을 지원하는 항공부대는 기껏해야 공격헬리콥터일뿐 지상군에 대한 조직적인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나마 헬리콥터는 소규모로 분산된 이라크군 게릴라들을 수색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 문제점은 미·영의 기갑전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적의 주력을 격파하고 전선돌파의 선봉역할을 할 대규모 기갑부대가 없는 것이다. 일직선상의 직공에 '선봉(spearhead)'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기갑전력의 부족을 감안하면 이를 반드시 이상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영국의 제 7기갑여단이 있고 미국의 보병사단편제 자체가 하나의 기갑여단을 포함하게 되어있지만 각 부대가 유기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라크군에 대한 기갑부대 집중과 대대적인 공격은 어렵다. 더군다나 바그다드 남부에 포진하고 있는 공화국 수비대 메디나 사단은 기갑사단이며 함무라비 사단은 기계화 보병이다. 보병사단과 공중강습사단만으로 바그다드 공격을 강행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