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편지는 현재 개신교 한신대학교 총장이신 채수일 목사님(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선교학 박사)이 작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앞두고 교황님께 쓴 편지로 경향잡지 2014년 7월호에 게재된바 있으며, 어제(5.30) 교구청에서 개최된 선교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의 자료집에도 게재되어 소개합니다.
어제 심포지엄을 통해서도 목사님은 편지 말미에 쓰신 그대로 자신을 "집나간 형제"라 칭하며, 학자로서의 겸손한 자세와 천주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한바 있습니다. 저 자신은 교황님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그저 '방한하시는 것' 자체로만 기뻐했었고, 타종교와 종교인에 대하여 우쭐한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본 편지를 통해 그동안 교황님께 대한 무지와 무례에 대한 반성과 함께 깊은 묵상을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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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저는 한국기독교 장로회 소속 목사입니다. 한국의 개신교 목사가 편지형식의 글을 쓰는 것이 혹 예를
벗어나는 일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교황님을 좋아
하는 ‘광팬’이거든요.
교황님의 방한을 기뻐하는 이들은 가톨릭 교인들만이 아닙니다.
이웃 종교인들만이 아니라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교황님의 방한을 함께
기뻐하면서 이 방한이 역사적으로도 뜻 깊은 일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교황의 방한 그 자체도
큰 의미가 있지만 교황님의 이번 방한이 특별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교황님의 즉위 후 보여주시고
행동하신 교황님의 파격적인 모습이 가톨릭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전 인류에게 큰 충격과 도전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은 2013년 3월 19일 제266대 교황으로 피선된 교황님이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예수회 신부라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로 이민 온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신 교황님은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길 원해 프란치스코 라는 교황 명을
선택하셨고, 즉위 직후부터 파격적인 행동으로 저희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자신은 황제가 아니니 교황이라 부르지 말고 교종이라 호칭할 것, 해방신학자 보프의 복권, 무슬림
소녀의 발을 씻어 준 일, 사상아 에게도 세례를 허용한 일, 동성애, 이혼, 낙태에 대해 교회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발언,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반대와 시리아를 위한 기도의 날 선포, 아르헨티나
신자들이 로마에서 열리는 즉위식에 오려고 하자 축하 미사에 오는 대신 여행비를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당부한 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운전자들을
축복한 일, 바티칸 운행 개혁,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서의 기도 등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신 교황님은 선출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나 같이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황님은 풍부한 유머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즉위식이 있기까지 일반사제관에서 머물면서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서 놀라게 하신 교황님은 뛰어난 요리솜씨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막시모 신학교 시절 요리사가 없는 주일에는 학생들을 위해 요리를 하셨는데 요리 실력이 좋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글쎄요. 아직까지 아무도 제가 만든 음식을 먹ㄷ고 죽거나 탈이 난 사람은 없네요.”
라고 답변하셨지요.
사제독신제 폐지라는 매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교황님은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열린마음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사제독신제 폐지가 현재의 사제 부족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만큼 사제 희망자 수를 증가시켜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제독신제가 폐지될 경우 더 혼자 있지 않아도 되고 부인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경우 부인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보너스로 장모님도 얻게 되겠지요.” 제 경험에 유머는 자신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겸손한 삶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도 “사랑을 최고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볼 때 가장 극악한 죄는 증오라고
해야겠지만 저는 증오보다 오만함을 가장 혐오합니다. 오만이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지요.”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이
유머를 할 수 있지요.
마더 데레사가 한 말, “슬퍼하는 성자는 변변찮은 성자다.”를 인용하시면서, “저는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이들의 고통을 이론화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고 말씀하신 교황님은
몸소 고통 받는 이들의 편에 서셨습니다.
교황님의 파격적인 행동은 교황의 권위를 스스로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권위를 다르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원래 '권위(Autoridad)'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auge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성장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권위를 갖는 것은 억압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억압이라는 것은 권위의 변형된 형태일 뿐이며,
만약 제대로 권위가 행사된다면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권위를 가진 자란 바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 내는 능력을 갖춘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교황권에 대한 입장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교황님은 “교회와 세상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하여 교황의 교도권에 결정적이거나 완전한 답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이 지역 주교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식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건실한 분권화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교황님은 교회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사고를 당해 고통 받는 교회가 병든 교회보다 백 번 낫다고 생각합니다. 관료주의적인 교회로
전락해 작은 신자 집단만 지키려고 하는 교회는 장기적으로 병든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집에만 칩거하고 있는 목자는 진정한 양치기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양을 찾아나서는 대신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의 털만 매만져 주는 미용사일 뿐입니다."
성직자들이 목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시면서 우리 안에 든 99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선한 목자의 비유와 정반대 상황에 당면한 교회의 현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는 단 한 마리 양이 있을 뿐이고, 99마리 양이 길을 잃었는데 찾아 나서지 않는 교회의
현실을 통탄하셨습니다.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저는 교황님의 방한이 분단 상황에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과,
특별히 실업적 구조적 가난에 시달리는 아시아 청년들, 쌍용자동자, 용산, 강정마을, 밀양송전탑,
세월호 라는 이름과 함께 희생당하고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하느님의 가장 작은 종,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집나간 형제, 채수일 올림.
첫댓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야말로 최고의 선교사이시며 그대로만 따라하면 선교 될 것이라던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