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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시바가 HD DVD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차세대 DVD 미디어 표준전쟁에서의 승자는 소니의 블루레이 디스크로 낙점되었고, 소니사와 소니의 협력업체에겐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표준전쟁은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지금은 고물이 되어 버렸지만, VTR 에 들어갈 비디오테이프의 표준을 정하는 VHS, Betamax와의 싸움, CDMA를 둘러싼 싸움 등, 표준을 장악하는 자가 시장을 장악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표준전쟁은 철도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류로 할 것이냐 교류로 할 것이냐, 좌측통행을 할 것이냐 우측통행을 할 것이냐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철도계에도 이러한 유·무형의 싸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철도계에서 유명했던 표준전쟁은 바로 '궤간' 이었습니다. 이른바 궤간전쟁(Gauge War)라고 하는데, 세계 최초로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한 영국에서 터졌습니다. 당시 영국은 철도광 시대였습니다. 철도사업자들이 잇달아 신규노선을 개설하고, 투자자들은 여기에 아낌없이 돈을 퍼다 부었습니다. 수익성과 미래가 보장되는 철도사업 투자는 블루칩중의 블루칩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표준규격'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의 궤간은 뒤죽박죽이었고, 승객들은 궤간이 서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느라 죽을 맛이었습니다.
영국 의회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궤도표준위원회를 소집하여 당시 대세가 되고 있던 스티븐슨의 1435mm 궤간을 표준궤로 선택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섬바드 킹덤 브루넬이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2143mm의 궤간을 들고 나오며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궤간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궤간전쟁의 핵심인물인 이섬바드 킹덤 브루넬(1806~1859)은 마크 이섬바드 브루넬(1769~1849)의 아들로, 건축공학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었습니다. 브루넬 집안은 할아버지-아들-손자가 모두 건축공학자로서 굵직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진설명: 브루넬 가문을 연 마크 이섬바드 부르넬의 초상화와 그가 세계 최초로 적용한 실드식 터널공법
마크 이섬바드 브루넬은 '현대식 터널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좀조개를 보고 런던 템즈강에 세계 최초의 하저터널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없었다면 지하철은 꿈도 꾸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NATM과 같은 최신식 터널공법도 이 할아버지가 만든 기본적 구조를 개량했을 뿐, 원리는 19세기와 같습니다.
사진설명: 브루넬 가문 2대 후계자. 이섬바드 킹덤 브루넬의 사진. 배경은 그레이트 이
부전자전이라고, 이섬바드 킹덤 브루넬도 굵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프로펠러 스크류를 사용한 동력선을 제작하였고, 무려 4000명 이상을 승선시킬 수 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 그레이트 이스턴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철도공학계에선 '160Km/h 이상의 고속운전을 실현시키겠다.'라고 했을 정도로 건축공학계의 다방면에서 패기와 열정이 넘쳤던 청년이었습니다. 브루넬은 '증기기관차 견인으로 1435mm의 궤간을 달리는 영국의 철도가 보다 많은 인원, 승객을 빠르게 수송하는 방책은 궤간을 넓히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사진설명 : 그레이트 웨스턴 레일웨이의 회사 로고
여전히 영국 의회에선 궤도의 표준을 정하지 못하고 중구난방식 회의만 계속했기 때문에 브루넬은 과감한 착공을 시작합니다. 1834년 3월 런던에서 레딩까지의 구간이 착공되고, 동시에 반대쪽인 브리스틀에서 바스 구간이 착공됩니다. 브루넬은 1차로 런던 패딩턴 역에서 메이든헤든까지의 구간을 1837년까지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건설공사는 착착 신속하게 진행되어, 1838년 초반에는 이미 시운전 열차를 드레이턴~태플로우 구간에서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5월 31일, 브루넬은 런던에서 메이든헤든까지의 시승식을 가졌고, 6월 4일 본격 여객영업을 개시합니다.
최초 여객영업이 있기까지 브루넬이 겪은 난관은 크게 세 가지였지만, 저돌적으로 돌파해버립니다. 먼저 난공사 구간이었습니다. 버크셔주 소닝힐에서의 개착공사에서는 하청업자 두 명이 손을 들어버릴 정도로 난공사였지만, 브루넬은 물이 넘칠 정도로 심한 빗줄기 속에서 1220명의 건설자, 196필의 말을 사용하여 길이 3.2Km, 깊이 18m의 개착구간을 완성했습니다.
그 다음으론 차량의 조달문제였습니다. 2143mm라는 엄청난 넓이의 궤간은 영국의 철도차량제작업체들도 두 손을 들 정도였습니다만, 이 역시 돌파합니다. 바로 21세의 철도차량 기술자였던 다니엘 구스의 영입이었습니다. 그는 뉴캐슬의 스티븐슨 철도차량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러시아 기관차를 설계한 경험이 있어, 브루넬의 안목에 든 사람이었습니다. 브루넬의 이직 제안에, 구스는
존경하는 브루넬씨에게
저는 이미 귀하에게 브리스틀 인근에 철도차량 공작창을 건설한다는 것과, 제가 공장장으로 와주었으면 하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신과 일하겠습니다.
(다니엘 구스는 브루넬의 아이디어를 잘 받아 혁신적인 기관차와 객차를 설계했고, 당시 혁명적이었던 96Km/h의 증기기관차를 최초로 제작합니다. 이후 그는 기사의 작위를 받을 정도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주들이었습니다. 1838년 일부 구간에서 우선적으로 개통되었지만 주주들은 GWR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현재 영업구간의 궤간을 모두 1435mm로 바꾸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브루넬은 사퇴를 하겠다는 강경책과, 설득이라는 온건책을 적절히 사용하여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웁니다.
1841년 런던 패딩턴에서 브리스틀까지 전구간 개통이 완료되었으며, 스위든 역처럼 타회사의1435mm구간으로 갈아탈 때가 혼잡하다는 불만을 빼면 승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브루넬의 초광폭 철도는 기존 1435mm보다 빨랐고, 객차도 더 넓고 승차감도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매우 안전했습니다. 1435mm의 표준궤 구간에서는 고속운전 시 종종 탈선하는 사고가 빈번했지만, 브루넬의 초광폭 광궤는 객차가 넉넉한 바퀴 폭에 얹혀 갔기 때문에, 1843년의 사고를 빼고는 사실상 사고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 한 건의 사고도 사상자는 전혀 없었습니다.
GWR는 타 철도회사에 비해 높은 영업매출을 기록했으며, 영국에서 가장 빠른 여객운송을 자랑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1841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이 윈저성으로 휴가를 떠날 때 애용할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주요 이용객들의 경험담입니다.
“1843년 7월 19일, 나의 사랑하는 앨버트와 특별열차를 탔다. (중략) 열차는 단 한번의 지연 없이 정확히 2시간 4분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일기)
“친구가 옆에서 시계를 꺼내서 속도를 측정했다. GWR의 열차가 시간당 78마일(125Km)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찰스 배비지의 기록 - 세계 최초의 컴퓨터공학 이론가)
“경이적인 운행속도 증가로 인해 이제 슬로스~패딩턴 구간은 15분 10초밖에 안 걸린다.” (일러스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보도기사)
표정속도는 점점 증가하여, 1844년에는 평균 표정속도 120Km/h이상을 자랑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한 브루넬은 기존 1435mm를 사용하는 영국의 모든 철도노선을 2143mm의 광궤로 교체하려는 장대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제 다시 앞 부분의 영국 의회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1846년 궤도표준 위원회가 다시 소집됩니다. 중구난방의 회의였지만 이번의 뜨거운 쟁점은 화려하게 등장한 브루넬의 궤간인 2143mm을 표준으로 할 것인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스티븐슨의 1435mm를 유지할 것인가? 이었습니다. 1435mm를 쓰고 있는 경쟁 철도회사들은 5가지의 이유를 들며 2143mm의 GWR를 몰아붙입니다.
1. 2143mm은 너무 빨라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 사고는 단 한 건이라고 하지만, 무사고가 계속 가겠는가?
2. 1435mm의 좌석은 3명이 앉는데, 2143mm은 4명이 앉는다. 승객들은 4인석보다는 3인석을 좋아한다.
3. 기관차와 객차가 너무 크고 넓다. 1435mm의 표준궤가 더 효율적이다.
4. 1435mm에 비해 유지비가 많이 든다.
5. 이중궤간을 설치해야 하는 등 직통운전이 힘들다.
브루넬의 2143mm 궤간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 최초의 철도회사를 만들고, 최초의 상업운전용 기관차 로켓호의 제작자, 로버트 스티븐슨이었습니다. 스티븐슨은 자신이 정한 1435mm의 궤간을 기관차와 객차에 적용하여 ‘스티븐슨 궤간’이라는 별명도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진공을 활용한 브루넬의 압축공기 추진식 철도(Atmospheric railway) 건설계획을 비난하면서 2143mm의 궤간에 대해서도 비난조의 발언을 합니다.
사진설명 : 1435mm를 최초로 사용하며 2143mm을 비난한 로켓호의 제작자 로버트 스티븐슨
“the Broad Gauge is another misconception just as erroneous.”
"광궤철도는 오류로 밝혀진 또 다른 잘못된 생각에 불과하다.”
또한 압도적인 숫자로 1435mm을 채택하고 있는 철도회사들은, 의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1435mm의 표준궤간 채택을 은근슬쩍 부탁하는 로비활동을 벌입니다. 그레이트 웨스턴 측은 이러한 것에 대해 공개실험을 제의하고, 실험결과 2143mm이 1435mm보다 15% 이상 더 우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1435mm는 겨우 100Km/h 내외로 간신히 속도를 끌어올려 운전하고 있었는데, GWR의 2143mm은 120Km/h의 상업운전을 가볍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전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격론 끝에 ‘영국의 철도폭은 1435mm로 한다.’라는 궤도표준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GWR의 성능은 우월했으나, 1435mm의 궤간을 사용하는 구간은 3000Km, 브루넬의 2143mm 궤간은 300Km에 불과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브루넬에게 불리한 전쟁이었던 겁니다.
결국 영국 의회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생각보다는 안정적인 옛 것을 선택한 것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영국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였습니다.
영국의회 산하 궤도표준위원회는 597mm, 610mm, 686mm, 762mm, 914mm, 1067mm 등의 궤간을 사용하는 철도회사에게 1435mm로의 정비를 지시합니다. 그러나 GWR에 대해서는 GWR이 벌써 런던 패딩턴역까지 영업노선이 확장되어 고속운전을 실시하고 있었고, 회사의 영업규모도 컸으며, 브루넬의 높은 명성 때문에 즉각적인 개궤작업은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GWR는 1435mm와의 직통을 위한 부분적인 이중궤간 체제를 사용하다가 1435mm로의 개궤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892년 5월 첫째 주의 마지막 날, 1435mm로의 표준궤 개궤작업이 완료되어 GWR는 더 이상 2143mm의 초광폭 철도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2143mm의 궤간을 표준궤간으로 하여 ‘영국 전역에 160Km/h의 고속운전을 실현하겠다’라는 브루넬의 원대한 꿈은 꺾였습니다. 서부에 이어 북쪽으로 2143mm의 노선을 확장하려는 계획도 백지화됩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인 그레이트 이스턴호를 4년여간의노력끝에 1858년에 진수시킵니다.
사진설명 :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 그레이트 이스턴과 이중선체를 적용한 내부 모습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배수량 3만2천톤, 총 4000명의 여객과 418명의 승무원이 승선하는 초거대 여객선이었습니다. 이중선체구조를 최초로 적용한 이 여객선은 미국과의 대서양 정기항로에 취항할 계획이었지만, 잇따른 사고로 취항이 지연되었고, 건조비용은 한도 끝도 없이 치솟았습니다.
4년동안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건조기간 중 생긴 크고 작은 악재로 브루넬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쇠약해졌고 1858년 1월 31일에 시운전을 시작하였으나, 몇 달 후에 있었던 웨이마우스 항까지의 성능시험 중 굴뚝이 터져 무려 6명의 승무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 사고에 충격을 받은 브루넬은
브루넬이 죽은 후, 세 자녀중 둘째 헨리 마크 브루넬(1842–1903)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건축공학자가 되었습니다. 헨리 역시 건축공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런던 템즈강에 있는 블렉페어스 다리는 헨리 마크 브루넬이 설계에 참여한 것입니다. 다리뿐만 아니라 항구의 설계 등에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브루넬이 만든 철도교량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100년전보다 두배 이상인 철도차량의 속도와 하중을 무리 없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런던 브루넬 대학, 공원, 거리 등 다양한 장소에서 ‘브루넬’이란 이름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섬바드 킹덤 브루넬의 아버지 마크 브루넬이 세계 최초로 만든 하저터널 - 템즈 터널은 150년 전의 원형 그대로 런던지하철 East London Line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BBC의 ‘영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투표에서 브루넬은 1위를 차지한 윈스턴 처칠 다음으로 위대한 영국인에 뽑혔습니다.
-그레이트 이스턴호는 산업혁명시대의 7대 걸작에 들어갔습니다.
-나치스 제3제국의 아우토반 건설을 담당했던 프릿츠 토드는 GWR에서 영감을 받아 3000mm의 고속철도 Breitspurbahn을 추진했었습니다.
-그레이트 이스턴 호에서 쓰였던 깃대는 지금 리버풀 FC의 클럽 깃발을 게양하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브루넬이 1847년에 만든 32Km의 압축공기 추진식 철도(Atmospheric Railway)는 현재 개량되어 브라질, 인도네시아의 신교통 시스템으로 채택되어 사용중입니다.
-2006년 브루넬 탄생 200주기를 맞아 GWR의 선로, 역, 신호기 등 GWR의 모든 것이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2007년 GWR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예비후보에 올랐었습니다.
브루넬의 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thames.me.uk/s01300.htm (GWR의 영업노선)
http://en.wikipedia.org/wiki/Isambard_Kingdom_Brunel (이섬바드 킹덤 브루넬: 위키피디아)
http://www.railwaysarchive.co.uk/documents/HMG_Act_Reg1846.pdf
(1846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1435mm를 영국표준궤간으로 선택한 궤도표준법안 원문)
http://www.brunel.ac.uk/about/history/ikb/lecture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기관 제작자 스티븐슨의 발언)
http://www.brunel.ac.uk/ (웨스트 런던 브루넬 대학교)
http://metric.or.kr/tech/dictionary/tech03.metric?id=54618 (궤간전쟁 간략 해설)
http://en.wikipedia.org/wiki/Seven_Wonders_of_the_Industrial_World (산업혁명시대 7대 걸작 건축물)
http://en.wikipedia.org/wiki/Atmospheric_railway (상업운전에 성공한 진공식 우편철도- Atmospheric railway)
‘넓은 궤도를 만든 공로자’ 세계상식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 서울, 1993년
‘징크스를 가진 거선 그레이트 이스턴호’ 세계상식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 서울,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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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아... 지금의 철도 궤간이 담담한 회의장에서 만들어진게 아니구나... 좋게 말하면 열정! 나쁘게 말하면 개판에서 만들어진 ㅋㅋㅋ
옛날에 2143mm에서 120km라면... 지금은 영업속도 320km이상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현재 이 노선을 소유하는 회사는 First Great Western인가요.??
네. 사철-국철-사철의 복잡한 소유권 변동을 거쳐 지금은 First 그룹 소유가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레이트 이스턴호를 해체할때 안에서 인골이 나왔다죠, ㄷㄷㄷ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왜 인골이 나왔죠?!
이스턴호는 선체가 두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외부격벽을 만들던 작업자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격벽을 완성해 버린거죠.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은 소리인데 2구의 인골이 나왔답니다. 이를 반박하는 회의주의자들은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내부격벽은 탈출할 수 있는 별도의 방수문이 있었고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지만 진짜 유골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해줄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후버댐, 타이타닉호 건설과정에도 이러한 괴담이 존재합니다.
흠... 후버댐이라...? 확인해볼 길은 없는거군요. 결국은 그 안에서 '아사'한 건가요? 불쌍하네요.
이런 이야기는 많지요. 가령 댐 같은 것을 건설하면서 대량의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사람이 빠지면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고, 때문에 완성된 댐에는 몇 명씩 그대로 묻혀 있다... 라던가. 광주항쟁 때 실종자들은 목포항 콘크리트 방파제에 묻혀있다. 같은 괴담...
헐... 세상살이 참... 무섭네요...
실제로 Great Western Main Line이 일부구간에만 전철화가 되어 있습니다. 98년도 히드로 익스프레스 열차운행 시작되어서, 런던 패딩턴 ~ Hayes and Harlington역 구간에만 전철화가 되어있습니다. (실제 Hayes and Harlington역 ~ 히드로 국제공항 4청사는 별도의 선로운행함.)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철도 관련책 스크랩 해놓은 거 읽어주세요. 전에 기대하겠다고 하셨잖아용
이섬바드 킹덤 부르넬... 저같은 경우 RT2(레일로드 타이쿤 2)를 하면서 알게 된 인물이었지요. 좋은글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