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섭 명예교수님이 보내온 글>
‘하늘나라 별’이 된 ‘월드 스타’ 강수연
靑松 건강칼럼 (850)... ‘하늘나라 별’이 된 ‘월드 스타’ 강수연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뇌동맥류와 뇌출혈
한국 영화계 최초의 ‘월드 스타’였던 강수연(姜受延) 배우가 뇌출혈(腦出血)로 지난 5월 7일 향년 5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강수연씨는 지난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에 의한 심정지(心停止, cardiac arrest)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사흘 만인 7일 오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별보다 아름다운 별, 안녕히”이라는 문구가 적힌 근조 플래카드가 영정(影幀)사진 위에 걸렸다.
영정사진은 구본창(69) 사진가의 작품으로 2004년 패션잡지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었다가 실리지 않은 B컷으로 빨강·하양 줄무늬 상의를 입은 채 팔로 목을 감싼 모습이다. 장례는 영화인장(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으로, 영결식은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11일 오전 10시에 열렸다. 화장 후 용인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前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의 추도사는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연씨,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두집에서 만난 지 한 달로 채 되지 않았는데 졸지에 제 곁을 떠나다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 지 3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왔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는가요?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지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지혜롭고 강한 분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도 않고, 타고난 미모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춘, 남자 못지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습니다. 이에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력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는데,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응급실에서 또 중환자실에서 비록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당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비록 강수연씨 당신은 오늘 우리 곁을 떠났어도 지상의 별이 졌어도,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강수연씨 부디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제는 200여 개가 있으며, 이 중에서 3대 영화제는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이다. 강수연은 1987년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아시아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9년에는 소련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다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전도연(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유여정(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보다 20-30년 앞선 쾌거였다. 강수연은 한류의 씨앗을 뿌렸으며, 영화인들 가슴에 “우리도 가능하다”는 웅지(雄志)를 심었다.
1966년 8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난 강수연은 4세 때부터 아역(兒役)배우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여 ‘연기 천재’ 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최고의 하이틴 스타가 된 강수연은 한국 영화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 싱그러운 청춘(靑春)역,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에서 거친 풍파 속 창녀(娼女)역, ‘연산군’에서 희대의 요부(妖婦)역 등으로 변신했다.
1990년대에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을 비롯하여 많은 흥행작을 냈다. 강수연은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강수연은 치열한 연기 근성 때문에 ‘독종’으로, ‘깡수연’으로도 불렸다. 그는 헌신하는 전통적 모습과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 여성상을 모두 지니고 있다.
배우 강수연의 미공개 유작(遺作)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Netflix)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영화 ‘정이(JUNG-E)’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2013년 단편 ‘주리’ 이후 9년 만의 영화계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영화 ‘정이’는 기후변화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기 힘들어진 인류가 만든 피난처 쉘터(shelter)에서 내전이 일어난 22세기, 승리의 열쇠가 될 전설의 용병 ‘정이’의 뇌(腦)복제 로봇을 성공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수연은 배우로만 머물지 않았다. 2000년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아 집회와 행사마다 앞장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996년부터 사회자·집행위원으로 해마다 참석해 ‘영화제의 안방마님’으로 불렸다. 2015-17년엔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는 리더십과 추진력이 강한 여걸(女傑)이었다고 영화인들은 회고한다.
강수연씨의 사망원인(死因)은 이른바 ‘뇌 속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뇌동맥류(腦動脈瘤) 파열에 따른 뇌출혈(腦出血)인 것으로 알려졌다. 뇌동맥류(cerebral aneurysm)란 뇌동맥 일부가 약해져서 그 부분이 풍선이나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을 말한다.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뇌를 싸고 있는 지주막(蜘蛛膜) 아래 공간으로 피가 퍼지는데, 그 양이 많으면 호흡을 관할하는 중뇌(中腦, midbrain)를 압박해 호흡부전과 심정지를 일으킬 수 있다.
강씨는 뇌출혈이 오기 전 심한 두통을 겪었다. 뇌동맥류가 파열되기 전 간혹 전조(前兆) 증상으로 소량의 피가 새면서 두통이나 메스꺼움을 유발할 수 있다. 그녀는 뇌에 저산소증 손상이 심해서 수술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1988년 45세에 뇌동맥류 파열이 발생하여 수술로 생명을 건졌다.
뇌동맥류는 윌리스고리(circle of Willis)라고 불리는 뇌 바닥 쪽의 굵은 뇌동맥에서 90%이상이 발견된다. 나머지는 원위부(遠位部)의 가는 뇌동맥이나 뇌의 후두부나 숨골을 담당하고 있는 동맥에서 발생한다. 심장에서 가까운 혈관 부위를 근위부, 먼쪽을 원위부라고 한다. 근위부에서 원위부로 갈수록 혈관이 가늘어지고 뇌에 직접 혈액을 공급한다.
뇌동맥류의 크기는 대부분 10mm 이하이지만 간혹 그보다 큰 동맥류가 발생할 수 있으며, 25mm 이상인 경우는 거대 동맥류라고 한다. 동맥류의 형태에 따라 낭상(囊狀)동맥류, 방추상(紡錐狀)동맥류, 해리성(解離性)동맥류 등으로 구분된다. 뇌동맥류가 발생하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혈액학적으로 높은 압력이 가해지는 부위에 후천적으로 혈관벽 내에 균열이 발생하여 동맥류가 발생하고 성장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드물지만, 혈관에 염증이 있거나 외상으로 혈관벽에 손상이 발생하거나 또는 유전적으로 혈관벽에 문제가 있는 경우 동맥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뇌동맥기형이나 모야모야병(moyamoya disease)과 같은 뇌혈관질환이 있는 경우 동맥류가 동반되기도 한다. 뇌동맥류는 주로 60대 이후에 흔히 발생하지만, 30-40대에서 무증상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약 20%에서는 다발성 동맥류가 발견되고 있다.
뇌동맥류는 파열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편두통(偏頭痛), 긴장성 두통, 어지러움 등으로 인해 검사하는 과정에서 또는 건강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파열성 뇌동맥류의 생성 및 과정에서 사시, 복시, 안검하수(眼瞼下垂), 시력 저하 등과 같은 뇌신경 마비증상이나 간질 발작, 급작스러운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은 뇌동맥류가 터져 출혈로 인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와 뇌동맥류가 주변 신경조직을 압박하여 비정상적인 신경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뇌를 밖에서 감싸고 있는 막으로 연질막(軟質膜)과 지주막(蜘蛛膜)이 있고 그 사이의 공간을 지주막하 공간이라고 말하며, 이 공간은 뇌척수액(腦脊髓液)으로 채워져 있다.
뇌동맥에서 기인하는 뇌동맥류는 지주막하 공간에 위치해 있는데, 출혈 시 일차적으로 지주막하 공간에 혈액이 퍼지게 되며 이를 지주막하 출혈이라고 한다. 간혹 혈액이 뇌실질을 뚫고 들어가 뇌 내 출혈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뇌조직을 뚫고 뇌조직 안에 있는 또 다른 공간인 뇌실(腦室)까지 도달해 뇌실 내 출혈을 동반하기도 한다.
출혈 순간 두통(頭痛)이 발생하는데, 환자들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하거나 평생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출혈 자체로 인해 뇌막이 자극되어 오심, 구토나 뒷목이 뻣뻣한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에는 밀폐된 공간인 두개골(頭蓋骨) 내의 압력이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뇌가 심하게 압박되면 의식 저하 또는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병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하기도 한다. 강수연씨도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치료 방법은 개두술(開頭術, craniotomy) 및 뇌동맥류 결찰술(結紮術, ligation)과 혈관 내 코일 색전술(塞栓術, embolization)이 있다. 뇌동맥류 결찰술은 두개골편을 제거하고 뇌조직 사이에 위치해 있는 뇌동맥류를 확보한 뒤 클립을 이용하여 동맥류를 결찰하는 치료법이다. 혈관 내 코일 색전술은 다리 쪽의 대퇴동맥을 통해 금속으로 된 작은 관을 집어넣어 뇌동맥에 접근한 뒤 동맥류 내부에 코일을 채워 넣으며, 필요할 경우 스텐트(stent)를 사용한다. 신경외과 전문의가 동맥류의 모양, 크기, 위치와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 등을 고려해서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
파열성 뇌동맥류의 경우, 약 15%는 병원 도착 전에 사망하며 28% 정도는 치료를 받는 도중에 사망한다. 생존자 중에서도 18% 정도만 장애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첫 출혈 직후의 환자 상태가 가장 중요한 예후인자이다. 의식이 나쁘고 신경학적 결손이 심할수록 치료 유무와 관계없이 예후가 불량하다.
무증상으로 우연히 발견되는 뇌동맥류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크기와 위치에 따라 파열 가능성이 다르며, 비파열성 뇌동맥류의 출혈 가능성은 크기가 클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전순환계보다는 후순환계에 위치한 경우일 때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치료 여부와 치료 시점을 결정하고 있다.
뇌동맥류는 원인을 정확히 모르므로 명확한 예방법도 없다. 다만, 뇌동맥류가 미리 발견되면 파열되어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치료가 가능하므로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중년 이후의 연령층은 뇌혈관 CT나 MRI 검사로 뇌동맥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두통이 갑자기 생겼을 때는 신속하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뇌동맥류가 발견됐을 때는 모양과 위치 등을 감안하여 뇌동맥류가 파열되기 전에 제거하는 예방적 시술도 고려해야 한다.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지주막하 뇌출혈이 발생하면 예후가 불량한 경우가 많다. 또한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뇌혈관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고혈압, 흡연 등이 관련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사진> 강수연 영정사진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The AsiaNㆍ시사주간 논설위원, The Jesus Times 논설고문) <청송건강칼럼(850) 2022.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