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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 양 비유
참고말씀: 요5:17,18; 빌2:6
읽을말씀: 요10:1-42;
주제말씀: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첫째,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1-21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본문에서 양의 문으로 들어가는 누구입니까? 양의 목자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2절) 반면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누구라고 했습니까? 절도와 강도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1절)
여기서 목자와 절도(강도)는 각각 누구를 가리킵니까? 목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양들을 돌볼 권세를 합법적으로 부여 받은 예수님 자신을, 절도와 강도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면서 백성들을 미혹하던 자들을 각각 가리킵니다.
목자는 양들을 각각 어떻게 인도합니까?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름으로써 입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3절 하) 양들은 누구의 음성만 듣고 따릅니까? 목자입니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3절 중) /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4절) 그러나 누구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도망합니까? 타인입니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5절)
무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자, “예수께서 이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6절) 예수님은 어찌 하셨습니까? 이 비유를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7절 상)
예수님 자신을 누구로 소개하셨습니까? 양의 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7절 하) 어째서입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생명)을 얻고 풍성한 꼴(풍성한 삶)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절)
목자와 도둑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의도뿐이지만,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10절 상) 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온 것은 앙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 하)
예수님은 다시 자신을 누구로 소개하셨습니까? 선한 목자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11절 상) / “나는 선한 목자라...”(14절 상) 참고로,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지만, 삯꾼 목자는 위험이 닥치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며 돌보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11-13절)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5절 하)
예수님은 우리에 들어 있지 않은 양들도 인도해야 하신다고 했는데, 이들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택자들입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절)
한편,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것은 무엇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얻기 위함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17절 상) 즉 다시 살아나시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 목숨을 어떻게 버리십니까?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리시는 것입니다. 버릴 권세도 다시 얻을 권세도 모두 하나님께 받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8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문이요 선한 목자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음성만 듣고 예수님만 따라가되, 이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맡기신 양들을 위해 헌신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근본 본체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22-42절)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29,30)
22절 이하는 언제 있었던 사건입니까? 겨울에 있는 수전절입니다. 어디에서 일어난 내용입니까? 예루살렘 성전 안의 솔로몬 행각입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22,23절)
이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싼 채로 무엇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까? 더 이상 자신들의 마음을 의혹하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24절)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일관되게 말씀해오셨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일들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데도 왜 믿지 않느냐고 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이거늘.”(25절)
왜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 속한 양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반면 예수님의 양들을 어떻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며, 예수님께 영생을 받으며,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27-29절)
그러시면서 유대인들 앞에서 무엇을 천명하셨습니까? 당신과 성부 하나님이 하나이신 점,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근본 본체, 곧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30절) /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33절 하)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이 발언을 신성모독으로 몰고 가자, 예수님은 어떤 점들을 들어서 이것이 전혀 신성모독일 수 없다고 반박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셨다는 점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들을 행해 오셨다는 점입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36-38절)
한편,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처음 세례 베풀던 곳에 다시 가서 거하실 때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세례 요한의 진실한 증언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순교를 당하여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았지만, 생전에 이곳에서 예수님을 향해 참되게 증언했으므로, 그의 사후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40-42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근본 본체이심, 곧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고 그분에 대하여 참되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빌2:6)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7,18) 비록 아무런 표적을 행하지 못한다고 해도, 진실한 말과 행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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