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최남단 삼척시(三陟市)
죽서루(竹西樓) / 공양왕릉(恭讓王陵) / 삼척시 관내도
<삼척시(三陟市)의 행정구역(行政區域)>
동해안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삼척시(三陟市)는 동해시(東海市), 태백시(太白市), 정선군(旌善郡)과 인접해 있으며 남으로는 경북 울진군(蔚珍郡)과 도계(道界)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석탄 산업이 발달했던 곳이기도 하고 삼척항(三陟港)은 시멘트 수출항구로 발전했다.
행정구역을 보면 도계읍(道溪邑), 원덕읍(遠德邑), 근덕면(近德面), 하장면(下長面), 노곡면(盧谷面), 미로면(未老面), 가곡면(柯谷面), 신기면(新基面)으로 2개 읍(邑) 6개 면(面)이 있고 4개의 동(洞)이 별도로 있는데 교동(校洞), 성내동(城內洞), 남양동(南陽洞), 정라동(汀羅洞)이며 인구는 6만 5천 명 정도이다.
<삼척시(三陟市)의 자연환경(自然環境)>
근처 근덕면(近德面)의 맹방(埋香坊), 궁촌(宮村), 용화(龍化), 장호(莊湖)해수욕장은 동해안의 절경이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맹방해수욕장은 방탄소년단(BTS)이 ‘버터(Butter) 앨범재킷’을 촬영하면서 관광명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의 고향이 이곳 근덕면으로 황영조 기념공원(紀念公園)과 생가(生家)도 있다.
또 성내동(城內洞)에 있는 죽서루(竹西樓)는 관동8경(關東八景) 중의 하나로 여름철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며, 맹방은 향(香)을 묻었던(埋) 마을이라는 뜻의 매향방(埋香坊)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방바닥이 차가우면 ‘삼척 냉방이나? 머이 이리 춥나~’ 하면서 웃던 기억이 난다.
근덕 궁촌(宮村)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무덤이 있는데 ‘삼척공양왕릉(三陟恭讓王陵)’으로 강원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高陽市) 원당동(元堂洞)에도 있는데 고양 원당동 공민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있지만 이곳 삼척의 공양왕릉은 구전으로만 전한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이곳이 진짜일 가능성이 크다. 궁촌리 고돌재는 공양왕이 살해된 고개라 하여 사래재(殺害峙), 공양왕의 아들이 살았다는 궁터, 말을 매어두었다는 마리방이라는 지명도 있다.
고려(高麗)의 비참한 최후
비참했던 고려말엽을 요약해보면, 고려 31대 공민왕은 반명친원(反明親元) 정책을 펴다가 재위 23년 만에 반대정파의 공모로 시해(弑害)를 당하는데 향년 44세였다.
뒤이은 32대 우왕(禑王)은 10세에 즉위하여 요동정벌 등 반명정책을 펴다가 이성계에 의해 폐위(廢位)되어 강화도(江華道)로, 경기도 여주(驪州)로 유배되었다가 1389년(25세)에 강릉에서 살해된다.
우왕의 아들로 9세에 즉위했던 33대 창왕(昌王)은 아버지 우왕과 같은 해(10세) 강화도에서 살해되고 뒤이어 고려 20대 신종(神宗)의 7대 손인 공양왕(恭讓王)은 44세 되던 해 고려 34대 왕으로 즉위하는데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고자 개경(開城)에서 한양(漢陽:서울)으로 천도(遷都)를 하였다가 민심의 동요로 이듬해 곧바로 개경(開城)으로 환도(還都)하는 등 안간힘을 써 보지만 결국 이성계에 의하여 폐위되고 강원도 삼척부(三陟府)로 유배되었다가 1392년에 살해되니 향년 49세였다.
이후 곧바로 이성계가 정권을 잡고 조선(朝鮮)을 개국하게 되는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공양왕(恭讓王)의 능(陵)이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이곳에는 공양왕(恭讓王) 3부자의 능이 있는데 아들인 왕자 석(奭)과 우(瑀)의 능으로,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라 가슴이 아프다.
해신당(海神堂) 설화
신남 해신당(海神堂) / 애바위 / 남근상 / 긴잎느티나무
원덕읍(遠德邑) 신남(薪南) 해수욕장 인근에는 해신(海神)을 모시는 해신당(海神堂)이 있는데 주변경치도 뛰어나지만 신당(神堂) 주변은 온통 남근(男根)이 가득 세워져 있어 실소를 머금게 한다.
이곳 신남마을에 혼약(婚約)한 사이인 처녀 애랑과 덕배가 있었는데 애랑은 자주 마을 앞 작은 섬인 애바위에서 미역이나 해초를 따고는 했는데 항상 덕배가 작은 배로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덕배는 애랑을 애바위에 데려다주고 나무를 하러 산에 왔는데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일어 애바위를 보았더니 집채 같은 파도가 애바위를 뒤덮고 애랑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애랑이 익사한 이후 마을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가도 도무지 고기가 잡히지 않자 바닷가에 신목(神木)으로 모시고 있는 향나무에 애랑의 위령제(慰靈祭)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부 중 한 사람이 짜증이 나서 남몰래 그 신목(神木)에다 오줌을 내깔겼더니 신기하게도 그 사람만 고기자 잘 잡혀서 점쟁이에게 점을 쳤더니 신당(神堂)을 짓고 남근(男根)을 바치라고 했다.
점쟁이 말대로 해신당을 짓고 남근을 깎아 모셨더니 일 년 내내 어선들은 만선(滿船)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해신당을 찾는 관광객이 항상 북적거리는데 너무 민망한 모습이라 좀 거시기하다. ㅎ
삼척은 동해안을 끼고 있어 신남(薪南), 임원(臨院), 호산(湖山), 월천(月川), 고포(古浦) 등 해수욕장도 많고 해변마을마다 모두 어선들이 들어오는 어항(漁港)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