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수행(修行)
이일체제상(離一切諸相) 즉명제불(卽名諸佛)
일체 모든 상을 떠난 것을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으면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상을 여의었기 때문에 고통이 없고
중생은 상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에 한 걸음 한 발자국마다 고통이더라.
상을 여윈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른 것이 움직이는데 조금도 방해를 안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 진로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나 큰 업인가.
금강경 공부하는 우리는 나로 인해서 남을 기분 나쁘게 하지 말자.
말할 적에도 언제든지 그런 말을 피해서 하는 버릇을 해야 한다. 행동으로 옮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으로 남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다.
좋아하는 것 미워하는 것 놔두고 금강경 읽는 힘으로 살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함을 받았다고 해도 모함한 사람을 탓하지 마라.
왜 그러냐? 내가 받은 모함은 그 사람을 미워한 과보(果報)가 모함으로 온 것이다.
한번 남을 미워했던 마음, 남을 저버렸던 마음은 과보(果報)가 따라와서 나를 고통으로 만들지만,
미워하는 마음이 안 생겨 버리면 과보(果報)가 없으므로 고통이 오라고 해도 고통을 불러들여도 고통이 안 온다.
자기가 벌써 편안한 사람은 남 잘못한 것이 안 보인다.
잘못해도 됐어! 괜찮아! 이렇게 된다.
내가 불편하고 기분 나쁘면 좋은 것도 꼴 보기 싫게 된다.
사람다운 사람은 실패해도 한번 실패하지 두 번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가 그 사람을 정말 성공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다.
공부도 이 공부 했다가 저 공부 했다가 하는 사람은 하나도 능한 사람 못 봤다.
한 가지에 능해야 한다. 능하고 난 뒤에 그다음에 다른 것을 보태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공부가 깊어지고 넓어진다.
진짜 잘 살고 싶거든 베풀어라! 적극적인 계율이 보시다.
신명을 보시할 경지까지는 못 간다고 하더라도
남을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보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임제록에 임제 스님, 스승에게 몽둥이 3번 맞았다.
그러고 나서 지난 과거 회상(會上)-시 그때 몽둥이로 그렇게 두들겨 맞았을 때
걸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게 맞았는데 마음이 어땠느냐,
갈대-잎으로 건드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화가 안 났다는 말이다.
화가 안 난 이유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이미 없어져 버렸다는 말이다.
옛날 선사 스님들 공부 점검하는 데 가장 많이 쓰셨던 것이 상대방의 화를 돋우는 방법이었다.
화를 돋우고 공부의 경지를 보는 것이다. 화를 불시에 돋우어서 그럴 때 반응을 본다.
진짜 내가 없어지려면 무의식 속에서 아(我)가 없어질 때 진짜이다.
밝음이 오면 어둠이 없어지니 어떤 일을 해도 방해가 없다.
우리가 금강경을 읽어야 하는 것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방해 안 받고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려면 이 금강경을 열심히 읽고 금강경 읽는 재미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
- <혜거 스님> - 금강경 이상적멸분 제14 강의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