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법”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배려》, 《재미》 등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가 17세기 유럽 세 명의 현자인 발타자르 그라시안,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장 드 라 브뤼예르를 만나게 되었고 이들에게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세 명의 현자들은 내일의 안녕을 기약할 수 없는 암흑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는 게 인간다운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하며 인간의 위선과 허영, 이기심 등을 특유의 직관과 통찰로 예리하게 포착했다. 저자는 세 현자가 남긴 잠언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만을 추려 틀로 삼고, 다양한 에피소드에 동서양 역사와 철학, 심리학, 경제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저자 특유의 감각과 필체로 엮어내었다.
이 책은 모두 세 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가”라는 주제로 비정하고 어두운 암흑 같은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두 번째 장은 “어떻게 세상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라는 주제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서의 처세술을 배울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어렵고 힘든 삶에서 현명하게 생존할 수 있는 법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세 현자의 고민이 모이는 지점이 바로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대목이다. 사람은 다른 이에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는가로 삶이 갈리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우리의 통념보다 광범위하다. 단순한 이용 가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지고지순한 사랑일 수도 있고, 관심이나 인정 같은 호의일 수도 있으며, 공감해 주거나 조용히 곁에 있어주기일 때도 있다. 사랑하지만 필요할 때는 곁에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어주는 친한 이도 있다. - <프롤로그 ; 좋은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인정할 수 있으려면, 먼저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해관계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엔 좋기만 한 사람도,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이해타산 관계로 풀이해보면 가까운 사람들이 또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헌신하는 사람은 이기심을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대가를 미리 상상할 수 있으므로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결함이나 자부심 같은. -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가_‘인간성’을 재는 저울> 중에서
베푸는 사람의 뜻이 아무리 순수하다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섣불리 동정심에 사로잡혔다가는 오히려 은혜가 ‘복수의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베푼 사람이 오히려 빚쟁이처럼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도 유효기간 같은 게 있어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고마움이 점점 불편한 짐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떡하라는 말인가? 그라시안은 이렇게 조언한다. 가랑비처럼 “은혜인 듯 은혜가 아닌 은혜”를 베푸는 지혜를 터득하라는 얘기다. -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가_한 번에 조금씩, 자주, 무심하게> 중에서
먹고사는 일보다 취미에 탐닉하는 마니아들이나 2세 계획 없이 여가를 즐기는 부부를 보면 그들이 마치 탈선이라도 한 것처럼 불쑥 기어들어 참견을 하고 마는 것이다. 불안해 보여서, 정답이 아닌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의 방식은 과연 정답일까? 아니, 정답이 꼭 하나여만 하는 것일까? 다양화된 세상에선 수천, 수만 가지 삶의 풀이 방식이 공존한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익숙한 궤도보다는 낯선 우회로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고 있다. - <어떻게 세상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_오늘 운세에 ‘참견을 삼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까닭> 중에서
사랑이든 존경이든 그저 남들에게 주기만 했을 뿐 받은 것은 별로 없어 늘 손해만 본다고 억울해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존경하는 이를 위해 성실하게 맡은 바를 행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돌려받은 것이다. 노력이 안겨주는 가장 큰 수확은 언제나 노력한 바 그 자체의 보람이니까 말이다. 상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그것은 덤이다. 그래서 차라리 ‘주는 사람’이 되는 게 덜 골치 아프다.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다 받을 수는 없지만, 고마운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주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 <어떻게 세상과 조화를 이룰 것인가_사랑과 존경의 갈림길> 중에서
질투와 시기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남녀 사이의 질투는 관계를 지켜내며 사랑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 되어주기도 한다. 연인들은 질투를 통해 자칫 식을 수도 있는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기도 하고, 상대가 얼마나 내게 헌신하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열등감이 건강하게 해석되면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시기의 부정적 기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는 향상심을 자극할 수도 있다. 무반동총마냥 앞뒤로 터져 나오던 마이너스 에너지를 내부로 돌려 발전을 위한 순환형 플러스 에너지로 바꿔주는 셈이다. -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_질투의 후폭풍과 자랑의 유료화> 중에서
옛말에 이런 것이 있다. ‘군주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를 드러내면 신하는 군주의 바람에 맞도록 꾸미려 들 것이다.’ 신하는 군주를 어떻게든 안심시키려 할 것이며 군주는 모든 게 잘되고 있다는 안일함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갈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심정으로 안정된 삶, 평온한 생활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토록 꿈꾸는 안정과 평화는 모래언덕 저편의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안정이란 갈등과 스트레스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삶의 무게와 그것을 짊어질 수 있는 능력 사이의 오묘한 균형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도 흔들리는 걸음으로 그 미묘한 균형을 잡아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_안정이라는 신기루> 중에서
* 전박사의 핵심 메시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꿈꾸며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은 현실을 보게 되면 치열한 전쟁터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세상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살기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살아남기 위해 상대의 낯빛을 살펴 분위기를 맞추거나, 호감을 얻기 위해 내키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할 때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이란 끊임없는 대립과 위선, 혼돈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나를 지켜내고,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의 핵심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세 현자의 고민이 모이는 지점이 바로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란 상대의 필요를 나의 필요로 수용한다는 대인배의 지혜를 의미한다. 우리는 착하게 살고, 좋은 사람이 되라는 교육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현자들은 지나친 이기심은 경계해야 되지만 너무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 삶이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음을 통찰하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해법, 세상과 조화를 이뤄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해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혼돈과 갈등을 벗어나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찾을 수 있는 해법을 만날 볼 수 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전략이나, 직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처세술과 인물론 등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 400여 년 전인 17세기 유럽을 살았던 세 현자의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잠언들이 시대를 초월에 21세기 지금도 우리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주고 있다.
무한경쟁 체제인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만으로는 어렵다. 좋은 사람을 넘어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만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과연 ‘필요한 사람인가?’ 세 명의 현자들이 전해주는 그 방법을 이 책에서 찾아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