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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만추 – 북한산(사기막봉,망운대,백운대,영봉,왕관봉,상장봉)
1. 망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백위문의허무러진성첩을길삼아 최후의목표요 최고의절정인 백운대를향하야 등반하기시작하얏다 올라가며보니
오히려제일봉이라는 백운대보다도 엽흐로보이는 인수봉(仁壽峰)이 도리혀놉하보이다 그리고남쪽으로 불쑥내밀은
만경봉(萬景峰)이 더욱긔이해보인다 구부러진 물외(水瓜)모양으로 발부칠곳하나 아니보이고 운소에솟구친 인수봉
의 검은자태가 마치침범하기어려운 무슨신비로운 聖體와가치보인다 그가튼 인수봉에 어듸로 엇더케 올라갓는지
두어쌍의 남녀가그정상에서 한두개의점(點)과가치 보여 시속젊은사람들의 유난스러운 작란을자랑하고 잇다.
―― 조선일보 1935.4.13.자 기획기사, 「春郊名山 三拍子行脚 三角山篇 雲表엔 奇峰이 削出 眼下엔 群山이 跪朝 【四】」
주) 궤조(跪朝)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조아린 모습이다.
▶ 산행일시 : 2024.11.16.(토), 오전에는 구름 많다가 오후에 갬
▶ 산행코스 : 효자2동,밤골공원지킴터,사기막봉,망운대,숨은벽능선,호랑이굴,백운대,백운산장,하루재,영봉,육모정
고개,왕관봉,상장봉,북한산둘레길,사기막야영장,사기막고개,밤골공원지킴터,효자2동
▶ 산행거리 : 도상 14.0km
▶ 산행시간 : 8시간 10분(07 : 15 ~ 15 : 25)
▶ 갈 때 : 구파발역에서 버스 타고 효자2동 버스승강장에서 내림
▶ 올 때 : 효자2동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구파발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34 – 구파발역( ~ 06 : 58)
07 : 15 – 효자2동 버스승강장, 산행시작
07 : 38 – 밤골계곡 무명폭
07 : 47 – 밤골계곡 ┳자 갈림길, 밤골공원지킴터 1.4km, 백운대 2.7km
07 : 55 – 사기막능선, 342.8m봉 아래 안부
08 : 21 – 마당바위
08 : 25 – 사기막봉(552m)
08 : 33 – 망운대(영장봉, 550m)
09 : 22 – 안부, 호랑이굴
09 : 44 – 백운대(835.6m), 휴식( ~ 09 : 54)
10 : 17 – 백운산장
10 : 53 – 영봉(靈峰, 598m)
11 : 27 – 육모정고개
11 : 55 – 왕관봉(520m)
12 : 25 – 545m봉(상장8봉), 한북정맥
12 : 48 – 559m봉(상장5봉), 점심( ~ 13 : 10)
13 : 34 – 상장봉(513.3m)
14 : 19 – 북한산둘레길(교현리) 갈림길, 밤골공원지킴터 3.4km, 솔고개 0.3km
15 : 19 – 밤골공원지킴터
15 : 25 – 효자2동 버스승강장( ~ 15 : 35), 산행종료
15 : 55 - 구파발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서울 1/25,000)
▶ 사기막봉(552m), 망운대(영장봉, 550m)
기러기 떼 기럭 기럭 어디서 왔니
북쪽에서 날아오다 북한산에 들렀니
북한산 단풍 한창이겠지
요담엘랑 단풍잎을 입에 물고 오너라
윤석중(尹石重, 1911~2003)이 1933년에 발표한 동시 「기러기」 3연 중 제3연이다. 우리에게는 동시보다 동요가 더
귀에 익다. 미국 민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티븐 포스터(Stephen Foster, 1826~1864)의 곡 「Massa’s in de
Cold, Cold Ground(주인은 차디찬 땅속에)」에 이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북한산 단풍이 한창이겠지. 보러 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붐빌지 몰라 내 딴에는 새벽부터 서둘러 한적한 코스를
택한다. 「기러기」를 흥얼거리면서…. 그 3연 중 제1연은 낯설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갈대들이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르네
밤골공원지킴터 왼쪽에 있는 굿당인 국사당이 바쁘다. 그 앞 길옆에는 전에 못 보던 고급 승용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국사당 마당에서 오방신장기(五方神將旗) 드리웠다. 알게 모르게 무속의 전성시대다.
아무래도 단풍은 능선보다는 골짜기에 몰려 있을 것이라 왼쪽 사기막고개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골짜기로 간다.
양쪽 등로는 사기막봉 전과 후에서 만난다. 햇낙엽이 깔린 돌길이 걷기 조심스럽다. 아, 이곳 단풍은 다 지고 말았다.
국수나무 노란 잎만 드문드문 남아 만추를 지킬 뿐 삭막하다. 건너갔다 건너오는 계류도 바싹 말랐다. 밤골공원지킴
터에서 0.8km쯤 가면 만나게 되는 폭포는 잴잴거린다. 오른쪽 데크계단을 오르고 그 폭포 위쪽에서 계류를 건넌다.
┳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곧바로 사면 올라 사기막봉 전에서 능선을 만나게 되고, 오른쪽은 산자락 돌다가 골
짜기 이슥히 지나고 왼쪽 사면 올라 사기막봉 후에서 능선을 만나게 된다. 양쪽 등로는 똑같이 백운대 2.7km이다.
골짜기 단풍구경은 글렀고, 왼쪽 사면을 오른다. 가파르다. 바위 나오면 깔린 낙엽을 쓸어가며 오른다. 사기막능선
342.8m봉 아래 안부에 오른다. 울퉁불퉁한 돌길인 골짜기보다 능선길이 훨씬 부드럽다. 사기막봉 오르는 길은 가파
른 슬랩이거나 암릉이다. 고도 220m를 올라야 한다. 데크계단 잠시 지나고 등로 안내표시 따라 슬랩 오른쪽 자락을
돌아 오른다. 직진하는 암릉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목책으로 막아놓았다.
사기막봉 오르기 전 마당바위는 일대 경점이다. 이미 일단의 젊은 등산객들이 올랐다. 오늘은 연무가 끼여 원경은
흐릿하다. 인수봉 설교벽, 숨은벽, 백운대 파랑새능선, 장군봉 등이 위압적으로 솟구쳤고, 상장능선과 그 너머로
계명산, 감악산, 오봉산 등이 내 눈높이다. 마당바위에서 한 피치 오르면 사기막봉이다. 사방 울창한 나무숲이라
조망이 꽉 막혔다. 망운대를 향한다. 인수봉의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보는 사람이 없는 틈은 타서 목책 넘는다.
낙엽이 인적을 가려 이곳저곳 들락날락하며 내린다. 가파른 반침니를 살금살금 내리고, 솔숲 지나 오른쪽 사면
돌고, 양손바닥을 바위에 밀착하여 슬랩 오른다. 암봉인 망운대에는 찬바람이 거세게 분다. 나는 인수봉을 여기서
보기를 좋아한다. 여기서 보는 인수봉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냉정한 모습이다. 영봉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단아하
고 다정하여 그 품에 안기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망운대에서는 그와는 딴판으로 가까이하기 어려운 근엄한 모습으
로 보인다.
3. 상장능선 상장봉, 멀리서는 저렇게 보여도 다가가서 보면 위압적인 암릉 암봉이다.
4. 상장능선 너머로 도봉산
5. 맨 왼쪽 뒤는 계명산, 맨 오른쪽은 호명산, 그 뒤 왼쪽은 감악산
6. 망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7.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
8. 사기막봉 아래 마당바위,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등산객이 올랐다
9. 파랑새능선과 장군봉
11. 왼쪽 뒤는 마차산, 오른쪽은 소요산, 그 앞은 불곡산
12. 왼쪽은 마차산, 가운데는 소요산, 그 앞은 불곡산
▶ 백운대(835.6m)
그런 인수봉을 보고 또 보고 망운대를 내린다. 사기막봉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목책 넘어 능선에 오르고 약간 내렸
다가 숨은벽능선을 오른다. 숨은벽능선은 초소가 있는 안부에서 빨래판바위를 오르는 것부터 말하지 않는가 싶은데
대체로 여기서부터 숨은벽능선이라고 한다. 암릉이다. 날 무딘 릿지다. 바위가 젖어서가 아니라 하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닳고 닳아 미끄럽다. 마당바위에서 만났던 등산객들과 함께 간다. 내가 선등하여 그들의 발 디딜 곳과 손으
로 잡을 바위 턱을 안내하기도 한다.
그들은 걸음걸음마다 즐거운지 연신 괴성을 내지른다. 초소가 있는 안부 멀찍이 철난간을 붙잡고 가파른 슬랩을
내린다. 밤골계곡 협곡이다. 이곳 역시 가을은 이미 낙엽 따라 가버렸다.
안부 호랑이굴까지는 너덜 지나고 돌계단에 이어 데크계단을 오른다. 도중에 들여다본 대동샘은 찰랑찰랑하다.
장군봉 쪽 사면은 오룩스 맵에는 장군봉 오르는 등로 표시가 선명하지만 실지는 아무런 인적도 보이지 않는다.
작년 늦봄에 여기서 저버린 처마치마를 수없이 보았다. 내년에는 꼭 그들의 화려한 치마를 보고야 말리라 다짐한다.
호랑이굴 뒤쪽에서 백운대를 오르는 레이백(lay back) 슬랩을 살펴보며 손맛만 다시고 지나친다. 백운대 자락을
길게 돌아 백운대암문 위쪽 데크계단에 오른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백운대 오르는 길이 예전과
다르게 우측통행하도록 개설하였다. 이러니 줄이어 서행할지언정 가다서다 혹은 정체하지는 않는다. 이들도 오늘
북한산 단풍이 한창인 줄 알고 왔으리라.
백운대 정상에는 펄럭이는 태극기와 정상 표지석과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나는 정상 바로 아래
바위벽에 기대어 휴식한다. 조망은 이만하면 만족한다. 명지산과 용문산을 알아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인천 해변까지
보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7.9.18.자 백운대를 오른 기획기사가 재미있다. “近郊行脚地 三角山코스, 가을은하이
킹의씨슨! 白雲은손에잽히고 天涯가 一眸中, 한번뛰면仁川에도다을듯”이라는 기사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 道詵寺에서부터는 길이 좀 急하여진다. 그러나 左右의 樹林은 넉넉히 登山客의 疲勞를 잊게할수가 잇고다.
人家가 잇는곳에서 藥水에목을적시고 더 올라가면 衛門에이르게되며 衛門에서는 바로 白雲臺에 올르게된다.
白雲臺는 三角中에도 第一高峰으로서(八三六米) 仁壽峰,露積峯,萬景臺와같이 北漢山에서는四高峰의하나이다.
白雲峰을 올라가는길은 多少 險하나 鐵柵等이잇고 巖石에 階段을만들어 女子,兒童이라도 올라갈수가 잇다.
白雲臺의 頂上에는 平濶한 一大岩이잇어 數百人이라도 넉넉히한자리에서 쉬일수가 잇다. 나려다보면 仁川의 海邊
까지 眼前에나타나고 모든雜念이 부러가는바람과같이 날러가고 가장 聖스러운생각이 남을뿐이다. 올라올때의 努
力의 結果로 快感도 느끼지만은그以上 더神聖한무엇을 實感하게된다.
다음에 仁壽峰은 全山이 한바우로 된것이어서 恰似砲彈을 세워노흔것같이 되어잇다. 本來는 이 峰을 올러단인사람
이없엇으나 現今은 로푸를 利用하야(寫眞에 로푸를 끌어올린것은 仁壽峰上)이 奇峯을 吟味할수가 잇다.(…)”
오늘도 인수봉을 오르는 암벽꾼들이 점점이 보인다. 이 산행기 서두의 조선일보 1935.4.13.자 기사 중 눈여겨 본
대목은 다음이다. “그가튼 인수봉에 어듸로 엇더케 올라갓는지 두어쌍의 남녀가그정상에서 한두개의점(點)과가치
보여 시속젊은사람들의 유난스러운 작란을자랑하고 잇다.” 그때 인수봉을 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 대체 인수봉의
초등은 언제 누구일까 궁금했다.
이에 대해 백산(白山)의 산행일기 ‘〔스크랩〕인수봉 초등사’가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다음은 그중 몇 대목이다.
“한국 사람이 순수한 등반을 목적으로 인수봉에 처음 오른 기록은 1935년이다. 백령회의 김정태 · 김금봉 · 엄흥섭
이 동남측 지금의 인수B코스로 정상에 오르는 길을 열었다.”
“1924년 봄부터 인수봉 아래 백운암굴(현 백운산장)에서 기거해온 이해문(현 백운산장 이영구씨의 조부)씨의 증언
으로는 인수봉 정상에 이미 사람이 쌓아올린 돌탑을 보았으며, 당시 북한산을 자주 찾은 서양인들 중 연세대학 설립
자인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당시 37세) 일행이 1927년경에 인수봉을 첫 등정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근대적 의미의 인수봉 등정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영국 사람 아처가 1936년에 영국산악회에 제출한 ‘1929년
의 인수봉 등정기’다. 이 등정기는 ‘한일등산기(Climbs in Japan and Korea)’라는 제목으로 당시 인수봉 등정
사진과 함께 보고 된 기록이며 현존하는 기록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아처가 인수봉을 처음 본 것은 1922년이었으며,
아처 일행이 인수봉에 오른 연대는 1929년 9월이다. 그와 함께 인수봉에 오른 사람은 한국인 임무(林茂)가 아닌,
영국인 페이시(E.R.Paccy)와 일본인 야마나카(S.Yamanaka) 등 세 사람이다.”
내친 김에 백운산장의 유래도 찾아보았다. 1937년에 백운대에 오를 때 “人家가 잇는곳에서 藥水에목을적시고 더 올
라가면 衛門에이르게되며”라는 구절을 보면 인가가 있는 곳은 지금의 백운산장이다. 그때는 백운산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보다. 이 백운산장은 1924년 경기도 장단 사람 이해문이 백운암 움막에 등산객을 상대로 매점을 시작한 게
그 시초라고 한다.
1927년 백운대까지 등산로 개설을 목적으로 한일 재계인사 109명이 찬조금 750원을 모금해 중국인 석공들이 3개월
의 공사 끝에 계단과 쇠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이에 따라 등산객이 늘어나자 이해문은 목동에 움막을 더욱 튼튼하게
지었고, 1933년 이해문의 아들 이남수가 북한산을 관리하는 경성영림서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 300평을 임대하여
석조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13. 멀리 왼쪽은 명지산, 그 앞은 운악산, 앞 오른쪽은 수락산, 그 뒤는 용암산, 그 뒤는 주금산
14. 왼쪽 멀리는 서리산과 축령산, 그 앞은 철마산, 맨 오른쪽은 천마산
15. 멀리 가운데 구름 위로 명지산이 살짝 보인다
16. 멀리 가운데는 수위봉, 국사봉, 왕방산, 오봉 왼쪽 뒤는 사패산
17. 앞은 수락산, 그 뒤 왼쪽은 용암산과 수리봉, 그 뒤는 주금산, 오른쪽 내마산 뒤로는 서리산과 축령산
18. 노적봉, 전체로는 변발한 모습인데 뒷모습도 아름답다
19. 염초봉과 원효봉(뒤)
20. 멀리 가운데는 마차산, 그 오른쪽은 소요산, 그 뒤로 관음산과 사향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21. 멀리 가운데 흐릿한 산은 관음산과 사향산, 그 앞이 소요산, 그 앞이 불곡산
▶ 영봉(靈峰, 598m), 상장능선
백운대 등로를 두 곳으로 나누고 분리대를 설치하여 우측통행하도록 하니 오르내리기가 한층 수월하다. 길게 줄이
어 내리지만 금방 백운대암문(위문)이다. 혼자 산에 오면 도지곤 하는 병통이 재발한다. 당초 산행계획을 일탈하여
이곳저곳을 들르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오늘은 노적봉을 올라 만경대의 삐죽삐죽 솟은 침봉의 현란한 암릉과 백
운대의 묵직하고 준험한 암괴를 보고 싶고, 일출봉에도 올라 돌올한 만경대와 수려한 용암봉 병풍바위를 보고 싶다.
갈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그만 접는다. 백운산장 마당도 만원이다. 곧바로 내린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 산행
차림이 단출하여 중무장한 내 차림이 어색하다. 혹시 비탐구간을 가려고 저러지 않을까 의심받기 알맞다. 인수산장
지나고 하루재 오르다 뒤돌아보는 인수봉이 흔히 사진발 받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부족하지만
달리 표현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재. 영봉 0.2km이다. 단숨에 오르기에는 숨차다.
영봉에도 찬바람이 횡행한다. 소나무에 기대어 단아한 인수봉을 바라보며 휴식한다. 독작하는 탁주이지만 맛이 아
주 좋다. 육모정고개를 향한다. 잠깐 내렸다가 조망 좋은 암봉을 오르고, 슬랩 내린 다음 하늘 가린 숲속 길 지나고,
헬기장에서 사바세계 내려다보고, 503.4m봉 작은시루떡 바위에 올라 영봉 산릉 너머로 둥두렷이 떠오른 인수봉을
바라보고, 쭈욱 내리면 육모정고개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그들이 비우기 기다리기가 부지하세월이다. 일부가
떠나도 곧 다른 일행들이 몰려온다.
노천 화장실 가는 체하며 목책 넘는다. 상장능선을 간다. 비로소 혼자가 된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이다. 적막하여 내 낙엽 지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왼쪽으로 왕관봉을 우회하는 ┫자 갈림길 지나고 바윗길이
나온다. 배낭을 벗어놓고 왕관봉을 오른다. 배낭을 메고 가면 왕관봉 북릉을 내리고 싶은 욕심이 생길지도 몰라서
다. 왕관봉 북릉은 슬링을 걸어야 할 직벽도 나오고 나이프 릿지도 지나야 한다. 솔직히 겁난다.
왕관봉 정상은 길쭉하고 너른 암반이다. 왼쪽으로는 만경대와 인수봉, 백운대가, 오른쪽으로는 도봉산 오봉과 만장
봉 등이 가깝게 보이는 경점이다. 소나무 그늘 아래는 쉬기 좋다. 온 길 뒤돌아간다. 암릉은 오를 때보다 내릴 때가
더 조심스럽다. 왕관봉을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골로 갈듯이 뚝 떨어졌다가 사면을 길게 돈다. 다시 능선에
오르고 잰걸음 한다. 야트막한 안부 지나고 한 피치 바짝 올라 등로 살짝 벗어난 전망바위에 들른다.
그리 높지 않은 전망바위 슬랩을 오르기가 약간 까다롭다. 얇은 바위틈에 손가락 끝을 끼어 오른다. 전망바위 정상
은 너른 암반이다. 다름 아닌 왕관봉을 전망하는 바위다. 여기서 바라보는 왕관봉의 옆모습이 (우이령길에서) 정면
을 바라보는 모습보다 더 아름답다. 섬세하고 날렵하다.
계속 오르막이다. 545m봉은 한북정맥 갈림길이다. 오른쪽 암봉 돌아내리면 우이령에 닿는다. 요즈음은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이 뜸한지 그쪽 인적이 흐릿하다.
22. 인수봉, 오늘도 오르는 암벽꾼들이 점점이 보인다.
26. 영봉에서 바라본 만경대, 맨 왼쪽은 용암봉
27. 롯데월드타워
28. 육모정고개 가는 길에 뒤돌아본 인수봉
29. 맨 왼쪽은 만경대, 맨 오른쪽은 파랑새능선 장군봉
30. 도봉산, 가운데가 자운봉
31. 상장능선 왕관봉, 수려하다.
32. 맨 왼쪽은 만경대, 맨 오른쪽은 파랑새능선 장군봉
이제 한북정맥을 간다. 552m봉을 금방 올랐다가 길게 내리고 길게 올라 559m봉이다. 상장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상장5봉이라고도 한다. 상장능선에는 상장봉을 시작으로 상장9봉인 왕관봉까지 차례로 9개의 봉우리가있다.
낡은 삼각점이 있다. 조망 좋다. 소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도봉산 연봉이 한반찬 한다.
오봉 아래 관음암이 아늑한 피안으로 보인다.
옛 선인들은 북한산을 화산(華山) 또는 삼각산(三角山)이라 하며 연꽃(부용화)에 비유했다.
고려 오순(吳洵, 1306~1385)은
聳空三朶碧芙蓉 공중에 높이 솟은 세 송이의 푸른 연꽃
縹緲煙霞幾萬重 아득한 구름 안개 몇 만 겹인고
却憶當年倚樓處 전년에 누대(樓臺)에 올랐던 곳 추억(追憶)하니
日沈蕭寺數聲鍾 날 저문 절간에 종소리 두어 번 울리네
하였고,
고려 이존오(李存吾, 1341~1371)는
三朶奇峯迥接天 세 송이의 기이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았는데
虛無元氣積雲煙 아득한 대기(大氣)에 구름 연기 쌓였네
仰看廉利攙長劍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장검(長劒)이 꽂혔는데
橫似參差聳碧蓮 가로 보니 들쭉날쭉 푸른 연꽃 솟았네
라고 했다.
위 시에서 북한산 모습은 상장능선에서 본 것이 아닐까 한다. 만경대과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 장군봉의 나란한
모습은 영락없는 연꽃이다.
한편 김시습이 다섯 살 때 세종이 운자를 불러 주고 삼각산(三角山)을 제목으로 절구를 짓게 하였는데 당장 짓기를,
束聳三角貫太淸 세 봉우리를 묶어 세워 하늘을 꿰니
登臨可摘斗牛星 그 위에 오르면 두우성(북두칠성)을 딸 수 있겠네
非徒岳岫興雲雨 봉우리가 구름과 비만 일으킬 뿐 아니라
能使東方萬世寧 능히 우리나라를 만세토록 편안케 하네
하였다 하니, 이 또한 상장능선에서 본 모습임이 적실하다.
이다음 상장4봉인 546m봉은 높다란 직벽의 암봉이다. 멀리서는 대단하지 않은 암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서 보면 위압적인 암릉 암봉인다. 나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괸다. 직등하는 길은 없다. 왼쪽 사면으로 비켜서 길게
돌아 넘는다. 이어서 맞닥뜨리는 상장봉 암릉은 직등한다. 슬랩 왼쪽으로 약간 벗어나서 소나무 버팀 한 좁은 테라
스에 젊은 두 사람의 등산객이 쉬고 있다. 상장능선에서 서로 처음 만나는 등산객이라며 서로 반가워한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슬랩 오른다. 바람이라도 불면 자세 잡기가 불편하여 위험하겠는데 이때는 잠
잠하다. 그래도 납작 엎드려 기다가 바위틈에 손을 넣어 재밍하듯 오른다. 상장봉(513m) 정상은 널찍한 암반이다.
전후좌우로 막힘없이 조망이 트인다. 상장봉 슬랩 내리기도 까다롭다. 한 발 한 발 디딜 곳을 확인하고 내린다. 그리
고 급전직하 내리쏟는다. 낙엽 깔린 돌길이다. 두 번 미끄러져 넉장거리하고 나서 길섶 더듬어 내린다.
가파른 내리막은 펑퍼짐한 300m봉에서 주춤한다. 여기서 한북정맥을 놓치기 쉽다. 왼쪽의 통통하니 잘생긴 능선이
려니 하고 가다가는 얼마 못 가 골로 간다. 오늘도 그럴 뻔했다. 인적이 소연하기에 지도 들여다보니 잘못 가고 있
다. 얼른 뒤돌아 300m봉을 다시 오르고 직진하여 잘난 길 따라 사면을 내린다. 솔고개로 가는 한북정맥 길은 물을
건널 듯하면서 사면을 쓸어내린다. 목책 넘어 북한산둘레길(교현리) 갈림길이다.
당초 예정한 솔고개까지는 0.3km 정도 남았다. 아직 한낮인데 이대로 산행을 마치기에는 서운하다. 그렇다고 노고
산을 오르기에는 너무 멀고 비상식도 없다. 이정표에 북한산둘레길 밤골공원지킴터가 3.4km다. 우선 당장 걷고 싶
은 숲속 오솔길이다. 더하여 단풍구경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보건체조도 맨 마지막에는 숨고르기로 마치지
않는가. 산행도 마찬가지다. 간다. 숨 고른다. 미음완보하며 산천경개 구경한다. 가을이 머문 단풍나무 숲을 지난다.
그런데 보스톤 엔젤농원을 지나고 둘레길은 다시 산을 오른다. 이래서는 숨고르기가 아니라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르고, 숨차다. 사기막골 야영장 입구 지나 사기막고개 넘고 무지개다리 건너 밤골공원지킴터다. 그 옆 국사당은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 있다. 스틱 접는다.
33.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
34. 도봉산 오봉
35. 맨 왼쪽 뒤는 사패산, 앞 왼쪽은 오봉산 석굴암
36. 맨 왼쪽은 만경대, 맨 오른쪽은 파랑새능선 장군봉
37. 맨 오른쪽 뒤는 염초봉
38. 상장봉에서 바라본 영봉
39. 앞은 망운대
41. 인수봉, 숨은벽, 백운대
42. 북한산둘레길 사기막골 가는 길에서
첫댓글 사진이 역쉬~ 예솔입니다 ㅎㅎ
제 성에 차는 사진에는 많이 부족합니다.ㅋㅋ
오늘도 긴 길을 걸으셨군요. 상장능선에 카메라 설치되었다던데 무사(?)하셨나 봅니다.ㅎㅎ
글쎄요.
카메라가 있다한들 제 발걸음을 잡지는 못할 거라 갑니다. ㅋㅋ
역시 북한산입니다. 영령이 깃든 듯...
적어도 계절마다 가보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겨울 백설이 내린 북한산은 얼마나 또 아름다울지 벌써부터 셀렙니다.
숨은벽 상장능선 일대를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방불하는 리듬감 넘치는 문장
따라 걸어 봅니다. 몰랐던 옛 글 배우는 재미도 있고요.
옛 사람의 눈을 빌려 주변 경치를 보는 것도퍽 즐겁습니다. ^^
북한산에 대해 좀 더 알게되었네요. 홀로 산행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