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얼음 속으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정음은 한 번 익히면 세월이 흘러도 쉬 잊히지 않는 용이한 구조 탓에 왕실에서도 민가에서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갔다.최초의 언문소설 「홍길동전」뿐만 아니라, 유행하는 명과 청의 인기소설도 언문으로 번역되어
일반에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혜경궁 홍씨가 남편 사도세자를 역모로 몬 친정아버지 홍봉한을 옹호하기 위해 쓴 「한중록」도 절반은 언문
으로 씌어졌다.언문은 여자들이나 쓰는 저급한 문자라는 비하의 뜻이 암시하듯이, 정음은 여인들 사이에서
더 널리 퍼져나갔다.궁중 나인들이 쓰던 궁체(宮體)라는 언문글씨체는 몇 가지 서체가 전해올 만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있었다.이와 대립되는 민체(民體)는 민가 여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글씨체였으니,
언문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던가를 말해준다.
정음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갑오개혁과 궤를 같이한다.
갑오개혁이 일어난 1894년, 학부대신 유길준은 모든 법률과 공문서는 정음으로 기록‧유통하라고 포고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길준은 이듬해 국한문 혼용으로 「서유견문」을 펴냈다.
그가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유럽을 거쳐 귀국하면서 보고 들은 왜국과 서구의 신문물을 정리한 내용
이다.조선말 개화운동의 지침서가 된 「서유견문」은 근대 국어 연구에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
유길준이 정음으로 책을 펴낼 정도였다면 양반사회에도 정음이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1896년에는 서재필 등이 100% 정음으로 된 <독립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3년, 국어학자 주시경(1876~1914) 선생이 조선어연구학회 이름을 <한글모>로 개칭하면서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한글의 ‘한’은 우리말로 ‘크다’는 뜻과 ‘하나’라는
뜻을 지녔으니,‘한글’이란 곧 단일민족인 우리 배달겨레의 위대한 글자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주시경은 한글이란 이름을 지은 이듬해, 서른여덟의 참으로 애통한 나이에 요절했다.
자칫 한글이란 훌륭한 이름이 태어나지 못할 뻔도 한, 참으로 아슬아슬한 세월의 희롱이었다.
이후 한글은 주시경의 제자인 최현배 등에 의해 깊이 연구되고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26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을 반포한 9월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고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왕본주의라는 동토에서 처음으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뜻깊은 날을 기린 거룩한 출발이었다.가갸는 한글의 다른 이름이었다.
1928년에는 주시경 선생의 작명을 채택하여 ‘가갸날’을 ‘한글날’로 개명했다.1932년부터는 그레고리오력을
1446년도의 날짜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9일에 ‘한글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1933년에는 김윤경‧이병기 등이 주축이 되어 <한글맞춤법통일안>을 공표했다.훈민정음‧정음‧언문‧암글‧반절
‧뒷간글 등 온갖 이름으로 불려오며 제멋대로 쓰던 문법을 비로소 통일한 것이다.
이 중 암글은 여자들이나 배우면 되는 하찮은 글, 반절은 중국어의 반푼어치도 안 되는 글, 뒷간글은 뒷간
(=화장실)에서나 사용하는 글을 뜻하는 용어였으니 문화권력을 독점한 조선의 양반사회가 한글을 얼마나
비하했고 반감이 얼마나 집요했던가를 보여준다.
1938년에는 문세영이 10만여 단어를 수록한 「조선어사전」을 간행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이나 「조선어사전」이나, 왜놈들의 집요한 탄압을 견디며 탄생한 참으로 위대한 결실이다.
1942년, 보다 못한 조선총독부는 조선어학회 회원 16명을 투옥한다.
이른바 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밀어붙이는 일본어 전용정책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이 가운데 이윤재는 옥사하고 최현배를 비롯한 다른 한글학자들은 해방 후에야 풀려났다.
내가 하고많은 문자 가운데 유독 일본어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배척하는 이유다.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에서 훈민정음 반포일자가 9월 상순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명문으로
확인되었다.이에 따라 조선어연구회는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그레고리오력으로 환산하여
‘한글날’을 10월 9일로 변경했다.이제야 한글이 제 날짜에 생일상을 받게 된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는 10월 9일 ‘한글날’을 국경일 겸 공휴일로 지정했다.
1991년 노태우 정부는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경제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국경일 및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그 뒤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다시 승격시켜 한글의 중요성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청원이
계속 제기되자 2005년 국회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켜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오직 표에만 관심이 있는 국회는 이쪽저쪽 눈치를 보느라 공휴일 지정 여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정부에 공을 넘겼다.공휴일 지정 여부를 두고 재계와 노동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어오다가
박근혜 정부로 접어든 2012년 12월에야 관련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따라서 2013년 10월 9일부터 ‘한글날’이 다시 빨간 날이 된 것이다.제 나라의 제 글, 그것도 세계
에서 가장 우수한 글을 두고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백성이다.
정인지는 「훈민정음 후서」 말미를 ‘庶使觀者 不師而自悟’라고 비장하게 마무리했다.
즉, ‘바라건데 (정음을) 보는 사람은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기를!’이라는 소망이다.
정인지의 바람대로 한글은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널리 ‘不師而自悟’ 되고 있다.
한글로 자기네 말을 표기하기 시작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국에서 제공한 교과서로 가르치기 시작한 지
불과 6개월이면 한글 자모를 모두 익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유라시아‧남북 아메리카‧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도 빠른 속도로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해마다 2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글시험을 치르고 있으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글을 배우는 이유도 한류에 반해서, 쉽고 새로운 문자를 배우기 위해서, Korean Dream을 성취하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한글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한류가 되어 빠른 속도로 세계인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나랏말쌈이 듕귁에 다라 서로 사맛디 아니하는’ 나라는 우리뿐만이 아닌 것이다.
한글의 급속한 확산에는 K-Pop, 드라마, 각종 우수상품 외에도 중요한 요인 하나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바로 재외교민이다.외교통상부 자료에 의하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재외교민 수는 726만 8700여명이다.
교민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나라는 이미 100개국을 넘어섰는데, 그 가운데 10만 명 이상의 교민이 살고 있는 나라는
다음과 같다.
중 국 ; 248만 9000명
미 국 ; 210만 2000명
일 본 ; 91만 3000명
러 시 아 ; 22만 2000명
우즈베키스탄 ; 17만 6000명
카자흐 스탄 ; 10만 4000명
이러한 여러 요인에 의해 언젠가는 한글이 세계 공용어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자리를 잡을 날이 올 것으로 기대
되고 있다.우리가 여태 모르고 있던 ‘세종의 원대한 꿈’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중화 사대주의의 망령을 벗어나지 못해 한자‧한문을 숭상하고 한글을 벽안시하는 이들에게 사견을 좀 보태고 싶다.
어느 책이나 신문에서도 본 적은 없지만, 한글은 창제된 이후 한자 보급에도 상당히 공헌했으리라고 확신한다.
「천자문」을 배울 때 한글이 없다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직접 대면해야 전파가 가능하다.말로써 글자를 읽고
뜻을 해석해주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天을 ‘하늘 천’ 하고 누구나 익히기 쉬운 한글로 뜻과 발음을 적어놓으면 독학으로도 「천자문」을 공부할 수 있다.
수천 자, 수만 종에 이르는 한자‧한문이 모두 마찬가지다.조선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구결과 해설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홀로 한자를 익히고 한문을 깨우쳤을 것이다.사대주의야 지 팔자겠지만, 한글의 공적쯤은 제대로 알고
나서 존중하든 비하하든 합당한 대접을 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우리말 가운데 한자가 70% 이상 차지하고 있으니 유치원부터 모든 국민에게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다.등소평 시절 알파벳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했을 정도로 한자는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매우 어려운
문자로 인식되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쉽고 우수한 제 나라 문자를 두고 굳이 그 어려운 한자로 어릴 때부터 모든
국민에게 족쇄를 채우자는 말인가?
다른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한자는 학문적인 목적에서나 장차 생업에 필요로 하는 사람만 따로 배우면 된다.
플래카드를 들고 억지를 쓰는 저 무리들처럼, 쉬운 길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가고자 하는 멍청한 사람들 또한
저들만 배우면 될 터.
(내 인생에 다시는 쓸 기회가 없을 한글에 관한 글,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