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대 O병원 소아과 입원 진료 멈췄다”
국내 언론에 나온 충격적인 기사의 헤드라인입니다. 1970년대에 국내 ‘의료보험 제도’의 도입을 놓고 온 사회가 떠들썩했습니다. 당시 야당이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의약 분업’을 놓고 의사 사회와 약사 사회 사이에 첨예한 이해 갈등이 표출되면서 사회는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게 폭발성을 안은 국내 의료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필자는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상처투성이의 볼품없는 모습으로 국내 의료계의 치부(恥部)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당혹스럽다기보다는 부끄럽고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89년 국내에서 큰 폭으로 도입된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기본적으로 직장인 중심의 ‘개(皆)보험'입니다. 그런데, 국내 의료환경은 ‘사보험제도’를 방불합니다. 환자는 의사를 횟수 제한 없이 방문합니다. 같은 증상을 가지고 제한 없이 여러 진료실을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이른바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이란 거북스러운 용어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즉, ‘사(私)보험제도’가 분명 아니라는 뜻입니다. 근래 언급되는 과잉 고가 의료진단기(MRI)의 남용이 맥을 같이합니다. 국내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의료 소비자’인 시민의 몫으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하여왔습니다.
국내 의료계가 그토록 경고했음에도 행정 당국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걸핏하면 시민 단체를 앞세워 의료계의 고충을 뭉개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 투정’ 정도로 치부하면서 의료계의 어려움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과가 오늘의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의과대학 신설 문제 같은 이슈에는 끈질기게 큰 관심을 보여온 것과는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의료 사고를 두고 몰아치는 국내 사회 풍토나 정서가 작금의 참담한 진료 환경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의료 사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산부인과입니다. 이는 의료 선진국의 통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미 국가에서는 산부인과를 지망하는 젊은 의사의 풀에 큰 변동이 없는 반면, 국내 의료계는 크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입니다.
필자는 신생아가 터트리는 첫 울음소리 때문에 산부인과를 지망했다는 한 동료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심성을 가진 젊은 지망생이 지금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벌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의료 환경은 갈수록 험난해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어떤 젊은이의 부모가 자식의 외과계 지망을 찬성하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외과계가 ‘구인난’에 직면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 부모를 설득할 수 없는 필자는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국내 산부인과를 필두로 각종 위험이 따르는 외과계열 학과는 우리 사회의 외면 속에서 고사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대학병원 소아과 전공의 과정을 지망하는 새내기 젊은 의사가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는 이른바 ‘인구 절벽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전망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래도 어린아이를 돌보며 함께하는 그 자체에서 행복감을 찾는 젊은 의사는 분명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유인할 ‘당근’을 정부 차원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 요소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따듯한 마음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걸핏하면 법적 추궁을 하겠다는 분위기를 지양해야 합니다.
잘못된 의료행위를 단호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른바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2017.12.16.)의 경우 대법원은 5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지금의 전국적인 ‘소아학과 소멸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필자가 독일에서 피부과학 전문의 과정을 밟을 때 받았던 주말 당직비를 한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필자의 주말 당직 수령 액수는 신경외과나 심장내과 동기생 동료의 약 50%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만 필자의 경우 주말 당직을 하면서 ‘밀렸던 개인사’를 해결하는 등 비교적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기 동기생들은 주말에도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항상 ‘초주검’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필자는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진료수가’입니다. 진료비를 크게 올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서구권에서 선택학과를 놓고 심한 왜곡 현상이 없는 이유는 진료비를 현실화했기 때문입니다.
임신부가 태아를 분만할 때, 의사나 조산원이 산모의 복부에 압력을 가해 태아가 산도(産道, Birth canal)를 빠져나오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산모의 복부에 압력을 가하는 동안 태반(胎盤)이 파열되면서 양수(羊水)가 산모의 혈관으로 역류해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양수색전증(羊水塞栓症, Amniotic fluid embolism)’이라고 하는데, 아주 드물지만 어느 의료 선진국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담당 의사가 재정적 배상과 더불어 형사처벌을 받기 일쑤입니다. 이런 일이 쌓이면서 국내 의료계가 오늘날 탈진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허탈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수년 전 국내 대학병원에서 앞서 언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무렵, 우연하게도 미국 뉴욕대학교(NYU) 동료 교수의 딸이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날아왔습니다. 필자는 그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까? 자못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동료 교수는 지인들에게 딸의 사망을 애도하고 슬픔을 같이한다면, 그 대학병원의 발전기금 계좌로 기부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 먹먹한 감동이 밀려온 것을 필자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