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형사 소송에서 사용되는 디스커버리가 뭐냐고?
흔히 증거개시제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쉽게 말하면, 원피고가 서로 "내 자료를 깔테니까, 니 자료도 다 까"라고 합의하고, 판사한테 승인을 받는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법원 관여 없이, 양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
양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만약 피고가 불성실하게 공개하거나 감추거나 삭제한 것이 밝혀지고, 원고가 그것을 판사한테 이르면, 피고는 (감추는 놈이 범인이다라는 상식에 기초해서, 가장 강하게는, 재판 진행할 필요도 없이 패소판결을 받을 정도의) 페널티를 받는다. 이런 패소판결을 default 패소판결이라고 부른다.
(1)
그래서, 예컨대, Giuffre v. Prince Andrew 민사소송에서, 영국 앤드류 왕자는, 다음의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청을 받았는데, 당연히 이런 자료를 제출하면 패소할 것 같으니까, 돈을 많이 주고 화해를 했다.
- 앤드류 왕자가 땀을 흘리지 못한다는 의학적 증명 (Giuffre가 말하기를, 런던 나이트클럽에서 앤드류 왕자랑 춤출때 등이 땀에 젖어있었다고 말했는데, 앤드류왕자가 자기는 땀을 흘리지 못하는 병이 있다고 말했음)
- 2001년 3월 문제의 그날(영국 런던에서 Giuffre를 강간했다는 그날)에, 앤드류 왕자의 행적
- 구체적으로는, 피자집에 갔는지 여부 (앤드류 왕자는 나이트클럽 안 가고, 가족끼리 피자집에 갔다고 말했음)
- 나이트클럽에 갔는지 여부
- 기타, Epstein이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 뉴욕, 뉴멕시코, 버진아일랜드에 갔는지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서류
(2)
도미니언이라는 개표기 회사가 폭스뉴스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폭스뉴스가 1조원을 물어주기로 합의했는데,
US Dominion, Inc. v. Fox News Network, LLC, N21C-03-257 EMD (Del. Super. Ct. 2021)
이때도, 폭스뉴스가 본 사건과 관련된 자신들의 내부 이메일, 휴대폰 문자 메세지 등을 모두 제출해야 했고, 거기서 밝혀진 내용에 의해 빼박으로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음이 밝혀져서, 더 큰 패소(손해배상액)를 당하기 전에 그나마 1조원으로 화해한 것이다.
(3)
SK가 LG의 기술자들을 빼돌려서 LG의 영업비밀을 훔쳤다고, LG가 SK를 미국 무역위원회에서 제소한 사건에서도, SK가 용감하게(?) 이메일들을 삭제했지만, 당연히 LG측의 (정확하게는 LG의 미국 로펌이 고용한) 포렌식 전문가들에 의해 이메일 삭제가 밝혀졌고, 그래서, SK는 default 패소판결을 받았고, 미국 수출길이 막혀서 망할 뻔 했지만, 간신히 2조원 물어주고 살아났다.
아마, LG가 SK를 한국 법원에 제소했더라면, 승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디스커버리가 없어서, 아무리 LG라도 SK가 이메일을 대량 삭제한 것을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LG가 SK를 미국에 제소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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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카툰은 앤드류 왕자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기는 땀을 안 흘리는 병에 걸렸다고 말한 것을, 풍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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