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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영화 티탄에 대한 굉장히 흥미로운 리뷰가 있어서 리뷰어님께 허락 구하고 가져왔어
나도 이 영화를 보고 다소 불쾌감을 느꼈는데 리뷰를 읽을수록 깨닫게 되는 게 많더라고 우동이들도 한 번쯤 읽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거야! 리뷰 전에 영화 먼저 보고 싶으면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고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 많으니까 주의해~!
* 해당 영화 리뷰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자세한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리뷰의 이해를 위해 영화 관람 이후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결말 및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여성을 위한 신화.
<티탄>은 지독한 페미니즘 영화입니다.
티탄이 던진 가장 첫번째 질문,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해당 영화에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낸 의문점은 이렇게 묘사된다.
레이싱 모델이자 댄서로 일하던 알렉시아는 긴 머리와, 진한 화장,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많은 남성 고객들 앞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차 위에 올라가 춤을 춘다.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성적 어필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극 상에서 알렉시아는 여러 명의 팬들이 있을 만큼 인기있다. 별안간 쫓아오는 남성 팬은 알렉시아의 외형만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며 관계를 시작해보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시아가 모든 꾸밈을 내려놓고 아드리앙이 되었을 때, 즉, 짧은 머리를 하고 소방관 옷을 입고 같은 모양의 춤을 소방차 위에 올라가 추었을 때, 그는 어떤 소방관 남성에게도 ‘여성’으로 패싱되지 않았으며 성적대상화 되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의 춤을 불편해했고, 역겨워했으며, 못 본 척하기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모든 것(화장과, 육체와, 옷, 즉 꾸밈.)을 모두 내려놓은 ‘여성’은 성적 대상화 되는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티탄이 보여주는 가장 명백하고 명확한 주제 의식이다.
티탄은 끊임없이 가부장제 사회속에서 맹목적으로 반복되는 가부장제 신화와 여성적 이미지, 모성성을 뒤집으며 그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티탄 속 신화와 이미지 뒤집기
이 영화의 전반에는 ‘신화 뒤집기’가 주제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커다랗게 뒤집은 세가지 신화로는 ‘기독교 신화’, ‘모성 신화’(결이 약간 다르지만), 그리고 ‘오이디푸스 신화’를 꼽을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아버지 살해는 알렉시아가 아버지를 직접 선택하고, 선택한 아버지에게 섹슈얼한 텐션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 해당 영화에서는 어머니의 존재가 미약하거나 얼굴도 나오지 않을만큼 그 역할이 미미했지만, 이 또한 이야기 전개, 또는 주제의식 전달을 위해 어머니의 역할이 의도적으로 삭제/축소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쟁취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거세 공포를 느끼는 것을 남성의 주된 성장 과정이자 이들이 가부장제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운명적으로 친어머니에게 끌림을 느낀 신화를 이 공포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이 과정에서 ‘어머니’로서 아들과 남편의 성장을 도왔거나 돕는 도구적 존재로 소비되는데 그치거나 ‘펠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완의 존재, 또는 설명하기 부적합한 존재로 여겨지며 정신분석학의 주가 되는 이 이론에서 설명되는데 실패한다. (ex. 여성은 ‘검은 대륙’이다. -프로이트) (+여자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성장과정을 설명할 수 없는 반쪽짜리 이론이 정신분석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탈락시키는지, 또는 여성에게 ‘어머니 되기’를 수행토록 만드는지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아이였던 알렉시아는 아버지에게 강한 애착 혹은 집착을 보인다. 아버지의 관심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아버지에 의해 큰 사고를 당했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아버지가 밥을 먹을 때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고, 아프다고 말하며 아버지에게 나의 몸을 더 만져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렉시아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한다.
알렉시아는 영화에서 ‘불’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불 위에서(불 문양의 차) 춤을 추며, 집에 불을 질러 가족을 살해했고, 이후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드리앙으로 부활한다. 클리셰적으로 ‘바다’의 이미지는 곧 대자연 어머니로, 더욱이 프랑스에서 Mer(바다)와 Mère(어머니)는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예술작품에서 동일시되어왔다. 커다란 물의 이미지는 그렇기에 더욱 쉽게 또는 무지성적으로 여성으로 대표되어왔고, 자연히 남녀 이분법적 사회에서 강력하고 위협적인 불은 ‘남성’의 이미지로 대표되었다. 티탄의 감독이 알렉시아를 물이 아닌 ‘불’로 설정한 것 또한 여성과 남성의 보편화된 이미지를 뒤집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알렉시아는 곧 불이다. 불을 감당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알렉시아를 방관하던 친아버지는 결국 불에 의해 죽고 만다. 부성이 결여된 친 아버지에게 ‘아버지 되기’를 강요했던 알렉시아는 모순적이게도 자신을 막아줄 수 있는, 또한 지켜줄 수 있는 ‘마초적’ 아버지를 찾는다. 그렇기에 소방관이자 지휘관인 뱅상은 그런 점에서 완벽한 선택지였다. 알렉시아의 친아버지는 이 세계에서 곧 ‘불’인 알렉시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불에 타 죽어버린다. 그러니 새아버지인 뱅상은 불을 막는 자, 불과 싸울 수 있는 소방관일 수밖에 없다.
알렉시아는 새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있었다. 한번은 뱅상에게 무력으로 진압당했고, 한번은 자의로 그만 두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무력으로 제압당하는 경험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르는 ‘Papa(아버지)’라는 단어는 뱅상이 알렉시아를 아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알렉시아가 자신의 아버지를 선택했다는 근거가 된다. 대사가 많지 않았던 영화에 단 한 번 등장하는 ‘Papa’라는 대사는 알렉시아가 새아버지를 온전히 받아들였으며 더 나아가 아버지를 선택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버지인 뱅상은 자신의 세계에서 신이며, 자신의 아들은 예수라는 것을 만인에게 공표한다. 모두에게 돌을 맞았던 예수의 첫 탄생과 달리, 또 무력했던 알렉시아의 친아버지와 달리, 뱅상은 권력을 가졌고 알렉시아에게 명확하게 그 권력을 부여한다. 알렉시아는 그렇기에 도망가기를 멈추고 결국 ‘아드리앙’이 되기로 결심한다. 신적인 존재인 아버지와 권위를 인정받은 알렉시아. 전 아버지의 관심도 아버지가 가진 힘도 없었을 때 알렉시아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살해했으나, 새 아버지에게 무력으로 진압당했을 때 처음으로 한계를 느꼈으며, 완벽히 부여받은 권력과 보호를 확인하고는 살해를 멈추게 되는 것이다. (더이상 삽입권력을 느낄 필요가 없어짐.)
‘사회적 모성성’을 대체한 새아빠 뱅상
그러나 이렇게 선택한 아버지인 뱅상도 결핍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들을 잃고 아들을 대체할 대체제가 필요했으며, 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라이안(라이스 살라메)에게 아들의 대체역할을 하도록 만들었고 돌봄을 통해 결핍을 채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결핍은 늙어가는 몸이다. 남성성, 보호자성을 통해 본인의 모든 결핍을 채우고자 노력했던 뱅상은 알렉시아가 본인의 아들이 아님에도, 심지어 딸임에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보지 않는 방식으로 ‘아들’로 받아들인다.
노화를 통한 신체적 남성성의 결핍은 계속해서 스테로이드제를 주입하는 것으로 채우고 있었다. 근육질의 큰 몸을 가지고 있는 소방관들 사이에서 뱅상은 탈락하지 않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회적 남성성을 유지한다.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주입하는 남성성.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속되고 있다. 가부장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영화는 단순히 여성은 좋은 것, 남성은 나쁜 것으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않는다. <티탄>은 가부장제가 갖고 있는 기이한 권력형태를 드러냄으로 여성과 남성사이의 관계성, 여성과 남성이 갖게 되는 양측의 고통을 면밀히 분석한다.
알렉시아가 오기전까지 라이안은 뱅상의 아들 역할을 대신해왔다. 가짜 아버지 밑에서 일하며 그 권력 아래 있었던 라이안은 살해를 일삼던 알렉시아가 처음으로 아버지 뱅상와 함께 사람을 살린 뒤, 본인의 위치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친절함을 내려놓는다. 외형적으로는 친아들과 훨씬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남성도 아닌 여성인 알렉시아가 본인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명확히 알았던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렉시아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뱅상에게 이야기하려 했으나 뱅상이 듣지 않아 실패하자 알렉시아를 협박한다. 그러나 그 때 사용한 단어는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라며 일방적으로 그를 탓하기 보다는 ‘너 지금 우리 사이에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안 보여? Ce qui ce passe entre nous?’ 라며 둘사이의 관계를 문제시 한다. 이 대사를 통해 그가 알렉시아에게 어떤 위협을 느꼈고,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을 알리려던 그는 뱅상에게 살해되고, 필요가 없어진 그의 자리는 예상처럼 알렉시아로 대체된다. (함께 불을 진압하러 가서 뱅상이 쓰러지자 ‘제 이름이 뭔가요?’라고 묻는 말에 뱅상은 대답하지 못한다. 라이안은 이미 대체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뒤이어 라이안은 ‘그럼 그 여자애 이름은 뭔가요?’라고 시비를 걸었고, 본인의 자리가 사라졌음을 인지한다.)
자궁 회귀와 새로운 아버지 상
출산을 준비하는 장면 또한 매우 신화적이다. 다음에 태어날 아이는 곧 ‘티탄’이며 신이다. 이때 알렉시아는 아버지와 함께 진통을 겪는다. 알렉시아가 고통을 받는 내내 아버지는 배에 불을 붙였고 그와 함께 고통받는다. 곧 태어날 딸 또한 ‘불’이며, 알렉시아와 같은 신적인 존재임을 암시한다.
알렉시아는 출산 장면에 다가갈수록 더욱더 유아퇴행적 면모를 보인다. 영화에서 알렉시아는 두 번 민머리가 되는데, 차사고로 인한 티타늄 수술로 인해 머리를 깎은 것이 그의 첫번째다. 알렉시아는 소방차와 관계를 맺은 뒤 극심한 진통을 느끼고 두려움에 떤다. 변형되고 있는 몸, 마치 괴물이 되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아버지의 방을 찾아 들어가려고 한다. 다양한 작품에서 남성 작가들이 클리셰적으로 사용하는 유아퇴행 모티프와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향수,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그대로 뒤집는 장면이다. 그는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는 도중 액자와 같은 큰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민머리와 민눈썹, 가냘픈 나체의 몸. 사고를 당하고 티탄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의 몸. (C’est un titane.) 이 장면은 알렉시아가 비로소 거울로 마주하는 태초의 나이다. 꾸밈없이 온전한 ‘나의 몸’인 것이다.
나의 본질을 확인한 알렉시아는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간 뒤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아버지의 배를 쓰다듬으며 안정감을 찾는다. 그리곤 사랑한다고 말한 뒤 아버지의 배보다 훨씬 아래를 파고 들어 입을 맞춘다. 나의 태초가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말하는, 그래서 자궁으로 회귀하는 남성 예술가들에 대한 실소이자 전복이다. 나의 본질과 나의 태초는 아버지의 배이며, 곧 아버지의 ‘정소’이다. 티탄을 안고 있는 새 아빠의 모습이 기이한가? 모성성은 죽었고 새시대의 모성성은 새 아버지인 뱅상이 이루어 낼 것이다.
삽입 권력과 Male gaze
어머니에게 성애적 사랑을 느끼고 실패해왔던 오이디푸스들처럼, 알렉시아는 아버지를 성적대상화한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고 해결이 되지 않으면 살인으로 결론지었던 알렉시아의 행동은 매우 유아적이다. 아버지와 자신의 몸을 분리할 줄 몰랐던 그는 아버지와 연결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한다. 첫 장면에서 뒷좌석에 앉은 알렉시아는 계속해서 아버지의 좌석을 발로 찬다. 아버지와 신체적 접촉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아프다고 말하며 조금 더 만져달라고 말한다. 새아버지와는 몸싸움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아버지로 선택하기로 결론 내린다.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알렉시아는 펠러스가 없는 자신의 몸을 인지했고, 곧 ‘비녀’로 자신의 펠러스를 대체한다. 새아버지와의 결투 뒤, 도망가려고 탔던 버스에서 시끌벅적 떠들던 남자들은 앞에 앉은 흑인 여성을 성희롱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디든 구멍만 있으면 돼, 귓구멍이어도 상관없어.’ 안타깝게도 귓구멍은 여성에게만 있지 않다. 알렉시아는 대부분의 살인을 귓구멍에 비녀를 꽂아넣는 방식으로 해왔다. 우연으로 보였던 첫 살인뿐 아니라, 이후에 일어났던 쥐스틴 살해, 우연히 윗층에서 내려오던 남성의 살인 또한 귓구멍을 겨냥했고, 특히 이때는 청각적인 효과로도 정확히 귀가 찢어졌음을 들려주고 있다. 알렉시아는 모든 구멍을 성적대상화해온 그들에게 살해 공포로 되돌려주고 있다. 귓구멍은 공평하다.
Male gaze를 뒤집는 것이 가장 여실히 드러난 장면은 분홍빛의 파티 장면이다. 건장한 신체의 남성들이 계속해서 춤을 추고 성적 매력을 어필한다. 장면에는 슬로우가 걸려있다. 바에 함께 앉아있던 알렉시아와 뱅상 중 뱅상만 일어나 춤을 추는데, 여전히 분홍빛에 느린 움직임으로 대상화 된다. 알렉시아는 바에 가만히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아빠도 바라본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다음의 장면을 상상해보자. 클럽에 어떤 정장입은 남자가 앉아있다. 남자는 가만히 여성들을 쳐다본다. 어두운 조명에 천천히 여성들이 춤을 춘다. 어떤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움직이는 여성을 위아래로 훑으며 바라본다. 여성은 춤을 추고있지만 남성은 술을 홀짝이며 그대로 바에 앉아 쳐다보기만을 수행한다. 화면 속의 여성은 완벽히 대상화된다.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바에서 가만히 앉아 남자들이 춤추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괜찮을까요?
여성에 관한 모든 걸 뒤집는 것에 목적을 둔 이 영화에서 초반의 살육장면은 그렇기에 더욱 영화의 주제와 더욱더 무관하지 않다. 액티비티적인 측면과 삽입 권력에 관한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 여성 살인마를 보지 못했다. 맥락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남성 살인자는 쌔고 쌨지만 여성이 끔찍한 살인을 하는데는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다. 있어야만 했다. 도덕성 없는 여성을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티탄은 모든 사회적 여성성의 정의와 사회적 이미지를 뒤집는다. 밤길에 뒤를 쫓아오는 남성에 대한 공포심도 끔찍한 살해장면으로 전복시킨다. ‘조커(2019)’의 살해장면을 보고 통쾌함과 짜릿함을 느끼고, 즐거워하던 이들에게 알렉시아의 살해장면은 왜 그토록 다른 잣대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알렉시아의 살인은 기존 남성 싸이코패스 살인자 캐릭터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커가 자본주의, 정상 사회의 반항아였다면, 알렉시아는 가부장제의 반항아다.
진짜 마리아, 성녀 창녀 이분법, 그리고 예수 알렉시아
진짜 마리아란 무엇인가, 순수, 순결, 처녀성으로 대표되는 마리아는 실존하는가? 티탄은 현대판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리아는 사실 성을 판매하는 레이싱 모델이라는 사실을 고발한다. (ex.손으로 만지지 말고 눈으로 만지세요) 과도하게 처녀성을 강조하는 마리아의 예수 출산과 달리, 진짜 마리아는 자동차와의 성관계를 통해 임신한 성에 개방적인 (남들의 눈에는 몸파는 여성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일반적으로 차는 여성으로 대상화 된다. (애마, 레이싱걸[이 차를 사는 것이 마치 이 여성을 사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도록]) 가부장제 속 남성들은 자동차를 여성과 동일시했지만, 사실 차를 유혹하는 것은 그 위에서 춤추는 여성이었다. 알렉시아는 차 위에서 춤을 추면 그 차와 꼭 성관계를 맺는데, 이것은 알렉시아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관련이 있다. 알렉시아는 자신의 욕망에 누구보다 솔직한 여성이다. 태양빛과 같은 캐딜락 자동차의 불빛 속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욕망에 충실한 알렉시아가 있다. 수동적으로 태양빛에, 신의 은총을 받아 임신한 성녀 마리아는 당신들의 환상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알렉시아는 스스로가 마리아이며 예수로 묘사된다. 이는 뱅상의 대사로도 알 수 있으며, 그가 가지고 있는 부활(아드리앙, 사고 후 티탄으로의 부활)의 테마로도 증명된다. 차사고 이후 알렉시아가 쓰고 있는 쇠모형의 지지대는 예수의 월계관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는 사실을 감독이 직접 밝힌바 있다. 예수는 신으로 추앙받았지만 마리아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지는 못했다. 이미지로 소비되고 또다른 어머니성을 수행하기 바쁘다. 그러나 알렉시아는 곧 신으로서 신의 출생을 수행한다. 그 자체로 완전하다.
무엇이 여성을 만드는가
알렉시아는 여성이다. 제 3의 성의 모습도, 여성과 남성의 중간에 서있는 사람도 아니다. 알렉시아가 머리를 자르고 눈썹을 밀고 가슴을 가리고 온몸을 가리는 기본값의 옷을 입었기에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냥 머리가 길지 않고 성적대상화 되지 않은 알렉시아의 모습을 여성으로 인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알렉시아는 스스로를 남성으로 규정한 적 없고, 새아버지 뱅상의 호명으로 아드리앙(남성)으로 살았다.
그는 출산하는 장면에 다다라서야, 드디어 껍데기를 벗은 온전한 자신의 모습 태초의 본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드리앙’(남성형 이름)이 아닌, ‘알렉시아’(여성형 이름)라는 것을 밝힌다. 이전부터 네가 누구든 나의 아들이라던 새아버지는 알렉시아가 자신의 몸, 즉 여성의 몸을 보여주자 그것을 부정하고 수건으로 가렸지만, 결국 출산을 하는 장면에서 알렉시아를 ‘알렉시아’, ‘여성’라고 인정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지독히도 여성을 위한 신화이다.
당해보니 어때?
일련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대표되는 메타포들을 그대로 뒤집기만 했음에도 ‘기이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실제로 기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기이한 세상에 살고 있다. 어머니가 대상화되고 어머니를 유아퇴행의 본거지로 삼고, 포궁을 신성화하는 동시에 포궁을 가진 여성들을 혐오한다. 성녀로 추앙받는 마리아는 순수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창녀로 취급받았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는 신격화하면서도 자신과 자주지 않는 여성들은 걸레 취급한다. 여성들은 성녀인 동시에 창녀가 되고, 깨어날 수 없는 가부장제 굴레에 갇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사회적 어머니’가 되기를 수행한다. 알렉시아는 스스로가 예수이자 마리아로, 어머니성을 수행하지 않은 채 모든 죄악을 가지고 죽어버린다. 남겨진 어머니성은 알렉시아의 새 아버지인 뱅상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여성이다. 감독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명백하다.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은 여성이어야 한다. 이제껏 그렇지 않았으니.
오래된 신화일수록, 신화의 원형에 가까울수록, 신화의 주인공은 여성이며, 큰 거인이다. 이것은 모계 사회였던 신석기 시대의 흔적이 반영된 것이다. 제주도의 할망 신화들이 다수 남아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러한 신화들의 주인공이 모두 남성으로 치환된 것, ‘덜 순수한’, 즉, 신화가 각색된 흔적을 가장 쉽게 찾는 것은 비슷한 내용의 신화의 주인공이 남성으로 바뀌었을 때이다. 이는 모계사회에서 가부장제사회로 치환된, 즉 국가가 생기고 남성 통치자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각색이 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이야기를 전파하는 방식으로 신화는 변화해왔다. 현재 남아있는 주류 신화들(ex. 건국 신화)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뜻은 결국 이 사회가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라는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척도이다.
<티탄>은 이 시대의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아이를 잉태한 것도 여성이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도 여성이다. 이 영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작위적이다. 시끄럽게 무늬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처럼 명확하고 명백하게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뒤집어 내놓은 영화는 부재했다. ‘괴물성’이라는 피부를 벗고 점점 내면과 본질, 그리고 태초에 가까워질 때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관객들이 의미부여하지 않고는 영화를 읽어낼 수 없다며 겉멋만 들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영화를 분석할 언어가 없었던 것이며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가부장 중심적 단어에 익숙해져 있는가를 거꾸로 파악할 수 있다.
<티탄>은 여성혐오와 가부장제가 가지고 있는 메커니즘을 도식화하여 뒤집었다. 영화는 티탄의 출생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며 모든 가부장제의 도식을 뒤집어 간다.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반복되어온 여러가지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감명받고, 재생산한다. 그것이 어떠한 근거가 있는지, 의미가 있는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성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여성을 위한 신화이다. 잃어버렸던 우리들의 단어이자 근거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오발탄이라는 말에 정중히 반대한다.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테니.
이 영화는 가부장제의 정중앙을 꿰뚫는 직격포다.
첫댓글 이영화재밌어
저 영화 궁금했는데, 글 잘 읽었어!
미친 해석이네 해석 찾으려고 유튜브 다 뒤져도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