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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586
■ 제2부 장강의 영웅들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31장 오자서(伍子胥)의 비밀 계책 (8)
오왕 요(僚)의 명령에 전제(專諸)는 두 손을 들어 구운 생선으로 가져갔다.
손으로 배를 벌려 어장을 꺼냈다.그런데 그가 끄집어낸 것은 생선의 내장인 어장이 아니었다.
희끗 빛이 번뜩이는 것이 다름 아닌 구야자(歐冶子)가 만든 명검 어장(魚腸)이었다.
그는 구운 생선의 배 속에 어장검을 숨겨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전제(專諸)의 움직임은 무척 빨랐다.
좌우에서 무사들이 창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들이 사태의 진상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것은 오왕 요(僚)도 마찬가지였다.전제(專諸)는 어장검을 손에 쥐자마자 번개보다 빠르게
앞에 앉아 있는 오왕 요의 가슴을 세차게 찔러댔다.오왕 요(僚)는 무쇠 갑옷을 세 겹이나 겹쳐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보통 칼이라면 도저히 그 갑옷을 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칼은 구야자(歐冶子)가 만든 천하 명검 어장이었다. 게다가 용력이 출중한 전제의 힘이 가해졌다.
어장검(魚腸劍)의 칼 끝은 단번에 세 겹 쇠 갑옷을 진흙 헤치듯 뚫고 들어갔다."아악!"
오왕 요(僚)의 긴 비명 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경호 무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았을 때는 오왕 요의 가슴에는 어장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치켜떴다. 반쯤 몸을 일으켰으나 이내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왕 요(僚)의 마지막 모습이었다.좌우 군사들은 지체 없이 달려들어 일제히 칼과 창으로
전제를 찌르고 베었다. 전제(專諸)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의 몸뚱아리는 삽시간에 형태를 잃고 한 무더기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중국에 경극(京劇)이라고 하는 전통 연극이 있는데, 그 경극 중 중국인들이 즐겨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어장검(魚藏劍)' 이라는 제목의 경극이다. 칼 이름 '어장검(魚腸劍)' 과는 '장'자가 다르다.
'어장검(魚藏劍)' 이라 함은 생선 뱃속에 숨긴 칼이라는 뜻이다.
이 경극은 바로 오자서(伍子胥)와 공자 광(光)과 전제(專諸)가 공모하여 오왕 요(僚)를 살해하는 장면을
재현해낸 연극이다. 어쩌면 '어장' 이라는 칼 이름은 훗날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실에 숨어 있던 공자 광(光)은 바깥이 시끄러워지자 대사가 성공했음을 직감하고
일제히 무사들을 내보냈다."왕은 죽었다. 겁낼 것 없다. 모조리 쳐죽여라!"
공자 광의 무사들은 오왕 요(僚)가 죽었다는 말에 기운이 나서 닥치는 대로 궁중 무사들을 베어 죽였다.
이에 반해 궁중 군사들은 기세가 꺾여 달아나기에 급급했다.대문 밖 골목에 숨어 있던 오자서(伍子胥)가
무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달아나는 궁중 군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왕궁으로!"공자 광(光)이 달려나오고 있었다.
오자서는 재빨리 수레를 대령시켜 공자 광을 모시고 궁으로 질주했다.
마침내 공자 광(光)은 문무백관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선포했다.
"요(僚)왕은 전왕의 유지를 어기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바 있다. 그는 오늘에서야 그 죄를 씻었다.
나는 오늘 그의 그러한 죄를 쳤을 뿐, 결코 왕위를 탐하여 일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나는 잠시 이 나라 정사를 섭정하다가 숙부 계찰(季札)이 돌아오시면 전왕인 제번의 유지를 받들어
이 나라를 숙부 계찰에게 돌려드릴 작정이다."
모든 신하들은 아무 소리도 못 한 채 공자 광(光)의 말을 따랐다.모반은 성공했다.
공자 광(光)은 뒷수습에 들어갔다.오왕 요(僚)의 시체를 거두어들이는 한편, 고깃덩어리로 변한
자객 전제(專諸)를 성대히 장사 지내주었다.
그러고는 전제의 아들 전의(專毅)를 불러 대부 벼슬을 내려주었다.
또한 오자서를 발견하여 천거한 인물 감별가 피이(被離)에게도 대부 벼슬을 내렸다.
민심을 수습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공자 광(光)은 우선 오왕 요(僚)가 계승자 자격이 없음을
강조하는 방문을 널리 붙였고, 재물과 곡식을 풀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불안 요소가 많이 남아 있었다. 정, 위 나라로 떠나간
공자 경기(慶忌)가 돌아올 때가 되었으므로 매리(梅里) 주변과 강변의 경비에 만전을 기했다.
한편, 오왕 요의 아들 경기(慶忌)는 정, 위나라로 가 임무를 마친 후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장강을 건너기 직전 아버지가 피살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재빨리 수레를 돌려 달아났다.
장강 연안을 경비하던 장수 하나가 그런 경기(慶忌)를 발견했다.장수는 병차를 몰아 공자 경기의 뒤를
쫓았다. 경기는 사세가 급박해지자 수레를 버리고 산 속으로 달아났다.
그는 오나라 제일의 용사인데다가 달음박질에 능했다. 추격하는 장수는 병차를 타고 쫓았건만
경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멀리서 활을 쏘게 했다.
경기(慶忌)는 칼을 뽑아 날아오는 화살을 일일이 쳐내며 계속 달아났다.
결국 추격하던 장수는 공자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보고를 받은 공자 광(光)은 변경의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얼마 후, 이번에는 진(晉)나라로 떠나갔던 숙부 계찰(季札)이 돌아왔다.
계찰 역시 귀국 도중 오왕 요(僚)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그는 도성에 당도하자마자 그 무덤으로 가
성복(成服)하고 곡(哭)을 했다.계찰(季札)의 귀국은 공자 광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는 직접 오왕 요(僚)의 무덤으로 가 곡(哭)을 하고 있는 계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숙부님께서 이 나라 왕위에 오르십시오. 이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언입니다."
계찰(季札)이 공자 광(光)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네 힘으로 얻은 것을 어찌하여
내게 양보하려 하느냐? 진실로 사직(社稷)의 신을 잘 받들고, 또한 백성들이 왕을 내쫓지 않는 한
왕위에 서는 자가 바로 나의 왕이다."공자 광(光)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궁으로 들어가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그리고 이름을 합려(闔閭)로 고치니, 그가 바로 오왕 합려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시호를 내리지 않고 생전의 호를 그대로 왕호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중원 제후국과
다른 점이다.BC 515년(초소왕 1년, 제경공 33년)의 일이었다.
왕위에 오른 합려(闔閭)는 비로소 오자서(伍子胥)를 조정으로 들여 행인으로 삼고 그와 더불어
국사를 의논하였다. 행인(行人)이란 외무를 담당하는 대신을 말한다. 조정 신하로서보다는
나라의 귀빈(貴賓)으로 예우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나라일에 참여시켰다.
오자서가 국정에 참여하면서부터 오(吳)나라는 부쩍 강성해졌다.
오(吳)나라 현자이자 합려의 숙부 계찰(季札)은 변함 없이 연릉 땅을 다스리며 신하로서의 직분을 다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도성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여러 차례 왕위를 사양하고 끝까지
자신의 절개를 지킨 계찰의 명성은 오나라뿐만 아니라 중원 전역에까지 알려졌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孔子)는 친히 그의 무덤을 찾아와 비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오나라 계자(季子), 연릉 땅에 고이 잠들다.
후세의 사관들 역시 앞다투어 계찰(季札)을 칭송했다.
욕심 많은 자는 이익 때문에 죽나니
조그만 콩을 보아도 얼굴색이 변한다.
춘추시대엔 서로 임금을 죽였으니
골육도 돌보지 않았도다.
그러나 계찰(季札)과 같은 이가 있어
끝까지 왕위를 사양했도다.
요(僚)와 광(光)은 부끄러움을 알까
조상 태백(太伯)이 외면할 지경이다.
그러나 모두가 계찰을 칭송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번 사양에 모든 다툼이 생겨났으니
혼자만이 후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도다.
만일 계찰이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더라면
어찌 오(吳)나라에 비극이 일어났으리오.
애초에 그가 오나라 왕위를 사양했기 때문에 '어장(魚腸)의 비극'이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587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587
-■ 2부 장강의 영웅들 (243)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제 32장 명검(名劍) 이야기 (1)
그 무렵, 초(楚)나라 잠읍(潛邑)으로 쳐들어갔던 엄여(掩餘)와 촉용(燭庸)은 오히려 초군(楚軍) 장수
심윤술(沈尹戌)과 백극완(伯郤宛)의 협공 작전에 휘말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구원병을 요청한 후 목이 빠지게 기다렸으나 본국에서는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안 되겠소. 포위망을 뚫고 퇴각합시다."이렇게 의논하는 중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 요왕(僚王)께서 피살당하고 공자 광(光)이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엄여(掩餘)와 촉용(燭庸)은 대성통곡을 했다.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었다.
왕위에 오른 공자 광이 자신들을 용납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초(楚)나라로 귀화하자니
자기네 말을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촉용(燭庸)이 울음을 그치고 한 가지 안을 내었다.
"여기에 있어봤자 죽는 일만 남았소. 차라리 밤을 이용해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가
천천히 일을 꾸며보는 것이 어떻소?"엄여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방이 온통 초군(楚軍)인데, 이 곳을 벗어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오?""내게 좋은 생각이 있소.
양쪽 영채의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내일 결전을 벌이겠다고 합시다.
그런 후 우리는 나무꾼으로 변장하고 대열을 이탈하면 누구도 우리가 빠져나간 줄을 모를 것이외다."
다른 방도가 없는지라 엄여(掩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 오(吳)나라 군사들은 두 장수가 시키는 대로 군마에게 풀을 배불리 먹이고 병차를 점검하는 등
내일의 결전을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자정이 넘자 엄여(掩餘)와 촉용(燭庸)은 심복 몇 사람과 함께
나무꾼으로 변장한 후 영채에서 달아났다. 엄여는 서(徐)나라로 망명하고, 촉용은 종오(鍾吾)나라로 달아났다.
동쪽 초원으로 해가 솟았다.오군(吳軍)의 양 진영에서는 난리가 났다.
두 장수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었다. 장수를 잃은 오군 병사들은 앞다투어 강으로 가서 서로 배에 올라탔다.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그 틈을 타 초나라 장수 백극완(伯郤宛)이 거느린 수군이 일제히 오군을 공격했다.
오군 병사들은 무수히 많은 죽음을 당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다 포로가 되었다.
초(楚)나라 장수들은 오나라에 반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주장했다.
- 이 기회에 오(吳)나라 도성까지 쳐들어갑시다.그러나 백극완(伯郤宛)은 고개를 저었다.
"오나라가 우리의 국상(國喪)을 이용해 쳐들어온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었소.
그들이 불의한 행동을 했다 하여 우리마저 어찌 의롭지 않은 행동을 취할 수 있으리오."
결국 그는 장수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심윤술과 함께 영성으로 귀환했다.
초소왕(楚昭王)은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백극완을 크게 치하했다.
오군 포로와 전리품을 모두 백극완에게 하사했다. 이후 백극완(伯郤宛)은 초소왕의 신임을 두터이 받았다.
비무극(費無極)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소인배였다.
세자 건(建)도, 오사와 오상도 다 그 때문에 모함을 받고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초소왕이 좌윤 백극완을
신임하고 존경하면서부터 비무극의 마음속에는 시기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백극완(伯郤宛)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예전부터 가까이 지내오던 우윤 언장사(鄢將師)와 계책을 정한 후 영윤 낭와를 찾아가 말했다.
"좌윤 백극완이 말하기를, '오늘 영윤을 위해 우리 집에서 주연을 베풀고 싶은데,
영윤께서 와주실지 어떨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가서 영윤의 뜻을 알아봐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청하기에 제가 찾아왔습니다. 영윤께서는 그가 청하면 가시겠습니까?"
낭와(囊瓦)가 흔쾌히 대답했다."좌윤이 청하는데 내가 아니갈 수 있겠소?"
비무극(費無極)은 또 백극완의 집으로 갔다."영윤께서 말씀하십디다.
'오늘 같은 날 좌윤의 집에서 술이나 한잔 얻어먹었으면 좋겠는데, 좌윤이 과연 나를 위해
술자리를 마련해줄지 의문이오. 그대가 가서 한번 알아봐주시오'
그래서 제가 찾아왔습니다. 좌윤께서는 영윤을 위해 주연을 베풀 의향이 있으신지요?"
백극완(伯郤宛) 또한 아무 의심 없이 승낙했다."영윤께서 우리 집에 오신다는데,
어찌 술 한 상 대접하지 못하겠소이까?"비무극(費無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좌윤께서는 무엇으로써 영윤을 대접하려 하시오?"
"글쎄요. 영윤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소. 그대가 알면 내게 말해주시오."
"영윤께서는 평소 각종 갑옷과 무기를 수집하시는 취미가 있으십니다. 좌윤의 집에는
이번에 왕께서 하사하신 오(吳)나라 전리품들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잘 닦아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구려. 그 중 몇 점은 영윤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지 않겠소?""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저녁 무렵, 비무극(費無極)은 낭와를 데리러 그의 집으로 갔다.
낭와(囊瓦)는 이미 백극완의 집으로 갈 채비를 하고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비무극이 말했다.
"영윤께서는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귀하신 몸입니다. 어찌 함부로 거동하려 하십니까.
제가 먼저 좌윤의 집으로 가서 준비가 다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후에 가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오."비무극(費無極)이 나갔다가 잠시 후에 황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낭와에게 말했다."하마터면 제가 영윤께 큰 죄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오늘 백극완(伯郤宛)이 영윤을 청한 것은 결코 호의에서가 아닌 듯합니다."
"...............?"
"제가 백극완의 집으로 들어가보니 각 방마다 가병들이 앉아 병장기를 열심히 손질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는 필시 영윤을 기습할 계획임에 틀림없습니다. 영윤께서 멋모르고 그냥 가셨더라면
큰일을 당할 뻔하셨습니다."낭와(囊瓦)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좌윤은 나와 친한 사이오. 그가 나를 해칠 리 있소?"비무극(費無極)이 속삭였다.
"사람 마음은 모르는 일입니다. 아마도 백극완(伯郤宛)은 왕의 총애만 믿고 영윤자리를
노리고 있는 듯싶습니다.또 듣자하니 그는 오(吳)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하더이다."
"그건 무슨 말이오?""지난번 우리 군사가 잠읍을 도우러 갔을 때 다른 장수들은 이 참에 오나라 도성까지
쳐들어가자고 주장했는데, 유독 백극완(伯郤宛)만은 반대했답니다. 오나라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그래도 낭와(囊瓦)는 비무극의 말을 믿지 못했다.
좌우 심복들을 불러 명했다."백극완의 집에 가서 은밀히 동정을 살피고 오너라."
백극완의 집으로 갔던 심복 부하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과연 백극완(伯郤宛)의 집에서는 병장기와 갑옷 등을 닦고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집 안이 몹시 살벌했습니다."영윤 낭와(囊瓦)의 눈꼬리가 날카롭게 치켜올라갔다.
그는 백극완의 집으로 가는 대신 우윤 언장사를 불렀다.언장사(鄢將師)는 이미 비무극과 의논을
마친 뒤였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으나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무슨 일이신지요?"
"백극완이 나를 해치려 하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소!"낭와의 호소에 언장사는 한 술 더 떴다.
"영윤께서는 이제야 그걸 아셨는지요? 원래 백극완(伯郤宛)은 아버지 백주리가 초영왕에게 참형당한 후
불만을 품고 양영종(陽令終), 양완(陽完), 양타(陽佗) 등 양씨 일족과 교류하며
초나라 정권을 잡으려 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타국에서 망명해온 놈 자손이 어찌 감히 난을 일으킬 수 있으리오. 내 마땅히 그놈을 참해야겠소."
"분부만 내리시면 제가 달려가 그 일족을 처단하겠습니다."낭와(囊瓦)는 궁으로 들어가 초소왕에게
이 사실을 아뢴 후 언장사에게 토벌의 명을 내렸다. 언장사(鄢將師)는 군사를 거느리고 가
백극완의 집을 포위했다.백극완(伯郤宛)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낭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왕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안색이 돌변했다."내가 반역을 꾀했다고?"
뒤늦게 비무극의 음모를 깨달았으나 이미 사태를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느니
깨끗하게 자결하리라 결심했다.그는 아들 백비(伯嚭)를 불러 명했다.
"너는 더 이상 초(楚)나라에서 살지 마라. 어서 여기서 달아나라!"
백비가 심복 가인을 거느리고 집 안을 빠져나갔다.백극완(伯郤宛)은 벽에 걸려 있는 칼을 뽑아 입에 물고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칼은 목을 뚫고 뒤편까지 삐져나왔다.
비무극(費無極)에 의해 또 한 집안이 결딴이 나는 순간이었다.
58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