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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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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필. 고전 스크랩 비발디 스키장의 추억 / 이시은
풀꽃 추천 0 조회 203 18.01.02 22:2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비발디 스키장의 추억

                                                                              

                                                                                             이시은

나무들도 옷을 벗어 내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만추의 산야들은 띄엄띄엄 퇴색된 나뭇잎을 달고 서 있다. 늦가을 마지막 낙엽을 쏟아놓는 시가지의 나무들 보다 이른 겨울 준비를 하고 알몸으로 추위를 기다린다.

 

홍천 대명비발디 콘도는 어느 때 보다 조용한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대명콘도는 여러 곳에 있으며 시설이 좋아 찾는 사람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곳이 홍천 비발디이다.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고 스파와 스키장. 골프장. 승마장까지 가지고 있어 사철 사랑 받는 곳이다.

 

사계절 중에서도 비발디콘도의 절정은 겨울이다. 콘도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음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리프트와 곤도라에 스키어들이 오르내리고, 새하얀 설원을 가르며 오색 물결로 스키장을 수놓는다. 숙소에서도 스키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역동감이 생생히 전해져 온다. 점점이 유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스키어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낙엽이 지고 스키장을 다듬는 11월 중하순 스키장 개장 전이 가장 한가한 때가 아닌가 한다. 이토록 한가해 보이는 것도 휴식을 취하러 찾은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찬란한 단풍으로 물들어 보는 이를 들뜨게 하던 나무들이, 눈 내리는 겨울을 준비하며 수수한 민낯을 하고 있다. 그 민낯에 새하얀 소복을 입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옷을 벗어 내리는 수고를 하였나 보다.

 

밤새 스키장을 개장하기 위해 눈 뿌리는 작업을 하는 기계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창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잔디 위에 서리가 내린 듯 보이다 대낮에는 잔디색만 보인다. 저렇게 조금씩 인공눈을 덮어 스키장을 개장한다. 새하얀 눈이 흠뻑 쏟아지는 날이면 나무들과 함께 새 옷을 입고 스키어들을 반길 것이다.

 

창을 통해 스키장을 바라보던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막 마흔을 넘긴 때이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혼자 차를 몰고 이곳으로 향했다. 오전 일찍부터 스키를 타기 위해서다. 오전부터 야간까지 스키를 타고, 서둘러 스키를 실고 자동차 엔진을 걸었다. 스키를 타느라고 추운 줄도 몰랐으나,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는 날씨에 눈이 많이 온 탓에 길가에는 눈들이 쌓여 빙판이었다.

 

사방은 깜깜하고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밤, 혼자 산길로 이어지는 빙판길을 달려야만 했다. 가도가도 산길이라 팻말하나 보이지 않고 어둠만 자욱할 뿐이다. 밤 열한 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차 한 대를 볼 수가 없다. 온통 얼음으로 쌓여 있는 길을 달리면서 무서움이 일었다. 자꾸만 북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강원도 산골길 이지만 팻말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이 정도 인가 의구심이 일었다. 불빛만 보이면 내려서 어디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저만치 불빛이 보였다. 구세주를 만난 듯하다. 가까이 가 보니 청평댐을 지나 모곡으로 가는 입구였다. 저절로 후- 하고 숨을 내뱉었다. 양평으로 온다는 것이 길을 잘 못 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갈림길이 없는 곳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경춘가도를 달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2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아린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비발디를 찾을 때 마다 설원을 달리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 밤도 스키장에는 불빛을 받으며 새하얀 눈이 뿌려지고 있을 것이다. 영하를 알리는 기상대의 예보이다. 지금 쯤 슬로프에는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즐거워 할 것이다. 에스자를 그리며 유연한 몸짓으로 하강하는 모습들을 연상해 본다.

스키를 신어보지 않은 지가 오래이다. 스키에 먼지를 털어 내고 신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어느 재벌 총수가 고령의 나이로 스키를 배운다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즐거움만큼 위험 부담이 많은 스키를 신고 달려보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 일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현해 보이는 용기는 어디 갔을까.

 

연일 영하의 기온이 엄습해 오는 날씨다. 따뜻하게 불을 넣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연신 스키를 타던 생각에 사로잡힌다. 할 수 있을 때 보다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그리움이 되나보다. 눈밭에서 스키복을 입고 환히 웃고 있는 사진속의 내 모습이 예뻐 보이는 것은 스키장의 추억 때문인가 보다.

 

 

 

한국문학신문 '이시은의 여유로운 일상'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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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1.03 04:37

    첫댓글 한번 시도해 보셔야 할것 같으네요!
    초보자도 아니시니, 위험부담은 노파심일듯.ㅎㅎㅎ
    올 한해도 변함없는, 카페사랑을 기대 합니다.

  • 작성자 18.01.07 14:25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해야 할듯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8.01.03 13:44

    아직도 청춘입니다...
    올 겨울 홍천 비발디로 고고씽 하심이 좋을듯 합니다...

  • 작성자 18.01.07 14:27

    그럴까요?
    옛날 같은 열정이 없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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