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날새와 함께하는, 2026년 4월 23일, 목요일입니다. 창세기 사십이장, 24절, 25절 말씀에서, '왜 하필 시므온일까?'라는 제목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드립니다.
24절: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앞에서 결박하고
25절: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아멘
제가 어릴 적에는 주로 겨울에 방 안에서 친구들과 아랫목에서 놀다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두 다리를 서로 엇갈리게 펴고는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동서남북"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아가리 딱딱 벌리라" 하고 노래가 끝날 때에, 다리를 딱 치게 되면, 그 다리의 아이는 그 다리는 뒤로 뺍니다. 그리고 노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다가, "아가리 딱딱 벌리라"에서 다리 하나씩을 빼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까지 다리 하나가 남은 친구가 술래가 되어 벌칙을 받게 됩니다. 벌칙이라는 것이 그때그때마다 다릅니다만, 주로 벌칙은 친구들을 대신하여 심부름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우 구덩이에서 무우를 갖고 오기"라든지, "아무개 친구를 같이 놀도록 불러오기"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열명의 형들 중에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아 두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제비뽑아 시므온을 인질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동서남북" 하는 식으로 찍어서 인질로 삼은 것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요셉의 의중에 따라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아 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열 명의 형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요셉이 어련히 알아서 시므온을 결박하여 인질로 삼았겠습니까? 시므온을 인질로 삼을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입니다. 뺑뺑이 돌려 인질로 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시므온은 다혈질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을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시므온에게는 '디나'라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세겜성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때 시므온은 분노하였습니다. 시므온은 바로 밑에 동생인 '레위'와 함께 '디나'를 강간했던, 세겜에게, 여동생을 준다는 조건으로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한 뒤에 남자들의 활동이 어렵게 된 틈을 타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에 들어가서 모든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로 인해 위험에 빠졌다고 이 둘을 질책했습니다. 이런 한 가지를 보더라도 시므온은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며, 일을 먼저 저지르고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전 랍비 문학에서는 시므온은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질투가 많아서 요셉에 대해 강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요셉을 죽여야 한다고 고집했던 것도, 시므온이며, 유다가 요셉을 죽이지 않고 팔아버렸을 때, 시므온은 요셉을 죽이지 않았던 것에 분노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성질의 소유자가 시므온인 것을 요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므온으로 하여금 그 성질을 연단하도록 볼모로 잡았던 것일 것입니다. 요셉이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 가둔 이유 중에 하나를 더 말하라면, 랍비 문헌에 의하면, 시므온이 세겜 추장과 세겜 사람들을 처참하게 복수한 것처럼, 시므온을 레위와 함께 두면, 이번에는 애굽 사람들에게 어떤 복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요셉은 미연에 방지하려고, '시므온과 레위를 함께 두지 않으려고,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 가두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참고만 할 뿐입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셉이가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을 사는 동안 나만 홀로 결박을 당한 것처럼 힘으드십니까? 그러나 기억할 것이 분명 있습니다. 나를 잘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고난 속에 붙잡아 두신 것은 '내 안에 있는 고집과, 내 안에 죽지 못하고 있는 나'라는 자아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꺾으시려고, 우리를 고난이라는 결박을 통해서 낮추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결박 당한것 처럼, 자유롭지 못한 일이 있습니까? 왜 나만 힘들게 사는 것일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알고 보면, 사람마다 하나 둘씩은 결박당한체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결박하심은, 내 안에 고집불통스러운 것을 고치시려고 결박하신 것일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결박하심으로 즉 내가 결박당함으로 더 큰 불행한 일을 하나님이 막으시려고 결박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도록 합시다. 내가 결박을 당했다면 하나님이 잘 아시고 하신 것임으로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묵묵히 낮아지는 가운데, 기다리시면, 곧 그 결박을 풀어 주십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병이 나를 결박하거나, 경제적인 궁핍함이 나를 결박하거나, 가족의 문제가 나를 결박하거나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박인 줄로 믿고, 결박을 풀어 주실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낮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도록 변화 시켜 주시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날새 :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신다.(사 4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