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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韓信)
-한신 인생의 전반부-
회음땅의 가난한 백수 ▶ 표모에게 밥 얻어먹고, 과하지욕을 겪으며 만인에게 찌질이 취급 ▶ 진시황 사후 반진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항량군에 자원 ▶ 찬밥신세, 항량 사후 항우 밑에서도 마찬가지 ▶ 홍문연 이후 유방이 파촉으로 탈출할 때 몰래 합류 ▶ 뜬금없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극적인 자기변호로 하후영에게 깊은 인상을 남김 ▶ 하후영, '설마???...' 하면서 소하에게 한신을 추천 ▶ 소하, '이 새끼다...!!' 싶어서 유방에게 한신 추천 ▶ 유방 "ㄴㄴ" ▶ 떠나는 한신, 소하의 만류로 다시 돌아옴 ▶ 소하, 다시 유방에게 한신을 적극 추천 ▶ 한신, 대장군직 획득
-이후의 기록-
한신에 대한 대장군 임명식을 끝낸 한왕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소승상(소하)을 통해 여러 번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장군은 무슨 계책으로 과인을 깨우쳐 주겠소?"
한신이 사양하는 말을 올리고 오히려 한왕에게 물었다.
"오늘 동쪽의 땅에 대한 패권은 모두 항우의 치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대왕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용감하고, 날래고, 어질고, 굳세기가 항왕과 비교해서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한왕이 대답을 못하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그 보다 못하오."
한신이 자리에 일어나 한왕에게 재배하며 경하의 말을 올리더니 말했다.
"이 한신 역시 대왕께서는 항왕(項王)보다 그런 면에서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옛날 항왕을 섬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왕을 위해 항왕이란 위인에 대해 말씀드겠습니다. 항왕이 한 번 성내어 사자와 같은 목소리로 꾸짖으면 천 사람이 모두 땅에 엎드려 두려워하며 떨지만 능력있는 장수를 믿고 맡기지 못하니 이것은 필부의 용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할 때는 공경하는 마음과 자애로운 태도로 구구하고 부드럽게 대합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음식을 나누어 먹으나, 자기 휘하의 장수가 공을 세워 마땅히 작위를 내려야만 할 때는 그 인장이 모두 달아 헤질 때까지 아까워 차마 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소위 아녀자의 인정일 뿐입니다.
항왕이 비록 천하를 제패하고 제후들을 신하로 거느리고 있지만, 관중에 머무르지 않고 동쪽의 팽성으로 돌아가 지리적인 이점을 취하지 못했고, 또 의제(義帝)와의 약속을 배반했으며 진나라를 멸할 때 제후들의 공의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자기와의 친소(親疎)를 기준으로 분봉했기 때문에 제후들로부터 불평을 사고 있습니다. 항왕이 의제(義帝)를 강남의 벽지에 옮겨 살게 했다가 결국은 도중에 살해한 행위를 본 제후들은, 그들 역시 자기 나라에 돌아가 그 군주들을 쫓아내고는 자기들 임의대로 좋은 지방을 점거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항우가 맹주의 자격을 잃고, 권한이 약해졌다는 뜻
더욱이 항왕의 군대가 지나간 곳은 학살과 도륙을 당하여 살아남은 것이 없게 되어 천하 백성들은 모두가 원망하며 아무도 항우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나, 단지 그의 위세에 눌려 복종하고 있는 체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겉으로는 패자처럼 보이나, 사실은 천하 인심을 잃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대하게 보이는 그의 세력을 쉽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대왕께서 진실된 마음으로 항우가 행한 일과는 반대로, 천하의 무예가 출중하고 용감한 자들에게 맡겨 토벌하게 한다면 어찌 그를 죽이지 못하겠으며, 천하의 성읍으로 공신들을 봉한다면, 어찌 그들을 복종시키지 못하겠습니까? 또한 의로운 군사를 동쪽의 고향으로 진격시킨다면, 어찌 군사들이 흩어지겠습니까? 또한 삼진(三秦)의 왕은 모두 진나라 장수 출신으로, 그들이 진나라 장군으로 몇 년간을 군사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싸움 중에 전사시킨 진나라 자제들의 수효는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더욱이 그나마 남은 군사들을 속여 제후군에게 항복시킨 후에 진나라에 함께 들어가다가 신안(新安)에 이르러 항우의 명으로 20여 만에 달하는 그들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 놓고도 유독 장한(章邯), 사마흔(司馬欣), 동예(董翳) 등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 결과 진나라 부형들은 이 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은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오늘 항우가 그의 위세를 믿고 이 세 사람을 삼진의 왕에 임명했으나 진나라 백성들은 아무도 그들을 믿고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무관(武關)을 통해서 관중으로 진입하실 때, 진나라 백성들에 대해 터럭하나도 건들지 않아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하고 법삼장(法三章)만을 두기로 백성들과 약속하여 진나라 백성들치고 대왕께서 진왕(秦王)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관중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된다는 제후들과의 약속에 따라 당연히 관중의 왕은 대왕이십니다. 이것 또한 진나라 백성들이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항우의 부당한 처사로 관중의 봉지와 왕위를 잃으시고 한중으로 들어오시자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 그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오늘 대왕께서 몸을 일으켜 동쪽으로 나가, 단지 격문을 써서 삼진에 전하기만 해도 그곳은 평정시킬 수 있는 일입니다."
▶▶▶초한대전쟁의 전략을 구상하는 한신
한왕이 한신의 말에 대단히 기뻐하며 자기가 한신을 너무 늦게 만났다고 생각했다. 한왕은 즉시 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제장들을 각 부서에 정하고 군사를 일으켜 관중으로 진격했다. 8월, 한왕이 군사를 일으켜 진창(陳倉)으로 나아가 삼진(三秦)을 평정했다.
한 2년(B.C 205), 한군이 함곡관(函谷關)을 나가 위(魏)와 하남(河南)을 점령했다. 이에 한왕(韓王)과 은왕(殷王)이 모두 항복했다. 제(齊)와 조(趙) 두 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로 진격했다.
▶▶▶한신의 전략을 받아들여 파죽지세로 동진하는 유방
4월에 팽성에 들어갔으나 초군의 반격을 받고 싸움에 패하여 제후군들은 흩어지고 한왕은 서쪽으로 귀환했다. 한신이 패잔병을 수습하여 한왕과 형양(滎陽)에서 만나 초군을 경색(京索)의 땅에서 물리쳤다. 이로써 초나라 군사들은 더 이상 서쪽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팽성대전 이후, 패잔병을 수습하여 초군의 추격을 끊은 한신
안읍의 전투(安邑之戰)
6월 위왕(魏王) 표(豹)가 부모의 병문안을 위해 하동으로 들어가자 즉시 하수를 건너는 관문을 끊더니 한나라에 반기를 들고 초나라에 붙었다. 한왕이 역생(酈生)을 보내 위표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 위표를 기습해 무너뜨리고, 북벌을 준비하는 한신
8월 한왕이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아 위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위왕 표(豹)가 포판(蒲坂)에 수많은 군사를 집결시켜 임진(臨晉)에서 도하(渡河)하려는 한군을 막으려고 했다. 이에 한신은 의병을 더욱 많이 세우고 수많은 배를 도열시켜 임진에서 도하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복병을 빼서 북쪽의 하양(夏陽)으로 돌려 나무구유[목앵(木罌)]를 이용하여 하수를 도하한 다음 안읍을 기습했다. 대경실색한 위왕 표가 군사를 움직여 한신의 군대를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앞뒤에서 협공을 받은 위군은 일거에 무너지고 위왕 표는 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에 한신은 위나라를 평정하고 그 땅에 하동군을 설치했다.
정형의 전투(井陘之戰), 그리고 배수진(背水陣)
한왕이 장이와 한신에게 군사를 주어 둘이 함께 동쪽으로 진격하여 조(趙)와 대(代)를 공격하도록 했다.
9월 한신의 한군이 대군을 격파하고 연여(閼與)에서 그 재상 하열(夏說)을 사로잡았다. 한신이 위나라를 항복시키고 대나라를 파하자 한왕은 즉시 사자를 보내 한신의 군사들 중 정예병들 차출하여 형양으로 데려가 초군을 막도록 했다.
한신과 장이는 수만의 병력으로 동쪽으로 계속 진격하여 정형(井陘)으로 나아가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한신이 한군을 이끌고 조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조왕(趙王)과 성안군(成安君) 진여(陳餘)는 호칭 20만에 달하는 조나라의 전군을 동원하여 정형구로 나아갔다.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성안군에게 말했다.
"제가 들으니 한나라 장수 한신이 서하(西河)를 건너 위왕(魏王) 표(豹)를 사로잡은 다음 계속 진격하여 대(代)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그 재상 하열을 포로로 잡아 연여의 땅을 피로 물들였다고 합니다. 오늘 다시 장이의 보좌를 받은 한신은 조나라를 함락시키려는 계책을 정하고 그 승세를 타고 본국을 떠나 원정길에 나섰으니, 우리 조군은 한나라 군사들의 예봉을 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는, 천 리 밖에서 군량을 운송하여 먹는 군사들은 그 얼굴에 주린 기색을 띄우고, 또한 장작을 패고 풀을 베어 불을 지펴야만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군사들은 항상 굶주려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정형의 길목에 이르러 수레는 움직이지 못하고, 전마는 열을 이루지 못한 채 그 행렬이 수백 리에 뻗치고 있는 한군의 양식은 필시 후방에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 저에게 기병 3만만 맡겨주시면 지름길로 나아가 한군의 치중을 끊어놓겠습니다. 장군께서는 그저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여 진영을 굳게 지켜 한군의 도전에 응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한군은 전면의 우리 조군과 싸우지도 못하고, 또한 퇴각하려고 해도 우리의 기병이 그 뒤를 끊게 되어 한군은 결국 진퇴양난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 정형의 들판은 황무지라 아무 것도 취할 수 없어 10여 일도 못되어 한군은 무너지고 한신과 장이 두 장수의 목을 장군의 막사에 가져다 놓을 수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저의 계책을 유의하여 결정하시기 바라며, 만약 제 계책을 버리신다면 우리는 오히려 한신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될 것입니다."
원래 유자(儒者) 출신의 진여는 군자는 적군을 속이는 계략이나 기묘한 계책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진여가 말했다.
"나는 병법에 아군의 수효가 적군의 10배가 되면 포위하고, 2배가 되면 싸우라고 한 구절을 알고 있소. 오늘 한신의 군사는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하나, 사실은 기 천 명에 불과하오. 천리 길을 달려와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그들은 피로에 지쳐있소. 오늘 우리가 피로한 그들을 피해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후에 진짜로 대군이 조나라를 쳐들어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싸우겠소. 우리들을 비겁하다고 생각한 제후들은 가볍게 보고 침략해 올 것이오."
진여는 결국은 광무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신이 사람을 보내 조나라의 사정을 정탐하게 한 바, 광무군의 계책이 채용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며, 곧바로 군사들을 인솔하고 정형관(井陘關)을 향해 진격했다. 한군은 정형구(井陘口) 30리 밖에서 행군을 멈추고 숙영했다. 이윽고 밤이 되자 한신은 전령을 내보내 경기병 2천 명을 선발하여, 매 군사마다 붉은 색 깃발을 한 개씩을 지참하고 사잇길을 이용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조군의 동태를 살피도록 명령하고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했다.
"조군이 우리 한군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은 모두 자기들 진영을 비워놓고 우리들 뒤를 추격할 것이다. 그 틈을 타서 비호같이 조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그들의 깃발을 뽑아 버리고 우리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세워라."
그리고 그의 비장(裨將)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여 식사를 준비하여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기의 명을 전달했다.
"오늘 조군을 무찌른 다음 연회를 베풀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한신의 부하 장수들은 모두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단지 겉으로만 명령을 받들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다시 한신이 휘하의 군관들에게 말했다.
"조군은 우리보다 먼저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는 보루를 지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부대에 대장기와 북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봉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험악한 지형을 만나면 돌아가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신은 군사들 중 만 명을 선발하여 선봉대로 삼아 정형구로 진격하게 하고 자기는 본대와 함께 물을 등지고 전투대형을 갖추도록 했다. 정형구의 높은 지대의 보루에서 한군의 진영을 멀리서 조망하고 있던 조나라 군사들은 한군이 병법에 무지하다고 하면서 큰 소리로 비웃었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날이 밝아오자 한신은 선발대에게 명하여 대장기와 의장을 꽂고, 북소리를 힘차게 두드리며 정형구를 향해 진군시켰다. 보루의 문을 열고 나온 조군이 한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자 한조 양군은 회전에 들어가 오랫동안 격전을 벌렸다. 그러다가 한신과 장이는 군사들에게 대장기와 의장을 버리고 달아나도록 명하여 배수의 진을 치고 있던 본대로 향해 후퇴하도록 했다. 강가에 주둔하고 있던 본대가 영문을 열고 한신과 장이의 군대를 맞아들였다. 조군이 과연 그들의 보루를 비워놓고 한나라의 대장기와 의장들을 서로 다투어 차지하기 위해 한군의 뒤를 추격했다.
▲ 정형전투도
그러나 한군의 선발대를 맞아들인 강안의 한군 본대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 결사적으로 조군의 공격에 대항했음으로 결코 격파할 수 없었다. 그때 한신이 미리 조군 진지 부근에 매복시켜 놓은 2천 명의 경기병들은 조군이 그들의 진지를 비워놓고 모두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진지 밖으로 출동하자, 그 틈을 타서 신속하게 조군의 보루로 들어가 그들의 기치를 모두 뽑아 버리고 2천 개의 붉은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그때 이미 조군은 한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도 없고, 또한 한신 등의 한나라 장수들을 사로잡을 수도 없게 되어 일단은 자기들 보루로 돌아가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본영에 한나라의 붉은 기가 꽂혀 있는 모습을 본 조군은 조왕과 장수들이 모두 한군의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조군은 혼란에 빠지더니 모두 제각기 대열에서 이탈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나라 장수들이 달아나는 병사들 중 몇 명의 목을 베었지만 결코 막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한군은 앞뒤에서 협공하여 조군을 크게 무찔렀다. 계속해서 달아나던 조군의 뒤를 추격하여 저수(泜水)의 강안에서 성안군 진여의 목을 베고, 조왕 헐(歇)은 사로잡았다.
전투가 끝나자 한신은 군중에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는 영을 내렸다. 그리고 그를 사로잡아 오는 자가 있다면 천금의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윽고 일단의 군사들이 광무군을 묶어 대장군 막사로 끌고 왔다. 광무군의 포박을 풀어 상석을 권한 한신이 서로 마주 앉아 가르침을 청했다.
여러 장수들이 전투 중에 얻은 적군의 수급과 노획물을 바치며 승리를 축하하고는 한신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병법에 '오른쪽으로는 산이나 구릉을 뒤로 등지고 왼쪽으로는 강이나 호수를 앞으로 임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장군께서는 저희들에게 병법의 가르침과는 달리 배수진을 치라 명하시면서 말씀하기를 조나라 군사들을 무찌르고 배불리 먹자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마음속으로 수긍하지 않다가 결국은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배수진의 병법도 병서에 나와 있소. 단지 장군들이 깨닫지 못해서일 뿐이오. 병법에 이런 말이 있지 않소? '사지(死地)에 빠뜨려야만 살게 할 수 있고, 망지(亡地)에 두어야만 일어서게 할 수 있다.'라고. 우리 한군의 군사들은 평소에 훈련을 받은 사대부 출신이 아니라 시장바닥의 사람들을 끌어 모은 오합지중이니, 그들 각각을 스스로를 위해 힘껏 싸우게 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을 준다면, 그들은 모두 도망치기 바빴을 것이오. 그런 군사들은 사지가 아니면 결코 싸움에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오."
여러 장수들은 탄복하며 말했다.
"정말로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은 도저히 장군의 생각에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이좌거를 얻어 조(趙)를 안정시키고, 연(燕)을 항복시키다.
한신은 광무군 이좌거를 불러 물었다.
"소장이 연나라를 공격한 다음, 다시 동쪽으로 나아가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는데, 어찌하면 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광무군이 감사의 말과 함께 사양하며 말했다.
"저는 '패군지장은 용기를 말하지 않으며, 망국의 대부는 국가의 흥망을 논하지 않는다.'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패군지장에 망국 대부의 처지이온데 어찌 망녕되게 천하의 일에 대해 논할 수 있겠습니까?"
"백리해(百里奚)가 우(虞)나라에 있을 때는 우나라가 망했지만 진(秦)나라에 있었을 때, 진나라는 패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었고, 진나라에 있을 때는 지혜로웠다는 말이 아니라 '백리해가 쓰임을 당했느냐? 당하지 않았느냐?,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느냐? (받아들여지지)아니었느냐?'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안군 진여가 만일 선생의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아마도 이 한신이 거꾸로 선생의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선생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 한신이 선생을 곁에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생께서는 사양하지 마시고 고견을 들려주시어 이 한신을 깨우쳐 주십시오."
"'지혜있는 사람도 천 번의 생각에 한 번의 잘못된 일이 반드시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의 잘못된 생각에 반드시 한 번의 옳은 생각을 할 수 있다.'라고 저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미친 사람의 말이라도 성인들은 귀를 기울여 듣고 합당하다고 여기면 취하곤 했습니다. 단지 제가 걱정하는 바는 나의 생각이 충분치 못하여 장군을 만족시킬 수 없을까 걱정해서입니다. 그래도 어리석으나마 성의를 다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래 성안군 진여는 백전백승(百戰百勝)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단 한 번의 실수로 그의 군사는 호성(鄗城)에서 패하고 그의 몸은 저수(泜水) 강안에서 죽었습니다. 오늘 장군께서는 서하에서 하수를 건너 위왕 표(豹)를 사로잡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연여를 피로 물들이며 대나라의 상국 하열을 포로로 삼았습니다. 계속 진격하여 일거에 정형의 관문을 떨어뜨리고 오전도 미처 다 가기 전에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그 대장 성안군 진여를 죽였습니다. 장군의 이름은 해내에 멀리 퍼지고, 그 위세는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이에 병화가 머지않아 자기 몸에 이르리라고 생각한 농부들은 농기구를 손에 놓아 밭 갈기를 멈추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언제나 동원령이 내릴지를 알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세는 장군에게는 매우 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백성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군사들은 피로에 지쳐있어 사실은 전투에 동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군께서 피로에 지친 군사들을 다시 일으켜 연나라로 진격하여 그 견고한 도성 밑에 진을 치고 비록 싸우려고 하신다 할지라도 장시간의 공격에도 그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한군의 피폐한 실상만 드러나고, 군대의 기세는 꺾이어 결국은 시일만 오래 끌게 되어 군량미만 다하게 될 것입니다.
허약한 연나라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제나라는 필시 국경의 경비를 강화하여 전력을 다해 한군에 대항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연(燕)과 제(齊)는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며 서로 양쪽에서 버티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써 한(漢)과 초(楚)의 싸움은 승부가 분명하게 되지 않고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면 천하의 정세는 장군에게 불리하게 변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소인은 연제(燕齊) 두 나라를 공격하려는 장군의 계획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고로 용병에 능한 자는 자기의 단점으로 상대방의 장점을 공격하지 않으며, 자기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공격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의 상황 하에서 장군을 위해 계책을 올린다면, 무기를 정비하며 군사를 휴식시키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나라 땅을 진무하고 그 전쟁고아들을 거두어 백성들을 마음을 안심시키십시오. 사방 백리의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매일 소고기와 좋은 술을 보내 장수들과 사졸들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들의 머리를 연나라가 있는 북쪽으로 돌리게 한 후에 변사(辯士) 한 사람에게 간단한 편지 한 통을 들려 사자로 보내 장군이 이끄는 한군의 위세를 연나라에 시위하게 하십니다. 연나라가 어찌 감히 장군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연나라가 장군에게 이미 복종하게 되면, 또 다른 변사 한 사람을 사자로 삼아 동쪽의 제나라에 보내 그 일을 알리십시오. 제나라 역시 그 위세에 눌려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제나라에 지혜있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때는 이미 제나라를 위해 아무런 계책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을 행하신다면, 천하의 일을 모두 장군이 마음먹은 대로 도모할 수 있습니다. 병법에 '소리를 내어 먼저 허장성세를 이루고, 후에 실제 행동에 들어가라.'한 구절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신이 광무군의 계책이 매우 훌륭하다고 말하고 그의 말을 쫓아 연나라에 사자를 보내자, 연나라는 바람에 쓰러지는 풀잎처럼 모두 한나라에 항복했다. 곧바로 한왕에게 사자를 보내 조와 연 두 나라를 점령한 일을 고하고, 장이를 조왕으로 세워 조나라를 안정시키라고 상주했다. 한왕이 허락하자 한신은 장이를 조왕으로 세웠다.
But....
공을 탐내 제나라를 기습해 역이기의 목숨을 잃게 하다.
▲ 중드 '초한전기' 에서의 역이기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 제나라의 평원(平原)으로 진격하기 위해 하수를 미처 건너기 전에 한왕이 역이기(酈食其)를 사자로 보내 유세로써 제나라를 항복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신이 제나라로의 진격을 멈추려고 했다. 그때 범양(范陽)의 변사 *괴통(蒯通)이 한신에게 말했다.
"장군이 한왕의 조칙을 받아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는데, 한왕은 장군에게 통고도 하지 않고 밀사를 보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장군에게 공격을 중지하라는 조칙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슨 이유로 진격을 멈추려고 하십니까? 다른 한편 일개 서생에 불과한 역이기 한 사람이 편안히 수레를 타고 가서 제나라의 70여 개 성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장군께서는 수만의 군졸을 거느리고 일 년여의 긴 시간 동안 고작 조나라 50여 개의 성의 항복을 받았을 뿐입니다. 장군이 되신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는데 그 세운 공이 한낱 일개 서생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괴통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계책을 쫓아 하수를 건넜다. 그때 제나라는 이미 역이기의 유세에 설복되어 한나라에 항복하기로 하고 제군의 진영에 머무르게 한 역이기를 위해 주연을 마련하여 서로 마시며 한군에 대한 방어태세를 풀고 있었다. 이에 한신은 역하(歷下)에 주둔하고 있던 제군을 기습하고 패주하는 적의 뒤를 추격하여 임치에 이르렀다. 제왕 전광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그를 삶아 죽이고 고밀(高密)로 달아나면서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임치에 입성하여 백성들을 위무한 한신은 계속해서 전광의 뒤를 추격하여 고밀에 이르렀다. 초나라 역시 용저(龍且)를 대장으로 삼아 호칭 20만의 군사를 주어 제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 괴통의 본명은 괴철(蒯徹)입니다. 사기가 쓰여질 당시, 한 무제의 본명인 유철(劉徹)의 '철(徹)' 자가 겹쳐 '통(通)' 자로 피휘한 것입니다.
제나라 원정과 유수의 전투(濰水之戰)
제나라의 전광과 초장 용저가 휘하의 군사들을 합하여 한신의 한군과 교전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먼 길을 원정해 온 한군은 전투에 임하면 있는 힘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그 예봉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자기들의 땅에서 싸우는 제와 초 두 나라 군사들은 쉽게 패하고 흩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루를 높이 세워 굳게 지키며 한편으로는 제왕을 시켜 한군에게 항복한 제나라 성읍에 믿을만한 신하들을 사자로 보내 그들을 돌아오게 하십시오. 항복한 성들이 그들의 왕이 살아있고, 게다가 초나라의 구원병이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필시 한나라에 반하여 우리에게 투항해 올 것입니다. 2천 리 밖에 근거지가 있는 한나라 군사들은 그 후방의 제나라 성들이 모두 반기를 들게 된다면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은 아무 데에서도 구할 수 없게 되어 자연히 싸우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용저가 듣고 말했다.
"나는 평소에 한신이라는 위인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와의 싸움은 매우 쉬운 일이다. 이 용저가 제나라를 구원하려고 왔으면서 싸우지도 않고 그들을 항복시킨다면 어찌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 싸움은 우리가 이기게 될 것이고 그때는 제나라 땅의 반은 수복하게 된다. 어찌 싸우기를 멈춘단 말인가?"
▶ 만용을 부리는 용저... 아저씨, 이쯤에서 그만 하세요...
용저는 즉시 교전에 들어가기로 하고, 유수(濰水)를 사이에 두고 한군과 대치했다. 한신은 곧 야음을 틈타 군사들에게 명하여 만 개의 부대를 만들어 그 안에 모래를 가득 채우게 한 후에 강의 상류 쪽으로 가서 물길을 막게 했다. 그리고는 군사를 이끌고 용저의 초군을 공격하기 위해 강을 반쯤 건너다 일부러 싸움에 패하여 자기 진지로 달아는 척 했다. 용저가 과연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나는 원래 한신이라는 위인이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저씨, 제발 그만하시라니깐요...
용저는 한신의 한군 뒤를 추격하기 위해 유수의 강심으로 그 군사들을 들여보냈다. 이에 한신이 사람을 보내 상류 쪽에 모래부대로 막아 놨던 제방을 터뜨리게 하자 큰물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용저의 군사들 중 절반 이상은 미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살에 떠내려갔다. 한신이 그 틈을 이용하여 남은 용저의 군대에 맹공을 가해 용저를 잡아 살해했다. 용저가 죽자 유수의 동쪽에 남아 있던 초군은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제왕 전광도 도망치는 방법 외는 다른 수가 없었다. 한군이 남쪽으로 도망가는 제초(齊楚) 연합군 뒤를 추격하여 성양(城陽)에 이르렀을 때는 초나라 군사들은 모두 한군의 포로가 되었다.
한왕 4년(B.C 203년), 한신은 제나라의 모든 성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그 땅을 평정했다.
이후 한신은 제왕(齊王)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서는데...
괴철의 천하삼분지계: 홀로 설 것인가? 충성을 다할 것인가?
▲ 중드 '초한전기' 에서의 괴철
제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한 용저가 싸움 중에 죽고 20만에 달하는 초군이 전멸하자, 항왕은 이를 매우 두려워하여 우태(盱胎) 사람 무섭(武涉)을 제나라로 보내 한신에게 유세하도록 했다. 무섭이 한신을 만나 말했다.
"천하 백성들이 진나라의 가혹한 법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오다가, 마침내 들고일어나 서로 힘을 합쳐 진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중략)
오늘 장군께서 한왕과 비록 두터운 친교가 있어 그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용병을 하지만 결국은 그에게 배신당해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장군께서 지금까지나마 살아 계실 수 있는 이유는 항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왕과 항왕 두 왕의 일은 모두 장군의 수중에 있게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오른손을 들면 한왕이 이기게 되고, 왼손을 들면 항왕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항왕이 오늘 망하게 되면 장군은 다음 날 망하게 됩니다. 게다가 장군은 옛날 항왕을 모신 적이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한왕의 휘하에서 떠나 초왕과 연합하여 천하를 삼분하여 왕이 되려고 하시지 않으십니까? 오늘 이와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스스로 한왕의 편에 서서 초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행위는 슬기로운 사람이 취할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신이 무섭의 제안을 거절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 항왕을 모실 때는, 관직은 낭중에 불과했고, 하는 일은 극(戟)을 들고 항왕의 신변이나 지켰습니다. 간언을 올려도 귀를 기우려주지 않았고, 계책을 내어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나라를 등지고 한나라에 귀의했습니다. 그런 나를 한왕은 나를 상장군에 임명하고 그 인장과 함께 수만 명의 군사를 주었습니다. 또한 나를 대하기를 자기의 옷을 벗어 나를 입혀주고, 자기의 식사를 같이 나누어먹게 했습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려주고 나의 계책을 채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무릇 다른 사람이 나를 친하게 대하며 신임하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을 배반함은 상서롭지 못한 일입니다. 내가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내 마음을 바꾸지 못하겠습니다. 이 한신을 위해 항왕에게 거절하는 말을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섭이 돌아가자 제나라 사람 괴통(蒯通)이 천하의 향방이 한신의 수중에 있음을 알고 와서 계책을 내어 그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그는 관상으로써 한신을 설득하려고 했다.
"제가 옛날에 관상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선생은 어떠한 방법으로 관상을 보십니까?"
"사람의 귀천은 골상에 달려있고, 근심과 걱정은 얼굴에 있습니다. 또한 일의 성패는 그 사람의 결단에 달려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마음속에 새겨 일을 행한다면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좋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관상은 어떠합니까?"
"잠시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쳐 주시기 바랍니다."
한신이 좌우를 물리치자 괴통이 말했다.
"장군의 면상을 보니 단지 제후의 상에 불과하며, 그것도 매우 위태로워 불안합니다. 그러나 장군의 뒷상을 보니 그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천하에 처음으로 일어나 어지러워졌을 때, 영웅호걸들이 제각기 명분을 내걸고 한 번 소리치니 천하의 재사들이 구름과 같이 몰려들어 물고기 비늘처럼 서로 뒤섞이더니, 들불처럼 번지는 화염과 같이, 일진광풍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일어났습니다.
당시 선비들의 관심사는 단지 진나라의 멸망뿐이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초와 한이 나뉘어 다툼으로써, 천하의 죄 없는 백성들은 그들의 간과 쓸개가 땅에 깔리게 되었고, 황량한 교외의 들판에 나뒹굴고 있는 아비와 자식의 해골은 그 수효가 많아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초나라가 팽성에서 일어나 사방의 적을 쫓아다니다 그 패주하는 적의 뒤를 따라 형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승세를 탄 초군이 천하를 석권하며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초군도 경(京)과 색(索) 사이에서 한군의 반격으로 기세가 꺾이고 성고의 서쪽에 있는 험악한 산세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지가 이미 3년이 되었습니다. 한왕은 몇 십만이나 되는 인마를 이끌고 공현(鞏縣)과 낙양(洛陽) 일대에서 초군의 서진을 막고, 그곳의 험준한 산과 강의 요충지에 의지하여 초군의 공격에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한왕은 그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싸움을 치렀음에도 지금까지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패전만 계속하다가 외부로부터 구원도 받지 못하고 결국은 형양과 성고의 싸움에서 타격을 입고 완(宛)과 엽(葉)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소위 지혜는 바닥이 나고 용기는 다하게 된 경우입니다.
군대의 사기는 험준한 요새에서 꺾이고 창고의 양식은 다 떨어졌으며 백성들은 고통과 피로에 지쳐 그 원성은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 민심은 동요되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제 소견으로는 이러한 형세는 천하의 성현일지라도 그 화란을 그치게 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결국 한왕과 초왕 두 왕들의 운명은 모두 장군의 손안에 달려있게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한왕에게 협조하면 한왕이 승리하고, 초왕에게 협조하면 초왕이 승리합니다. 이에 제 속마음을 피력하여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리고자 하오나 단지 걱정되는 점은 장군께서 제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진실로 능히 장군께서 저의 계책을 받아들이신다면 한과 초 두 나라에 이익을 주어 모두 존속케 하고, 천하를 삼분하여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어 아무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된다면 장군의 뛰어난 능력과 성스러운 덕성으로 수많은 무기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부강한 제나라를 근거지로 삼고, 연과 조 두 나라를 복종시키고 유(劉)와 항(項)의 군대가 없는 땅으로 나아가 그들의 후방을 압박한다면, 그것은 바로 백성들의 마음에 순응하는 일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서쪽의 형양성 쪽으로 진격하여 유(劉)와 항(項)의 분쟁을 중지시켜 군사들과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보전시키라고 요구한다면, 천하 사람들은 바람처럼 달려와 메아리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장군의 명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큰 나라는 쪼개지고, 강한 나라는 약하게 되어 제후들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이에 제후들이 일단 서게 된다면, 천하는 장군이 베푼 덕에 감격하여 제나라의 명을 받들며 귀의할 것입니다. 이에 제나라의 옛 땅을 안정시키고 교하(膠河)와 사수(泗水) 유역을 근거지로 하면서 덕을 베풀어 감동시킨 제후들을 소집해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하면서 겸양의 자세로 자신을 낮춘다면 천하의 제후왕들과 그 재상들은 줄을 서가며 제나라에 들어와 조배를 드릴 것입니다. 저는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후에 벌을 받고, 때가 왔을 때 행동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라고 들었습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한신이 대답했다.
"한왕은 나를 만나 매우 후하게 대접했고, 그의 수레에 같이 태워줬으며, 그가 입은 옷을 벗어 나에게 입히고, 그가 먹던 음식을 나누어 먹게 했습니다. 내가 듣기에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 사람의 걱정을 제 몸에 실어야 하고, 남의 옷을 얻어 입은 자는 그 마음속에 그 사람의 우환을 품어야 하며, 남의 음식을 얻어먹은 자는 그 사람의 일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찌 이익을 탐해 의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스스로 한왕과 친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만세에 길이 빛나는 공을 세우려고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크게 잘못 생각하시고 있습니다.
(중략)
원컨대 장군께서는 심사숙고하시어 일을 그르치지 마십시오. 제가 듣기에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나 그 주군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협감을 느끼게 하는 자는 위태롭고, 그 공이 천하를 덮을 정도로 크게 되면 상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소인이 청컨대 지금까지 장군이 이룬 공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중략)
계속해서 초나라가 보낸 20만 대군을 무찔러 그 대장 용저를 죽이고 서쪽의 한왕에게 그 승리를 고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높은 공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높은 공을 세울 자는 세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장군께서는 그와같이 높은 공으로 주군되는 사람을 떨게 하고, 상도 받지 못할 정도로 너무 큰공을 세운 상태에서 초나라에 붙으면 초왕도 역시 장군을 믿지 않게 되고, 그렇지 않고 계속 한나라에 남아 있게 된다면 한왕은 장군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너무 큰공을 세워 그 주군되는 사람이 두려워할 정도의 위엄을 가지고 계시는 장군께서는 어디로 가셔야 안전하게 되겠습니까? 무릇 남의 신하된 자의 지위가 그 주인되는 사람을 떨게 하고, 그 이름이 천하에 높게 되었으니,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장군의 장래가 위험하다고 말씀립니다."
한신이 괴통에게 사례의 말을 올리며 말했다.
"선생은 잠시 쉬고 계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한신으로부터 아무런 말을 듣지 못한 괴통은 다시 한신을 찾아가 말했다.
"무릇 '남의 선의를 구별해서 능히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의 변화하는 징조를 미리 예견할 수 있고, 능히 일을 심사숙고해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관건을 장악할 수 있다.' 했습니다.
또한 남의 의견을 비록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 계책을 성사시키지 못한 사람이 오랫동안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경우도 실제로는 그다지 흔치 않습니다. 남의 말을 취함으로 해서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비록 어떤 사람이 그럴듯한 말로 꾀려 해도 혼란해 하지 않으며, 계략을 세움에 있어 본말을 잃지 않은 사람은, 비록 어떤 사람이 교묘한 말로써 유혹하려고 해도, 결코 어지럽게 되지 않습니다.
무릇 장작이나 패고, 말이나 기르는 일과 같은 천역에 종사하기를 즐겨하는 자는, 만승지국의 왕이 갖게 되는 권력을 차지할 수 없으며, 한 두 섬의 봉록을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은 공경이나 재상의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을 도모하기 위해 행하는 결단은 지혜있는 자로서의 과단성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으며,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행동은 일을 도모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 터럭과 같이 작은 일에나 미주알고주알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대세를 놓치기 쉽고, 설사 그 대세를 알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다하더라도, 결단하여 과감하게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고로 말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맹호는 하찮은 미물인 벌이나 전갈이 끼치는 해에도 미치지 못하며, 비록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라 할지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천천히 걷는 노마(駑馬)보다 못합니다. 또한 *맹분(孟賁)과 같은 천하장사도 일을 하는데 머뭇거린다면 일을 결행하는 필부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으며, 비록 순임금이나 우임금과 같은 지혜가 있는 자라 할지라도 입을 열지 않고 다물고만 있으면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벙어리나 귀머거리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어떤 일을 능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공을 이루기는 어렵고 실패하기는 쉽다고 했습니다. 또한 때는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좋은 때는 일단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 맹분(孟賁): 《제왕세설(帝王世说)》에서 '장사를 좋아하던 진무왕(秦武王)의 호위무사로, 제나라 출신의 역사다. 산 소의 뿔을 뽑았다.'고 전한다.
▷▷ 그러나 한신은 주저하며 결국은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하고 또한 자기가 세운 공이 크기 때문에 한나라는 결코 자기로부터 제나라를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괴통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괴통은 한신이 자기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사람이 되어 무당이 되었다.
해하의 결전(垓下之戰)
한왕 5년(B.C 202년), 한왕과 제후들은 일제히 초군을 향해 진격하여 해하에서 항우와 결전을 벌렸다.
제왕 한신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초군과 정면으로 대진했고, 그의 부장 공장군(孔將軍)은 좌익을, 비장군(費將軍) 우익을 맡았다. 한왕은 한신의 후위를, 강후 주발(周勃), 시장군(柴將軍)은 한왕의 배후에 주둔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케 했다. 한신의 본대가 먼저 초군과 회전에 들어갔으나 전세가 불리하자 뒤로 후퇴했다. 그 틈을 타서 공장군과 비장군의 좌익과 우익이 초군의 양 측면을 공격했다. 이에 초군의 전세가 불리해졌다. 그틈을 타서 후퇴를 하던 한신의 본대가 반격을 가함으로 해서 초군은 대패했다. 한나라 군사들이 사방에서 부르는 초가가 들려오자 항우는 초나라의 모든 땅은 이미 한나라가 점령한 것으로 알았다. 이윽고 항우가 싸움에서 지고 달아나 초나라의 전군은 궤멸되고 말았다. 한왕의 명을 받은 기병대장 관영은 항우의 뒤를 쫓아가 동성(東城)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한군은 이 싸움으로 항우의 군사 8만의 목을 베고 초나라의 땅을 모두 공략했다.
초한전이 끝난 뒤 한신은 제왕(齊王)에서 초왕(楚王)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하는데...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달리던 사냥개는 삶아진다.(狡兎死 走狗烹)
항우의 부하 장수 종리매(鍾離昧)의 집은 이려(伊廬)로써 평소에 한신과 친하게 지냈었다. 항우가 죽자 종리매는 한신을 찾아와 몸을 숨겼다. 원래 종리매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한왕은 그가 초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서를 보내 종리매를 붙잡아 압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한신은 초왕이 된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관하의 성읍을 순행나갈 때는 군사들을 이끌고 다녔었다.
한왕 6년(B.C 201년), 어떤 사람이 상소를 올려 한신이 반란을 획책하려 한다고 고했다. 진평(陳平)의 계책에 따른 고제(高帝)는 천자가 순수(巡狩)하게 되면 제후들이 모여 맞이해야 한다는 전례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남방의 운몽(雲夢)으로 순수를 나간다고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모두 진현(陳縣)에 모여 자기를 알현하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내가 운몽으로 순수를 나가 사냥을 즐기려 하노라!"
그러나 실은 한신을 사로잡기 위한 계책이었으나 한신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 고조가 이윽고 초나라에 당도하자, 그때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한신은 처음에는 군사를 일으켜 한나라에 반기를 들려고 했다. 그러나 지은 죄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한신은 고조를 알현하여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조에게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를 걱정했다. 어떤 사람이 한신에게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베어 바치면 황제는 필시 기뻐하며 죄를 묻지 않을 것입니다."
한신이 종리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자 종리매가 말했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 종리매가 공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기 때문이오. 만약 나를 잡아 한나라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면 나는 지금 즉시 이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소. 그러나 내가 죽게 되면 공도 곧 나의 뒤를 따라 목숨을 잃게 될 것이오."
곧이어 종리매가 한신을 꾸짖었다.
"너같은 자가 어찌 장자라고 하겠는가?"
이윽고 종리매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이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진현으로 가서 고조를 알현했다. 고조가 무사에게 명하며 한신을 포박하고 뒷 수레에 싣도록 했다. 한신이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달리던 사냥개는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떨어지니 좋은 활은 창고에 묻히며, 적국을 멸망시키니 모신은 목숨을 잃는구나!(狡兎死 走狗烹, 高鳥盡 良弓藏, 敵國破 謀臣亡)' 천하가 이미 정해지니 나는 팽(烹) 당하는 신세가 되었구나!"
고조가 듣고 말했다.
"공이 나라에 반기를 든다는 고변이 있었소."
고조가 말을 마치고 좌우에 명해 한신에게 차꼬와 수갑을 채우도록 했다. 이윽고 낙양에 당도한 고조는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淮陰侯)에 봉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황제가 어느 날 마음을 열고 한신과 함께 장수들의 능력에 관해 고하와 장단점에 대해 논했었다. 고조가 물었다.
"내가 만일 장군으로 출전한다면 그 재능이 몇 명의 군사들을 거느릴 수 있겠소?"
"폐하께서는 10만 정도의 군사라면 아무 무리 없이 통솔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렇다면 공은 몇 명이나 거느릴 수 있소?"
"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고조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공은 나에게 포로로 잡힌 것이오?"
"폐하께서는 비록 군사를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은 부족하시지만, 그 군사들을 잘 통솔할 수 있는 장군들을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폐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물며 폐하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성야소하 패야소하(成也蕭何 敗也蕭何)
한신은 야밤에 가신과 거사 계획을 모의하여 조서를 가짜로 꾸며 각 관부에 복역하는 여러 범죄자와 노예들의 죄를 사면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이끌고 여후(呂后)와 태자를 공격하려고 했다. 각 부서를 정한 한신은 진희로부터 소식을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그의 사인 중 한 사람이 죄를 저지르자 한신이 그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했다. 그 사인의 동생이 도망쳐 한신이 모반하려 한다고 고변하자 대신들이 한신의 반란을 여후에게 고했다. 여후가 한신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혹시 응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상국 소하에게 계책을 물었다. 소하로부터 계책을 얻은 여후는 거짓으로 고조가 보낸 사자로 꾸미게 한 후에 한신에게 보내 전하게 했다.
"진희가 잡혀 이미 사형을 당했습니다. 여러 제후들과 신하들이 모두 모여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상국(相國) 소하도 한신을 속여 말하게 했다.
"비록 병중이라고는 하지만 억지로라도 들어와 축하연에 참석해야 할 것이오."
한신이 궁안으로 들어가자 여후가 무사를 시켜 포박케 한 다음 장락궁(長樂宮)의 종실(鍾室)에서 목을 베도록 하였다. 한신이 참수 당하려는 순간, 소리쳐 말했다.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참으로 원통하구나! 내가 한낱 아녀자에게 속임을 당해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어서 여후는 한신의 삼족을 멸했다.
-한신의 최후-
출처 : 사마천 『사기』 「회음후열전」 「고조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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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토사구팽좌...
정독함ㄷ
감사합니다.ㅎㅎ
와 넘길다 집가거든 봐야지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한신 못생기고 마르고 볼품없게 생긴가 아니었나
평민시절 행동거지가 단정하지 않았다고만 하지, 외모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요 ㅎㅎ...
@서초패왕 항우 제가 읽었던 책 찾아보니 항량이 한신의 용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깡말랐다는 말밖에 없었는데 ㅋㅋㅋ 잘못생각하고있었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