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역대 최고 더위를 갱신한 해이다. 온도 상승인한 식생이 변해가고, 바다에는 참치가 빈번히 잡힌다고 한다. 한류성인 명태와 대구는 러시아 인근 해역에만 맴돌뿐, 강원인근 동해로는 더이상 내려오지 않는다. 오랜 빙하기를 거쳐, 본격적인 간빙기로 들어선 지구의 자연기후 변화에 더해, 인류가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열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및 각종 가스들과 먼지로 지구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열에너지로 가득 찬듯 하다. 초과된 에너지는 순리되로 소멸을 할 것이나, 그 소멸의 과정이 필시 큰 기후변화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슬쩍 걱정도 해본다.
서두가 길었다. 이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아무튼 올해는 너무 더웠고, 그 더위가 아직도 이어지는지, 최근 11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반팔로 등산하는 날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장난이 아니게 춥다. 강변역에 도착하니, 멀지 않은 곳에서 멋진 누군가가 손을 흔든다. 누구지? 찰라에 사계님과 하늘비님을 알아챈다. 버스터미널 대합실이 문을 닫아서, 오지버스가 오는 시간동안 추위속에서 대기하는 것 보다, 지하철역에서 따뜻이, 이야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깝고. ....
조금 모자란 9명을 태운오지버스는 동서울에서 경북(남?)영천까지 쉼없이 내달린다. 잔잔한 진동이 온몸을 간지럽히고, 특히 코털을 간지럽혀 자다 깨다 반복한다. 오늘 따라 유독 오지버스의 공기도 차갑다.
아침 잠이 많은 나로서는 대간거사님의 "기상!, 불켜주세요!" 이 두마디는 너무 무거운 말이다. 학창시절 5분이라도 더 누워 있으려고 얼마나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던지. 오지 활동 초창기에는, 가끔 무박산행 중 1부 오전 산행을 참여하지 않은 적이 있었으나, 최근 오지산행은 한번 오르면 끝날때 까지 내려오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가야한다. 그리고 같이 남아줄만한 팀원도 없고.
어느날 부터 렌턴 스위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아뿔사 그날이 와 버렸다. 이렇게 해보아도, 저렇게 해 보아도 렌턴은 반응이 없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 팀원들은 버스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거의 마친 상황인데, 나는 아직 버스에서 우왕자왕한다. 예전 다올님이 여분으로 쓰라며 주신 렌턴이 배낭 깊숙이 있다는 것이 생각이나 뒤져보니 불빛이 반짝인다. 출장과 술자리로 흐느적 거리는 몸을 이끌고 오지로 향한다.
차가운 새벽공기는 실로 상쾌하다. 새벽 하늘에 별들은 차가운 공기로 인해 더욱 선명하고, 한증 더 밝게 반짝인다. 후드 짚업 모자 뒤집어 쓰고, 지리한 콘크리트 포장도로 오른다. 다들 아시듯, 등산에서 포장도로 오르막이 제일 힘들다. 인대 끊어진 이후, 처음으로 보호대를 벗은 새끼 손가락은 차가운 날씨로 인해 땡땡하다. 무딘감각으로 인해 내 손가락인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 산행시작의 초입에 들어선 후, 나름 희미한 길자국이 있는 곳으로 오른다. 경북의 기룡지맥이라는데, 600m 에서 960m 사이의 봉우리를 오르막 내리막으로 자양호 북쪽에 있는 능선을 원으로 한바뀌 도는 산행이다. 등산 시작 후 첫 능선 바로 밑에서, 오뎅을 끓인다. 나는 포장마차에서 파는 꼬치 오뎅을 가져오고, 신가이버대장님은 어묵탕을 가지고 왔다. 많은 양이지만, 각자 배낭을 빨리 덜어내고 싶은지, 다 끓인다. 단연 포장마차 오뎅 인기가 짱이다. 진짜 포장마차 오뎅이다. 국물도 진하다. 오뎅꼬챙이 하나씩들고, 오뎅 맛과 어묵탕을 평가한다. 올 한해 내도록 다른 팀원들이 준비해준 도시락을 얻어 먹으며, 오지 거지로 지냈으나, 이제 겨울을 맞아 당당히 오뎅도 끓이고, 라면도 끓이니 제법 개방 당주의 체면이 살아난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다고 한다. 오늘 기룡산은 영하 5도, 이곳 629 봉은 영하 1도다. 바람이 불때면 아랫도리 후들거릴 정도로 떨린다. 오른쪽 멀리부터 붉은 기운이 어른거린다. 오늘의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떠오르는 해를 뒤로 하고, 우리는 북진한다. 나는 경북 영천에 이렇게 경상남북도의 산들을 바라 볼수 있는 아름다운 능선이 있는지 몰랐다. 오모님께서 그은 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대간거사님이 저기 비슬산, 팔공산, 보현산 등등 인근 산들을 설명해 주셨지만, 멀리서 본 산들은 이름이 무엇이라도 그저 아름답다. 특히 이렇게 적당한 습기와 찬 공기가 만난 날에는 더욱더.
오늘 줄은 오모님이 그었다. 추월산 구간은 너무 짧아 무박산행으로 적절치 않아서, 경북 영천 자양호를 기점으로 기룡산을 중간 포인트로 두고 한바뀌 도는 산행을 기획하였다는데, 그것이 없다. 전혀. 이날 오모님은 계속 생명에 위협을 느꼈던지, 홀로 이리 저리 사면을 누비다가, 가끔 나타나곤했다. 누구도 탓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조망이 너무 좋으니까. 하지만 이 아쉬움은 어떻하리!
기룡산에서. 오전 11시에 벌써 오늘 산행의 60%가 진행되어 버렸다. 필시 없는 것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기에, 미련없이 쭉 쭉 산행을 진행한 결과이다. 끓이고 먹고 웃고 떠든다. 그러는 사이 등산객 한분이 인사하신다. 대구 월배에서 오셨고, 3000개 봉우리를 오르고 있는 72세 청년이시다. 고향이 보성이고, 마침 모닥불님 인근 동네 분이란다. 동네분들끼리 이런 저런 틀에 박힌 이야기가 오고가고, 3000개 봉우리를 찍는 사진 실력으로 우리팀을 찍어 주신다. 그런데 중앙이 조금 안맞다. 내려가면 민물매운탕이 유명한 집이 있으니 거기서 식사하라고 조언하시고는 홀연히 작별하신다. 이 한마디가 오늘의 저녁 메뉴가 결정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의 최고봉인 기룡산 961m 를 기점으로, 천천히 하산한다. 오늘은 왠지 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그것이 없어서. 어떠한 열망도 흥도, 그리고 하산후의 기대도 없어서일까? 차분히 조망만 감상한다. 나는 여신 오른 쪽, 왼 쪽, 뒤 쪽 뒤돌아 보며, 벌써 아쉬워진 산행을 계속한다. 이제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는 꼬깔산으로 향한다.
꼬깔산에서 긴급회의를 한다. 지금 내려가면 2시 30분. 보현산 인근으로 가서, 다시 한번 불을 붙여 그것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일찍 목욕하고, 돌아와 성곡매운탕에서 민물매운탕을 먹을지. 나는 둘다 싫다. 이 시간에 다시 오르막 올라, 거시기 찾고 내려 오려면, 렌턴이 하나 더 필요할 것이고. 다음주 월요일 일찍 비행기를 타야하는 나로서는 너무 큰 모험이다. 또 일찍 내려가서 민물매운탕을 저녁으로 먹기는 더 절망스럽다. 하지만 대구 월배 등산객의 한마디에, 팀원들의 머리는 온통 매운탕으로 파도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조용히 포기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늘비님도 민물매운탕은 드시지 않았다.
올라야만 볼수 있는 풍광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아름답다. 맨눈의 이 아름다움은 어떠한 영상으로도 비할 수 없다. 우리는 이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정확히 3시에 하산하여, 중간에 어디로 내려간 해피님을 찾아, 영천 신영에서 목욕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저녁은 올라가는 길에 문경에서 하기로한다. 문경은 내륙이라 필시 매운탕은 아닐것이라. 오호 희망시 샘솟는다. 하지만 매운탕에 이리 홀려 버린 오지팀은 문경에 있는 최고의 매운탕집을 찾아 내는 수고를 해 낸다. 5시 30분 문경새재 인근에 있는 진남매운탕에서 식사한다. 직접 담근 오미자 막걸리가 일품이다. 나는 잘 모르나, 다들 민물잡어매운탕의 맛이 가희 최고라고 한다. 다른 팀원분들도 민물매운탕을 좋아하시면 여기 진남매운탕을 들러 보시기를.
24년 11월 23일 겨울의 초입에서 경북 최고의 조망산행. 기룡지맥 자양호 인근 산 오지산행이었습니다.
첫댓글 영촌?
경북의 웅장한 산세가 보기 좋습니다.
하늘비 님의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보고 싶게 만듭니다.
영천입니다. 경북의 3대 시골로 영촌. 점촌. 김촌 이라고 영천을 놀리는 경상도 조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