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2. 큐티
마태복음 5:13 ~ 20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관찰 :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너희가 세상이 소금이 되어야 한다가 아닙니다. 이미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이미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그 짠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려져서 사람에게 밟히는 존재가 될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세상의 소금이 된 자는 그 맛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너희가 세상의 빛이 좀 되어줄래? 이것이 아닙니다. 이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빛이 되었으면 그 존재를 숨길 수 없게 됩니다. 이유는 세상이 어둡기 때문이고 빛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은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은 사람 앞에 비추어져서 그들에게 빛이 된 자들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15절.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빛은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을 켜서 숨기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행위입니다. 높은 곳에 두어 방과 집 안 모든 곳을 비치게 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빛을 비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에 합당한 언행심사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착한 행실이고, 착한 행실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신 이유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너무나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3)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시다.
-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19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구약의 어떤 말씀, 어떤 계명도 버리고, 그렇게 버리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크다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4)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절망스러운 말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누구입니까? 의로운 삶을 위해 작정하고 살아가는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일주일 중에 매번 금식을 하고, 더러운 것은 만지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유전을 만들어 지키며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행위만을 가지고 의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내면에서부터의 의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율법의 완성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느껴도 마음으로 음욕과 탐심으로 보면 그것이 간음이요 살인이요 도적질이라는 것입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중심을 볼 수 없기에 그런 것까지 다루지 못하고 그저 행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절망스럽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에 들어오시는 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작이고,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성령의 소욕을 좇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른 태도인 것입니다. 성령님이 마음에 내주하십니다. 그렇기에 성령님이 충만하시고, 술 취하듯 성령에 취해 나의 삶의 control을 성령께서 주관하시게 될 때 참된 율법의 완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자신감이 있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토록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나는 소금입니다. 이미 소금된 존재입니다. 주님은 다른 대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소금이 내리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금으로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이 소금되지 못하여 용도 폐기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 나는 빛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이미 빛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이 되어서 그 행실이 빛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름을 알리고 보이고 자신들의 행실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빛이 그렇게 드러나지 않으면 사실은 이미 빛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빛입니다. 그래서 딜레마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빛이라 하시는데, 정작 빛이 자신을 빛으로 여기지 않음이 안타깝고 한심한 것입니다.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을 포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한 것입니다.
3) 주님은 우리도 율법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에서도 모든 율법을 완성시키신 주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계십니다. 왜 이런 자신감이 있으실까요? 왜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부담을 주시는 것일까요? 보혜사가 오실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나를 죽여 이 율법의 높은 요구를 다 채우는 성도가 나올 것을 아시고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 그런 이들이 존재했고, 그러한 영향력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강력한 생명력으로 이제까지 존재해서 내려온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4) 율법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으려면 마음으로부터 율법을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세심한 것 하나하나를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주하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감당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적용 :
1)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삶은 주님이 주시는 크고 놀라운 기회입니다. 이 땅에서 소금으로, 빛으로 살지 못하면 하늘나라의 삶이 감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소금으로 살고 빛으로 사는 것이 올 세대인 새 예루살렘 성에서의 삶을 연습하는 것임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소금처럼 녹아야 할 것입니다. 빛처럼 나를 태워야 할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소금도 빛도 없는 것입니다. 그 본질이 그러한 가치를 함유하고 있다할지라도 그 가치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를 녹이고 불사르겠습니다. 시간을 물질을 생각을 나 개인을 위해서보다 타인을 위해서 드리는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2) 성령의 충만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성취하는 비결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될 것입니다. 나 자신의 이성과 노력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나의 노력은 뻔합니다. 그것은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주님이 채워주시는 은혜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입니다.
3) 아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매우 위독한 상황입니다. 주님의 긍휼을 참으로 구하고 또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