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대변인도 이례적으로 르브론의 컴백에 대해서 고향의 중요성을 일깨운 아름다운 장면이었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3.
미국민의 정서나 오하이오주의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100프로 이해하기 힘든 한국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조금 낯설거나 이해가 안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냥 비지니스로 결정한 거 아니야?",
"마이애미가 못할 거 같으니 다시 반지 찾으러 떠난건데 무슨 감동이야?" 등의 반응 말입니다.
심지어 어떤 인터넷 기자는 "기회주의적 행동의 극치"라며 거의 저주에 가까운 기사를 올렸던데, 미국의 정서와는 180도 다른 기사라 그 글을 읽으면서도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분들을 설득할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이곳 오하이오주의 정서는 소개해드릴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4.
클리블랜드를 포함한 이곳 오하이오주 북동부는 미국에서도 조금 불쌍한 동네 취급을 받는 곳입니다.
옆의 미시간이나 펜실베니아 사이에 껴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목소리도 못 냈고,
그렇다고 아예 시골동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도시도 아닌, 뭔가 특색이 없는 곳 입니다.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내의 제조업들이 몰락하면서 가장 큰 직격타를 맞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곳 오하이오는 (스스로 자신들을 칭하길) 한마디로 뭐 하나 별볼일 없는 동네로서,
우리들은 Loser(패배자)라는 자조적 정서가 주민들의 마음속에 깔려있는 곳입니다.
5.
그런데,
그나마 스포츠라도 잘했으면 이곳 오하이오 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줬겟지만... 스포츠 쪽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잘아시다시피 클리블랜드 지역은 1948년 MLB 인디언스 우승 후,
지난 약 60년간 4대 스포츠 통틀어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지역입니다.
물론 미국이 워낙 땅이 넓다보니,
클리블랜드 말고도 오랫동안 우승 하지 못한 미국 내 다른 지역들도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그리고 북동부 오하이오주의 스포츠는 단순히 못한게 문제가 아닙니다.
(불쌍하게) 못하고 (병신같이) 못하고 (바보같이) 못해서 문제인 겁니다.
6.
클리블랜드는 항상 패배자였습니다.
구단주나 선수에게 팬들이 배신당하거나,
스포츠역사에 길이남을 극적인 명장면(물론 당연히 당하는 쪽이 클리블랜드)의 조연이거나,
아니면 최다연패 신기록같은 일로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역할이었습니다.
7.
이해를 돕기위해,
제가 기억나는 클리블랜드의 흑역사들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① 1987년 NFL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the DRIVE" 사건
AFC 챔피언십 결정전, 종료 5분전 클리블랜드가 덴버에게 리드 중.
클리블랜드의 약 20년만의 슈퍼보울진출이 유력함.
그러나 그 마지막 5분동안 덴버 존얼웨이의 말도 안되는 플레이가 나오며 역전패.
NFL 역사상 가장 극적인 역전승. (NBA로 치면 티맥타임이 동부컨퍼런스 결승 7차전에서 나온 격)
② 1988년 NFL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the FUMBLE" 사건
AFC 챔피언십 결정전 클리블랜드와 덴버의 리턴매치.
종료 1분전 덴버진영 8야드 앞. 클리블랜드가 결정적인 역전찬스를 맞이함.
그러나 클리블랜드 러닝백 공을 펌블하며 결국 패배...
(NBA로 치면 1점차로 뒤진 종료직전, 자유투 세개를 얻었는데 세개 다 실패한 격)
③ 1989년 NBA 마이클조던의 "the SHOT"
NBA팬들에겐 너무 유명한 장면이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④ 1996년 NFL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구단주의 배신 "the MOVE"
1996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구단주가 독단적으로 구단을 볼티모어로 이전해버림.
무려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팀이 하루아침에 연고지가 없어져 버림....
구단주에게 배신당한 당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를 조롱하는 기사
⑤ 1997년 MLB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the BLOWN"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 평가받으며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결승 7차전 9회말까지 2대1로 앞서며, 우승을 눈 앞에 두던 클리블랜드.
그러나 그때까지 잘던지던 호세메사가 블로운 세이브하며 결국 역전패...
8.
르브론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클리블랜드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뭘 해도 안돼" "결국 우리가 질텐데 뭘" "괜히 기대했다가 힘 빼지 말자"
좀 더 이해하시기 쉽게 한국의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한국프로야구팀 중에는 LG TWINS를 좋아합니다.
지난 10년 가까이 플레이오프를 못가다보니 LG팬들은 스스로를 자조하고 조롱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어느 팀 팬보다도 자신의 팀을 사랑하고 열정적이죠.
항상 LG를 욕하면서도 매년 관중동원은 1,2위를 다툽니다.
클리블랜드는 이런 LG TWINS 팬들의 정서에, (과장 안하고) 곱하기 100쯤 하면 비슷하다고 할까요?
9.
르브론은 오하이오주에 태어나, 자랐고,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오하이오주의 아들이었습니다.
맨날 당하기만 하고,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이곳 클리블랜드에서 르브론은 구세주이자 최고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르브론이 등장한 이후, 전 미국의 조롱거리였던 클리블랜드는, 적어도 NBA에서만큼은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가 된 것 입니다.
더군다가 (오하이오주민 입장에서는 매우 고맙게도),
르브론은 미국의 스포츠스타 중 최고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애향심을 각별하게 드러냈던 선수였습니다.
인터뷰마다 자신의 고향 Akron을 강조하였고,
그 누구보다도 지역봉사나 지역참여활동에 적극적인 선수였고,
자신과 오하이오의 관계에 있어 항상 충성심(loyalty)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러니 클리블랜드, 오하이오주민들이 르브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10.
그런데 그런 르브론이 "the DECISION"이라는 전국방송을 통해서,
클리블랜드를 다시 전 미국의 조롱거리로 만들고 떠났습니다.
그러니 오하이오 주민들이 느낀 배신감의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겠죠.
11.
그리고 "the DECISION" 사건 4년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때..
클리블랜드의 영원한 배신자일 줄 알았던 르브론이 한통의 편지와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르브론의 행선지가 결정된 지금은,
마치 르브론의 컴백이 매우 잘짜여진 각본에 의한 계산된 행동이었다거나 기회주의적이었다는 등의 비판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곳 오하이오 현지에서,
그런식의 비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르브론의 컴백은 아무도 예상 못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괜히 기대했다가 상처받을까봐 처음부터 그냥 기대조차 안했다는 게 더욱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항상 배신과 좌절, 조롱당함이 몸에 배어있는게 이곳 클리블랜드의 정서니까요.
그런데 그런 고향에 대해 르브론이 용서를 구하고,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고향에서 뼈를 묻겠다는 바람을 밝히니 클리블랜드팬들이 감동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것이,
클리블랜드와 오하이오의 슬픈 과거를 아는 미국인들이 이번 르브론의 고향 컴백에 대해 호의적인 칭찬을 보내는 이유입니다.
13.
물론 이곳 현지에서도 르브론의 고향 컴백이 비지니스적인 판단없이,
순수한 고향사랑만으로 계획된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사랑없이 오로지 비지니스적 이유때문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습니다.
@wilsontimsev 거의 성스러운 존재고, 플옵 가면 도시 전체가 스퍼스로 뒤덮입니다. 미군 부대가 워낙에 큰데다가 옥수수 같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농촌 도시입니다.
좋은글잘봤습니다^^
만약에 르브론이 한 번 더 클블을 버린다면 정말 큰 일이 나겠군요.
릅론이 남은 커리어를 모두 클블에서 보내고 팀에게 우승을 1회이상 선사한다면 르브론은 다른 선수들 못지 않은 클블의 프렌차이즈가 될 수 있겠네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더디씨젼이란 행위 자체가 위 글과 대척점에 있는 선택이기 때문에 앞으로 르브론이 클블에게 어떠한 충성심을 보이느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르브론도 30줄인데... 유럽에서 유능함을 검증받았다고는 하지만 느바 첫 입성하는 감독과 플옵경험도 없는 유망주들 속에서, 다시말해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코트환경에서 뭘 어떻할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욕심버리고 지켜보렵니다.
선수본인이 속죄와 도전을 선택했는데 지지해야겠죠.
저도 오하이오에서 10년 가까이 산 사람으로써 100% 공감입니다. 속이 다 시원하군요.
이런 여러가지 사건들뿐만 아니라, 뭔가 좀 우울하고 가라앉은 도시 분위기가 더 스포츠에 열광하는 일조를 한다고 봅니다.
르브론의 컴백은 한국인들이 그냥 겉으로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확실히 뭔가 더 큰 의미가 클리블랜드 밑 북동쪽 오하이오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글이 참.. 따뜻하고 좋네요.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저는 더 디시젼때도 클블팬들이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나 좀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그것도 이해가 되는것 같고.. 이번 복귀도 더 흥미롭네요 다음시즌이 기대됩니다
와 이런 사연이 있군요 문화적 배경을 모른 채 성급했던 제 모습을 되돌아 봅니다
이래서 알럽이 좋다니까요~~ 훌륭한글 감사합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혹시 이 덧글이 논란이 될까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습니다만,
현지팬분에게 한 가지 사실관계상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미 르브론이 디시전 쇼 당시(와 적어도 비슷한 시기)에
'사실 난 클리블랜드라는 지역 자체가 싫었다. 왜냐면 난 정확히는 이웃동네인 애크론 출신이고 큰동네인 클리블랜드가 우리 무리를 무시해서
아직 거기에는 싫어하는 자들이 많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이번의 이적관련 서로 모순되는 당사자들의 반응과 정황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솔직히 난해합니다.
다음은 당시 본카페에 게시됐던 원본글입니다..
http://cafe.daum.net/ilovenba/7n/210695
그래서 르브론이 복귀하자마자 빌 시먼스가 올린 칼람의 제목이 God Loves Cleveland 였죠.
르브론이 클블가서 어떤모습을 보여주는지에따라 달라질것같네요!!!
와.읽고나니까 좀 이해가 가네요
안좋게 보시는준들은 뭐 계속 그렇겠지만
저 처럼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뀐분도 있을듯 싶네요
추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전 브롱이의 오랜팬으로써...히트시절보단 솔직히 캐브스 시절이 더 좋았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걸수도...) 물론 히트에서 우승은 축하하지만...캐브스에서도 2회정도 더 우승해서 지역팬들을 더 기쁘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와..처음 알았어요 진짜 생각이 많이 달라지네요
감동적인 글이다, 훌륭한 PR이다는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마이애미로 갈 때에 비해 훨씬 성숙한 자세죠.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옵니다.
르브론이 그동안 애크런을 향한 사랑과 충성은 계속 표현했지만 클리블랜드를 향한 그런 감정을 표현한적 있었나 모르겠네요.
앞으로 르브론이 행동으로 그걸 보여줬으면 합니다
단적인 예로, 르브론은 이번에 클리블랜드와 1+1 계약을 했습니다.
2017 시즌 부터 새 전국방송 중계 계약이 시작돼 샐러리캡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측되니
그 때 더 높은 금액으로 재계약 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2년 계약을 하지 왜 1+1 계약을 한걸까요?
저에게는 1년 뛰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가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까지 르브론의 행동들은 그의 말이나 글과는 달라 보입니다.
그러니, 행동으로 보여달라는겁니다.
만약 1년하다가 나가버림 르브론은 세상에서 묻힐겁니다 저 역시 팬에서 안티로 변할거구요
@muzzle 맞는 말씀입니다. loyalty에 대해 말하는건 쉽지만 지속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는건 힘들죠. 르브론에 대해 기회주의자라고 성급히 낙인찍는것에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르브론의 충성심에 대해 칭찬하는 것도 좀 그렇죠. "클리블랜드 이적 자체가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도 있지만 지금 캐브스는 상당한 supporting cast를 구축한 팀입니다. 우승에 실패할때는 사라졌다가 우승가능성이 올라가니까 다시 생기는 충성심에 대해서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르브론의 충성심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의 달렸다고 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7.14 03:26
훌륭한 PR 그냥 디시젼 쇼보다는 성숙했네라고 느꼈습니다.
2년에 플레이어 옵션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적어도 기회주의 기사보다는 좋은 글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와 군대를 다녀오기 위해 한국에 다시 오셨었나보네요?? 구리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영화 드래프트 데이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라 아~~ 하게 되네요 클리브랜드 경제상황이나 브로더스 이야기가 영화초반부에 잘표현되있습니다 ㅎㅎ 영화보고 이글 다시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듯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저 포함 많은 분들이 얘기해왔던 일이죠. 다만 그런 말만 꺼내면 마이애미 팬분들의 독설, 야유, 조롱이 이어지기 십상이라 말하기가 어려웠지만요.
전 르브론의 컴백이 위에 쓰신대로 앞으로의 우승 가능성, 그리고 고향이라는 점. 이 두 가지 이유가 반반쯤 섞여서 내려진 결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지역적 배경이 있었군요.
예전에 야구 영화인 메이저리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팀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간 이유가 다 있었군요....
좋은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