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행
십이월 둘째 토요일이다. 주말이면 즐겨 가는 산행이나 산책은 마음을 비워야했다. 고향 초등학교 동기가 아들 예식을 올려서다. 어쩌다 부음은 주말과 상관없이 접하기에 그때그때 문상을 다녀온다. 예식장 걸음은 꼭 주말인지라 그곳으로 가면 하루가 통째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선 식장을 찾지 않고 축의는 마음만 간접으로 전한 경우가 많다. 집안 조카정도는 예외다.
지난달엔 내 자리 맞은편 처녀가 예식을 올려 식장을 다녀왔다. 그곳도 내 기준으로는 마음만 전해야 하는 경우에 해당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아니라도 일반 하객은 많으리라 예상되었다. 그러나 재직 학교 동료가 너무 적어서도 안 되겠다 싶어서였다. 신부는 기간제 교사였기에 담임을 비롯한 동료 하객이 적을 듯했다. 이태 동안 같은 부서 동료였기에 기꺼이 식장으로 나갔다.
고향 친구는 군청 기능직으로 재직하다 올여름 정년을 맞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적 대부분 형제자매가 여럿인데 이 친구는 외동으로 여형제도 없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 할머니와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친구의 숙부가 일본에서 상당한 재력가였기에 성장기 생활은 여유가 있었다. 지난 가을 야유회에서 만났더니 친구는 아들 혼사를 언급하며 하객 자리를 채워달라고 했다.
친구 사돈댁이 양산인지 그곳에서 예식이 있었다. 고향의 몇몇 지인들은 전세버스 한 대로 식장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마산과 창원에 사는 친구들은 승용차로 가기도 하고 고향 한 친구가 승합차를 몰아 창원의 친구들을 태워간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 산행을 나서면 새벽같이 길을 나섰으나 승합차를 몰아올 시간에 맞추어 느긋하게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역전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고향의 다른 친구가 마산창원 친구들을 위해 승합차 운전대를 잡았다. 두 달 전 단양 야유회에서 얼굴을 본 친구들을 태워 동마산 톨게이트로 올랐다. 동창원을 지날 무렵 앞좌석 남학생이 혼주가 챙겨주었다는 안주와 술을 꺼냈다. 아침나절이고 좁은 차 안인데도 소주에다 수육을 안주를 들며 밀린 안부가 오갔다. 하객 친구들은 집안 대소사를 잠시 잊고 야유회를 나온 기분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술도 잘하고 입담이 좋은데 안전 운행의 막중한 책무로 얌전했다. 짧은 이동거리임에서도 진영휴게소에 들렸다. 나는 구석 자리라 차 안에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화장실을 다녀왔다. 남학생 한 친구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올라왔다. 그 친구 왈, 여자화장실 앞에서 한동안 서 있는 행복을 누렸단다. 여자 친구가 손가방을 들고 있으라고 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나.
마산에서 휴게소 정차를 포함해 한 시간 반 남짓 걸려 양산에 닿았다. 나는 양산 시가지 골목까지는 잘 몰라도 경주 친구 농장을 가는 길에 시외버스를 타면 둘렀다가 가는 곳이라 어느 정도 지형지물이 익숙했다. 예식장은 부산 지하철 2호선 양산역에서 가까웠다. 예식장 빌딩 근처에 이르니 고향에서 전세버스로 온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났다. 그 속엔 정년퇴직한 면장도 있었다.
예식장은 몹시 혼잡하지는 않아도 양가 하객들이 많았다. 고향 친구가 우리들의 참석을 독려함은 어쩌면 엄살이었다. 아들 혼사를 핑계로 연말도 다가오니 초등학교 친구들을 송년회 겸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음 마음이 보태진 듯했다. 부산과 김해에 사는 남녀 동기들도 더러 나타났다. 정한 시각 예식이 진행되어 우리들은 좌석이 꽉 차 뒤에서 서고 로비에서도 환담을 나누었다.
고향 친구들은 자제 혼사 후 다른 하객과 같이 뷔페로 가질 않음이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초등학교 동기들만 별도로 빠져나와 횟집이나 갈비식당을 찾아 들었다. 거기서 모닥모닥 마주 앉아 잔을 채우고 비우면사 세상 사는 애기들을 나누었다. 양산은 모두들 초행길이라 지역사정에 밝지 않았다. 마침 한 친구가 예식장에서 멀지 않은 조개탕집을 찾아내 그곳에서 두어 시간 보냈다. 17.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