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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산을 그리다(5)-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
115. 해산도첩(海山圖帖), 장안사(長安寺)
김하종(金夏鐘), 1793~1879 이후), 조선 1816년, 29면 첩,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각 27.2×41.8cm
1816년 김하종이 춘천부사인 이광문(李光文, 1778~1838)과 함께 금강산과 관동일대 및 설
악산을 유람하고 제작한 화첩이다.
김하종은 정조(재위 1776~1800)대에 활약한 도화서 화원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셋째 아들이며, 그의 형인 김건종(金建鍾, 1781~1841) 역시 화원이었다. 또한 1788년 김홍
도와 함께 금강산 봉명사경을 한 김응환(金應煥, 1742~1789)은 김하종의 작은 할아버지이다.
그림의 소재와 화풍 면에서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영향이 남아있지만 전체적으로 김
하종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그는 빠른 필선으로 바위나 암벽, 산 등의 윤곽선을 그리면서 각
경물의 지질학적 특성을 살렸다. 또한 먹선의 농담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여 근경과 원경의 공
간감을 살렸고 운무 등을 적절히 표현하며 전통적인 대기원근법을 구사했다.(오다연)
이광문(李光文, 1778~1838)의 김하종에 대한 평이다.
“김하종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종이를 펴서 그림을 그렸는데 비슷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바꾸어 다시 그렸다. 그가 붓 놀리는 것을 보면 먼저 형태를 본뜨려 하였고 높고 낮음(高低),
멀고 가까움(遠近), 깊고 얕음(深淺), 짙고 옅음(濃淡)으로 그 모습을 곡진하게 다 그려냈다.
산 하나 있어 뼈를 드러낸 채 有山露骨
바위가 깎아 세운 듯 우뚝 솟았나니 嶄嵒突兀
그 이름 바로 금강이로세 名金剛兮
패서에도 기록되었듯이 貝書所著
보살이 머물러 설법하는 곳 菩薩住處
(……)
장안이라 이름 붙인 불교 사원은 長安精舍
산 아래 기슭에 자리를 잡은 居山之下
불도들의 커다란 도량 大道場兮
―― 가정 이곡(稼亭 李穀, 1298~1351), 「금강산의 장안사를 중건한 비문(金剛山長安寺
重興碑)」에서
116. 해산도첩(海山圖帖), 명경대(明鏡臺)
사방 절벽이 모두 다 천 길이라 四壁俱千仞
높은 대에 겨우 한번 올라본다 高臺聊一攀
맑은 못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머금었고 澄潭含旭日
남은 아지랑이 가을 산에 흩어지네 餘靄散秋山
옛 성곽엔 인가(人家)의 연기 끊어지고 古郭人煙斷
낭떠러지엔 조도(鳥道)가 빙 둘렀네 懸崖鳥道環
영원암(靈源菴)이 응당 멀지 않으리니 靈源應未遠
한가로이 걸어 구름 낀 관문으로 들어가리라 閒步入雲關
――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 「명경대(明鏡臺)」
117. 해산도첩(海山圖帖), 헐성루망전면전경(歇惺樓望前面全景)
비 뒤에 높은 누대에서 바라보니 雨後高樓望
수많은 봉우리 무엇과 비슷한가 羣峰何所似
우뚝하게 솟은 새하얀 부용꽃이 亭亭白芙蓉
가을 계곡물에 씻겨서 나왔구나 洗出秋潭水
―― 삼산재 김이안(三山齋 金履安, 1722~1791), 「비온 뒤 헐성루에 오르다(雨後登歇惺樓)」
118. 해산도첩(海山圖帖), 보덕암(普德庵)
옥빛으로 흐르는 햇살 산사에 비끼고 縹碧流光寶地斜
암자로 가는 길 구름 위로 아득하다 精藍一路上雲賖
금빛 모래 나그네의 신 더럽히지 않고 金沙不染游人屨
석실이 진실로 대사의 집이 되었네 石室眞成大士家
햇살 띠고 끝에 걸렸으니 구리로 기둥 삼았고 帶日標懸銅作柱
하늘 날아 노을 흩어지니 옥으로 꽃 만든 듯 飛天霞散玉爲花
모나고 둥근 열 자 공간에 날 머물게 하고 方圓十尺容吾住
유마 거사 모방하여 차 따라 대접하네 擬就維摩接施茶
―― 동주 이민구(東州 李敏求, 1589~1670), 「보덕굴에서(普德窟)」
119. 해산도첩(海山圖帖), 진주담(眞珠潭)
깎은 듯한 중향성을 다섯 봉우리가 에워싸니 香城削立五峰圍
그 아래 맑은 물 흘러 굽은 바위 턱에 쏟아지네 下有澄流瀉曲磯
이슬이 밝은 구슬 적셔 하얗게 부서지는 듯 露浥明珠分皛皛
바람에 싸락눈 날려 보슬보슬 흩뿌리는 듯 風飄餘霰散霏霏
추운 산속에서 술 대하니 어지러운 구름도 저물어가고 寒山對酒亂雲暮
외로운 달빛이 숲을 비추니 잘 새가 날아드네 孤月照林幽鳥飛
누가 만폭동 바위굴을 좁다 하였나 萬瀑誰云巖洞狹
열 개의 못 있어 맑은 빛 즐길 만한데 十潭聊且弄淸輝
――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 「진주담(眞珠潭)」
주) 김창협(金昌協)은 《농암집(聾巖集)》〈동유기(東遊記)〉에서 만폭동에 구담(龜潭)ㆍ
선담(船潭)ㆍ벽하담(碧霞潭)ㆍ화룡담(火龍潭)ㆍ청룡담(靑龍潭)ㆍ흑룡담(黑龍潭)ㆍ응벽담
(凝碧潭)ㆍ진주담(眞珠潭)ㆍ청유리담(靑琉璃潭)ㆍ황유리담(黃琉璃潭) 등 열 개의 못이 있
다고 하였다.
120. 해산도첩(海山圖帖), 해금강(海金剛)
늦가을 천산에 나뭇잎 노란데 秋暮千山木葉黃
지팡이 짚고 노닐며 다시 해금강으로 향하네 遊筇更向海金剛
빽빽한 석각이 석당과 석탑 같으니 森森石角如幢塔
어룡을 시켜 도량을 삼으리라 好遣魚龍作道塲
―― 운양 김윤식(雲養 金允植, 1835~1922)
121. 동유첩(東遊帖), 해금강 전면(海金剛 前面)
작가 미상, 조선 1825~1838년, 9권 서화첩, 종이에 색(紙本彩色), 각 20.0×26.6cm
이풍익(李豊翼, 1804~1887)이 1825년 음력 8월 4일부터 29일 동안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
은 시문에 28점의 금강산 실경산수화를 엮어 꾸민 서화첩으로 현재 9권이 전하고 있다. 구도
와 필법에 이르기까지 김홍도 화풍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는데, 필치가 다소 섬약한 대신 채
색을 더 짙게 구사하여 장식적인 인상이다.
19세기에는 김홍도의 금강산 실경산수화를 모사하여 금강산 유람을 기념하는 서화첩을 꾸
미는 일이 문인 사회에서 크게 성행하였다.(이재호)
122. 동유첩(東遊帖), 비봉폭(飛鳳瀑)
봉황이 여산에 들어간 뒤 찾을 길 없는데 飛入廬山不可尋
개중에 서른 여섯 봉우리가 스스로 소리하네 箇中六六自然音
원래 고상한 생활 일반 새와는 달라 本來棲息殊凡鳥
항상 구름 밖 천 길 마음에 살고 있네 雲表展來千仞心
――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 「비봉폭(飛鳳瀑)」
123. 동유첩(東遊帖), 진주담(眞珠潭)
일찍이 감사(監司)의 깃발로 산속을 지나가니 曾將牙纛過山中
스스로 호해의 풍류 높은 노인이라 자부했지 自許風流湖海翁
서글프게 진주담 위를 바라보니 惆悵眞珠潭上望
향로봉이 바로 장인봉이로세 香爐峯是丈人峯
―― 매산 홍직필(梅山 洪直弼, 1776~1852), 「진주담에 악옹이 이름을 쓴 것이 있다(眞珠
潭有嶽翁題名)」
125. 동유첩(東遊帖), 흑룡담망보덕굴(黑龍潭望普德窟)
깎아지른 절벽은 바람에 넘어질 듯 斷崖風欲踣
가파른 돌길은 새도 오르길 걱정할 듯 回磴鳥愁緣
난간은 외로이 선 동주를 눌러 있고 檻壓孤銅柱
처마는 절벽 중간 하늘에 맞닿았네 簷磨半壁天
용은 서리어 쌓인 눈을 뿌려 대고 龍蟠灑積雪
사자는 일어나 향 연기를 보내누나 獅起送香煙
이곳에서 한가하고 바쁨을 말하지만 是處閑忙話
덧없는 인생은 다 우연일 뿐이라네 浮生儘偶然
―― 소재 노수신(穌齋 盧守愼, 1515~1590), 「보덕굴(普德窟)」
126. 동유첩(東遊帖), 명경대(明鏡臺)
127. 동유첩(東遊帖), 환선정(喚仙亭)
기쁜 일엔 큰 술잔 기울이는 것 무방하나 樂事不妨深盞倒
나그네의 옷깃 미인에게 끌리지 말아야지 征衫休被美人牽
산머리에 해는 지고 봉래 영주 가까우니 山頭落日蓬瀛近
난주로 가서 열선을 불러 보려고 하노라 擬向蘭洲喚列仙
―― 하서 김인후 河西 金麟厚(1510∼1560), 「환선정(喚仙亭)」에서
128.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 옥순봉(玉筍峰)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 조선 1796년, 편화, 종이에 엷은 색(紙本淡彩),
각 26.7×31.6cm, 보물 제782호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은 모두 스무 폭의 그림이 실려 있는 화첩으로, 그 가운데 단양
의 명승인 옥순봉, 사인암, 도담삼봉과 속초의 영랑호를 그린 실경산수 네 폭이 포함되어 있
다. 김홍도는 현장에서 한 눈에 담기는 시야를 단일시점으로 포착하고자 하였다. 삼원법(三
遠法)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산수화의 시각형식은 여러 시점을 혼용하여 관람자의 시선이
화면 안에서 적극적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이에 비해 단일시점은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
본 풍경을 원근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홍도는 1791년 12월부터 1795년 1월에 이르기까지 3년 남짓 연풍현감으로 재직하였는
데, 이 시기에 인근 단양의 명승을 사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이재호)
둥그른 저 달 한 덩이 빈 강에 비쳐오니 照映空江月一丸
창량(蒼涼)한 그 가운데 만뢰가 들리는 듯 如聞萬籟起蒼寒
인간의 초목들은 본래가 수다라서 人間艸木元閒漫
부용이랑 모란 따윈 배우지 않았구려 不學芙蓉與牧丹
――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 「옥순봉(玉筍峰)」
129.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 영랑호(永郎湖)
26.7×31.6cm, 보물 제782호
<영랑호도>는 석호(潟湖)인 영랑호와 설악산의 원경을 담아낸 그림이다. 근경의 범바위에
이어 반달 모양의 호반이 묘사되었고, 원경이 연운(煙雲) 위로 울산바위가 웅장한 자태를 드
러내고 있다. 넓은 공간을 원거리에서 조망하여 포착한 작품이다.(이재호)
130.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 사인암(舍人巖)
26.7×31.6cm, 보물 제782호
사인암은 남한강의 지류인 남조천(南造川)에 있는 절벽이며 고려 때 사인(舍人) 벼슬을 지
낸 문신 우탁(禹倬, 1262~1342)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사인암도>에는 절벽이
화면 가득 솟아 있는데, 하단에는 폭이 좁은 계곡물과 그 건너편의 소나무가 그려져 있어 화
가가 절벽 건너편 물가에서 사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이재호)
괴이하다 한 폭 그림 하늘에서 내려왔나 怪底靑天降畫圖
범속한 정과 운은 털끝 하나 없군그래 俗情凡韻一毫無
인간의 오색이란 본시가 한만한 것 人間五色元閒漫
임리한 붉고 푸름 정말로 격 밖일세 格外淋漓施碧朱
―― 완당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 「옥순봉(玉筍峰)」
주) 한만(閒漫)은 한가하고 느긋함을, 임리(淋漓)는 물이 흘러 흥건한 모양을 뜻한다.
131.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 도담삼봉(嶋潭三峰)
26.7×31.6cm, 보물 제782호
<도담삼봉도>는 남한강이 곡류지점에 솟아 있는 장군봉, 처봉(妻峰), 첩봉(妾峰)의 세 섬
을 그린 작품이다. 강변에서 약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도담삼봉을 포착하고 원경의 소백산
봉우리들을 매우 옅게 채색하여 공기원근법의 효과를 내었다. 강변에 앉은 선비는 화가 자신
의 모습이자 화면을 포착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이재호)
인간 세상에 다시없는 천연의 비경이니 人間未有此天成
세 줄기 옥순이 물결 속에 솟았네 三笋波心擢玉莖
품평하는데 어찌 말이 필요하겠나 題品那堪費言語
다만 소봉영이라 부르면 되리 只須呼作小蓬瀛
씻은 듯이 반짝반짝 푸른 물결 위에 솟아 灑濯晶熒出碧粼
하늘 위로 곧추 서있으니 정신이 드높네 凌空骨立最精神
붓 휘둘러 번거롭게 더럽히지 말지니 莫將吟筆煩相浼
지은 시가 또 하나 티끌 될까 두렵네 却恐詩成亦一塵
――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1526~1586), 「도담(島潭)」
132. 옥순봉도(玉筍峰圖)
엄치욱(嚴致郁, 19세기 전반 활동), 조선 19세기 전반, 12면 첩 중, 종이에 엷은 색(紙本淡
彩), 28.0×39.0cm
엄치욱은 조선 말기의 화가로 자가 경지(敬之), 호가 관호(觀湖)로 본관은 영월이라고 전해
지나 구체적인 가계나 생몰년 등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옥순봉>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1548년 5월 청풍군
에 배를 타고 오면서 그 모양이 죽순과 같다 하여 명명한 이래 시화의 소재로 크게 애호되었
다. 옥순봉은 단양군과 청풍군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이황이 이때 ‘단구동문(丹丘東
門)’이라는 글을 바위에 새겨 단양 땅으로 확정지었다.
<옥순봉도> 역시 김홍도의 도상과 양식을 그대로 모사한 것 같이 흡사하여 엄치욱이 김홍
도 말기 화풍을 세심하게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김울림)
단구 선경 내 이미 당도해 보니 丹丘我已到
영지라 신선초를 캘 것만 같네 三秀若可采
깊디깊은 푸른 못물 정적 감돌고 綠潭靜淵淪
위치 따라 산 모습 달라지는데 靑峯勢屢改
구름 노을 기운이 강하게 비쳐 映鬱雲霞氣
허공에다 비단을 깔아놓은 듯 橫空如錯綵
검은 일산 수령이 기다리는데 皁蓋倚延佇
푸른 깃발 아득하다 어디에 있나 羽旗杳何在
어이 이리 더딘고 따라오는 배 遲遲後來船
게으름 피우지 말고 노 저어 오소 鼓枻來勿怠
줄지어 늘어선 오로봉 모습 森然五老峯
기다린 듯 나에게 읍을 하누나 揖我如相待
――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 「옥순봉(玉筍峰)」
133. 서성우렵(西城羽獵)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 조선 1796년, 액자,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97.7×41.3cm
김홍도가 1796년(정조 20) 수원 화성 건설을 기념하여 화성의 경치를 그린 작품이다. 김홍
도는 정조가 야심차게 추진한 화성 건설 사업 중의 각종 화역(畵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
다고 전한다.
<서성유렴>은 화서문 주변 성곽인 서성 밖 드넓은 들판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근경의 화성 성곽은 서장대를 둥글게 감싸면서도 원경의 경물과 이어져 뒤로 갈수록 지그재
그 구도를 형성하며 깊은 공간감을 형성하였다.(권혜은)
134. 한정품국(閒亭品菊)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 조선 1796년, 액자, 비단에 엷은 색(絹本淡彩),
97.7×41.3cm
<한정품국>도 김홍도가 수원 화성 건설을 기념하여 화성의 경치를 <서성유렴>과 함께 그
린 작품이다. 화성행궁 후원에 위치한 정자인 미로한정(未老閒亭)에서 국화를 감상하는 모
습을 주제로 삼았다. 정자 아래로 이어지는 정원의 끝에는 행궁의 건물 중 하나인 낙남헌(洛
南軒)이 자리 잡았다. 과감하게 대각선으로 경물을 포진시키고 그 아래 위는 연무로 채워 역
시 대기원근법으로 막힘없는 공간감을 연출하였다.
화성건설을 기념하여 그린 공적 성격의 그림임에도 서정이 넘치며 구도와 공간, 필치, 색채
감각 등에서 새로운 정형의 실경산수화풍을 완성한 김홍도의 원숙한 기량이 잘 드러나는 작
품이다.(권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