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내가 전심으로 주께 기도하오니 귀를 여시사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 아침에 주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기 원합니다.
먼저 나의 더럽고 추한 속 마음을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사 주께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을 제하여 주옵소서.
순전한 마음으로 주를 앙망하나이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내가 불구자가 될지언정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죄인의 자리에 앉거나 서지 않도록 나를 강권적으로 이끄소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 원하여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속히 말씀 앞으로 나아가오니 이것이 복 있는 자의 모습임을 깨달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조명하사 주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 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24:1-9
제목 :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복음.
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9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생을 선택하셨다.
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만민이 복을 받게 하셨다.
이는 자손과 땅의 약속을 통하여 성취된다.
따라서 그의 일생은 ‘약속-성취’의 구원사로 전개된다.
자손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심으로 성취되어 가고 있다.
또한 땅의 약속은 횃불 언약을 통해 확정되었는데(창 15장), 헷 족속에게서 막벨라 굴을 사서 자신의 소유지로 삼은 것으로 표징을 얻는다.
이제 아브라함이 그의 일생에서 최후로 한 일은 이삭의 결혼이다.
이 이삭의 결혼과 관련된 구절이 다소 길게 구성된 것은 믿음의 조상으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잘 증거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많아 늙었고 하나님은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그의 충복(아마도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로 추정됨, 창 15:2)인 늙은 종에게 허벅지 아래에 있는 환도뼈에 손을 넣어 맹세하게 한다.
이 환도뼈 맹세는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맹세로써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 아브라함과 생명의 연대 속에서 아브라함의 명령을 수행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언약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것을 보았고 또한 이를 확신한 것처럼 그의 늙은 종 역시 언약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믿음으로 수행한다.
아브라함은 그가 거주하는 가나안 땅이 아닌 그의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할 것이라고 한다.
혹시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가 가나안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지라도 이삭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게 하시고 이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이 사자들을 앞서 보내어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다만 신붓감이 종을 따라 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나와 맺은 맹세가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으로 확증해 준다.
이에 종은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아브라함과 맹세하였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합법적인 언약의 자손인 이삭의 결혼 문제를 다루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아브라함의 노쇠함과 사라의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무대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로 대표되는 한 세대가 물러가고 그들의 후손에 의한 새로운 세대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삭의 결혼 문제를 다루는 본문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뒤를 이어 이삭과 그의 아내가 앞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시사해준다.
무엇보다 6-8절에는 이삭의 아내를 택하는 일을 위하여 이삭을 아브라함의 친족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지 말 것을 아주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의 종이 만약 이삭의 신부가 될 여인이 가나안으로 오기를 싫어하면 이삭을 데려가도 좋으냐고 묻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리로 데려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아브라함의 종이 해야 할 일은 이삭의 신붓감을 데리고 이곳 가나안으로 오는 일이다.
심지어 만약 그가 신붓감을 데려오지 못하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는 그 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확증까지 해준다.
그러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이삭의 아내를 데리러 가라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났듯이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 또한 고향을 떠나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인사이트를 준다.
여기서 이삭의 아내될 여인의 고향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언약의 후손인 이삭은 참 언약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또한 이삭의 아내될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섬기는 모든 성도들을 예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삭의 아내될 여인이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려는 자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는 것이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떠나지 않고는 누구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없다.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따라서 이삭의 아내될 여인이 이삭을 신랑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야만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기 원한다면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것을 끊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죄악된 세상을 떠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부터 영적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며 하늘 가나안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이런 하늘 가나안에서 영생을 누리기 위하여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것을 다 끊어냈는가?
마음은 원이로되 정말 육신이 약하여 언제나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자이다.
그런 자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처럼 수렁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되어 이리저리 넘어지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러는 사이 나의 마음도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졌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주님께서 행하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주님을 볼 수 있도록 나를 이끄셨다.
주의 심판이 나를 살린 것이다.
밧단아람에서 벧엘을 향하여 돌아가는 야곱에게 감당할 수 없는 근심과 걱정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배신했던 형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천사와 함께 얍복 강가에서 씨름을 하게 하셨고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다.
그로 인해서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건장한 모습으로 형을 만나도 될까 말까인데 절름발이라니...
게다가 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으니 그의 몰골은 또 어떠한가?
그야말로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야곱의 형인 에서는, 야곱의 얼굴에 개기름이 좔좔 흐르고 배는 불뚝 튀어나온 그런 부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놈을 보기만 하면 당장 이 군사들을 풀어서 잡아 족치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야곱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진흙투성이인데다 다리까지 절고 있는 절름발이 신세가 아닌가?
그런 몰골을 하고 있는 야곱을 보니 그의 마음에 동정심이 불같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를 죽이고자 하던 분노가 봄눈 녹듯이 녹고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타올라 그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입을 맞추며 울었던 것이다.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이처럼 야곱에게는 절름발이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면 나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복음을 알고 이 복음을 통하여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도 이 복음을 통해서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는다.
이 교제와 사귐이야말로 우리 주님을 아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영생임을 성경이 증거한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아브라함을 통하여 자손과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약속은 이삭을 통하여 성취하여 나가셨고 또한 에브론에게서 막벨라 땅을 사서 아내 사라의 매장지로 삼고 그의 소유지로 삼게 하심은 땅에 대한 약속의 표징이었나이다.
사람은 불의하여 언제든지 거짓과 속이는 일을 밥먹듯이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언약으로부터 시작하여 단 한 번도 어떠한 언약도 어긴 적이 없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는 표징입니다.
나 역시 그렇게도 하나님께 결단하고 약속을 하였으나 잠시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어기는 것은 내 안에 아담의 본성인 옛 사람으로 인함입니다.
하여 오늘도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나도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어 새 생명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나의 삶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이 오히려 주님의 강함되심을 드러내는 귀한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