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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째네요. 축하드려요."
"네?"
너무 놀라서 짜증섞인 투로 질문을 던져버렸다.
의사는 익숙하다는 듯 흘려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또박 또박 입을 움직였다.
내 눈이…삔건가? 아니면 의사가 장난을 치고 있는가. 아니면.
"임신, 축하드려요."
정말.
아이가 생겨버린건가.
아이. 아이. 아이. 아이…가.
손 힘을 못 이겨 끝이 살짝 구겨진 초음파 사진을,
병원을 나서다가 우뚝 멈춰서서 한참이나 바라봤다.
'5주밖에 안돼서 아직은 심장소리도 들을 수 없어요.
이거 보이시죠? 새까만 콩같이 작은거요.
이게 아기집이에요.'
"…."
아기…집.
이렇게 콩알만한게…아기 집이란다.
툭하면 구역질에, 빈혈을 앓아서 또 어딘가 허해진거겠지, 하고
가볍게 찾은 병원인데,
이 콩알만한게 아기집이고,
내 뱃속에는 나하고 오빠를 꼭 닮은 아기가 생겨났단다.
아기가. 아기…가.
정신이 자꾸 오락 가락해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해내기가 어렵다.
오빠. 빨리 오빠를 만나야겠다.
요즘 회사일이 바빠져서 같이 있는 시간이 적게 돼 미안하다고,
오늘 크리스마스 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꼭 같이 보내자고,
아침부터 내 어깰 껴안고 웃으며 말하던 오빠가 생각났다.
난 약속시간을 확인하고 택시를 잡았다.
초음파 사진을 소중히 가방안에 넣고 시선을 창 밖으로 던졌다.
눈이 내린다.
깨끗하고 하얀 눈이 말 그대로 소복 소복, 뿌옇게 세상을 덮고 있다.
가게마다 진열된 트리들은 반짝 반짝 빛을 내며 말한다.
임신 축하해요!
여자친구의 머리에 묻은 눈을 살짝 털어주며 남자는 웃으며 말한다.
축하해요.
아이들이 깔깔 크크 대며 손이 꽁꽁 어는 지도 모르고
신나게, 정성드레 만들었을 꼬마 눈사람들이 눈을 꿈뻑이며 말한다.
정말, 정말, 축하해요.
너무나도 아름다워보이는 세상에 나는 그제서야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내 안에 그렇게 원했던, 그렇게 바랐던, 그렇게 꿈꿨던
생명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꾸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동안에 있었던 힘든 시기들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천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빠와 결혼을 하고, 1년 뒤 남들처럼 아이를 가졌었다.
우리는 더 없이 행복했고
세상은 더 없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이는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어보기도 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
내 탓이었다. 위험하니 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오빠 말을
모른 체 하고 약간의 운동은 필요해! 를 외치며 계단을 이용하다가
발을 헛디뎠다.
몇시간 뒤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가벼워져있었다.
몸과 안은 가벼웠고,
마음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 뒤로 나는, 그 물들을 짜내기라도 하듯 잘 울었다.
지나가는 아기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외출을 하다가도,
오빠의 손을 잡다가도…울고, 울고, 울고, 울고….
어쩌면 내가 아꼈던 것 보다 훨씬 더 아기를 좋아하고
원했을 오빠는 그 때마다 웃으며 날 안아줬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아이가 그렇게 몇 시간만에 깨끗이,
우리 곁을 떠났는데도 오빠는 나 때문에 그렇게 웃었다.
무척이나 괴롭고, 짜증나고, 슬펐을텐데
항상 웃으며 내 눈물을 닦아줬고 안아줬다.
덕분에 난 지푸라기만큼의 힘이나마 낼 수 있었다.
유산을 한 뒤로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찾을 수 없었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나와 오빠는 이 아픔을 치유하고
먼저 간 아이를 위해서라도 둘째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내겐 너무 큰 결정이었다.
그 결심을 위해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후회와 고민을 거쳤는지 모른다.
유산이 두번째 출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없었다.
두번째마저 잘못되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오빤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꼬박 꼬박 병원도 다니고 약도 지어먹어 보고
배란기간도 달력에 체크해가며 신경썼다.
그런데 첫번째 아기를 잃은 것에 대한 하늘의 벌이었는지,
두번째 아이는 우리에게 와 주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 임신이라는 허무한 병을 앓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항상 웃던 오빠가 내게 딱 한 번 화낸적이 있는데 바로 그 때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하늘이 밉고 세상이 밉고 나 자신마저 미워졌을 때.
헛구역질에 입맛이 없고 생리마저 하지 않자
임신인 줄 알고 벅찬 마음으로 오빠와 손을 잡고 찾아간 병원에서
상상 임신이라고 했을 때. 그냥 모든 게 다 싫어졌을때….
병원을 나서는데 나는 그간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부축하는 오빨 밀쳐내고 소리쳤다.
이젠 지쳐. 그만해. 아이고 뭐고 필요없어. 다 싫어!
나도 싫고, 오빠도 싫어. 헤어져! 이제 그만 해!
유산 이후 생긴 버릇이 하나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울며 오빠한테 떼 쓰는 것.
두번째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뒤로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던게 그 날 그렇게 터져버렸었다.
지쳐 주저앉은 날 일으켜주려 내 이름을 낮게 부르며
허리를 굽히던 오빠는 행동을 멈추고
굳은 얼굴로 울고 있는 날 가만히 내려봤다.
헤어져! 지쳐, 이제! 이혼 해….
헤어져. 이혼해. 헤어져…. 그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온다는 것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난 그 와중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난 어린아이처럼, 철 없게도 울고 불고 소리지르며
오빠를 밀어냈다.
힘든 게 나 뿐이 아닌데, 나를 일으켜주려던 오빠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오빠의 굳은 얼굴을 봤고,
처음으로 화난 목소릴 들었고,
처음으로 지친 눈을 봤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마!
오빤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다물고 날 일으켜세웠다.
난 작은 충격에 눈물만 뚝뚝 흘리며 오빠가 부축해주는 대로
멍하니 차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다.
내가 차 문을 닫자마자 오빤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켜 어디론가 가버렸고
덕분에 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게 무서운 일인 걸 그 때 깨달았다.
오빤 밤 12시가 지나서야 조용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난 문에서 등을 돌린 채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오빤 그런 내 등을 가만히 보는 듯 방문을 열고서도 아무런 기척없이
서 있다가 풀썩 뒤에 누으며 어깨를 조심스레 안았다.
술냄새가 확 풍겼다.
오빠도 힘들겠지…나만 힘들다고 떼쓰고 울면 안돼, 안돼….
그렇게 평소에 되새기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오빠의 지친 숨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몇분 뒤, 오빠가 뜸을 들이다가 그 침묵속에서 처음 꺼낸 말은 미안해, 였다.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오빠가 처음 화를 내고, 처음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인데,
현관 불이라도 켜 놓을 걸 후회가 됐다. 미안한 건 나였다.
오빤 내 어깨에 이마를 대고 술에 취한 어눌한 발음으로 조용히 말했다.
생각해봤어.
이렇게 하면서까지 아이를 가져야하나….
우리한텐 아이가 있어야만 웃을 수 있는건가….
아이가 전분가….
이쯤에서 오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마음이 다 아프도록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지. 이런 오빠를 두고 얼마나 울고 얼마나 외쳤지.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오빠, 힘들어…, 하고.
근데 아니야….
우리 맨날 웃었잖아.
나 넥타이 못 맨다고 웃고,
바람 세게 분 날 널어둔 빨래 다 날아갔다고
화 내다가도 웃고, 외식하니까 좋다고 웃고,
진작에 같이 살 걸 후회하면서도 웃고….
난 끅, 끅, 숨 죽인 울음을 터뜨리며 고갤 끄덕였다.
오빤 팔을 뻗어 이불을 쥐어잡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는…그 아이가 우리한테 올 준비가 다 되면
그 때 받아들이자.
우리는 준비할 만큼 했으니까
앞으로는 기다리기만 하자.…응?
둘째 아이를 갖자고 한 것 다음으로 힘든 결심….
눈물을 꾸역 꾸역 삼키며 몸을 떠는 내 손을 꾹 잡고
오빤 내 대답을 잠자코 기다렸다.
오빠 말처럼 아이가 우리에게 있어서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빨리 보내버린 첫째 아이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인지 난 그렇게 결국 아이를 '포기'하고 가만히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울고 울고 울다가,
짧은 대답을 내놨다.
…응…그래. 그러자….
그런 아프고 힘든 결심을 한 이후로 1년 정도가 지났다.
처음엔 TV에 아이 울음소리가 나오기만 해도
나와 오빤 먹먹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서로가, 시간이 있었기에
점점 하루가 예전처럼 밝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다 왔습니다."
"아, 네."
모 레스토랑 앞에 비스듬이 정차를 한 택시에서 내려섰다.
택시 창문을 너머 바라봤던 거리의 모습들을
눈 앞에서 지켜보게 되자 기분이 또한 새롭다.
내 머리카락, 어깨, 손, 가방에 천천히 떨어져내리는 눈을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장식된 커다랗고 예쁜 트리를 지나고나자
막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손 한 쪽을 높게 드는
오빠가 보였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나라의 노래 가사마저
내 임신을 축하하는 내용처럼 들린다.
그에 기분이 또 좋아져서 가볍게 웃으며 오빠 앞에 앉았다.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오빤 내 코트를 의자 옆에 걸어두며 마찬가지로 씩 웃으며 묻는다.
난 대답 대신 또 한 번 웃어보였고
마침 예약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네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로 시켰어. 괜찮지?"
웨이터에 의해 테이블 위에 차곡 차곡 놓여지는
음식들을 보며 오빠가 기분 좋게 물었지만
난 스테이크의 냄새를 맡자마자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욱, 하고 헛구역질을 해버렸다.
속이 메스껍고 뒤집어지는 것 같아 한참이나
테이블과 반대쪽으로 고갤 돌려 입을 가리고 있자
의기양양했던 오빤 당황하며 급하게 내 쪽으로 왔다.
"괜찮아? 요즘 너 자꾸 이런다. 나가자. 병원 가."
"괜찮…욱!"
"죄송합니다. 이 음식 못 먹겠네요. 저희는 그만 일어날테니 음식 정리해주세요. 미안합니다."
당황한 눈으로 서 있는 웨이터에게 가볍게 고갤 숙이고
오빤 내 코트를 챙겨 날 일으켰다.
웬만하면 참아보려고 했는데 속이 메스꺼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오빤 황급히 계산을 하고
또 다시 사과를 한 후 날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찬 공기가 상기된 피부와 닿자 속이 조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빠가 어디선가 구해온 물을 마시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차 갖고 올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병원 가자."
오빤 미리 예매해 둔 영화표를 주머니에 넣으며
내 어깨에 코트를 걸쳤다.
'입덧'이라고는 상상도 안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사 상상 임신을 겪은 뒤로, 기대가 클수록
상실감이 배가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으니
감히 임신과 관련해서 생각한다는 건 오빠에게도 내게도
두려운 일이다.
난 차키를 꺼내려는 오빠의 손을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진짜 괜찮아. 아까 택시 타고 오느라 멀미 했나봐."
"오늘만이 아니라 요즘 자꾸 그러잖아. 미뤘다가 더 큰 병 되면 어쩌려고.
말 나온 김에 지금 가자."
"…사실…나 오늘 갔다 왔어. 아무 이상 없대."
"진짜?"
"응!"
진짜 진짜지.
진짜라니까!
세번은 더 확인 받은 후에야 오빤 믿음이 갔는지 차키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영화관이랑 가까우니까 걸어갈까?"
"…영화 보지 말고 그냥 걷자."
"그냥 걸어?"
"응…오랜만에 얘기만 하면서 걷자."
"추운데 괜찮겠어?"
"괜찮아."
그럼 그러자. 오빤 웃으며 내 손을 맞잡은 자기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한결 따뜻하다. 우린 느릿 느릿 천천히 눈이 소복 소복 내려앉은
하얀 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는 곳 마다 크고 작은 트리들이 가지 각색으로
장식된 채 빛을 발하고 있다.
수많은 캐롤들이 거리를 메꾸고 수많은 연인들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옆을 지나친다.
내 사소한 이야기에 크크, 웃던 오빠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선물, 하고 말하며 내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갑작스런 선물에 우물쭈물하다가 천천히 포장지를 뜯자
끝에 하얀 레이스가 달린 예쁜 검정 가죽 장갑이 나왔다.
"매일 집에만 있는데 웬 장갑이야…."
기쁘면서도 살짝 일그러진 웃음으로 핀잔을 주자
오빤 예의 포근한 웃음을 짓는다.
"왜 집에만이야. 시장 보러갈때나 친구 만나러갈때나
이렇게 외식올때나 끼면 되지."
"그럼…오빠는?"
괜히 미안해져서 조심스레 묻자 오빤 내 손에 느릿 느릿
장갑을 끼워주며, 난 회사랑 집에만 있는데 뭐, 하고 넉살좋게 웃는다.
이런 오빠가 없었다면 아이가 생겼다 해도 난 행복할 수 없었을 거다. 분명히….
"고마워. 너무 따듯하다. 잘 쓸게."
"잘 써주세요."
우린 마주 보고 즐겁게 웃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한텐 새 생명이 주어졌다는 것 때문에 세상이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오빠한텐 어떨까.
아기가 없어도, 그래도 나와 오빤 둘이니까, 같이 있으니까
오빠에게도 이만큼 아름다워 보일까.
"저 애들 좀 봐. 뽀뽀한다."
오빤 턱 끝으로 어느 한 쪽을 가리키며 참 내, 하고 웃었다.
고갤 돌려보니 7살도 채 안 된 것 같이 어려보이는 두 명의 꼬마가
양 손을 꼭 잡고 짧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오빤 어린 것들이 벌써, 하면서도 그래도 귀엽다, 말하며 웃는다.
오빠도…나처럼 세상이 이만큼 아름다워보이는 게 분명하다.
나도 오빠처럼 무엇을 봐도 웃을 수 있어서…행복하다.
"오빠."
광장에 놓여진 커다란 트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빤 어? 하며 고갤 돌린다.
새삼스레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오빠한테 한 철 없는 짓들이 부끄럽다.
일부러 더 많이 웃어주던 오빠한테 미안하다.
그리고….
왜? 하고 되묻는 오빠를 보며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오빠, 나 임신했어! 하고 당당하게 말하며 함께 웃고 싶었는데
뭐가 이렇게 떨리는 지 입술마저 바싹 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다.
갑자기 정색을 하는 날 갸우뚱 지켜보던 오빠는
순간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꽁꽁 언 것처럼
잔뜩 떨면서 사진을 떨어뜨리는 날 보고 놀란다.
사진은 팔랑 팔랑 날개짓하듯 움직이다가 천천히 눈 위로 떨어졌다.
"왜 그래? 이게 뭐야?"
오빤 내 손을 놓고 허리를 굽혀 뒤집혀진 사진을 든다.
"나도 선물…이야."
마른 입술을 겨우 떼서 힘겹게 말했다.
사진에 묻은 눈을 탁 탁 털고서 오빤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을
사진 위로 옮겼다.
"…."
"…."
그 이후론 침묵, 이다.
오직 캐롤만이 흥겹게 우리 주위를 메꿀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그런 것처럼 오빠한테도 캐롤같은 건 들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 기적같은 상황이, 현실이, 믿기지가 않아 제정신이 아닐테니까, 아마도.
"…."
"…."
얼굴을 일그렸다가 폈다가, 눈썹을 찌푸렸다가, 말았다가,
한참이나 사진을 주시하던 오빤 천천히 시선을 내게로 옮긴다.
이게…뭐야? 하는 눈빛이다.
난 가슴이 미어졌다.
아기야. 우리 아기. 우리가 그렇게 기다렸던, 우리 아기….
목이 꽉 막혀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눈물이 난다.
그 동안의 시련, 고통, 후회, 그리고 기쁨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한도를 벗어나
당황스럽다. 그래서 그냥 운다. 나 같은 울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눈물을 닦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기가…준비 다 끝내고…왔어. 우리한테…왔어. 우리…아기가."
오빠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서 눈물이…고인다.
오빤 진짜? 하고 우습게도 되묻는다.
진짜야. 난 우습게도 확인시켜준다.
진짜? 진짜, 정말로?
그래. 진짜. 정말로.
타악.
오빤 눈물과 함께 뿌옇게 웃으며 날 껴안는다.
그제서야 풍선이 탁, 하고 터지듯 청각이 되살아나면서
비로소 세상의 캐롤들이 귀 안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아-
눈을 감고 캐롤을, 오빠의 웃음 소릴 가만히 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오빤 말했다.
울며 웃으며 소중히 날 안으며, 말했다.
나도. 정말 최고의 선물이야.
"오빠, 고마워…."
천천히 눈을 떠 바라본 하늘에선 축하해요, 축하해요, 속삭이는 새하얀 눈들이
소복 소복, 느릿 느릿, 내리고 있었다.
첫댓글 왜 이렇게 감동 적일까요>ㅠㅠ 슬프다...
감동을 목적으로 썼는데 감동하셨다니 다행이네요...하하하 코멘 감사합니다^^
오, 오랜만의 글이 이렇게 감동을 남기네요ㅜ_ㅜ. 혹시 새드엔딩이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그 불안감, 조그만것의 행복감, 서로에 대한 믿음. 예쁜 글이네요. 이번에도 잘 읽고 갑니다.
앗.....누구신가 했어요. 은랑님이시군요 정말 오랜만에 뵈요! 흐흐. 콕 찝어주시네요. 불안, 행복, 믿음 등등.....뜻이 제대로 전해지는 게 글쟁이한텐 제일 큰 보람같아요~ 글쟁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하하 이번에도 고맙습니다~~^^
감동적이네요..서로에 대한 끓임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결실이 맺어져서 더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와 턱없이 부족한 글에 비해 넘 멋진 감상이여요....코멘 고맙습니다^^!
너무나 따뜻한 얘기네요.. 요즘 환경적인 요인때문에 임신이 안되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부부가 많다는 얘기 들었는데.. 얼마나 힘들까요 단 1%의 부부라도 올해는 인생 최고의 을 받길 바래요 *^^*
그러게 말입니다..지인 중에 그런 분이 계셔서 더 남 일 같지가 않아요..바부진이님의 참 따뜻한 마음이 고루 고루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코멘 고맙습니다^^
아 슬프긴 슬픈데 슬픈거보닷 감동적이구 아름다운 글인거 같에요
아악..그런 극찬을 해주시니..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네요..흐하하..그렇게 읽어주셨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으아~뭔가슬픈얘기가아니면서도정말눈물빼놓는그런이야기네요!진짜완전감동이에요.따뜻한크리스마스가될것같아요.마음따뜻해지는소설잘읽었어요.건필하시구요,메리크리스마스!
제 부족한 글이 그린비님의 따뜻한 크리스마스에 보탬이 됐다니 너무 기쁩니다..흐흐..잘 읽어주셔서 고맙구요 그린비님도 메리크리스마스~!
와 정말 대단해요. 소설 속의 모든 분들이 행복해보여서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걸치게 됩니다. 정말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기쁘고 또 감사해요. 앞으로도 이렇게 따끈따끈한 소설 기대할께요 (웃음)
전 얀해온님 같은 코멘에 기쁜 웃음을 흘리며 다시 글을 읽어보게 된답니다..덕분에 또 읽고 내려왔어요 크크크크크 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글이 그런 작은 영향이나마 끼칠 수 있다는 것에..너무 기쁘고..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얀해온님도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