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아름다운 외딴섬에서 일어난 의문사와
200년 동안 감춰져온 유럽의 역사를 밝힌다!
《나는 누구인가》 《사랑 그 혼란스러운》으로 이미 국내에 이름을 떨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이번에는 수사 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건축가이자 그의 형제인 게오르크 요나탄 프레히트와 함께 쓴 《살인은 없었다》가 그것이다.
이 책은 한 형사가 살인자를 추격하는 내용이 전부인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철학자, 평론가, 언론인, 소설가 등 그에게 따라붙는 다양한 수식어에 걸맞게 리하르트는 유럽의 종교와 역사, 그리고 덴마크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잘 조화된 환상적인 추리소설을 펴냈다.
리하르트는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냉철한 분석력과 추리력을 가진 형사보 안스가르 외르겐센을 덴마크의 외딴섬인 릴레외로 몰아넣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코펜하겐의 범죄수사반에 몸담고 있던 외르겐센은 릴레외에 발령받아 오자마자 한스 라르센이라는 노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릴레외는 평화로운 섬이며, 라르센이 살해당할 만큼 특별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외르겐센은 이 섬 전체가 미심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때 마침 익명의 제보자가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한스 라르센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외르겐센은 어두운 섬의 역사를 깊이 파헤치면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나둘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철학적, 역사적, 과학적인 온갖 비밀들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기만 한 릴레외의 비밀을 강박적일 정도로 파헤치는 한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살인은 없었다》(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게오르크 요나탄 프레히트 지음, 안성철 옮김, 21세기북스)는 독자에게 진정한 ‘지식 수사 소설’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과연 누가 한스 라르센을 죽였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외르겐센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가 형사가 된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최고의 대중 작가가 쓴 추리소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전작 《나는 누구인가》는 13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2년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바 있다. 다재다능한 지식인인 그는 그동안 철학, 심리학, 생물학, 뇌과학, 동물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을 총망라하면서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저서들을 펴내왔다.
《살인은 없었다》 또한 장르는 추리소설에 국한되지만 주인공 외르겐센을 철학적 인물로 표현하면서 리하르트의 주특기인 철학적 사고가 곳곳에서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더불어 리하르트의 친동생이자 건축가인 게오르크 요나탄 프레히트가 공동 저자로 참여해 외르겐센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각종 제방, 선박, 간척지 장면에 사실성을 부여했다.
철학적 추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두 번째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유럽의 역사와 종교, 과학 또한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이러한 특징은 외르겐센이 스웨덴, 영국, 프랑스 사이의 비밀 외교를 밝혀내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언뜻 보면 혼란스럽게만 느껴지지만 이 많은 지식들이 소설의 끝에 가서 자연스럽게 매듭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섭렵한 것으로 유명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인 셈이다. 책을 읽다 보면 표지에 실린 ‘세계의 질서와 모든 존재의 희비극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다!’라는 카피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숨막히는 세세한 묘사와 북유럽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프레히트 형제는 섬의 생명들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그림 속에 잡아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리셰 룬트샤우의 찬사다. 온갖 술수와 사기, 폭력, 살인 등 자극적인 사건만을 나열해 독자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질 낮은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살인은 없었다》는 순수소설 못지않은 세세한 묘사를 자랑한다. 특히 등장인물과 자연 환경 묘사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매우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외르겐센의 경우, 너무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나머지 인간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느껴질 정도다.
둘째로, 이 책은 북유럽의 바다와 습지, 갈매기의 울음소리, 외딴 섬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따라서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신비스럽고도 묘하다. 유럽, 그중에서도 덴마크라는 배경이 한국 독자에게는 매우 이국적이라 그런 면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내용 면에서는 ‘지식 수사 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을 정도로 철학적이고도 지적이지만 세세한 묘사를 통해 직관적이고도 감성적인 면까지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급박한 추리소설인 동시에 독자들의 지적 욕구와 감성까지 자극하는 새로운 형태의 추리소설이다. 《살인은 없었다》를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호기심에 못 이겨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을 때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시체는 부검했나요?”
말테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부검? 하나님 맙소사! 왜 부검을 해야 하는데? 한스 라르센은 일흔세 살이야. 그가 살해당했다고 믿는 건가? 아니야. 아니야, 안스가르. 이곳에서는 지난 이백 년 동안 한 번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어.” (20페이지)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어떤 고위 성직자의 죽음의 자리에 불려 갔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성직자는 부름을 받고 정원을 지나가다가 실수로 거미줄을 망가트렸다. 비록 추기경의 죽음이 임박해서 일 분 일 초가 급했지만 프란체스코는 그 거미줄을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침착하게 다시 연결시켰다. 이 성인의 선함에 감동받은 외르겐센은 어느 날 그의 부주의로 망가진 거미줄을 고쳐주려고 시도하다가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어린 안스가르의 손은 아마도 위대한 이탈리아 동물 애호가인 프란체스코가 가지고 있었던 시계공의 섬세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85페이지)
태양은 빠르게 가라앉는다. 북서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이 물고기 썩는 냄새를 뮐렌담 너머로 퍼뜨리고 있다. 빨갛게 물든 구름이 석양의 수평선 위에서 빛나고 있다. 갈매기 한 마리가 아픔을 호소하는 듯 울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스며드는 어둠에 인사를 한다. 제방의 다른 쪽 농지 위로는 안개가 펼쳐져 있고 소 한 마리가 황혼 속에서 가끔씩 울어대며 곧 다가올 깊은 고요를 예고하고 있다. (125페이지)
육분의가 정말로 한스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어딘가에서 찾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한스는 어쩌면 보물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눈치 챘을 것이다. 그 물건은 확실히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다. 모래가 거기에 붙어 있지 않았던가. 18세기 물건이다. 징그럽게 오래된 물건인 것이다. 여기 이 제방보다 백 년은 더 오래되었다. (153∼154페이지)
1809년 봄,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에 영국에서 출발해서 스웨덴으로 가던 요트 한 척이 그라스텐 간척지의 해안에 좌초된다. 임마누엘 스베덴보리의 항해 도구가 들어 있는 그 배의 화물은 배와 함께 침몰했다. 백칠십육 년 후에 양치기 농부 한스 라르센이 우연히 간척지에서 그 배의 화물에서 나온 마지막 유물인 육분의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에 여행객이 한스 라르센을 그의 밭에서 죽은 채로 발견한다. (223페이지)
외르겐센은 기지개를 켜며 침울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시선을 벽시계로 돌렸다. 피곤이 밀려왔다. 그는 힘겹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느릿하게 계단을 올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으니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스베덴보리, 전염병, 양치기 농부, 육분의, 요트.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서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303페이지)
외르겐센은 사흘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 스베덴보리의 환상적인 비전을 공부했다. 그리고 두 번째 서류철을 봤다. 1926년 1월에 있었던 프레스코에 덧칠한 행위와 그 이상한 이단자들의 행동에 대한 내용이었다. 키르슈타인은 그들의 지도자가 스베덴보리의 추종자인 한스 야콥 테르켈센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스코에 덧칠하기, 테르켈센 무리의 수상한 행동들, 애덤스 살해 혐의, 좌초한 배, 이 모든 것에 대해서 키르슈타인은 꼼꼼하게 조사하고 연구하고 가정하고 그의 결론을 기록했다. (400∼401페이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테르켈센이 불에 타 죽어버렸어. 끔찍했지. 정말, 정말 끔찍했어! 그의 헛간에서 불에 나서 타 죽었어. 그건 정말 슬픈 이야기야! 아이들이 불장난을 했는데 라르센의 자식들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어떤 소란이 일어났는지 댁은 아마 상상도 못할 거야. 이곳 릴레외가 아수라장이 되었다니까. 맙소사, 엄청나게 많은 외지 사람이 차를 가지고 이곳까지 왔어. 정말 특별한 사건이었지. 그런 일이 거의 없었거든. 높은 공무원들, 아주 멋진 남자들이나 그런 자동차를 타고 다녔어.” (471페이지)
제프리 아서 애덤스가 죽었다. 한스 야콥 테르켈센도 죽었다. 작은 사내아이가 키르슈타인의 관심 안으로 들어왔다. 귀신을 보는 야코부스의 마지막 해를 항상 함께했던 바로 그 아이, 감멜고르의 그 사내아이, 어린 악셀 라르센. (507페이지)
사체 발굴은 월요일 이른 아침에 진행되었다. 말테와 외르겐센 외에 오덴세에서 온, 한 명은 법의학자이고 나머지 한 명은 그의 조수인, 두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그 두 사람은 오늘 아침에 첫 번째 페리선으로 도착해서 창문에 차단막이 쳐진, 장의용 차량과 비슷하게 생긴 차량을 몰고 왔다. 신부는 침묵하면서 무덤 옆에 서 있었다. 인부 두 명의 삽이 빠르게 나무 상자에 부딪쳤고 그들은 조심스럽게 흙을 퍼 올렸다. (589페이지)
첫댓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게오르크 요나탄 프레히트 지음 / 역자 안성철 옮김 /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