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초의 역사
1962년 메셔슈미트가 개발한 스페인 최초의 제트기인 HA-200이 제식화(制式化)되었습니다.
파생형(派生形)을 포함(包含)하여 총 200기 생산(生産)되었을 만큼 성공적(成功的)인 작품(作品)이었습니다.
원래 훈련기 용도(訓鍊機用途)였지만 성능(性能)을 개량(改良)한 HA-200E 형과 HA-220은 공격기(攻擊機)로 사용되었을 만큼 신뢰도(信賴度)를 인정(認定)받았습니다.
여기서 특이(特異)한 점이 하나있는데, 약 절반(折半)에 해당(該當)되는 수량(數量)인 90기를 이집트가 면허 생산(免許生産)했다는 점입니다.
↑훈련기와 경공격기로 성공작이었던 HA-200
이집트 국영(國營) 헤르완(Helwan Air Works)이 조립(助立)하여 자국 공군(自國空軍)에 납품(納品)한 HA-200의 평판(評判)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렇게 스페인 HA와 맺어진 관계는 이집트가 독자적(獨自的)으로 제트전투기 개발에 나서는 계기(契機)가 되었습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와해(瓦解)되었지만 당시 이집트는 1958년 시리아(Syria)와 함께 통일아랍공화국(United Arab Republic)을 만들었을 만큼 아랍의 맹주(盟主)를 자처(自處)하고 있었습니다.
↑아랍의 맹주를 자처한 이집트의 낫세르
더불어 바로 옆에 이스라엘이라는 적대국(敵對國)을 두고 있어 자주국방(自主國防)에 대한 열망(熱望)이 높았습니다.
그 일환(一環)으로 제트전투기 개발(開發)의 예비 단계(豫備段階)로 HA-200을 라이선스 생산(生産)했던 것입니다.
여담(餘談)으로 현재 이집트는 산업 역량(産業力量)이 높지 않은 나라지만 놀랍게도 1960년대에 제트기를 제작(製作)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보릿고개가 일상이었던 후진국(後進國)이었다는 점을 고려(考慮)하면 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드는 사례(事例)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집트에서 조립 생산된 HA-200
메셔슈미트는 HA-200의 개발과 별개(別個)로 1951년부터 초음속 경량(超音速輕量) 제트전투기인 HA-300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초 설계(最初設計) 된 델타익 기체 구조(機體構造)가 아르헨티나에서 호르텐이 설계한 풀퀴 III와 흡사(恰似)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NATO가입과 더불어 미국이 저렴(低廉)한 가격(價格)에 F-86을 비롯한 최신 전투기를 공급(供給)하고 자력 개발(自力開發)에 따른 경제적 문제(經濟的問題)가 겹치자 HA-300 계획은 전격 취소(電擊取消)되었습니다.
↑개발이 중단 된 HA-300 목업
마침 국산 전투기 개발(國産戰鬪機開發)에 대해 열망(熱望)이 컸던 이집트가 이 소식을 듣자마자 HA로부터 해당 프로젝트와 메셔슈미트를 비롯한 개발팀 전체를 유치(誘致)하여 자력 개발(自力開發)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완전(完全)한 델타익(Delta-wing)이 구현(具現)이 힘들어지자 수평 미익(水平尾翼)을 추가(追加)하는 등 설계 변경(設計變更)을 거쳤을 만큼 악전고투(惡戰苦鬪)의 연속(連屬)이었습니다.
특히 특급 기밀(特急氣密)인 제트엔진의 개발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HA-300은 이집트에서 개발이 재개되었습니다
↑HA-300과 E-300 제트엔진을 시험장착한 An-12를 같이 찍은 사진. 위 사진의 An-12는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박살납니다.
원래는 영국에서 도입(導入)한 오르페우스(Orpheus) 엔진을 장착(裝着)하기로 예정(豫定)했으나 시험 결과(試驗決科) 만족할 만한 추력(推力)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융커스(Junkers)에서 엔진을 제작하다가 종전(終戰) 후 나포(拿捕)되어 소련에서 제트엔진을 개발했던 오스트리아의 브랜트너(Ferdinand Brandner, 1903~1986)와 비슷한 시기에 국산 전투기 개발에 나섰던 인도(India)의 참여(參與)로 오르페우스 엔진을 개량(改良)한 E-300 터보제트엔진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완성된 HA-300, 이집트 헬완(Haluan 또는 Heluan이라고도 함) HA-300 경량 제트 전투기는 이국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항공기입니다. 이 개발은 실제로 1952년 스페인에서 시작되었으며, 오버아머가우에서 수행된 2차 세계 대전 후반의 개발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스페인의 관심이 감소함에 따라 메서슈미트는 이집트가 1959년 이 전투기의 개발을 계속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을 때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HA-300이 1964년 7월 초도 비행에 성공하면서 이집트도 당당히 제트전투기 생산국 반열(生産國班列)에 올랐는데, 이는 라이벌 이스라엘보다 7년 정도 빠른 성과(成果)였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천문학적(天文學的)으로 커져가는 개발비(開發費)에 대한 부담(負擔)과 이후 벌어진 6일 전쟁의 패전(敗戰) 등으로 더 이상 진전(進展)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메셔슈미트팀은 연구(硏究)를 중단(中斷)하여야 했고 HA-300은 3기의 실험기(實驗機)를 끝으로 막(幕)을 내렸습니다.
↑소련이 MiG-21을 염가에 공급하면서 이집트의 자력 개발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소련이 비슷한 크기와 외형(外形)임에도 성능(性能)이 더 좋은 MiG-21을 이집트에 저렴(低廉)하게 공급(供給)하여 주기로 했던 것과도 관련(關聯)이 많습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르헨티나, 스페인, 이집트가 제트 전투기 개발을 중지하게 된 데는 이처럼 미국과 소련의 전투기 폭탄 세일도 크게 한 몫 했습니다.
독점 시장(獨占市場)을 구축(構築)하기 위해 경쟁자(競爭者)나 중소업체(中小業體)를 제거(除去)하는 모습과도 상당히 유사(類似)하여 흥미(興味)롭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