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에 가면 / 김순희
기차를 탈 때면 역방향에 앉곤 한다. 거꾸로 앉으면 지나온 길이 보인다. 풍경들이 조금씩 작아지며 소실점이 되는 걸 지켜볼 수 있다. 커브를 돌때면 내가 탄 기차의 꼬리가 앞선 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캄캄한 터널을 급히 빠져나오는 모습도 보인다. 봄이니 조금 천천히 가라고 아카시아 하얀 가지가 기차 소리와 같은 진동으로 흔들리는 것도 감상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역방향에 앉으면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앞만 보고 달리면 세상이 한꺼번에 덮쳐오는 것 같아 그 속도감에 멀미가 난다. 그럴 때면 눈을 감아버린다.
살풋, 낯선 남자가 나를 깨웠다. 기차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릴 준비로 어수선했다. 나도 허겁지겁 잠에 취한 몸을 일으켜 그의 뒤를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급하게 내리느라 짐도 정리 못한 채로 엉거주춤 계단을 올랐다. 서너 발짝 오르다가 문득 ‘신경주역은 계단이 가파른 내리막인데…’라는 생각이 뒷머리를 때렸다. ‘여기가 어디지, 동대구역? 내가 내릴 곳은 신경주인데.’ 하는 찰나 기차는 밤이 늦었다며 후다닥 뒷모습만 남기고 어둠속으로 내달렸다. 그 남자는 자신이 내릴 역에 도착하니 선반위의 가방을 내리려고 나를 깨웠던 것이다.
기차가 떠나자 사람들도 나만 남기고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혼자 남은 두려움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두운 그림자가 크게 다가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부터 알아봐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거렸다.
'어떡해 어떡해' 만 되뇌는 나에게 역무원이 다가왔다. 표를 보여주며 ‘내 기차가 나를 두고 가버렸다' 고 울먹였다. 역무원은 신경주로 가는 기차는 자주 있다며 다음 기차를 타라며 안심부터 시켰다. 그러고는 시간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차가 없다는 것이다. 밤늦은 시간이라 그렇단다. 차가 기차역 주차장에 있기 때문에 그냥 버스를 타고 포항에 가버릴 수 없는 이유를, 꼭 신경주역에 가야하는 이유를 두서없이 설명했다. 역무원은 다시 한 번 시간표를 자세히 보더니 한 시간 후에 기차가 있다고 했다. 이 무슨 마술인가. 로비에 올라가 있다가 5분전에 내려오면 새로운 표를 끊지 않더라도 태워주겠다는 역무원의 말은 마법사의 주문처럼 들렸다.
로비에는 밤늦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텔레비전 앞에 커피숍 앞에 빈자리를 찾아 두런거리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서 내 자리 하나를 찾아 앉았다. 시간이 흐르자 놀랐던 가슴이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이 떠올랐다. 전화기 너머에서 남편은 “당신 할매가 다 됐구나.” 놀려댔다.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위로는커녕 웃기까지 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나도 당신 만나 애 둘 낳기 전까지는 총기 있고 야무지단 소리 듣고 살았다고 대거리했지만 중간역에 몸을 내린 내가 부끄러워 헛웃음이 났다. 불이 하나씩 꺼져가는 역 안에 가끔씩 기차가 드나드는 소리가 나고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소리는 여운을 끌며 오랜 기억 속으로 흘러갔다.
스무 살이 되던 그 날, 라디오에서 12시를 알리는 소리가 나자 안방에 주무시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전화를 받아보라고 했다. 교환원의 목소리가 콜렉트콜로 통화를 하겠냐고 물었다. 얼결에 그러마하자 바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생일을 축하한다며 노래를 불렀다. 주말에 우리는 대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탄 기차가 동대구역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꽃다발을 든 한 사람이 보였다. 장미 스무 송이가 안개꽃에 싸여서 벙긋거리고 있었다. 그때의 우리들 사이에는 스무 살이 되는 생일에 장미와 향수와 키스를 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는 내게 주려고 서울에서부터 꽃을 준비해 왔다. 오는 내내 기차 안에서 보는 사람마다 꽃 받을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을 했고 어린 여자아이는 한 송이만 달라고 졸랐단다. 나이만큼 세어 온 것이라 못 준다고 하자 울음을 터트려 곤란하기도 했단다.
그가 꽃을 내밀었고 나는 쭈뼛거리며 받았다. 물론 장미향보다 더 진한 향수도 같이 받았다. 그와 나는 대구에서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금방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탈 기차의 플렛폼까지 데려다 주고 그가 돌아섰다. 서울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바삐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서울에 공부하러 간 첫사랑 그를 기다렸다. 공중전화만 보면 그가 떠올랐고, 밤이면 일기처럼 그에게 편지를 썼다. 먼 거리에 머물던 그와 만나는 방법은 전화로 목소리를 만나고 편지에 실려 오는 마음을 열어보는 것뿐이었다. 늘 기다렸다. 몇 년 그러다 내가 먼저 지쳤고, 서로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헤어졌다고 다 이별은 아니다. 나는 길을 가다 곳곳에서 그가 보이는 착각에 걸음을 늦추었다. 아기고양이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도 소스라치게 놀라듯 나 또한 전화벨소리에, 대문에 꽂힌 고지서에도 그를 느꼈다. 혼자서 오래 그를 만났다. 그렇게 그를 서서히 떠나보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었다.
그를 잊었다고 믿었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진짜 그를 보았다. 길 건너편에서 친구들과 걸어오는 그를 내가 먼저 발견했던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데 내 가슴은 전속력으로 질주를 끝낸 증기기관차가 제 속력에 힘겨운 듯 심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길 건너의 그에게까지 들릴까봐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마음과는 달리 손까지 떨려서 곁에 섰던 동료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랜만이라며 웃어줄 걸, 어떻게 지냈냐고 안부라도 물어볼 걸 후회가 밀려온 건 그 자리를 벗어난 지 한참 후였다. 오랜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내 사랑은 이별 또한 오래 지속되었다.
세월이 흘러 KTX가 생기고 서울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 동대구역을 자주 찾았다. 포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동대구역에 내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달렸었는지, 기차역을 떠올리면 나는 늘 달리고 있다. 자주 동대구역에 내리던 습관을 기억하는 몸이 나를 오늘도 신경주가 아닌 여기에 내려놓았다. 나는 모든 것과 이별하는데 서툰가 보다.
그래서 내 삶의 좌석은 자주 역방향이다. 지나온 길이 잘 보이는 자리이다. 지나온 길을 아쉬워하는 자리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한다. 짜장면을 먹을까 하다 짬뽕을 시켰을 때, 화끈한 맛에 반해 고른 내 선택에 만족하지만 마음은 벌써 먹지 못한 짜장면 냄새에 젓가락을 걸치고 있다. 우연한 만남에서 그에게 안부를 물었더라면, 전화를 했더라면, 그의 집으로 찾아갔더라면 하면서 말이다. 자꾸만 머뭇거리며 소실점으로 바뀌어가는 추억에게 미련한 젓가락질을 한다.
한 시간이 참 길다. 기차를 또 놓치지 않기 위해 시계만 쳐다보고 있으니 더 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불안한 마음을 녹였다. 십 분을 남기고 플랫폼에 다시 내려갔다. 아까 그 역무원이 내 손에 든 표에 뭔가를 적어 주었다. 잘못 내렸다는 표시를 해 준 덕분에 나는 무사히 신경주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그 분 가슴에 새겨진 이름을 외웠다. 내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그분을 칭찬하는 글을 코레일 홈페이지에 올렸다. 내 글에 대한 답장은 그 다음날 바로 왔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라며 오히려 내게 고맙다는 글이었다.
동대구역에는 기다림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