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4. 큐티
마태복음 5:27 ~ 37
간음과 맹세
관찰 :
1) 주님이 가르치는 간음에 대한 재해석
- 27절 ~ 28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육체적인 간음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 29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 만일 오른 눈이 간음하는 것에 돌아가거든 빼어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 30절.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만일 오른 손이 간음하는 것에 씌여진다면 잘라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간음의 죄를 저지르지 않음으로 지옥불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간음의 죄는 지옥 불에 들어갈 정도의 큰 죄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순결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고, 그 영향력이 그렇게 미쳐지기 때문입니다.
- 31절 ~ 32절.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이혼증서를 써주는 것을 통해 이혼하고 재혼으로 음욕을 채우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직 아내가 음행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혼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의 입장입니다. 여자의 입장에서 현대에서 재해석이 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불륜에 대한 결연하고 단호한 결단과 실행이 이 시대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음행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율법학자들이 하지 못한 해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해석이 옳고 맞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대해서 저항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한 가르침이 옳다고 우기게 된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우기기 작전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알아야 합니다. 전통을 정통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맹세에 대한 재해석
- 34절 ~ 36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주님은 맹세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맹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한 의도로 주신 말씀을 그릇된 동기와 의도로 왜곡하고 있기에 이 부분에 대해 주님이 부연하여 교정해 주시는 것입니니다. 맹세는 그 대상으로 손해를 보던지 무엇인가 교정이 되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기에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땅도 하나님의 발등상이기에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성이기에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머리카락을 임의로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 37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 “오직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 하라” 사실 이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분명하고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기에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를 벗어나는 것은 악에서부터 나느니라” 자신의 그릇된 판단, 혹은 거짓에 대한 실존적 유혹에 넘어가곤 하는 인생의 연약함에서 비롯되어 자신을 포장하고, 나 자신의 본질보다 더 포장된 모습으로 보여지길 원하는 갈망. 그것이 거짓이고, 그것이 악으로부터 나오는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경계를 넘어가지 말 것을 경계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간음에 대해서
- 간음은 남녀가 부부가 성립된 것을 벗어난 모든 경우의 성적 행위를 의미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는 다르고 높은 윤리적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정도가 아니라 마음의 음욕에서부터 간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당대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순결한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 소망의 말씀이기에 우리의 그릇된 부분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어야만 합니다.
- 혼전 순결, 심지어는 결혼할 대상과의 결혼 전 성행위도 간음입니다. 결혼 한 이후에 다른 대상에 대해서 가지는 모든 마음의 음욕도 간음입니다. 결혼 전 처녀 총각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에 음욕을 품는 다면 그것도 간음입니다.
- 남녀 사이를 벗어나는 동성애, 수간, 시간, 관음증, 등등 모든 종류의 음란한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간음입니다.
- 섹스어필하는 현재의 세상의 문화속에서 우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음란에 파묻혀 지옥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 인생의 상황은 개별적으로 판단되고 해석되어야 하겠지만, 인생 전체에 대해서 간음에 대해 경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말씀을 귀에 거슬린다 듣지 않으면 다른 말씀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가 올 따름입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오직 따라 순종할 것을 가르치신 주님의 규례와 법도대로 아무리 이 시대가 성에 대해서 관대하고 이혼과 재혼에 대해 폭넓은 해석을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준을 삼아야만 할 것입니다.
- 주님이 이렇게 엄격하게 기준을 제시하시면서 우리가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간음을 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영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맹세에 대해서
- 맹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누구를 위함입니까? 하나님을 위한 맹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만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자신의 어떤 맹세를 성취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 당시의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이 하늘로, 땅으로, 예루살렘으로, 자신의 머리를 밀면서 맹세를 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것이 매우 종교적인 행위로 인식되던 상황에서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되지 못함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 오늘날 주님께 헌신한다는 것, 혹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슨 맹세를 한다는 것 등등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지 능력있는 사역이 아닙니다. 그 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어떤 것도 주님은 그 중심을 파악하십니다. 교회의 부흥이라는 것도 그 본질과 어긋나는 것이라면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는 영역이 됩니다. 주님은 도무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적용 :
1) 간음에 대해, 음란에 대해 경계하시는 주님의 음성,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오직 하나님 한분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우리 인생의 본질에 대해 하나님 앞에 분명히 반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아내 외의 다른 존재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일, 무슨 업적을 세운다 하더라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아내 외의 다른 대상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내가 건강을 잃었고, 깊은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이 과정을 허용하신 하나님께서 아내를 불쌍히 여기시고 온전한 회복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겠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2) 맹세. 맹세의 영역은 전지와 전능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맹세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유한한 존재로서 초월적 존재를 의지하여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러한 것을 하지 말라십니다. 이유는 그 이유와 목적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 앞에서는 순종이 있을 따름이지 하나님과 계약을 한다던지, 내고를 한다던지 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일이 아닙니다.
3)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지는 심령들에게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소유하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누구 앞에서도 옳은 것을 옳다, 아닌 것을 아니다 말하고 그 결과가 어찌하던지 감내하는 용기. 그런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통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말씀을 통해 가늠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4) 고대안암병원 중환자실에서 나와 1인실에서 가족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님 은혜가 큽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