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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 10-14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본문 10-14절은
“⑩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⑪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⑫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⑬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⑭셋째 강이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강은 유브라데더라” 입니다.
이미 창세기 1:1절에서 선언되고 2:1절에서 거듭 선언된 것처럼 천지와 만물의 근원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땅이건 물이건 빛이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생명의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1. 성경이 에덴을 설명할 때에도 온통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라 합니다.
땅 위에 생명이 존재하려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내림이 전제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빛의 내림이요, 물의 내림으로 비유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내림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 안에 영혼을 넣으심으로써 가장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생명의 내림으로 예비 되었고 가장 확실한 생명의 내림의 방식으로 사람이 예비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게 하시려고 동산을 예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동산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생령의 사람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이렇게 에덴동산은 인간이 생존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누리는 곳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였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창출하신 지혜의 작품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고장난 어리석음의 소치입니다.
① 에덴은 발전의 여지를 두신 땅입니다.
② 육적 생명과 아름다운 정서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③ 그 동산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영적 생명을 누리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생명나무는 그 동산의 핵심 성격이 하나님의 생명 누림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④ 하나님의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어떻게 받으며 어떻게 누릴 것인가? 가 상징으로 예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악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누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시에 있게 하셨습니다.
⑤ 에덴 동산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내림, 곧 비 내림이 전제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강은 사방으로 흘러 온 땅을 적시었습니다. 본문을 따라가 보십시다.
2. 모세는 한 강이 흘러 동산을 적시고 곧이어 네 지류로 갈라진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 중에 두 강이 유브라데강과 디그리스강이라고 생각합니다. (힛도겔)이 디그리스강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많은 사람은 비손강과 기혼강이 갠지스강과 나일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오류는 이 두 강의 위치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로써 충분히 반박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다뉴브강이라고 비약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마치 한 사람의 거주지가 아시아의 가장 외진 곳으로부터 유럽의 극지까지 뻗쳐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말하는 지역에 다른 강이 흐르므로 지금은 그 이름이 쓰이지 않지만 이 강 가운데 두 강을 가리킨다고 믿는 사람들의 견해가 타당성이 큽니다.
모세는 동산을 흐르는 한 강을 네 지류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브라데강과 디그리스강의 원천은 서로 멀리 떨어진 것처럼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지구의 표면이 대홍수에 의해 변모했을지도 모른다고 대범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강의 줄기가 막히고 변경되었으며 그 근원도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설이 결코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이 저주받았을 때부터 본래의 아름다움이 처참하게 더럽혀지고 슬픔과 애통의 도가니로 전락했으며 급기야 대홍수에 의해 많은 곳이 처참한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이 땅이 태초에 창조되었을 때와 똑같은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더욱이 모세는 자신의 지형학적 이론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그리스강과 유브라데강이 한 강에서 갈라졌음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알아내는 사실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먼저 샘이나 원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강이 하나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네 개의 강줄기가 강이 발원되는 곳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브라데강이 디그리스강과 합류하여 공식적으로 한 강을 이루었으므로 네 지류로 나누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모세는 모든 사람에게 명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확하고 철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1장에서도 해와 달을 2개의 큰 광명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것은 달이 크기에 있어서 다른 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큰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모세는 강이 그곳에서 갈라져 흐르므로 네 지류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하여 전혀 의심을 품지 못하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의 위쪽이나 아래쪽을 막론하고 합류된 하나의 강줄기에서 그 지류가 나누어지지 않았다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이제 여기에 제시하는 지형의 지도를 보면 신자들은 우리가 에덴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바로 모세가 가리키는 위치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3. 실제로 플리니는 자신의 저서 제6권에서 유브라데강이 오르케니 때문에 강줄기가 막혀 디그리스강을 거쳐 흐르지 않으면 바다로 흘러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폼포니우스 멜라는 자신의 저서 제3권에서 이 강이 다른 강처럼 확정된 강줄기를 따라 흘렀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그 줄기가 가로막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네아르쿠스는 유브라데강 하구에서 바벨론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여 약 3천 3백 스타디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가 자기 함대 지휘관으로 임명했고, 그의 재가를 받아 이 모든 지역을 항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디그리스 강의 하구를 수시아나 입구라고 합니다. 그는 이처럼 길고도 기념비적인 항해를 하고 돌아와 이 지역에서 자기 함대와 함께 왕을 만났는데 아리안은 이것을 알렉산더의 탐험대 8권에서 언급합니다.
스트라보도 이 설명을 자신의 저서 제15권에서 증거를 제시하며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브라데강이 땅속으로 잠식했거나 다른 강줄기와 합쳐졌든지, 디그리스강과 합류된 곳 아래에서 다시 나뉘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아리안은 자신의 저서 제7권에서 유브라데강의 한 지류가 디그리스강에 흘러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물이란 본래 위에서 아래로 흐르므로 많은 강과 시내가 흘러 들어갔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지형 지도에서 제시한 합류 지점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유브라데강이 역류하여 바벨론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프래펙트 코바리스가 온갖 노력으로 그 줄기를 유도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상당히 회의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보다더 믿을 수 있는 견해는 인간이 기술과 근면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따라 강줄기를 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유브라데강이 더 높은 곳에서 제멋대로 디그리스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더욱이 폼포니우스 멜라는 세미라미스가 디그리스강과 유브라데강을 메소보다미아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소보다미아는 그 이전에 물이 없던 곳으로 이 역사는 결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스트라보가 자신의 저서 제11권에서 설명하는 것은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주의 깊었는데, 이 두 강이 바벨론에서 합류되며 그 후에는 각기 나누어져 흐르다가 홍해로 빠져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합류된 지점을 바벨론 위쪽이라고 이해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플리니의 저서 제5권에서 볼 수 있듯이 마시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거기에서 한 강은 바벨론을 통해 흐르고 다른 강은 실루기아를 지납니다. 그런데 바벨론과 실루기아는 가장 부요했고 유명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지점을 디그리스강과 유브라데강이 합류된 곳이며, 그것은 자연 그대로이며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의문점이 풀릴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온갖 과실의 풍성함과 그 맛과 다른 모든 선물이 그토록 뛰어난 곳이 있다면 그곳은 작가들이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곳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에덴동산에 대해 묘사하는 찬사는 이 지역에 대해서도 해당이 됩니다. 에덴 지역이 그 일부분에 위치했다는 것은 이사야 37장 12절과 에스겔 27장 23절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강이 발원하여’ 라고 말할 때 지류의 흐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담이 강둑이나 양쪽으로 물이 흐르는 땅에 살았었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낙원을 강의 양쪽 둑이라고 생각할 경우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바벨론과 실루기아로 흐르는 합류된 강줄기 아래쪽에 살았든지 그 상류에 살았든지 큰 차이는 없습니다. 단지 그가 물이 풍족한 곳에 살았었다는 사실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강이 네 갈래로 나누어진 것도 우리가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줄기로 흐르다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강이 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합류되는 지점에서는 강이 하나이지만 상류에서는 수원지가 둘이며 바다 쪽으로도 강줄기가 둘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강은 더 많은 지류를 이루다가 바다로 흘러갑니다.
4. 그러나 비손과 기혼이라는 명칭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 강마다 이름을 이중으로 붙인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이 흘러가면서 지역에 따라 명칭이 바뀌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어떤 구별의 표시가 있는 곳은 더욱 그렇습니다. 플리니의 주장에 의하면, 디그리스강도 수원지 부근에서는 ‘디글리토’ 라고 불리지만 여러 갈래의 지류를 이루다가 다시 합류되는 곳에서는 ‘파시티그리스’ 라고 불려집니다. 그러므로 합류된 후에 다른 이름이 붙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주 막연한 주장은 아닙니다. 더욱이 비손과 기혼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습니다. 파시티그리스가 고대 호칭의 흔적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퀸투스 쿠르티우스의 제5권에는 알렉산더의 탐험대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거기에는 파시티그리스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본에는 그것이 거주민에 의해 ‘파신’ 이라고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 세 강에 대해 묘사했다는 다른 상황은 이러한 추리와 부합되지 않습니다. 비손은 금이 생산되는 하윌라 땅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둘러싸였다는 것은 디그리스강에 정확히 들어맞는데, 그것은 꾸불꾸불한 디그리스강의 지류가 메소보다미아 아래를 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하윌라땅이 바사 인근 지역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모세는 25장에서 이스마엘 족속이 하윌라에서 술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했다고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술은 애굽에 인접해 있으며, 앗수르로 통하는 길이 지나는 곳입니다. 하나의 경계선인 하윌라는 또 다른 경계선인 술과 대치해 있으며 모세는 이 경계를 애굽 가까이에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앗수르를 향하고 있는 쪽에 경계를 둔 것입니다. 따라서 하윌라(다른 경계 지역)는 수시아와 바사쪽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이곳은 바사해를 향하는 앗수르 아래쪽에 위치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곳은 애굽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경계 지역 사이에서 살고 있는 여러 민족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언급된 느바욧 족속은 바사인들과 이웃해서 살고 있던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가 금과 보석에 대해 설명한 모든 것은 이 지역에 적용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합니다. 기혼강은 아직도 논의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모세는 이 강이 구스땅에 물을 공급했다고 말합니다.
주석가들은 이 단어를 ‘구스’ 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미디안 족속의 땅과 아라비아의 인접 지방을 똑같은 이름에 포함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내는 구스 여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유브라데강 하류가 그 지역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거기에서 기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여기에서 뜻하는 것은 아담이 소유한 땅이 물 좋은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이 그곳을 지나다가 나중에 네 갈래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5. 에덴은 참 생명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곳이요, 생명의 내림이 있고 가득한 생명이 머무는 곳이고 그 생명 확산되는 곳입니다.
그 땅의 안팎으로 각종 귀금속과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땅입니다. 아름답고 참 생명의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 가치는 계시록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상징하는 셈입니다. 이처럼 에덴 동산은 모든 물의 근원, 곧 참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주변의 보석들과 동산 안의 온갖 나무들로 인하여 형용키 어려울 만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동산에 대한 묘사는 그 당시에나 1차 독자들에게나 오늘날 우리들에게 까지라도 생명의 동산이며 참으로 가치 있고, 아름다움 삶의 터전으로 강조되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이렇게 에덴은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이 잘 반영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이 잘 반영된 곳입니다.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복이 잘 반영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