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齊人伐燕 取之 諸侯將謀救燕 宣王曰 諸侯多謀伐寡人者 何以待之 孟子對曰 臣聞七十里爲政於天下者 湯是也 未聞以千里畏人者也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취하자, 제후들이 장차 연나라를 구할 것을 모의하더니 제선왕이 (맹자에게) 말하기를, “제후들이 나를 치려고 모의하는 자가 많으니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하니, 맹자께서 대답해 말씀하시기를, “신은 70리의 작은 나라를 가지고 천하에 정사를 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니, 탕왕(湯王)이 바로 그러한 분입니다. 그러나 천 리나 되는 큰 나라를 가지고 남을 두려워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千里畏人, 指齊王也. 천리의 땅을 가지고도 남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제나라 왕을 가리키는 것이다. 新安陳氏曰 七十里爲政千里畏人 立兩句爲柱 下文分兩節應之 신안진씨가 말하길, “七十里爲政과 千里畏人의 두 구절을 세워서 기둥으로 삼은 다음, 아랫글에서 두 절로 나누어서 그에 대응시켰다.”라고 하였다.
2 書曰 湯一征 自葛始 天下信之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 曰 奚爲後我 民望之 若大旱之望雲霓也 歸市者不止 耕者不變 誅其君而弔其民 若時雨降 民大悅 書曰 徯我后 后來其蘇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이르기를 ‘탕왕께서 첫 번째 정벌을 갈(葛)나라로부터 시작하시자, 천하가 그를 믿었으므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하여 정벌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시는가?」 하여, 백성들이 탕왕께서 정벌해주시기를 바라되, 마치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는 듯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시장에 가는 자가 멈추지 않고 밭 가는 자가 동요하지 않았는데, 탕왕께서 정벌하시어 그 포악한 임금을 죽이고 그 백성을 위로하시는 것이 마치 단비가 내린 것 같아서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다.’ 하였습니다. 《서경》 〈중훼지고〉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님을 기다렸는데, 임금님께서 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소생하게 되었도다.’ 하였습니다. 霓, 五稽反. 徯, 胡禮反.
○ 兩引『書』, 皆「商書仲虺之誥」文也. 與今『書』文亦小異. 一征, 初征也. 天下信之, 信其志在救民, 不爲暴也. 奚爲後我, 言湯何爲不先來征我之國也. 霓, 虹也. 雲合則雨, 虹見則止. 變, 動也. 徯, 待也. 后, 君也. 蘇, 復生也. 他國之民, 皆以湯爲我君, 而待其來, 使己得蘇息也. 此言湯之所以七十里而爲政於天下也. 두 차례 인용한 서경은 모두 상서 중훼지고에 있는 글이다. 지금 서경의 글과 약간 차이가 있다. 一征이란 처음 정벌한다는 말이다. 천하가 그를 믿어주었다는 것은 그가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었을 뿐, 폭정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다는 말이다. 어찌하여 나를 나중에 하느냐? 라는 것은 탕임금이 왜 내 나라를 먼저 와서 정벌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霓는 무지개란 말이다.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보이면 비가 그친다. 變이란 동요한다는 것이다. 徯는 기다린다는 말이다. 后는 임금이다. 蘇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탕임금을 제 임금으로 여겨서. 그가 와서 나로 하여금 소생하여 안식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는 탕임금이 70리의 땅을 가지고도 천하에서 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까닭을 말한 것이다. 3 今燕虐其民 王往而征之 民以爲將拯己於水火之中也 簞食壺漿 以迎王師 若殺其父兄 係累其子弟 毁其宗廟 遷其重器 如之何其可也 天下固畏齊之彊也 今又倍地而不行仁政 是動天下之兵也 지금 연나라가 자기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하였는데 왕께서 가서 정벌하시니, 연나라 백성들은 자신들을 도탄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병에 음료수를 담아서 왕의 군대를 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왕의 군대가 부형을 죽이고 자제들을 잡아가며, 종묘(宗廟)를 부수고 중요한 기물(器物)들을 옮겨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하의 모든 나라가 진실로 제나라의 강함을 꺼리고 있는데, 지금 또다시 땅을 배로 늘리고도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累, 力追反.
○ 拯, 救也. 係累, 縶縛也. 重器, 寶器也. 畏, 忌也. 倍地, 幷燕而增一倍之地也. 齊之取燕, 若能如湯之征葛, 則燕人悅之, 而齊可爲政於天下矣. 今乃不行仁政而肆爲殘虐, 則無以慰燕民之望, 而服諸侯之心, 是以不免乎以千里而畏人也. 拯은 구해주는 것이다. 係累란 묶어매는 것이다. 重器란 귀중한 기물이다. 畏는 거리낀다는 말이다. 倍地란 연나라를 병합하여 한 배의 땅을 늘린다는 말이다. 제나라가 연나라를 취함에 있어, 만약 탕임금이 갈나라를 정벌한 것처럼 할 수 있다면, 연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기뻐할 것이고, 제나라도 천하에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도리어 어진 정치를 행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잔학한 짓을 한다면, 연나라 백성들의 소망을 위로해주고 제후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가 없는데, 이런 까닭으로 천리나 되는 땅을 가지고도 남을 두려워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4 王速出令 反其旄倪 止其重器 謀於燕衆 置君而後去之 則猶可及止也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연나라의 노약자(老弱者)들을 돌려보내시고, 중요한 기물들을 수송해 오는 것을 중지하시고, 연나라 백성들과 상의해서 군주를 세워준 뒤에 떠나오신다면, 전란이 일어나기 전에 중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旄與耄同. 倪, 五稽反.
○ 反, 還也. 旄, 老人也, 倪, 小兒也. 謂所虜略之老小也. 猶, 尙也. 及止, 及其未發而止之也. 反은 돌려준다는 말이다. 旄는 노인이다. 倪는 어린아이다. 포로로 잡아온 노인과 어린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猶는 아직이다.及止란 그들이 미처 발동하기 전에 저지한다는 말이다.
雙峯饒氏曰 當時只是子噲子之爲亂 燕民自無罪 齊王只當誅子噲子之 別立君而去 不當取他國 這時只當定亂 定亂者取其亂者而誅之 如湯十一征不是全滅其國 取之則是蹊田而奪之牛 齊王殺其父兄 係累其子弟 毁其宗廟 遷其重器 是滅其國了 쌍봉요씨가 말하길, “당시에는 그저 자쾌와 자지가 어지럽게 하였을 뿐이지, 연나라 백성들은 스스로 죄가 없었다. 제나라 왕은 그저 마땅히 자쾌와 자지를 주살하고서 별도로 임금을 세워주고 떠나야 했을 뿐, 다른 나라를 취해서는 안 되었다. 이때에는 그저 마땅히 혼란을 안정시켜야 했을 뿐이다. 혼란을 안정시키는 자는 그 혼란을 야기한 자를 취하여 주살하는 것이니, 예컨대 탕임금이 11번 정벌했어도, 그 나라를 모조리 멸망시킨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를 취한다면, 곧 밭을 짓밟고서 그 소를 빼앗는 것이다. 제나라 왕은 그 부형을 죽이고, 그 자제를 묶어서 끌어왔으며, 그 종묘를 훼손하고, 그 귀중한 기물을 옮겨왔으니, 이것은 그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是爲齊畫一策 如此區處 略無所利於燕 庶幾湯誅君弔民 非富天下之爲 則可逆止諸侯之兵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것은 제나라를 위하여 한가지 계책을 세워준 것이니, 이와 같이 구구하게 대처하여 약간이라도 연나라에 대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바가 없어서, 거의 탕임금이 폭군을 주벌하고 백성을 위로했을 뿐 천하를 탐낸 행위가 아닌 것처럼 한다면, 제후들의 병력동원을 미리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范氏曰: “孟子事齊梁之君, 論道德則必稱堯舜, 論征伐則必稱湯武. 蓋治民不法堯舜, 則是爲暴; 行師不法湯武, 則是爲亂. 豈可謂吾君不能, 而舍所學以徇之哉?” 범씨왈,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의 임금을 섬겼는데, 도덕을 논하면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언급했고, 정벌을 논하면 반드시 탕임금과 무왕을 언급했다. 대개 백성을 다스리면서 요순을 본받지 않으면 이것이 포악한 정치가 되고, 군사를 부리면서 탕임금과 무왕을 본받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반란이 되기 때문일 게다. 어찌 내 임금은 능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서 내가 배운 바를 버리고 그를 따라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范氏發明孟子此意甚好 蓋莫非道也 而堯舜之道 則正道也 莫非師也 而湯武之師 則天討也 集註又益以豈可謂吾君不能而舍所學以徇之哉一句 尤爲有功於學者 此萬世臣子事君之大法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범씨가 맹자의 이 뜻을 드러내어 밝힌 것은 대단히 좋다. 대체로 道가 아닌 것이 없지만, 요순임금의 道가 곧 올바른 道다. 군사동원이 아님이 없지만, 탕왕과 무왕의 군사동원이야말로 곧 하늘의 토멸인 것이다. 집주에서는 또 ‘어찌 내 임금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서 배운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서야 되겠는가?’라는 한 구절을 보탰는데, 더더욱 배우는 사람에게 공이 있는 것이 되었다. 이것은 만세에 이르도록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큰 법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