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편 ] 유작가와 신선수 -13-

[달다란]

"어..어떻게 알았어? "

"왜 못 본 체 하냐고. "

"아니. 둘이 중요한 얘기 하는 것 같아서. 하핫. "

"그런 거 아냐. 기다려. 같이 가자. "

"아냐. 아냐. 난 정미랑 선약이 있어서. "

"우리 사이에 선약은 무슨. 어머! 마침 우리 PD 호출이네. 대체 이 놈의 회의는 지겹게 왜 허구헌날 하는거야. 은호야. 미안한데

 나 가봐야겠다. 도훈씨 그럼 은호 잘 부탁할게요. 믿고 가요. 호호호. "

뻔히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면서 홀연히 사라지시는 우리의 김정미양. 니가 보증 한 번 잘못 서서 고생하는구나.

"저기...도훈오빠. 누구? "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정지수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대화를 나누는 통에 기다리다 지쳤는지 결국 먼저 말을 꺼낸다.

"알 거 없어. 이거 돌려줬으니까 나 간다. "

뭐야. 지금 나는 알 거 없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는 거야?

"그냥 가려고? 그러지 말고 밥이라도 같이 먹자. 아님 술이라도 같이 한 잔 하던가. 응? "

"너 바빠서 시간 없다고 여기까지 가져다 달라는 거 아니었냐. "

"저 그게...아! 갑자기 스케줄이 펑크났어. 나한테 시간 좀 내주라. 응? 언니! 언니도 같이 가요. 네? "

정미양도 그렇고 정지수도 그렇고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어쩜 저렇게 해대는지. 그냥 신선수 불러 낼 핑계가 필요했다고

할 것이지. 청순가련은 잘 포장된 이미지인건지 방송에서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정지수.

아니. 그리고 언제 봤다고 언니야? 난 너같은 동생 둔적 없다. 누구 맘대로 우리 집 족보를 바꾸냐 이거지.

내 눈에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 신선수 눈에는 안 보이는 건지. 결국은 정지수의 말에 동의한 신선수.

뭐? 쭉정이가 아냐? 아니긴. 쭉정이 중에서도 대왕 쭉정이다. 대왕 쭉정이!!

"저기. 난 몸이 안 좋아서 그냥 가야겠는데. 둘이 가. "

"언니.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언니 같이 안 가면 도훈 오빠도 안 갈거란 말이에요. 네? "

활짝 웃는 얼굴의 정지수지만 눈이 앙칼지게 보이는 건 나뿐일까?

결국 정지수의 눈빛에 작아진 나는 끌려가고 있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 깨지도 않았건만 다시 오게 된 술집. 유명인사들이

주로 다니는 곳인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인테리어에, 비싸 보이는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비싼

술을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있다.

니들은 아주 돈들이 썩어나는가 보구나.

"은호언니. 너무 이쁘게 생겼다. 인기 엄청 많을 것 같은데. 그죠? "

"아니. 인기는 무슨. "

어느 새 은호'언니'가 되어버린 나. 요즈음 청순가련형 여자들은 어찌나 붙임성도 뛰어나신지.

영양가 없는 대화들로만 1시간 째 버티고 있는 우리 세사람.

"언니. 있잖아요. 내가 도훈오빠한테 좋아한다고 했더니. 오빠가 뭐랬는 줄 알아요? "

"....."

갑작스런 정지수의 질문에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못하자, 애초에 내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얼른 제가 말을 이어간다.

"글쎄. 오빠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미안하다는 거에요. 언니는 혹시 누군지 알아요?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

"응? 하핫. 글쎄...."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이라는 정지수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거야? 훅 하고 불면 툭 하고 날아가버릴 것 같은 보호 본능을 200%

자극하는 그 정지수를? 흠. 지수동생의 말에 왠지 모르게 비실 비실 입가로 웃음이 새어 나오려해 입을 꽉 앙다물고 참고

있는데 신선수의 한 마디가 내 입을 쫙 벌어지게 한다.

"이 여자야. "

"뭐라구? 오빠 정말이야? 정말로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은호언니란 말이야? "

어이. 이봐. 동생이 당황스러운건 알겠는데. 그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는 살짝 기분이 나쁜데? 신선수 같이 잘난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게 이상하다는 거야, 아님 동생을 거절한 신선수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마음에 안 드는거야? 내가

만만해 보이는 건지 만만한 건지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정지수.

"그래. 그러니까 우린 이제 일어난다. 이 여자 지금 술이 덜 깨서 제 정신이 아니다. "

"오빠! 설마 사귀는 건 아니지? 응? "

"이 여자가 안 넘어오네. 암튼 난 이 여자 데리고 갈테니까 너도 매니저 불러서 얼른 가라. 계산은 내가 할게. "

"응...오빠. 연락할게. "

멍해 있는 지수동생만을 남겨두고, 나를 끌고 가는 신선수.

"아파. "

"응? "

"손목. 아프다구. "

"아. 미안. "

내 손목을 너무 꽉 잡고 있었던 탓에 내 손목이 발갛게 부어 오르려 한다. 하지만 막상 신선수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아프던

손목이 이상하게도 더 시려온다.

말 없이 운전하고 있는 신선수와 역시나 말없이 창 밖만 바라보고 있는 나. 다시 어색해진 우리 둘 사이.

어느 새 우리 집 앞에 도착한 신선수의 차.

"고마워. 나 갈게. "

"........"

아무 대답도 없이 앞만 보고 있는 신선수는

털컥-

내가 차문을 열고 내릴 때 까지도 아무 말이 없다.

탁-

부웅-

차문을 닫기가 무섭게 출발하는 신선수의 차.

뭐야.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냐구. 정말로 어젯밤 일을 기억 못하는 건가? 아님 모르는 척 하는 건가?

뭐냐구. 이게!!!!

집에 들어와서도 분한 기분이 삭혀지지 않는 나는 차가운 생수를 벌컥 벌컥 들이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분한 기분이 드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한 건 어쩔 수 없다 이거지.

도저히 그냥 잠이 들 것 같지가 않아 김정미양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 나 술 땡긴다. "

"뭐야. 너 지금 도훈씨랑 있는 거 아냐? "

"아냐. 그러니까 나 술 사주라. "

"어떻게 된거야. 내가 일부러 자리도 피해줬구만. "

"술 사줄거야. 안 사줄거야. 것만 말해. 아님 딴 사람 한테 전화하게. "

"알았어. 알았어. 족발집에서 만나. 나 10분이면 도착할거야. "

정확히 10분 후 족발집.

"이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설명을 해보라구. 도훈씨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정상인데 어째 나에게 술을 사달라는

건가. 친구. "

"몰라. 나 술 땡긴다구. 술이나 빨리 시켜줘. "

"이게 진짜. 아침엔 해장국 사다 달래서 사다 줬더니 저녁엔 또 술을 사달래네. 참 나. "

김정미양의 잔소리도 못 들은 체 하고는 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자. 짠~~! 마셔. 오늘은 마시고 죽는거야. 알았지? "

어제 했던 대사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기분은 어제와 하늘과 땅끝차이 만큼이나 다르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니 슬슬 속내가 튀어나오는 이 놈의 입.

"정미양. 정미양아. 니가 틀렸어. "

"뭐가? 뭐가 틀렸다는 거야? "

"쭉정이더라구. 쭉정이. 것도 대왕 쭉정이. "

"어쨌든 넌 도훈씨랑 사귈 맘 없는 거잖아. 아냐? "

"쳇. 어제 키스도 해놓고. 정미양아. 있잖아....나 어제 신선수랑 키스했다? "

취기가 돌면서 이 놈의 입이 할 말 안 할 말 구분을 못하고 뱉어내기 시작한다.

"....뭐? 키스? 이것들이 할 거 다 해놓고 뭐하는 거야. "

"엉. 키스. 흐흐. 키스했어. 달밤에. 것도 아주 달달하니. "

"어이구. 어이구. 좋아 죽는 구만. 키스도 하고 할 건 다하면서 사귀는 건 안하는 저의가 뭐야? "

"근데...근데...그 놈이 나랑 키스 해 놓고. 그래놓고는 정작 본 체도 안한다? 나쁜 놈. 그지. 나쁜 놈이지? "

"......."

나의 두서없는 말들에 지친건지 이제는 대답도 않는 정미양.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나.

"정미양. 정미양아. "

".........."

"야. 왜 대답이 없어? 내 말 듣고 있는거야? "

"휴. 그래 듣고 있으니까 얘기 해. "

"나....있지.나.....신선수가 좋아진다? 그래서 무서워. 난 이기적이고 욕심도 많아서 나중에는 신선수가 나 싫다고 할까봐.

나중에는 나 뻥 차버리면 어떻게 해. 응? "

"안그래. 도훈씨 그럴 사람 아닌거 너도 알잖아. "

취해서 정신없는 나의 말에도 진심으로 답해주는 정미양. 착한 내 친구.

"그럴까? 신선수는 너무 잘나서 내가 너무 초라하잖아.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만큼씩 더 좋아지는데. 어떡하지?

정미양아. 나 어떡할까? "

"어떡하긴. 좋으면 사귀는거지. 너 드라마 작가 한다더니 니가 왜 드라마를 찍고 그러냐. 그냥 사겨. 나중에 놓치고 후회

하지 말고. "

"나쁜 놈! 키스도 해 놓구선. 오늘은 딴 여자나 만나고. 나 좋다구 해 놓구선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청순하고 이쁜 여자

만나선 흔들리기나 하고. 쭉정이!! 완전 대왕 쭉정이!! "

"흔들리긴 누가 흔들렸다는 거야. "

엥? 갑자기 왠 남자 목소리? 얼핏 들으니까 신선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고 올려다보니 훤칠한 키에 멋진 얼굴의 소유자인 신선수가 맞다. 취해서 헛걸 보나 싶어 고개를 흔들어 보아도 틀림없다.

아까 날 데려다주고는 휑하니 사라져버렸던 그 신선수가 맞다.

"어???? 어라??? 당신이 왜 여기에...."

"내가 그렇게 좋으면 진작 나한테 말하지. 왜 여기서 정미씨 괴롭히면서 그러고 있냐. "

"어? "

뭐야. 그럼 내가 정미양한테 한 얘기를 들은건가? 아씨. 취해서 이 얘기 저 얘기 다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들은거야.

설마...설마 키스 얘기도 들은 건가? 윽.

"어머! 마침 도훈씨가 와서 다행이다. 안 그래도 우리 순철씨가 만나자고 해서 가봐야했는데. 호호. 그럼 먼저 간다. 도훈씨.

이번엔 정말로 은호 잘 부탁드려요. 알았죠? "

오늘 두 번째로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며 또 사라지는 정미양. 다시 둘만 남게 된 신선수와 나.

취했던 술기운이 순식간에 달아나고 부끄러움만 남아있다.

"진짜로 어떻게 온거야? "

"어떻게 왔겠냐. 정미씨가 연락해줘서 왔지. "

"뭐? 아씨. 진짜 내가 못살아.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래. "

"쿡. 드디어 넘어왔네. "

"..........."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고맙다. "

"응? "

"당신이란 사람이 날 좋아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

"아. 그게....응. "

맞아. 이렇게 내 마음을 뱉어내니까 더 좋아지는 것 같아. 당신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 신선수. 나 당신이 더 좋아져.

"쿡.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당신은 모를거다. 정미씨한테 고마워해야겠는데? "

"쿡.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선수와 한적한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제 그 놀이터가 보인다. 애써 모른 척 하며 걷고 있는데

내 손목을 덥썩 잡고는 놀이터로 들어가는 신선수.

"놀이터는 왜...."

"쿡. 아까 키스해 놓고 모른 척 한다고 했던 여자가 누구더라? "

"아니! 그건! "

"당신 초라하지 않아. "

"응? "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은 절대 초라하지 않다고. "

".........."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것도 내가 먼저했어. "

".........."
"다른 여자는 쳐다도 안 볼게. "

".....고마워. 나...지금 너무 행복해. 신선수야. 그 동안의 시간들이 아까울 정도로 너무 행복...읍! "

갑작스레 입술을 덥쳐 온 이 남자. 어제 이 곳에서의 부드러웠던 키스와는 다른 열정적인 입맞춤이다. 신선수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지고 나의 설레임이 내 입술을 통해 신선수에게 전해진다. 입술이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는 우리의 대화.

"내가 더 행복해. "

"아냐. 내가 더..."

나의 말을 가로막는 뜨거운 입술.

"하아~ 정말 다른 여잔 쳐다도 안 볼거지? "

"응. 맹세. 맹세의 키스. 쿡. "

또 다시 가로막히는 나의 입술.

"근데. 이 여자야. 내가 왜 쭉정이냐? "

"아하핫. 그게. 난 당신이 지수동생이랑 그렇고 그런....읍! "

어이없는 나의 말에 격한 키스를 퍼붓는 이 남자.

이렇게 키스하면 나는....너무 좋단 말이지. 흐흐. 나에게 이렇게 밝히는 구석이 있다니. 신선수의 키스가 너무나도 좋다.

"난 그럴 일 없으니까 유작가 당신이나 딴 놈 쳐다보고 그러지 마. "

"응.....응! 안 그럴게. 절대로! "

"그래? 그럼 맹세의 키스를 해야지. 쿡. "

"또? 이제 그만 집에....읍! "

우리의 달달한 입맞춤이 멈추지 않는 달밤이다.

[이용약관에]

또 언제 다음편 나와요 기대기대 ! 빨리나왔으면좋겠다 힝,ㅜ

[키키하하]

담편기대요>< 얼른쓰세요!

[story가 조아]

키키키 대박 잘됐어요!!ㅋ

[NHolic]

키스키스키스 아악~ 내가더행복해진다...ㅎㄷㄷㄷㄷ

[keaikr]

너무 재미있어요~^^

[초코딸기우유]

드디어..ㅋㅋ 너무재밌어서 1편부터 요까이 한방에 읽어버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