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최면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최면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름과 같습니다. 최면 또는 최면 상태(催眠, Hypnosis, 그리스어의 잠을 뜻하는 hypnos에서 온 말)는 암시에 반응하는 능력이 향상된 몰입된 상태를 뜻한다. 내면에 몰입한 최면 상태는 '잠과 비슷한 무의식에 빠져든 상태'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면상태에 들어간 사람을 관찰해보면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 보이기도 하고, 또는 그를 그런 상태로 만든 사람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심리학회(APA)에서는 최면이 '암시(suggestion)에 반응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지엽적인 것들에 대한 의식은 감소하고, 초점화된 집중력을 누리는 의식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최면이라는 것은 어떤 최면술사가 어떤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서 그 사람의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있었던 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범죄자를 잡아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어떤 정신적인 질병을 고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 최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면술사가 아니라고 하면 사람을 최면에 걸리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에게 최면을 건다? 이것이 이해가 되시나요?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최면이라는 말을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최면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가치관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인생관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기 자신만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을 해 볼까요?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를 좋아 합니다. 어느 정도 삭아서 먹으면 코가 시큰해 질 정도가 되는 그런 홍어를 좋아 합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 외에는 이 홍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전라도 사람들은 이렇게 홍어를 좋아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홍어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홍어를 잘 먹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 볼까요? “나는 성공할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 책을 읽는 순간이나 어떤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나 또한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100%는 아닐지라도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최면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자기 최면은 어떨까요? “나는 부자가 될 사람이다.” 어떤 계기로 어떤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책을 통해서나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나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이 사람은 부자가 될 가능성이 정말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늘 그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의 잠재의식과 의식의 세계에서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런 말을 듣거나 그런 책을 보면 마음이 그 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마음과 뜻이 통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자주 어울릴 것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을 위해서 기도도 할 것입니다. 자 이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나는 이 사람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의식 세계에서든지 무의식 세계에서든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내 마음의 그 생각이 바로 내 인생을 만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의 생각을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