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옥천 막지봉(512m)
육지 속의 섬 막지리, 나룻배 이용 가능
빨갛고 파란 지붕을 얹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막지리. 이를 보듬어 안고 있는 산이 막지봉이다. 대청호 물빛 수면을 힘차게 차오른 400~500여m 산릉은 마치 천연의 요새처럼 우뚝하다. 오지 개척 산행의 특성상 차량이동과 교통편을 감안한다면 막지리에서 막지봉을 오른 뒤 다시 되짚어 내려오거나 장고개로 하산하는 코스가 무난하다. 거의 밑바닥부터 시작되는 오름길이 만만치 않지만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있고 전망대는 한껏 물오른 신록의 향연과 함께 가슴 가득 청량감을 선사한다. 산행을 함께 한 레저토피아 탐사대는 막지리가 아닌 옥천군 안내면 현리 탑산이 마을을 들머리로 잡고 임도를 이용해 부리기재까지 간 뒤 군북면과 안내면 면계능선을 통해 용문산과 막지봉을 연결하는 코스를 짚어 보았다.
옥천군 안내면 현리는 신라 때부터 고려 때까지 현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그래서 현리다. 한때는 현이 들어설 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했던 곳이었지만 모든 시골마을들이 그렇듯 사람들이 빠져나간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하다. 산행은 '신촌한울마을' 키다리 팻말이 서있는 탑산이마을 입구에서 작은 계류를 따라 시작된다. 여과 없이 토해내는 햇살이 따갑다. 금세 "덥다, 더워"를 연발하는 대원들, 10여분 걸었을까. 탑산이마을이다. 마을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걷는다. 신록의 찬란함이 드리운 걷기 좋은 길이다. 흐드러지게 농익은 오디열매가 갈 길을 붙잡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정신없이 오고가는 손길, 입안 가득 오디열매를 물고 있는 대원들은 그 시큼함에 진저리를 친다. 그 모습에 철부지 시절로 되돌아간 듯 까르르 숨이 넘어간다.
부리기재를 끝으로 산책길 같은 임도는 끝이 나고 우측으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오지의 등산로, 이 길의 주인은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다. '바스락 바스락' 손님맞이가 꽤나 수다스럽다. 게다가 오름길 또한 가풀막지다. 더운 숨 몰아쉬며 열심이건만 늘 그 자리 같다. 능선에 오르니 산길은 뚜렷해졌지만 오르막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게다가 위로는 나뭇가지가, 아래로는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뒤엉켜 날을 세운다. 자연스레 걸음들이 조심스럽다. 어느 순간 하늘을 덮었던 나뭇가지들이 걷히고 휑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전망대다. 발끝에 드리운 기막힌 정경에 모두들 넋을 잃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깊이감, 그 속에 장계리와 소정리, 석호리, 막지리, 용호리가 보이며 사이사이를 휘어 도는 대청호가 푸름을 뽐내고 있다. 그 위로 솟은 산들은 줄어든 물수위로 인해 드러난 속살이 수줍은 듯 아랫도리를 가린 채 엉거주춤 서 있는 것 같다.
산의 밑동을 거침없이 휘감아 돈 뒤 한곳에 잠시 머물다가 또다시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물길의 언어는 순응이다. 순응으로 빚어내는 그림은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든다.
갑자기 숲속이 시끄럽다. 어딘가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수많은 까마귀떼가 '까악 까악' 날아오르고 있다. 왜일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저 멀리 파란 하늘가를 유유히 날고 있는 매가 눈에 들어온다. 매로부터 새끼들을 지키려는 어미 까마귀들의 방어본능은 하나일 땐 작지만 여럿일 땐 크다. 지구상 모든 모성은 위대하다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숨이 멎을 듯한 풍광을 보여주는 조망턱은 그후로도 여러번 나타난다. 능선에 오른 다음 오른쪽으로 10분쯤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서있는 용문산이다. 그림처럼 박혀있는 안내면이 아기자기함을 드러내고 대덕산과 금적산, 그 뒤로 속리산에서 구병산에 이르는 긴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후 산길은 능선 왼쪽의 깎아지른 절벽 위로 이어진다. 37번 국도 주위로 겹겹이 포개어진 낮은 산들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 아담한 풍경 또한 계속된다. 이후 푸르름을 머금은 숲속터널이 나오는데 한낮인데도 어둡다. 간간이 열린 창으로 지나온 길을 감상하며 도착한 막지봉. 그러나 여기가 우리가 맞게 찾아온 것인지 혼란스럽다. 낡은 산불감시초소만 덩그마니 서있고 마구 자란 나무들로 조망도 쉼터도 여의치 않다. 얼마 있지 못하고 하산, 막지봉 아래 희미한 봉분이 남아있는 묘지가로 난 길을 따라간다. 길 위의 모든 것들이 쏟아질 듯한 가파름이 이어지지만 신작로다. 전망 좋은 곳으로 연결되는 샛길 또한 반지르르하다. 산나물 뜯는 사람들이 낸 발자국일까 아니면 산불감시초소로 출근하는 사람에 의한, 그것도 아니면 동물들의 발자국인가. 나름 분분하던 궁금증은 막지리에서 만난 주민에 의해 풀렸다. "지난해 도시에서 암투병 중인 사람이 들어왔어요. 그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막지봉을 오르내렸답니다." 이후, 그 환자는 많이 회복되었다고. 어쩌면 치유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지쳐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일지도...
끊임없이 이어지던 내리막길도 빨갛고 파란 막지리의 낮은 지붕과 만나며 끝이 난다. 막지리는 대청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을 피해 새로 생긴 마을. 지금은 여기에 20여 호 정도만 남아있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오지가 된 마을의 한낮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막지리의 원래 이름은 맥계. 보리밭이 많다 해서 우암 송시열이 지은 이름이다. 시간이 흘러서 '맥'이 '막'으로 바뀌었듯이 이제 이곳에서 보리밭은 찾아볼 수 없다. 강가엔 파리한 풀들만 무성하고 기다림에 지친 나룻배만 건들건들 졸고 있다.
*산행길잡이
안내면 현리-(25분)-탑산이-45분)-부리기재-(27분)-능선갈림길(막지봉/용문산)-(20분)-용문산(492m)-(1시간10분)-막지봉(512m)-(35분)-막지리
막지봉 산행들머리는 총 3군데다. 부리기재 임도를 따라 오르는 코스인 안내면 탑산이 신촌한울마을, 용문산을 거쳐 막지봉 능선길로 이어지는 502번 지방도 용촌리 밤티고개, 그리고 막지리 세 곳이다. 산길이 급경사를 이루고 뚜렷하지 않지만 마치 거대한 삼손의 손등처럼 생긴 장계리 산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부리기재 코스를 추천한다. 하산은 막지리나루터에서 배를 이용 소정리나 장계리 그리고 석호리로 향할 수 있는 것이 막지봉 산행의 또 다른 묘미다. 막지리는 겨우 차 한대 다닐 비좁은 구절양장의 험한 산길을 따라 산을 넘고 고개를 넘어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드넓은 보리밭이 햇빛에 일렁이고 군북8경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일출을 자랑하던 막지리는 대청댐 건설로 '육지 속의 섬'이 되어버린 곳이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막지리 주민인 이수길(011-9836-2600?, 010-8845-0101)씨가 관리하고 있는 배편은 막지리 주민들의 다리이자 길인 셈이다. 옥천으로 연결되는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정기적으로 운행을 하고 있는데 도선료는 대인 1,500원이다. 정기선 외 배를 이용하려면 미리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 후 방문해야 한다.
*교통
승용차로는 옥천나들목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뒤 보은 방면으로 37번 국도를 따라 약 8km가면 막지리나루터가 있는 소정리다. 다시 안내면 현리에서 502번 지방도를 따라 용촌리 밤티를 넘어서면 답양리 양지골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도로확장공사 중인 답양3교에서 장고개 삼거리를 지나 약 4km를 굽이굽이 돌다보면 막지리다.
대중교통은 옥천에서 월외리(06:39, 13:09, 19:09, 요금 2,200원)행 옥천시내버스(043-732-7700)를 이용한다. 소정리, 용촌리 밤티를 지나 답양리 양지골에서 하차한다. 옥천콜택시(080-732-5000)를 이용해도 된다. 보은에선 은운리행 군내버스가 하루 3회(09:00, 11:30, 15:30, 요금 2,250원) 다닌다.
*잘 데와 먹을 데
안내면소재지엔 바다네가든(석갈비 043-732-9697), 전원식당(732-1825), 나래식당(732-7713), 은성식당(732-6062), 산수파크(731-4728). 답양리 화골에는 가산식당(자연산 버섯전골 732-6535), 군복면 소정리에는 시와추억(돈까스 731-7747), 전망좋은집펜션(732-1142), 장계리에는 뿌리깊은나무(안심스테이크 731-0567), 국원리에는 진수성찬(인삼장어 732-6627), 대전가든(민물비빔회 732-5603), 샛강변가든(옻장어구이 733-3678), 장금이궁중칼국수(삼백초참옻닭, 삼백초포도작두콩칼국수 733-0142), 한솔파크(731-8384) 등이 좋다.
*볼거리
안내토기 안내면 현리에는 무공해 전통옹기를 한자리에서 4대째 만들고 있는 옹기장이의 집이 있다. 무공해 전통옹기 하면 '안내토기'라 할 만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안내토기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시대 마지막 옹기장이들이 모여서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안내토기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항아리부터 작디작은 간장종기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옹기제품들이 즐비하다. 전국에서 입소문 듣고 직접 찾아온 사람들이 현장에서 토기를 구입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직접 방문하면 방문자에게 옹기 제작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평생을 옹기 만들면서 잔뼈가 굵은 장인들이 전통옹기를 재래식 물레를 돌려가며 만드는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다. 732-6464.
둔주봉(384m) 둔주봉은 비단처럼 흐르는 금강이 빚은 한반도 지형이 일품이고, 호젓한 강변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있어 좋다. 둔주봉이 알려진 것은 사진동호인이 올린 한반도 지형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이에 발맞춰 안남면사무소에서도 산길을 내고 정자를 세웠다. 대청호둘레길 둔주봉 코스는 안남면사무소를 들머리로 한반도 지형이 조망되는 둔주봉 정자와 정상을 거친 후에 피실로 내려와 대청호를 따라 독락정으로 이어진다.
글쓴이:김웅식 청주주재기자
첫댓글 ^^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