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화투를 만들고 보급하면서 화투타령을 보급했다는 설과 우리나라사람들이 왜색화투를 치면서 자생적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마 일본사람들이 만들어서 보급하였다는 설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 황민화(惶民化)정책,
- 우민화(愚民化)정책,
- 국민정신해이(國民精神解弛)정책을 펼치기 위해 일제는 이 땅에 화투를 남겼는데
- 속업는 KOREAN은 고스톱 왕국까지 이룩하며 일제의 꿈을 지금도 잘 실천하고 있다.
일제시대 서민층에서 유행했던 '화투 타령'이다. 화투의 1(솔)부터 12(비)까지를 각 달과 연결시켜 식민지 백성의 '허무한 삶'을 읊고 있다. 일제시대 때 이미 화투가 서민층에게 널리 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들어 온 화투로 나라 잃은 백성의 무력감을 짙게 드러낸 것도 흥미롭다.
요즘에는 고스톱으로 대표되는 화투 노름이 서민의 일상에 뿌리내리면서 '국민 오락'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일제는 1945년 항복과 함께 이 땅을 떠났다. 그러나 일제가 뿌려 놓은 화투 노름은 일제와 함께 물러가지 않았다.
일본에서 새롭게 개발된 화투 노름이 들어와 '각광'을 받았다. 고스톱에 대표적인 경우다. 50년대 일본에서 개발돼 70년대 초에 이 땅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고스톱은 '설사' '쇼당' '독박 '등 언제 상황이 뒤바뀔지 모르는 규칙에 힘입어 노름 잡기 판을 석권했다.
일제가 식민지 시대 '저항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화투를 의도적으로 전파시켰다는 설이 사실이라면 셋만 모이면 고스톱을 친다는 우리의 모습은 일제의 애초 의도가 완벽하게 실현됐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네이버 지식 in 편집>
화투타령
정월 솔에 쓸쓸한 내 마음 /이월 매화에 매어 놓고 /삼월 사쿠라 산란한 내 신세 /사월 흑싸리에 축 늘어지네. /오월 난초에 나는 흰나비 //유월 목단에 웬 초상인가 /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 팔월 공산 허송한다. / 구월 국화 굳어진 내 마음 / 시월 단풍에 우수수 지네. / 동지 오동에 오신다던 님은 / 섣달 비 장마에 갇혀만 있네.
정월 석같이 서걱한 마음/ 이월 매조에 다 떨어진다/ 삼월 사구라 산란한 마음/ 사월 흑싸리에 흩어지고/ 오월 난초 나비/ 유월 목단에 춤을 춘다/ 칠월 홍다지 홀로 누워/ 팔월 공산을 구경하니/ 구월 국화 굳었던 마음/ 시월 단풍에 다 떨어진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정월솔카지 솔솔한 마음 이월매조 맺아놓고/ 삼월사쿠라 산란한 마음 사월흑싸리 허사로다/ 오월남초 나부가 날라 유월목단에 떨어지네/ 칠월홍돼지 홀로누워 팔월공산에 달이뜨니/ 구월국화 굳은마음 시월단풍에 떨어지고/ 오동삼십은 값많다하여도 비삼십만 못하더라/ 얼씨구절씨구 지화자가 좋네 아니놀지를 못하리라
"정월 솔가지 속삭인 마음/ 이월 매조에 매저나 놀고/ 삼월 사꾸라 산란한 마음/ 사월 흑사리에 흐처나보세/ 오월 난초에 놀던 나비/ 유월 목단에 춤을 춘다/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 공산을 바라보니/ 구월 국화에 맞은 사랑/ 시월 단풍에 다 떨어진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화투놀이나 해 보세"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