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8. <해금강 -외도보타니아 – 거제 고현시장 – 고성군립공원 상족암 >
나의 스물 셋과 남편의 스물아홉이 어우러져 부부가 되었다가 가족이란 묶음으로 함께 세상을 바라본지 마흔 해가 넘었다. 함께 흔들리면서 웃다가 울다가 엎치락뒤치락 세월 흘렀는가 하면 어느새 훌훌 날아 가버린 듯한 시간 같은데 벌써 마흔의 문턱에 턱 하니 발을 내딛는 아들을 보면서 이 혈연의 멋스러움에 한 지붕아래 사는 듯 자주 만나면서도 함께 여행을 떠날 때마다 설레임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각자의 일과 가정의 경제문제로 하여금 겨를 없이 지나갔건만 아마도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여유롭고 가족 모두의 에너지가 허락되어 좋을 때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더욱 지금이 소중하고 잠시 한순간도 귀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설 여행도 딸아이 가족은 강원도로 움직이고 우리는 아들아이와 동반하여 거제도에 있는 외도를 택했다. 가족이 모이면 운동을 중심으로 트레킹을 즐긴다거나 볼거리는 물론 많이 걷는 운동량을 고려하기도 한다. 특히 올 설 연휴는 아들아이의 결혼 전 세 식구만의 마지막 여행이 되기를 바라면서 연휴 시작의 아침 일찍 거제도로 향했다. 거제도에서 해금강 선상투어를 하면서 외도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해금강의 본래 이름은 갈도(葛島)라고 한다. 거제도의 남동쪽 끝자락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이 있는데 이곳 마을 이름이 갈곶리이고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 내린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하지만 예로부터 바다의 금강산을 뜻하는 해금강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거대한 산맥이 해수면 아래로 뻗어나갈 것처럼 해금강의 봉우리가 우뚝하기 때문이다. 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은 해금강을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겨울 해풍의 차가움이 만만치 않을 텐데도 승객들은 실내의 편안한 좌석을 비워 두고 갑판으로 몰려 나갔다. 파랗다 못해 멍이든 듯 시퍼런 해수면 위로 유람선은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며 나아가고 멀리서 아련하게 지워질 듯 다가오는 한려수도의 풍경을 눈에 담기에는 창문 하나도 거추장스러웠다. 해금강 본섬은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보이지만 크게 4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보기만 해도 아찔한 십자동굴을 만들어낸다. 4개의 물길이 있지만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것은 북, 동, 남쪽이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유람선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뱃전과 절벽 아랫자락을 파도가 철썩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동굴입구를 빠져나왔다. 유람선은 해금강을 뒤로하고 외도를 바라보며 다시 속도를 올린다. 외도 보타니아는 이제 거제도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곳이다. 선인장, 병솔, 코코아야자, 가자니아, 선샤인 등 3,000여 종의 수목이 섬의 지세와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해상공원을 연출한다. 한류스타 배용준과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곳 외도에서 촬영돼 해외 관광객들까지 불러들이고 있어 명실상부한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해금강에서 약 15분쯤 달려왔을까, 한겨울인데도 유난스레 푸른빛을 띤 섬 하나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섬 전체의 수목 가운데 90%가 상록수로 조성돼 있는 만큼 외도는 사시사철 초록빛을 잃지 않는다. 보통 식물원은 주변이 온통 산과 푸름이라면 외도보타니아는 기본 배경이 바다이면서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자잘한 섬들이 이국적이다. 배에서 내려 정문을 지나면서부터 외도에서의 산책은 시작된다.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조금씩 섬의 정상 부분으로 올라가도록 코스가 구성돼 있다. 새하얀 회벽으로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건물들과 넘실거리는 바다 저편으로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내는 남해의 섬들, 그리고 공원을 은은하게 감도는 음악은 우리들의 일상을 우리가 떠나온 거리보다 더 먼 곳으로 실어간다. 섬 바람을 막아주는 아왜나무 8천 그루와 멋진 정원수가 어우러진 곳에서 섬 외도에서 주어진 자유의 2시간은 충분한 인생의 여유와 힐링이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열정이 이토록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어 1년이면 2천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이 다녀간다니 지체 없이 찾아온 이번 여행지에 충분히 만족했다. 외도 관광을 마치고 거제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 쯤 되어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평소 동네 오일장 구경도 좋아하지만 어느 지역 여행 중이라도 꼭 들러보는 것이 그 지역의 5일장이다. 마치 설 대목이라 장안은 더욱 볼만할 것이기에 거제도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고현시장을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예약했던 숙소를 지나 30여분 쯤 달려간 고현시장은 생각보다 규모도 작을뿐더러 잘 정비되어지지 않은 듯하였고 우리는 시장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내일 계획한 고성 상족암 투어를 위하여 숙소에 들었다. 상족암은 남편과 함께 다녀온 낯익은 곳이다. 고성군립공원이지만 국립공원 버금가는 훌륭한 풍광이 아름다워 아들아이와 함께 다시 한 번 오고 싶었던 곳이다. 물론 거제에서 귀가하는 길목에 들러보기 좋아서 이번 여행지에 포함했었다. 항상 아름답다고 기억에 저장되어진 곳은 다시 찾아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곳 상족암은 일명 '쌍발이'라고도 불리는데 수만 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듯한 수성암 절벽이 우뚝 솟아 있어 마치 변산 반도의 채석강을 옮겨 놓은 것처럼 기묘하고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또한 상족암 부근의 동굴 바닥에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어서 마치 공룡이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형태를 보여 준다. 이 발자국 화석은 지난 1982년 경북 대학교 양승영 교수 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성 상족암 군립공원은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발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지역으로 밥상다리 모양 같다하여 상족 이라 부른다고 한다. 날씨는 맑았으나 미세먼지로 가득한 이날 남해안 한려수도를 한 눈에 볼 수는 없었으나 해변을 따라 공룡 화석 발자국을 내려다보며 공룡박물관을 종착지로 맥전포항을 시발점으로 정해 걸어보았다. 주상절리와 같은 데크 위를 걷는 것은 해변 따라 상족암군립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에 덕명항, 입암항, 맥전포항을 잇는 공룡화석지 해변길(3.5km)에 속한다. 우리는 여유로운 어촌풍경을 간직한 맥전포항에서 공룡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왕복 약 4㎞ 구간을 걸었다. 길을 걷는 이에 따라 출발장소를 공룡박물관으로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날은 설 연휴로 인하여 공룡박물관은 휴관이라 그냥 지나 원점회기 하여 집으로 향했다. 늘 돌아오는 길에 몸이 나른한 만큼 마음은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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