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99%의 나른한 생명체 옆에 0.001%의 '남과 틀리고, 남과 다르고, 어울려야 할 동족과 어울리지 않고 어울리지 않아야 할 대상과 어울리는 그런 별종들'이 있다.
전쟁이 나면 매국노가 생기고, 결혼해도 불륜을 저지르며, 학생이 되어도 공부 대신 딴짓을 하다 퇴학 당하고, 군에 가서도 상사를 쏘아죽이거나 적에게 귀순하며, 직장에 들어가도 스파이짓을 하거나 동료나 사장을 고소고발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무슨 말을 하면 엉뚱하게 이해하고 벌컥 화를 내는 등 이 세상에는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불가능한 사람들 아니, 사람얼굴을 한 개체들이 있다.
미친 놈 혹은 미친 년, 또라이새끼, 정신나간 년 혹은 놈, 사이코패스, 자폐증, 정신분열증, 무능력자, 워커홀릭, 이들을 부르는 별명은 무수히 많다.
그렇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쓸모없는 존재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들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의 숨은 조상이요, 진화의 주역들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통해, 아마도 수억 년의 길고 지루하고 끈질기고 아슬아슬한 긴 역사를 통해 오늘의 모습을 우연히 갖추었는데 그런 중에 앞에서 말한 별종들이 고비마다 등장했다.
어류면 바닷속에 살 일이지 그 중 어떤 별종인지 미친 물고기인지 기어이 물밖으로 나와 땅에서 살려고 발버둥쳤다. 처음에는 죽었을 것이다. 또다른 별종 누군가 또 그 짓을 따라하고, 그렇게 천만 번, 백만 번 또 시도하다 말라죽고 숨막혀 죽고, 그러다 1억 년쯤 지나 마침내 누군가 땅에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육상동물의 시작이다.
포유류인 고양이는 조류인 새를 보면 무조건 잡아 먹으라는 기초 프로그램을 안고 있다. 그래서 모든 고양이들이 새만 보면 잡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중에서 아주 별난 놈이 새를 잡아먹지 않고 친구로 삼았다. 날개를 쓰다듬으며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자신의 편도체에 기본 로직으로 새겨진 명령어 '새는 다 잡아먹어라'. '새는 우리의 먹이다' 이런 절대불문율의 코딩을 어기고 그만 새를 보호하는 고양이가 된 것이다. 이런 고양이(포유류)의 머리에 혹이 생기고, 그 혹에서 영장류 뇌인 대뇌가 생기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래 동영상은 한 별난 사자 이야기다.
어미 잃은 새끼누가 아직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던 중에 암사자에게 잡힌다.
막 태어난 새끼누는 무엇보다 배가 고프다. '배 고프면 가장 가까이 보이는 암컷 누의 젖을 빨라'는 편도체 명령에 따라 새끼 누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암사자가 어미 누인 줄 착각하고 자꾸만 치댄다. 아마도 이 순간 암사자의 모성애가 불현듯 자극되었을 것이다.
모성애는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할 때 모든 포유류의 편도체에 매우 강하게 각인된 본능이요, 바꿀 수없는 기본 로직이다. 새끼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해야 한다는 포유류 절대불변의 법칙으로 정해져 있다. 파충류와 포유류의 차이는, 파충류는 모성애라곤 일점도 없지만 포유류는 제 목숨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암사자는 순간 착각을 했든, 편도체의 신경세포가 계산 오류를 냈든, 아니면 이 어린새끼를 먹는 건 미안하다고 생각을 했든 그만 새끼누가 하는대로 내버려 둔다. 그러다가 새끼누가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방치한다.새끼누는 부드럽고 맛있는 먹을거리라는 정보와 어미 찾는 불쌍한 새끼라는 정보가 암사자의 머릿속 편도체에서 정보충돌이 일어난다. 암사자는 눈을 감아버린다.
새끼누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새끼를 포기하지 못하고 세렝게티 초원을 혼자서 헤맨다. 그러다 맹수를 만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떡하든 새끼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암사자의 착각 혹은 배려로 누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 새끼는 암컷으로 보이는 아무 누에게나 다가가 젖을 빨려 한다. 젖을 빠는 건 포유류의 소뇌에 각인된 매우 강력한 생존운동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새끼누의 털에는 며칠간 암사자와 뒹굴면서 그만 사자의 냄새가 배어 있다.
포유류에게는 대뇌가 없다. 오직 본능이 있을 뿐이고, 대뇌는 작은 혹 정도가 있는데, 이 혹으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른 누들은 새끼누를 새끼사자로 보고 무리에서 내쫓는다. 심지어 죽이려든다.
필사적으로 달아난 새끼누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이때, 그때까지도 새끼를 포기하지 않고 초원을 헤매던 어미 누와 극적으로 만단다. 엄마 누는 새끼에게서 비록 사자냄새가 나지만 자신의 새끼라는 더 강한 본능으로 젖을 허용한다. 해피엔딩이다.
이 드라마에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암사자의 모성애가 포유류의 다른 종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고, 어미 누가 사자 냄새가 나는 새끼지만 자신의 모성애로 이 조건을 거부하고 모성애를 택하는 점이다.
이런 작은 드라마들이 엮이고 모여 마침내 포유류의 혹이 부풀고, 그렇게 하여 대뇌가 생겨난 것이다.
아래 동영상은 어린 사자새끼를 기르다가 이 새끼가 너무 크게 자라자 초원에 방사한 뒤, 옛 주인들이 이 사자를 다시 만나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어떤 맹수라도 새끼는 사람이 데려다 기를 수 있다. 비록 하이에나 새끼라도 새끼는 귀엽다. 하지만 새끼사자는 자라면서 사자의 본능이 나오고, 이때부터 종이 다른 인간이 사자를 직접 기른다는 건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사자새끼는 1969년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태어나 헤롯백화점에 분양용으로 팔렸다. 호주 청년들이 이 판매용 새끼사자를 보고 구매했다.(지금은 동물 매매는 불법이지만 당시는 합법이었다, 샴쌍둥이를 서커스단에 구경거리로내놓을 때니까) 두 청년은 아기사자에게 크리스티앙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1년 뒤 크리스티앙은 83킬로그램으로 폭풍성장하고, 이 사자가 뛰어다니면 집안 가재도구가 흔들거리거나 찬장의 식기들이 쏟아져내렸다. 주인에게 반갑다고 달려들지만 그 주인이 압사당할 지경이었다.
두 청년은 크리스티앙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크리스티앙이 다다른 곳은 케냐의 코라국립공원. 거기서 1년을 보내며 크르시티앙은 다른 사자 무리에 합류하고, 그들과 함께 다른 동물을 사냥해 먹고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완전한 사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티앙을 애지중지 기르던 두 청년은 헤어진 크리스티앙이 보고 싶어 1년만에 케냐로 달려갔다.
그 1년간 애완사자가 아니라 사바나의 사자로 살아온 크리스티앙은 과연 자신을 돌봐주던 두 청년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까. 먹이로 볼까, 새끼사자 시절에 느끼던 '아빠'로 볼까.
성체가 된 크리스티앙에게는 두 가지 편도체 정보가 있다.
우유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함께 놀아준 엄마아빠 같은 두 인간청년의 모습이다. 이건 모든 포유류가 기본적으로 갖는 생존 기본 프로그램이다. 다만 사자가 아닌 인간을, 그것도 사자의 본성을 회복한 사바나에서 인간을 엄마아빠로 인식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사자 외의 포유류를 오직 먹이로 보는 크리스티앙의 편도체 기록이다. 사람은 잡아먹어야 할 포유류에 지나지 않는데, 크리스티앙은 <엄마와 먹이>라는 편도체 정보의 싸움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권을 가진 그의 해마는 과연 그만한 지혜를 갖고나 있을까.
(동영상을 보셨다면) 이런 경험은 사자에게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쌓여 사자의 포유류뇌에는 조금씩 혹이 부풀어 오르고, 언젠가는 이 혹이 대뇌로 발전할 될 것이다. 우리들이 그러했듯이.
따라서 사자가 대뇌를 가지면 어떤 영장류로 변할지, 그 영장류에서 나오는 더 진화한 동물은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처럼 수많은 별종들이 지구 생명체의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왔다. 그 정점에 우리 인류가 잠시 서 있을 뿐 앞으로 어떤 생명체가 새로 생겨날지 우리는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더구나 1억 년, 혹은 2억 년 뒤의 세상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 인류가 1억 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인류 중 수많은 별종들이 아마도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언젠가는 호모 사피엔스도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 같은 옛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 인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나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생각쯤은 너무나 유치해서 아마도 차원이 아주 높은, 그래서 너무나 고상한 명상을 할까? 아니면 멸종돼 버렸을까?
* 페이스북 게시 안내글 ; 다른 사람은 죄다 마음에 안들고, 제 편이 하는 짓이면 북치고 부채춤 추고 싶은 빠들은 보라. 이 세상은 그대들 마음에 안드는 바로 그 바보, 멍청이, 미친 놈, 삐딱한 놈, 특히 빌빌거리는 약자들이 바꿔왔다. 짖어대고, 성내고, 욕지거리 끊어지지 않고 그 독기 어린 거품이 입에서 마를 날이 없고, 이빨 으르렁거리는 놈들은 아직 사바나를 뛰어다니고, 밀림을 헤치고 다닌다. 그대가 혹시라도 사람탈을 썼다면 아마 지금도 종편티비 앞에, 부동산사무소에, 시장바닥에, 남의 사무실 소파에, 카페에 앉아 으르렁대고 있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라. 침 튀기는 그 더러운 혓바닥 뽑아던지고 오직 지혜로써 세상을 바라보면 아마도 누군가 아나파나 명상을 하는 그 새벽, 태양을 이끌고 떠오르는 샛별이 보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