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普
茶(푸어차)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보이차로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한국식 발음일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푸어차란 중국운남성의 한지명(土地名) 인 푸어부가 옛날 차의 집산지 역할을 한데서 얻어진 이름이므로 푸어차로 쓰기로 하였다.
2. 茶菁(차청) 또는 毛茶:일차 가공된 찻잎으로 병차나 단차, 긴차 만들기 전의 원료 차.
3. 樟香(장향) 우리나라에서는 녹나무 또는 예장나무로 불리는 나무를 쉽게 누구나 볼 수 있는 수목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樟木 또는 樟香이라 사용하였다.
4. 喬木(교목) 차나무의 종류 중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로 재배형 야생 차나무로 수백년 이상의 준 야생 차밭에서의 나무, 또는 산에서 야생과 같이 자라는 차나무.
5. 灌木(관목) 차나무가 작은 신차나무로 대부분 1m안팎의 재배차밭의 작은 차나무
6.
(매변) 저장중의 차에서 습기로 인하여 곰팡이가 많이 생겨 변질된 것. 매변현상이 심한 것은 마실수 없고 약한 매변 현상은 오히려 차의 맛은 1~2잔까지 매미가 있으나 그 곰팡이 균이 비만과 고혈암, 당뇨 등 성인별에 좋다고 일본잡지, 건강(健康) 85년도 12월호에 발표되었다.
7. 濕倉(습창) 차를 발효시 누룩균을 넣어 급발효 시킨 차와 저장중 과다한 습기로 인하여 변화된 차.
8. 乾倉(건창) 생차청병으로 건조한 곳에서 장기간 자연발효 된 차
9. 생차 발효시키지 않고 생엽을 살청 후 청엽상태의 차
10. 숙차(熟茶) 누룩균과 습도를 공급 급발효 시킨 차.
11. 일조(日凋): 햇빛에 말리는 것
12. 후발효(後醱酵) 원래 푸어차는 모두가 후발효차이다. 즉 생차를 건창으로 오래 보관, 자연발효시키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누룩균을 넣어 급발효 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13. 담(擔) 현재의 무게단위로 약 92kg
14. 지(只) 약 46kg
* 푸어차의 의학적 증명 (약리증명)
1. 푸어차는 소,양고기의 기름기를 분해, 장의 활동을 돕고, 통변에 좋다........................(본처강목)
2. 장기간 푸어차를 마신 사람 40%이상이 체중이 감량되고 지방질이 분해되어 신진대사가 원활하여 30%이상이 지방질과 체중이 감소되었다......................................................(운남차엽 진출구공사)
3. 55명의 고혈압 환자에게 푸어차를 마시게 한 결과, 31명이 치료되고 콜레스테롤과 고혈압 이 현저히 감소되었다......................................................................(곤명의학원 임상실험 증명)
4. 40~50대 환자에게 운남 푸어차를 마시게 한 결과, 체중이 내리고 지방질의 감소가 30%, 효과가 보통인 사람이 33% 등으로 혈뇨, 당뇨, 콜레스테롤, 지방질 등에 효과가 있다. ...............(파리성 안토니오 병원)
5. 20명의 혈액지방과다 환자에게 1일 3사발씩 마시게 한 결과, 1개월 후 25%가 지방이 감소 되었고, 정상인에게는 변화가 없었다.
6. 고혈압, 거담, 지방간 등에 현저한 효과가 있다............................(대만대학 식품과기연구소)
7. 흰쥐에게 비교 푸어차를 먹여본 결과 9주후 30%의 지방질이 감소되고, 신진대사의 원활과 콜레스테롤에 특효가 있다.
8. 푸어차 중 누룩균은 지방질 분해력이 좋아 학자들이 쥐에게 실험해 본 결과 중성비방과 콜레 스테롤이 감소되었다......................................................................(중국차예입문,12쪽,일본)
9. 푸어차의 누룩균은 체중 증가 억제 작용과 혈액 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킨다. .("건강", 1985,12월, 일본잡지)
이 사화편은 원저자와 상의하에 아주 간략하게 풀이하여 쓰기로 합의함에 따라 요점만 발췌 번역하였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 상,주 나라시대(商,周 時代) 화양국지(華陽國志)와 파지(巴志), 운남성차엽진출구공사지(雲南省茶葉進出口公司志)에 의하면 사천(四川), 운남(雲南), 귀주(貴州) 등 삼성(三省)이 8개 소수민족이 분포(分布)되어 살고 있었고 상,주(商,周)나라 때 운남차(茶)를 공납(貢納)했다는 기록이 있다.
◈ 한나라 시대(漢朝 時代) 한무제가 운남(雲南)지역의 왕을 전왕(
)이라하고 인(印)을 하사하였다. 고채(苦菜) 일명 차(茶),일명 선(選), 일명 유동(遊冬)이라고도 하며 익주 곡산에서 나고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
◈ 삼국 시대(三國 時代) 기원 225년 촉(蜀)나라 승상 제갈 공명이 후주에게 올린 천하명문으로 알려진 출사표(出師表)에 "오월(五月)에 도로(渡瀘)하고 심입불모(深入不毛)하여"라고 표현한 곳이 오늘날 차의 고향으로 알려진 운남성 서쌍반나지역인 맹해현의 남나산과 망지산 등 천하 명차의 고장인 육대(六大)차산 지역이다."한화운남 차사(閑話雲南 茶事)"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공명차산(孔明茶山), 전설에 삼국(三國)시대 재갈공명이 남정길에 오늘의 맹해 남나산을 지날 때 병사들이 수토불복(水土不服)하여 눈병이 생기자 공명이 가지고 다니든 지팡이를 남나산 상(上)에 꽂으니 이 지팡이가 차나무로 바뀌어 길고 넓은 찻잎이 나와 이를 따서 달여 장병들이 씼고 마시니 쾌유되었다." 이후로 남나산을 공명산이라 부르고, 또 다른 설은 동남에 푸어현의 무영수산이 있는데 그 지산이 공명이 화살을 만들었던 기전처(寄箭處)라 하고, 산에는 제풍대(祭風臺:제사를 지내는 곳)가 있고, 산상에는 큰 차나무가 있어 이것을 제갈무후가 남긴 유종(遺種)이라고도 하며, 변방민족이 제사를 지낸다. 또 다른 전설에는 운남의 6대 차산 중의 하나인 유락산(攸樂山)을 공명산이라 부른다. 지금도 이곳 주민들은 매년 음력 7월 23일 공명탄신일에 향을 피우고, 등(燈,일명 공명등)을 들고 차조회(茶祖會)라 부르는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고 하며 특히 이 지방의 소수민족들은 제갈공명이 차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와 이를 믿고 제갈공명의 탄신일에(음력 7월 23일) 제사를 올리고 차조(茶祖,차의 조상)로 공경하고 있다.
◈ 당나라 시대(唐 時代) 기원 862년 함통 3년 번작(樊綽)의 만서(蠻書)에 "은생성 경계의 모든 산에는 차가 난다. 특별한제조법은 없고 이곳 사람들은 후추. 계피, 생강 등과 함께 끓여 마신다"는 고증(考證)이 있다. 청나라 원복(院福)의 "푸어차기(普 茶記)" 중에 "푸어차는 옛날 은생부에 속해 있고, 서번에서 보차를 쓰다."은생성 당시 어떤 종류의 차(茶)가 이곳 운남에서 자랐는지 근거는 없으나 은생성 지역이 운남대엽차종의 원시(原始)차종이며 푸어차종이라는 데는 원복(沅福)의 서(書)에서 보나 내가 여러 자료를 통해서 살피건대 믿고 싶다. 은생성은 현재 사모(思茅)와 서쌍(西雙)반나지역이다. 일찍이 당나라 때 차를 멀리 서번(西蕃)지역까지 팔았고 서남 지역으로 소로가 여러 곳으로 뻗어있어 실제로 이를 "사차지로(絲茶之路)"라 불렀다.
◈ 송나라 시대(宋 時代) 이석(李石)이 쓴 "속박물지(續博物志)에 "차는 은생의 모든 산에서 나고 어느 때나 채취하며 후추, 생강과 함께 끊여 마신다."는 말은 번작의 기록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차신(茶神)으로 받드는 육우(陸羽)의 "다경"에는 운남성의 은생부 차가 누락되어 있어 유감이다. 당, 송시 고조된 차 문화와 중화민족의 차를 마시는 풍습으로 차마시장(茶馬市場)이 번창하였고 "차"와 서번지역의 "말"을 교환 교역하였고 서역과도 상업교역이 빈번하였다."서번의 보차를 쓰다"는 용어는 확실한 사실이다.
◈ 원나라 시대(元 時代) 원. 명 이전에 푸어차를 마시기는 했지만 푸어차라는 지정된 이름과 기록이 없는 차로 마셨다. 원나라때 "푸얼부(步日部)"라고 하는 지명이 있었는데 후에 이 푸얼부가 전음되어 "푸어부(普
部)"로 되었다. 원나라 조정에서 푸어부로 이름이 지어진 후에도 운남 푸어차의 명칭은 없었고 "푸차(普茶)"라고 불렀다. 서장. 서강. 신강 등지의 육식위주 민족에게는 지방을 분해해주는 푸차가 필수식품이 되었다. 이 푸차의 이름이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 푸차의 이름을 푸어차로 불려지게 되었다.
◈ 명나라 시대(明 時代) 1620년 만력 년간 사조제의 "전략(
)"에 "선비와 서민이 모두 푸차를 마시고 쪄서 단차를 만든다"고 명나라 말기 방이지(方以智)의 유고(遺稿)를 아들 방중통(方中通).방중이(方中履)가 선고(選稿)한 물리소식(物理小識,1664)에 "푸어차 증지성단 서번시지(普 茶 蒸之成團 西蕃市之)"라고 정식 푸어차의 이름이 문서(文書)로 명기되었다. 명태조 주원장이 목동시절 차를 찌고 만드는 일을 너무 쾌락위주로 사치한 것을 보고 1391년 명하여 성단차를 못하게 하고 산차로 공차토록 하여 푸어차 발전이 일시 주춤하였다. 푸어부로 개명한 이래 점점 운남성은 차의 집산지가 되었고 상인의 감각과 푸어차와 푸어부가 연계되어 차명 또한 널리 알려지고 "차마대도(茶馬大道)"가 서장을 거쳐 인도까지 열려 동서왕래(東西往來)가 빈번하였고 차마교역이 활발하였다.
◈ 청나라 시대(淸 時代) 푸어차가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국내외를 막론하고 널리 즐겨 마셨고 궁중에서도 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때가 최고의 푸어차 전성시대였다.
※푸어공차
1726년 옹정제는 심복인 만주족 악이태를 운남성 총독에 임명하여 통치케 하고 그 3년 후에는 푸어부치(普
府治)를 설치 차의 판매권과 조정에 공납하는 것을 동시에 실시하여 황제의 환심을 샀다. 매년 조정에 차의 공차량이 은자 일천 수 백량에 이르러 당시 물가로 환산 십 수만근의 쌀값에 해당되었다.
진공 푸어차는 모두 8종으로 ①5근 단차 ②3근 단차 ③1근 단차 ④4양 단차 ⑤1양5전 단차 ⑥병에 넣은 산차 ⑦여린 싹 산차 ⑧갑에 넣은 고차 등이다. 그 중에서 1가지가 여아차(女兒茶)로서 가장 사랑하고 줄겨 마신 것 중의 하나다.
기록에 의하면 여아차는 2종으로 첫째, 곡우 후에 따서 1근∼10근으로 만든 단차가 있고(
) 둘째, 3,4월에 따서 만든 소만차, 6,7월에 따서 만든 곡화차, 이중에 크게 만든 원차는 긴단차, 작게 만든 원차를 여아차라 한다. 특히 여아차는 곡우전에 처녀들이 따서 무게 4양으로 만든 원차를 말한다고 "푸어차기(記)"에 기록되어 있다. 본초강목에는 푸어차의 쓴맛은 소, 양고기의 기름(독)을 분해하고 쓰고 떫은 맛은 장의운동을 도와 통변을 부드럽게 한다고 하였다. 원래 청나라 황족은 만주의 유목민들로서 육식을 위주로 하여 특히 푸어차의 이 특성(特性)을 잘 알아 즐겨 마셨다. 이로 인하여 푸어차의 이름이 천하(天下)에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자희태후(慈禧太后)는 이 차를 즐겨 마셔 여름에는 용정차, 겨울에는 푸어차를 마시도록 궁중에 차 마시는 규범을 만들기도 하였다.
※본초강목: 푸어차는 유락, 혁등, 의방 망지, 만전, 만산등 6대 차산에서 나고 이 중 의방 만전 차맛이 우수하다 ※전해우형지: 옛푸어소속(普
所屬) 6차산, 유락, 혁등 의방 ,망지, 만전 ,만산, 주위 8백리 산에 들어가 차를 따는 사람이 수십만에 이르렀다. ※푸어차기 푸어차는 푸어부 경계 내가 아닌 사모현 관내의 6개 차산으로 의방, 가포, 습공, 만전, 혁등이무...또 이들 6차산의 차의 기미(氣味)등이 토질에 따라 다르다. 붉은 흙에 잡석이 섞인 곳이 푸어차산지로 제일이다. 음식을 잘 소화 하고, 냉 해독에 좋고, 2월 중에 따는 햇차순은 여리고 가늘고 희다. 이를 모첨이라 하고 조정에 공차 후 시판한다. 희방 만송차산의 차는 소엽종 청향(靑香)으로 햇차로 마시기에 적합하고 신선감이 충분하고 찻물이 짙고 텁텁한 맛이 궁정내의 입맛에 적합하여 공차로 썼다.
1729년 옹정제 10년부터 1908년 광서 30년간 푸어공차가 계속 진상되었다. 청나라 말기 지방 치안이 불안하여 공차가 곤명시에 이르러 강도에게 강탈 당하자 공차를 중지하였다.1963년 북경 고궁처리 중 공차 저장 창고에서 약 2톤의 차가 발견되었다. 그중에는 5근반(半)크기의 서양 참외와 같이 생긴 큰 차와 탁구공처럼 생긴 작은 차에 이르기까지 보관이 아주 잘 된 것이 발견되었다. 단차의 표면에는 천의 비틀어진 형태로 눌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중화차인 연합회 비서장 왕욱봉 선생이 일차 시음한 후 평가한 말이 "탕색이 있고 차맛이 오래된 맛이고 담박"했다고 했다. 추측컨대 푸어공차로서 오랜 진화된 차의 맛을 표현한 말이리라. 자희태후 시대의 유품이거나 혹자는 그 이전 것으로 추정, 최고 오래된 것은 150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북경고궁 노차(老茶)전문가 단사원선생의 말을 빌리면 단차와 고차의 두 종류로 현재 국보급"금과공차"는 단차형으로 사람의 머리 크기와 같다고 하여"인두 금과공차"라한다. 연구와 보존 방편으로 1980년대 북경 고궁에서 항주시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연구소로 이전 보관중이다.
당시 운남성에서 유명한 푸어차의 상호는 ①동경호 ②복원창호 ③송빙호 ④동흥호 ⑤영춘호 ⑥동창호 ⑦동태창 ⑧가이흥 ⑨동순상 ⑩원태풍등 차 가게가 있었다.
청나라 중기 1660년부터 1870년 사이가 푸어차의 최 전성기로 6대 차산에서 최고로 많은 양의 차가 생산되었다. 중국과 "미얀마 조약"에 의거 광서 23년에는 불란서 세관이 사모에 세워졌고, 광서 28년에는 영국세관도 사모에 세워 푸어차와 홍차의 수출이 본격화되었다. 광서 말년 차세가 중과하자 차 농민이 피폐되어 차 생산이 급강하하여 쇠퇴의 길을 걸었다.
※ 중화민국 운남성 정부와 민간기업 공동으로 운영 생산하는 "관변민영"회사를 차려 1930넌경까지 운영하였으며, 스리랑카, 인도 등과 차의 국제 시장에서 경쟁을 하게 되었다. 푸어차는 서역, 미얀마, 태국 등 남양일대로 판로를 개척하였다.2차 대전으로 "육계재단"에 의해 독가 농단되어 오다가 후에 다른 재단과 합병 인기공사(人企公司)가 운영되었으나 경영무력으로 쇠락하였다.
<중차공사 설립(봄화균선생 회억담)> 1936년 여름 상해 상품전시회 중국차엽 특전에서 근래 100년이래 세계 차 생산국의 생산량은 급성장한 반면 중국차 생산량은 급강하하여 위기감을 느끼고 1937년 봄 중앙경제부 주제하에 매성(每省)에서 20만원의 출자금과 중앙 경제부 및 큰 개인 차창에서 200만원의 출자로 중국차엽총공사를 설립하였다. 이때 범화균 선생의 주도하에 기계, 생산, 차종 등을 설계하고 낙후된 수공생산 방법(方法)에서 대규모생산의 기계화 방식으로 홍차를 주 생산품으로 정했다.1938년 중차공사와 운남성정부합작 설립 운남 중차공사를 곤명시에 세우고 대표(代表)에 류운태선생, 정학춘 경리, 순녕, 불해, 의량 3곳에 실험차장을 설립하였다.
1)건창(建廠) 전 현지조사 불해지구는 변방지역으로 소수민족인 타이족이 거주하는 특수지리 환경, 생활습속을 가진 곳으로 일반에게 생소하여 사전 답사 조사를 하였다.1939년 봄. 장석성 선생과 곤명시를 기점으로 하여 미얀마에 이르는 국도를 따라 불해지방에 도착하기는 반년이 지났다. 원래 불해지방은(현재 맹해) 천연 야생차구로 대엽차종의 원산지이다. 차잎 생산량이 충분하고 품질이 좋고 홍차를 만드는데 인도산의 품질을 능가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한편으로 이 지방은 매년 악성 풍토병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생활이 낙후하고 환경, 상업조건, 화폐의 통화가 쉽지 않고 기후는 건기와 습기의 두 계절로 나뉘어 악조건이 따랐다.
2)인원 및 물자조달 1939년 겨울 곤명 류 사장 사택에 모여 그사이 조사한 것을 취합, 최종결정을 불해에 실험적 차창을 만들기로 하였다. 차창 창업 준비금으로 5만원을 받아 착수하고, 출자금은 50만원으로 불해차장을 창업키로하고, 양우호 불해현장(佛海縣長)의 협조를 받기로 결정하였다.1940년 봄, 정식 창업하고 중경을 왕복하며 중차총공사로부터 차 제차공(茶 製茶工) 25명, 강서정제차공원(江西精製茶工員)20명, 기술훈련생 20명, 의량차창의 대나무 포장공5명을 차출하였고, 차창 정기술자 90여명도 아산, 원강, 흑강, 푸어, 사모, 차리 등지를 경유 월여만에 현지에 도착하였다. 한편, 의료진, 전공, 철공 등과 자재 의약품 타이족이 좋아하는 장신구, 수건, 천, 보온병, 아동완구 등 일용 잡화는 태국 화교 의미후(蟻美厚)선생의 도움으로 방콕에서 미얀마를 거쳐 현지에 운송되었다.
3)자력갱생(自力更生)창설 차창부지는 맹해(불해)시 중심부근 황무지를 개간 창설키로 하였다. 당시 이곳은 땅의 소유주도 없었고, 산림목재 또한 주인없는 것으로 벌목하여, 목재로 사용하여 창건에 유용하였다.
4)창건2년 ①긴차는 서장 민족에게는 하루도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이었다. 긴차는 제조과정도 복잡하지 않아 매년 겨울철에 찻잎을 수매하여 쪄서 눌러 긴차를 만들어 포대에 넣어 40여일 경과하면 자연 발효하여 차가 완성된다. 이후에 포대를 벗기고 포장하여 서장, 인도 등지에 판매한다. ②2차 대전 이전 인도,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통치 하에 있어 화물운송통관이 한 개의 나라와 같이 취급되어 면세통관, 판매운반이 용이하였다. 후에 인도, 미얀마 분쟁 후에 통관과 운송이 쉽지 않았고 세금이 무겁게 부과되어 어려움이 닥쳤다.1949년 중국이 공산정부로 바뀌고 사업의 위기를 느끼자 많은 개인차창들은 서로 지원, 운남차엽공사의 지도 아래 집단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1954년에는 개인차창들은 경영을 크게 축소하고 차엽을 일괄구매, 계획 분배하고, 국가 계획아래 일괄처리 되었다. 그 후 모든 개인차창은 인민공사화하여 국가에서 흡수 관리하였다. 1958년 대약진 운동으로 정부의 확대 푸어차 생산 돌입으로, 각 차구의 모든 사람이 차밭에 나가 채취하여 차밭이 황폐화되고 수확이 반감되었다. 1960년대 초 과거 큰 차나무는 작은 관목 차나무 밭으로 개량하여 전통방법을 탈피하고 신 차원의 개량 찻잎을 개량방법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1973년 하관차창에서 만든 신 차가 서장지역에 판매되어 이를 마신 사람들이 두통과 혈압이 오르내리고 구토현상이 일어났었다. 이는 신 차수로 품질이 저하된 원인이었다. 1979년 개혁 개방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 차밭도 밀식 재배, 인공시비, 기계채취 방향으로 바뀌고 속속 전통 교목노차(喬木老茶) 밭은 사라져 갔다. 생산품도 녹차, 홍차, 푸어차 위주로 되었다. 녹차도 전청과 전녹으로 양분되었다. 전청은 전통적 제조방법인 햇빛에 말린 차이고, 전녹은 불에 말려 만든 것으로 운남녹차라한다. 일광(日光)으로 말리고 증기압으로 성형시켜 오래 진화된 차를 진년푸어
라하고, 햇빛에 말려 만든 산차(散茶) 혹은 성단차(成團茶)를 청빙푸어차라 한다.1973년 이후 개발한 불에 말려 일정정도 급발효시켜 만든 것을 푸어숙차
또는 신수숙차(薪樹熟茶)라 한다.
현재는 급발효한 숙차를 푸어차라 하고, 발효하지 않고 청차를 성단한 차를 청병 또는 청차라 한다.(운남지방)
*푸어차의 동향
◈ 진향편(陳香篇) 우선 차의 향(香)이라고 하면 넓은 뜻에서는 포괄적으로 푸어차의 차운(茶韻), 차향(茶香), 차자(茶滋), 차기(茶氣)등의 풍미를 말한다. 그리고 차청(차를 만들기 전 상태, 즉 차잎을 말리고 찐제차(製茶) 직전 상태)의 어린잎과 센 잎의 등급, 제작시 생차와 숙차, 저장시 습창, 건창, 보존시 장기와 단기이상의 모든 조건에 따라 차의 향이 다르다.
보통 어린 햇싹은 산차(散茶), 센 잎은 긴차를 만든다. 같은 차라도 우려내는 방법(方法), 마시는 방법(方法)에 따라, 찻물의 변화가 다양하고 차를 다루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근래 중국의 차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중국의 차 시장의 변화, 차 문화의 활발성, 과학기술적 연구 발달, 각종 연구 보고문 발표 등 차의 발전이 하루가 다르다. 특히 푸어차는 그 진향은 세월이 오랠수록 향기가 아름답다. 이를 월진월향(越陳越香)이라하여 역사적(歷史的)인 명사가 되었다. 대만지구의 차의 성숙(成熟)도 또한 십년내 큰 변화가 있었다. 문산포종(文山包種)이나 동정오룡(凍頂烏龍)같은 것은 세계적인 명차가 되었다.
오룡차가 대만에 퍼지기 시작한지 100여 년이 경과한 오늘 이들 차들은 가히 세계적이다. 특히 고산차는 가장 대만에서 발전 성공한 차이다. 이렇게 차가 발전한 이유는 ①정부의 주도로 전국민이 차를 마시도록 권장한 것 ②차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 발전, 차 문화 보급의 저변확대로 대만차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의 차 문화는 전 국민이 차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어, 이미 유명 차품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이로 인한 각종 차종은 수평적으로 보편화되었고, 점점 고급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로 인하여 각종의 차는 그 차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차의 실정이다.
푸어차 또한 필연적으로 이와 같은 변화의 추세에 따라 발전하여 오래 묵을수록 향기가 뛰어난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어 세계적이 "차"에 이른게 아닐까? 그 중 운남 푸어차는 대중의 구미에 맞추는 것 이외에 연구 발전시켜 오랠수록 향기가 뛰어나는 고품위의 차 문화의 신 추세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수집연구 월진월향(搜集硏究 越陳越香) 국내 외 지역의 유관 푸어차의 월진월향적 문헌 자료는 "차 고향 운남"에 푸어차 위주의 정부 자료로서 "운남대엽차종을 햇빛에 말려 일정 경과 발효 후 정제 성형하면 그 외형의 색깔이 흑색 또는 갈색으로 윤택하고 맛과 향이 순하고 우수하며 능히 장기간 보존 음료로 사용"한다는 이 자료 외에 더 이상의 자세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이와 같이 훌륭한 푸어차의 형성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준이 없어 푸어차에 대한 평가가 의심의 눈빛을 던지는 것을 보면 현재 푸어차 시장은 크게 혼란스럽다.
푸어차는 원래의 만들어진 모양과 보관이 크게 다르고 다양하고, 대체적으로 제작, 기술, 생산, 보관 관리가 각양각색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우량 푸어차의 첫째 조건은 ①운남대엽종교목(큰나무) ②일광건조 ③장기보존 ④방습통풍 온도의 일정조건을 갖추어야만 필시 독특한 향과 맛과 약효 및 건강에 유익하다. 그래서 푸어차는 "할아버지가 젊어서 만들고 손자가 장성하여 마시고 판매하는 차"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차의 원산지 운남에서도 월진월향에 대한 인식이 높아 국내외 진년푸어차를 수집, 연구, 검토하고 수장자와 전문가가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 제작등급 순정푸어
차잎의 등급은 차잎을 따서 말리는 과정에서 갇 핀 새싹부터 1급으로 하며 일찍 피어난 센 잎까지 5급(級) 또는 10등급(等級)으로 나눈다.
초등급은 잎이 갖 피어난 작고 여린 4등급이전의 차싹, 중등급은 5등급∼8등급 중엽, 하등급은 9등급∼10등급 억센대엽. 보통 초등급의 가는 잎은 주로 타차( 茶)룰 만들고,
중등급의 중엽으로는 병차(餠茶), 하등급으로는 긴차(緊茶)를 만든다. 특히 차 잎의 등급 즉 여리고 센 정도에 따라 차 향과 맛, 기의 특색이 모두 다르다.1960년대 운남 중차패공사의 제품으로 "황인푸어(黃印普
)원차 출현시부터는 등급을 섞어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개조차라 부른다.
그 비율표는 다음과 같다.
차종/모차
정 청 모 차
녹 부
홍 부
태 예
급외일광전조차
긴 차
3∼4급 5%, 5∼6급 10% 7∼8급 27%, 9∼10급 40%
2%
4%
10%
병 차
5∼6급 8%, 7∼8급 20% 9∼10급 44%,
2%
26%
원차(七子)
3급 5%, 4급 10%, 5급 15%, 6급 20%, 7급 25%, 8급 25%
조 차
9∼10급 30%
2%
28%
40%
(제차학, 제204, 안휘성 둔계차엽학교 주편, 1979, 6월)
차종/모차
긴 차
병 차
방 차
원 차
타 차
조 건
·면차→차의앞면:상급차 사용 ·이차→차의뒷면,배꼽부분:하등급차 사용
면 차
35
25
24
30
25
이 차
65
75
76
70
75
100
(제자학, 제 205)
현재 각 재조차창 마다 이상의 재차학의 비율에 따르지 않고 각기 비율이 조금씩 다르다.
◈ 제작일조(製作日凋) 생산푸어차
일반전통에 따르면 푸어차의 고급품질의 요구조건은 햇빛에 말린 청병으로 건창보관방법이다.
감정결과 이상의 전통적 방법의 차 향과 맛은 "오랠수록 향과 맛이 아름답다"차의 제조과정에 따라 차 향과 맛도 다르다. 제조시 차 품미의 강온성에 따라 강한 양강성과 부드러운 음유성의 차가 된다.
우량 푸어차의 3가지 중요한 제조과정은 일광건조, 생차, 건창보존 방법이다.이로 인한 차의 향과 맛은 "신선자연"미이다. 양강성(陽剛性)과 음유성(陰柔性)푸어차의 우열은 정답이 없다.
개인적인 기호가 모두 다르듯이 다만 신선자연을 불문율로 최고로 친다. 단시간 숙성한 가벼운 누룩균 후 발효차는 우려 마실 때 3∼5번 이후 탕부터는 건창의 푸어차 특색으로 환원된다.
◈ 재배 교목 차나무
야생 차나무 찻잎은 차성이 너무 강하여 차를 만드는데 부적당하다.재배형 교목(큰나무)으로서 300∼400년 이상 된 노목의 찻잎이 가장 이상적인 푸어차 원료이다.
현재는 관목형(작은 차나무)차나무로 개조하여 운남 지방도 거의 대부분 관목형 차밭이고 재배형 교목 노차수(老茶樹)는 맹해 남나산 주위와 난창강주위의 원시 산림지역에 약간 남아 있다.
결어: 대만에서는 현대의 명언으로 "오늘 만들지 않으면 내일 마시지 못하고 후회한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운남 푸어차의 매력은 차의 맛과 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약성이 뛰어나 특히 오래된 진품 푸어차는 만성적인 성인병, 암, 비만, 지방간, 고혈압 등에 특히 유효하다. 근래 각 의학계의 연구 발표가 있어 더욱 개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차품의 의한 분류
◈ 품명편(品茗篇)
푸어차 시장이 점차 형성되어 가고 있는 추세에 우선 푸어차에 대한 위생, 안전 문제를 생각할 때 대부분 현재 푸어차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해갈음료 및 특수 의료적 효력이 있다고 긍정하고 있다.
해갈과 치료적 효과에 십분 매력이 있는 차로서 차 문화와 차 예술의 경지에 이미 도달한 것이 아닐까? 본인의 출생은 말레이시아 화교 가정으로서 광서(廣西)출신이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푸어차를 마시며 성장하여, 장성하면서는 차에 이미 매료되었고, 푸어차에 대하여 폭넓게 알게 되었으며, 더욱이 농후한 차의 감정까지 알게 되었다. 대만으로 유학 온 후 대만의 차에 대한 정교하고 치밀한 차예문화(茶藝文化)에 익숙하게 되고 부터 푸어차도(徒)로서 한가지 길을 택하기로 결심하고 자료수집에 나섰다. 그러나 너무 빈약한 자료와 잡다한 차품(茶品)에 협소한 푸어차 시장 상황 등이 매우 어려웠다.
수차례에 걸쳐 홍콩을 왕복하였으나 자료를 구할 수 없었고 4차례에 걸쳐 운남성 서쌍반나(景洪, 海)등지를 답사하였으나 자료가 충분치 못하였다. 그래서 최후로 얻은 결론은 차품을 보고 진가와 향미를 스스로 밝혀, 신선자연미 진미진향, 자기(滋氣)등을 스스로 밝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로 하였다.
①진성차(眞性茶)의 생(生) 푸어차의 제작과정은 필히 신선해야 한다. 원래 차는 신선한 식물로서 신선도가 곧 진성(眞性)이라 할 수 있다. 신선한 차란 생차청병(生茶靑餠) 즉 발효되지 않은 생차로 제조한 차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이를 자세하게 설명하면 햇빛에 말린 찻잎을 비비고 햇빛에 다시 말리고 쪄서 틀에 넣어 차의 모양을 만들어 건조시킨 것이다.
이것이 청병(靑餠)푸어차라고 한다. (현재는 맹해에서는 청병을 푸어차라고 부르지 않고 숙병으로 만든 발효차를 푸어차라고 한다. 역자 주)
1973년도에 개발한 숙차로 쾌속 진화시킨 방법(方法)으로 제조된 차, 즉 숙병차(熟餠茶)는 100kg의 모차에 40kg의 물을 섞어 실내에 쌓아 3∼4일 혹은 일주일씩 쾌속 발효시켜 차가 마치 오래된 차처럼 갈색으로 변하여 차의 청(靑)기가 감퇴하여 푸어차 본래의 진성(眞性)이 없어진 차(茶)로 차의 신선미가 결여된 차로서 현재 시중에는 보통 이들 차가 유통되고 즉시 마실 수 있다. (현재는 100일씩 급발효시켜 제조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다.)
청병차는 즉시 마시기 어렵고 적어도 30∼40년 이상 건창 보관 후 마시면 가히 훌륭한 맛과 향을 얻을 수 있으며 40∼50년 이상 잘 보관한 후라면 진정 기적적인 약성까지 함유하는 훌륭한 푸어차가 될 수 있다. 보통 숙차의 숙미는 10∼20년이 지나야 숙차미가 없어지나 탕색은 짙은 밤색 또는 흑색이고 신선미가 없다. 향은 숙미 침향이다. 차탕중의 향과 맛은 감각적으로 숙미 침향이 난다. 청병차는 오래 진화될수록 탕색이 율홍색(栗紅色) 또는 심홍색으로 되고 차향은 본래 청차 자신이 가지고 있던 향이 난다.
우려낸 찻잎으로 청병, 숙병을 가려내는 방법은 청병은 밤색 또는 짙은 밤색으로 잎과 줄기는 부드럽고 신선감이 있고 윤기가 있고 유연하다. 숙병은 암율 혹은 흑색이고 잎과 줄기는 부서지고 파리하고 뻣뻣한 느낌이 든다. 생차로 제조중 부주의로 차잎을 건조 비빈후(유념) 건조시 잘못 저장하여 장기화하여 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탕색 또한 짙고 어두운 색이 나는 경발효(輕醱酵)숙차처럼 된 맹경과 정흥을 가끔 볼 수 있다.
이는 생차로 만들어 보관 발효 과정 중에 과다한 습기로 인하여 경도의 숙차와 같이 변한 차로서 현재는 상당히 오래 보존되어 숙미가 없어지고 푸어청병차의 향미와 거의 같이 느껴진다.
< 생차와 숙차의 차이점 >
종 별
향 기
탕 색
우려낸 찻잎상태
생 차
푸어향
율홍(栗紅)-심홍(深紅)
율심율(栗深栗)/포만유연
숙 차
숙미침향
암율(暗栗),흑(黑)
암율,흑/푸석하고 뻣뻣함
② 푸어차의 자연미(自然味)
필히 생차로서 오래 잘 보관된 차라야 그 차 본래의 진실성을 찾을 수 있다. 차의 감별은 차맛을 오랫동안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닦아 각자가 차의 본래의 진성을 느낄 때 가능하다고 본다.
각자 지능, 지각, 후각, 미각 등의 생리적 차이, 감수성 차이 등으로 예민하게 파악 할 수도 있으며, 각자의 다른 능력에 따라서도 가능하다. 시각, 후각, 취각, 미각 등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즉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감수성으로 할 수밖에 없다. 단, 오랜 차 맛의 경험이 필수이고 모든 종류의 차맛을 충분히 익힌 뒤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건창(乾倉) 및 습창 중국 운남성 생산 차는 대부분 대엽 차종으로 잎이 크고 기름지고 두껍기 때문에 차성이 강하다.이로 인하여 생차로 제조 직후는 차성이 강하기 때문에 금방 마시기 어렵고 장기 저장 말효후에 차성을 부드럽게 한 후 마셔야 한다. 이 저장 진화 과정의 기술이 푸어차의 생명이다. 푸어차의 저장 발효 등에 관계있는 연구 자료는 아주 적다. 일본학자가 단편적으로 연구한 것이 조금 있을뿐이다. 푸어차의 후 발효 때 누룩균이 모두 진화 작용을 돕기 때문에 이런 차에서는 누룩균의 곰팡이가 변화를 일으킨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하여 현재 푸어차의 분석검토는 서방학자들의 홍차 발효 연구 자료에서 참고를 하고 대만지구의 우롱(烏龍)연구 문헌에서도 참고를 한다. 푸어차의 발효 과정은 습창과 건창으로 나누어지는데 어느 것이 좋다고 하기는 근본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차를 마시는 각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될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푸어차의 진성적 표준은 생차로서 제조하여, 건창으로 이상적인 환경하에 보관하여 자연 발효 진화시켰을 경우, 차성과 차미, 차향 등이 신선미를 발휘하여 진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푸어차의 후발효 화학작용 ①자연 산화 작용 ②효소성 산화 작용 ③누룩균 산화 작용 이상 세 가지의 산화 효과에 페놀류 화합물을 파괴하고 맛을 엷게 변화시키고 색깔이 어둡게 변한다. 그리고 푸어차의 진화 속도에 직접 영향이 있다. 진화 과정 중 가장 더디게 산화 작용하는 것이 ①자연 산화 작용이고 그 다음이 ②효소 산화 작용 ③누룩균 산화작용 순이다. 여기서 ①자연 산화와 ②효소 산화작용의 혼합으로 진행된 것을 건창이라하고 ①자연산화 ②효소산화 ③누룩균 삽입산화 모두 혼합 진행된 것을 습창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공기중에 습도가 80%이상일 때 국균(누룩균)성장이 활발하다. 이 환경 하에 누룩균을 투입하여 급 발효시킨 것이 습창, 무균상태로 건조한 상태에서 진화시킨 것이 건창이다.
국균은 차엽에 기생할 때 차의 섬유질을 파괴하는 습성이 강하다. 때문에 습창에서는 찻잎의 조직 파괴와 곰팡이 균의 잔량이 발견되어, 차 본래의 질을 변화시킨다, 건창법은 발효 후에도 차성 본래의 성품을 지녀 이상적인 차품이 된다. 명(明)나라 문용저(聞龍著) 차천(茶箋)에 의하면 차의 맑은 맛과 차성이 쉽게 느껴지고, 저장은 따뜻하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고, 나쁜 향을 기피한다고 하였다. 건창 후 발효한 것을 자연 진화 푸어차라 하고 습창 후 발효한 것을 숙병진화푸어차라 한다. 일부 상인은 생차를 당장 마시고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대부분 생차로 만들 때 숙차적 습창으로 만들어 곧바로 팔기 때문에 시중에서 이런차를 흔히 볼 수 있다. 경도(輕度)발효 숙차가 재차 장기 진화하여 차성이 진성의 특성에 근접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건창 습창 판별 방법 ①외형으로: 건창은 찻잎 줄기가 견실하고 색상이 선명하고 윤기가 있고 차잎에 활력이 있고, 습창은 찻잎줄기가 부스러지고 흩어지고 색상이 어둡고 탁하고 녹매(곰팡이)가가 남아 있다. ②기(氣)와 맛으로: 곰팡이 맛이 느껴지는 것은 습창일 경우이고, 건창도 제조보관 과정 중에 20∼30년된 원차철병이나 칠자철병, 광운후기 중에서도 매변기가 있는 것이 자주 발견된다. 대부분 매미는 없고 가벼운 니미(泥味,진흙)가 있다. ③탕색으로 건창은 밝고 선명한 율홍색 또는 짙은 밤색인 반면, 숙차 습창은 탁한 밤색 또는 흑색 ④달여낸 찻잎으로 구분하는 방법(方法)은 다음과 같다. 건창의 찻잎은 율황색 및 심율색(짙은 밤색)이고 잎의 질은 유연하다. 색깔만 약간 갈색으로 변했지 그 잎 모양은 생차 때와 같이 선명하다. 습창푸어차 잎은 탁한 밤색 및 흑색으로 부서져 있고, 거칠어 보이고 뻣뻣해 보인다. 습창생차와 숙차의 찻잎은 아주 비슷하다. <건창 습창 판별표>
류 별
건 창 차
습 창 차
외 형
견실, 윤택
산발,탁하고 어둡다
향 기
원 푸어차 향
곰팡이 맛, 흙 맛
탕 색
옅은 밤색 및 짙은 밤색
탁한 밤색 및 흑색
달여낸 찻잎
황율 및 심율색 활성 유연
암율, 흑, 유연
◈ 푸어차의 진운(陳韻)
객관적으로 볼 때, 진(眞)이 곧 미(美)이다. 모든 사물에 진실성(眞實性)이 가장 좋은 것이다.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도 감정의 세계 이면에 이 감정을 이끌어 내는 주관이 있다.
즉 이 심미적(審美的)능력이 객관적인 진(眞)성과 주관적인 감(感)성 사이에서 하나의 평형점을 얻는다. 이 도리(道理),즉 진실성(眞實性)을 누가 훌륭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미(美:아름다움.훌륭한)는 반드시 진실성의 전제하에 생기는 것이다. 푸어차에서 이뤄지는 이 미(美)도 객관적 진성(眞性)과 주관적 감성(感性)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에 의하면 푸어차를 마시느데는 첫째 요구조건이 좋은 건창의 생차이고, 둘째 오랜 향과 맛과 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향과 맛, 기를 감정하는데는 ①차운(茶韻), ②차향(茶香), ③단맛(甘味), ④침이 생기는 것(生津), ⑤차기(茶氣)의 순서이다. 진운이란 일정기간 경과진화 후 발생하는 운미(韻味)이다. 신선한 색감(色感),혹은 진구(陳久)적 감각을 말한다. 푸어차의 영역(領域)중에 진운이란, 맛을 보고 느끼는 한 형태로서의 감성미(感性美)로 반드시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 지식과 경험은 독특한 학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 경험을 얻어 올 수도 없는 것이고. 아주 깊고 오묘하여 현저히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운은 일정한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완전히 경험적 감각적으로 알아야 하는것이다.
포도주 감별사가 그 혀와 감각으로 감별하듯이 일종의 식물의 진화 역정(과정)을 독특한 입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몸으로 직접 푸어차를 마셔보고 부단히 선배의 지도 아래 다른 년대의 탕 중에서 다른 진운의 감각을 익히는 길 밖에 없다. 이는 말로 전할 수 없고 언어문자로 전달할 수 없는 선(禪)의 경지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시중에서 상인들이 100년 푸어라고 판매하는 차들은 거의 근거가 없고, 그들 스스로 붙인 연대이다. 진실로 근거가 증빙되며 판매되고 있는 최고 오래된 것으로는, 동경노호(同慶老號)원차가 약80∼90년의 진기(陳期)이고, 복원창(福元昌)호가 100년 이상 된 것이다. 그 이외 동흥호, 정흥호, 송빙호, 경창호, 강성호, 맹경호, 동창호, 가이흥호 등 대부분이 60∼70년 정도가 된 진년노푸어(陳年老普 )라고 할 수있다. 듣기로는 푸어차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다.①푸어차의 미도(味道)가 너무 강렬하다.②최고로 온순하다.③위장을 깍는다.④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장수한다.
이상과 같이 조금만 들어도 상호 모순점이 두드러진다. 이상은 기실 푸어차의 진기가 같지 않은 결과에서 나온 말이다. 강렬하여 위장을 깍는다는 것은 반드시 햇차를 마신 것이고, 온순난위는 오래된 차를 마신 결과이다. 하관차창 출품 갑을급(甲乙級) 생타차( 茶)의 차성은 너무 강렬하여 유럽 시장에서는 제일 좋아하는 차품이다. 어떤 약국에서 비만에 특효가 있는 영약으로 판매하고 있는 50∼60년 된 말대긴차는 차성이 너무 온순하여 강한 미각이 조금도 없어 어떤 중의(中醫)는 대만달러 10,000NT$에사서 온화촉진(溫和促進)하는 양약으로 쓴다. 이와같이 다방면으로 볼 때 최고 오래된 차(월진월향:越陳越香)를 최고로 사랑한다. 저장과정 중, 청순한 푸어차 진성이 필수, 아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①건창진화 ②온도 급격 변화 불가(한냉 고온등) ③잡맛에 감염 기피(음식, 향료, 잡향 등) ④대나무 껍질 포장(잡미보호, 청순) ⑤진화 연대 수명(최저 60년 이상)
용마패 동경노호는 진화감이 최고 절정으로 반드시 밀봉 보관함이 최적이다. 계속 진화 연후에는 차성이 소실되고 맛과 향이 쇠퇴한다. 진기100년 이상의 금과 푸어는 오직"탕색이 있고 차 맛이 진화되어 담박하다"는 것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인체 내에 생명을 넣어 하나의 체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할까? 푸어차의 진운(陳韻)이 곧바로 푸어차의 구체적인 역사의 지표이다. 역사는 생명의 누적이다. 역사는 인류를 위해서 감정의 역량을 편직해 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운은 음악에서의 북소리를 연상케 하고, 깊고 깊은 사람의 심장진동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진운(陳韻)은 사람에게 느끼게 한 진감 즉 월진월향(越陳越香)을 가져다준 가장 고귀한 산물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과 함께 진운은 인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미감이다. 이미 이루어져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일뿐.
◈ 푸어차의 차향(茶香) ※운남 푸어차는 소엽종, 변종중엽종 관목푸어차종 등이 있지만 여기 푸어차 차향을 소개하는 것은 주로 대엽(大葉)종 교목 푸어차를 위주로 하는 것이다.
기실 푸어차는 장기 발효 차종으로 완전 발효, 중발효(重醱酵)로 남아 있는 진성의 원래의 향이 반 이상 약해지고, 아주 약한 원래의 향이 남아있다. 이 향이 곧 향이 나는 원인과 원래의 푸어차의 원향(原香)을 암시하는 것으로,푸어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향을 느끼는 중요한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관점이다. 이 것이 차잎의 등급, 제작과정의 신선도, 보존과정의 적부 등을 경과한 결과로서, 이것을 아는 것이 차의 진성을 아는 것이고, 생산과 미감을 서로 공명하고 미적인 감성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차의 향(香)은 차나무의 종류, 지역에 따라 변화가 다양하다.
※이 책에서 주로 취급하고 있는 차는 오래된 적어도 30년 이상된 청병 건창 대엽종을 주고 한 차향을 주제로 한다. 주로 차품의 대엽종 교목으로 육대(六大)차산의 산품을 표본으로 하여 차향(茶香)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예장나무의 기(樟氣)
예장나무와 함께 자란 차나무(有樟:예장나무)
차 나 무(無樟)
종 류
연하(蓮荷)
방란(芳蘭)
청홍(靑紅)
야홍(野紅)
담홍(淡紅)
연하(蓮荷)
청향(靑香)
차의 등급
1∼2
2∼4
4∼6
6∼8
8∼10
1∼2
3∼8
차 향
연꽃향 (荷香)
난초향 (蘭香)
청장향 (靑樟香)
야장향 (野樟香)
담장향 (淡樟香)
연꽃향 (荷香)
청향 (靑香)
연꽃향은 차의 햇순의 본래의 향, 청향은 차의 향, 난향과 장향은 필히 운남성의 노차원(老茶園)에서 장나무와 함께 차나무가 혼성 성장하는 교목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현재는 관목 신차원에서 생산된 차향은 연꽃향과 청향이다.
넓은 의미의 차자(茶滋)는 입에서 느끼는 차의 맛으로 여러 종류의 맛의 감각, 즉 물의 성품, 차에서 우러나오는 인후적인 느낌의 여운, 침이 돌아 나오는 것 등 이 모두를 의미한다.
①미도(味道) 푸어차는 통상 단맛, 쓴맛, 떫은 맛, 신맛, 맹물 맛, 그리고 무미 등의 수종으로 미도를 이룬다. 단 맛은 푸어차 애호가들이 몽매에도 구하는 맛이고, 쓰고 떫은맛은 찻잎 특유의 맛이고, 이는 더욱이 차를 좋아하는 차의 달인들이 즐기는 미도(味道)이다.
신맛과 맹물 맛은 모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맛과 맹물 맛은 기피하게 되고, 무미는 미도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습관적으로 아주 연한 별 맛없는 푸어차의 미도(味道)를 무미라 한다.
단맛(甘) 단맛은 어린 아이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 모두가 다 좋아하나 너무 짙은 단맛은 사람에 따라 좋아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 중의 은은한 단맛은 맑고 우아하고 건강에 아무런 해가 없고 만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단맛을 탐하고 이로 인한 푸어차의 위치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대엽종의 푸어차는 상대적으로 그 성분이 농후하여 오랜 세월동안 진화한 뒤에 비로소 쓴맛, 떫은맛이 없어지고 은은한 당분이 찻잎 중에 남아 차를 우렸을 때 은은한 감미가 돈다.
여러 푸어차 중에 홍연원차와 원차철병은 본래 같은 원료의 찻잎으로서 제조 방법(方法)이 다르다. 이 두 종의 차의 단맛은 꿀의 감미이고 광운(廣雲)공병의 단맛은 사탕수수의 단맛으로 입천정(윗턱)위에서 단맛이 오래동안 남아있다. 푸어차를 만들 때 청병(생차)으로 만든 차는 자연 발효 후에 감미가 순정청아(純正淸雅)하고 차성이 고귀하지만 숙병(熟茶)으로 만든 차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탈속 고귀한 맛이 없다. 더욱이 신 차원의 관목은 인공시비를 사용하여 변종이 되고 맛 또한 변하여 탕의 감미가 버터맛의 느낌이 감돈다.
쓴맛(苦) 본래 차의 성품은 쓴맛으로 옛날에는 "고차(苦茶)"라 불렀다. 야생차는 너무 쓴 맛 때문에 입에 넣을 수가 없다. 선조들의 오랜 노력과 개량으로 "야생형"으로 바뀌고 다시 "과도형"으로 재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쓴맛은 카페인으로 장기 숙성 후에는 쓴맛이 없어지고 단맛이 목에서부터 돌아 나와 진정한 건강 음료로서의 가치를 발휘한다. 현재 고품위의 녹차는 아주 어린잎으로 만들어 쓴맛을 최소화하고 있다. 연꽃향의 백침금연과 고품위의 녹차와 50년대의 복록공차, 60년대의 광운공병이 모두 쓴맛을 최소화한 푸어차이다. 쓴맛은 또한 차를 타는 방법(方法)에서도 줄일 수 있다. 어쨌든 차의 쓴맛은 일종의 미미(美味)로 시경(時經)에 쓴 차를 찬미한 말에 "유여여차(有女如茶)"라는 찬사의 비유적인 말이 있다. 미인을 쓴 차에 비유한 것으로 쓴맛이 진미(眞美)란 말인가?
떫은 맛 보통 하는말에 차는 "쓰지 않고 떫지 않으면 차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진화 60∼70년 이상 된 차에는 쓰거나 떫은맛이 없다. 차에는 양강성(陽剛性)푸어와 음유성(陰柔性)푸어가 있다. 홍인 및 녹인갑을은진기가 50년이상으로 양강성의 차품푸어이고, 진기 육십수년의 말대긴차와 80∼90년의 동경노호는 전형적인 음유성푸어이다. 떫은맛은 푸어차의 탕의 강도를 의미하고 떫은맛은 입안에 베어 침이 나오게 하는 작용을 한다. 나의 직접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운남성 중부 즉 맹고, 맹롱, 봉경 일대 차는 쓴맛의 차이고 떫은맛의 차가 아니다. 이무(易武) 의 명차가 모두 떫은맛으로 침을 돌게하는 차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홍인, 녹인, 송빙, 경창, 보경 등은 모두 운남 남부 차로서 이들 차들은 모두가 떫은맛을 가진 차이다. 떫은 차와 쓴 차의 차를 타는 방법의 기교도 중요하며 각자의 취향과 습관에 따라 처리할 수 밖에.
신맛-맹물맛(酸,水) 신맛과 맹물맛은 푸어차에서 반갑지 않은 존재이다. 이는 불량원료와 보관불량으로 신맛이 날 수 있고 신차관목으로 변경푸어에서 접할 수 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칠자병차, 송빙, 정흥호의 내비를 쓴 변경 푸어차, 광동병에는 신맛이 근소하게 있다. 차를 탈 때 3∼5잔 후에는 산미가 현격히 감소한다.
무미(無味) 무미지미(無味之味)란 입에 찻물을 넣자마나 즉화(卽化)하여 향과 맛은 즉시 고인 침에 흡수되어 맛과 향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대다수 푸어차의 전문가들은 공인하기를 "무미지미(無味之味)가 곧 푸어차의 최고품이다."라고한다. 이는 세월과 유관하다. 백년 이상의 금과공차의 평(評)에 "탕색이 있고 차맛은 진화하여 담박하다."고 하였다. 나의 선친께서 남기고 간 "홍지푸어"는 야장향에 진운이 충분하고 차기가 강렬하여, 찻물이 즉시 침을 돌게 하여 아주 은은한 무미지미로 내가 소장하고있는 차중에 최상품으로 간주한다. "무미의 맛이야말로 곧 선의 경지"이고 비교할 수 없는 고상한 경계이며 수백 종의 차중에 오직 푸어차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푸어차의 차도(茶道)가 곧 도가(道家)의 진정한도(眞道)이고, 무미지미 즉 맛이 끊어진 경계의 맛을 참이라 하고 바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아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름하여 선재푸어.
②푸어차의 수성(水性)
滑(활) 가장 부드러운 감각, 온화, 유순, 친절하고 심신이 평온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조기의 경창호, 강성호, 보경호 등과 숙차의 푸어인 70년대 후전차(厚
茶), 백침금연 산차 등이다. 수성이 활인 것은 푸어차의 큰 특색이다. 숙차 방법의 반수이상의 푸어차 또한 수성이 순활(順滑)하므로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 수성 순활은 진화시간이 길수록 우수하고 최후 도달하는 경계에 이르고 월진월향(越陳越香)요소의 하나이다.
化(화) 입에 넣자마자 화(化)한다는 표현은 오래된 푸어차와 오래된 술의 표징(表徵)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60∼70년 이상 잘 저장된 푸어차의 수성(水性)은 화의 수성을 지닌다. 그러나 숙차의 30여년 된 전차 종류는 수성이 강한 쪽으로 흐른다. 말대(末代)긴차, 동경노호, 홍지푸어는 입구즉화(入口卽化)의 경계에 이르렀다. 숙차의 수성은 화감(化感)이 없다."입에 이르는 순간 화하여 갈증이 없어진다"는 표현은 수성의 최고 경지의 찬사로 푸어차의 수성화(水性化)는 전신을 가볍게 하고 정신을 맑고 밝게 한다.
活(활) 구감(口感)의 진운(陳韻)과 같은 한 형태로 언어로 표현키 어려운 것으로서 비교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푸어차종 중 건창 푸어 생차 탕은 비교적 강한 활성 품미이다. 제조과정 중 일정정도 퇴적 발효한 숙차와 매변이 있고 습창진화한 생차 등 이상 두 종 모두 수용성 물질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발효차 이거나 중매변된 차는 수용성 물질이 더 많다. 차의 탕색이 짙고 심지어는 흑색일 수도 있다. 수용성 물질의 증가는 수성의 활발한 맛을 내는데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 생차 건창 푸어차의 바탕은 좋은 활성 품미를 나타내고 활성이 인체에 유쾌하게 느끼게 되고 힘차게 활발한 느낌을 받는다.
砂(사) 차를 마신 후 입안에 일종의 잔모래의 앙금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붉은 팥물을 마신 뒤의 느낌과 같이 입안에 어떤 앙금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이것을 사(砂)라 한다. 이 사(砂)의 입안감각은 주로 숙차 탕에서 느낄 수 있으며 비교적 장기 진화한 차로 정흥긴차 를 건조시 시간조정이 잘못되어 자연 발효가 과다하여 변성숙차로 되어 사(砂) 감각이 있고 73전차 숙차 에서도 같은 사(砂)감이 있다. 이는 푸어숙차의 큰 특징으로 생차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볼 수 없다. 이런 사감(砂感)은 사람에 따라서 유쾌하게 느끼기도 한다.
厚薄利(후박리) 수성이 두터운 것과 탕색이 짙은 것은 서로 같지 않다. 두터운 것은 차의 질과 땅에 관계가 있고 차탕은 일정한 강도와 물에 녹아난 물질의 성분이 많음으로서 입에서 느끼는 것이 두텁고 주밀 함을 말한다.
주밀 하다는 것은 두터움이 과하고 혹은 너무 빽빽한 것이다. 짙은 것은 차를 우리는 기술에 관계가 있다. 너무 오래 우릴 겨우 탕의 강도가 더하다. 반대로 너무 짧은 시간 우리면 탕이 너무 엷다. 그러나 수성이 두텁고 얇은 것과는 상관이 없다. 왕왕 두텁고 중한 것이 서로 공존할 수도 있다. 흔히 말하기를 탕의 수성이 중후하거나 실할 경우 그 뜻을 수성이 가르치는 두터운 감이다. 일 예로 무지녹인, 봉산차청의 복녹공차는 차의 탕수성이 중후하다. 후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차의 수성을 느끼는 것이 포만감과 실하다는 감에 이르는 것이고 평온한 심경에 이르는 것을 가져온다. 수성이 엷은 것과 두터운 것은 상반되는 현상이다.
수성이 엷은 것은 차를 마셨을 때 입안에서 그 차의 기세를 느낄 수 없고 수질의 감각이 쑥대처럼 천박하다. 수성이 엷은 것은 작은 그릇에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격으로 사용자가 천박함과 불온 항거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관목의 푸어차와 변경 푸어차의 차탕에서 이런 수성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아주 엷은 수성은 입안에서 탁하고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감각을 얻는다. 이 때문에 삼키기 어렵고 동시에 입에서 배척하고 거절하는 작용을 하여 마실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변경푸어나 신차수의 청병의 탕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현상이다.
푸어차를 장기 밀봉하여 차가 너무 건조하면 개봉 후 즉시 차를 마실 경우 탕의 수성이 박득하다. 심지어 날카로운 정황까지 느낄 수 있다. 이는 개봉 후 큰 용기에 넣어 차의 기가 돌아올 때까지 10일 또는 1개월 정도 공기의 유통과 차의 안정 후에는 본래의 자연적인 수성의 특징을 살릴 수 있다.
③푸어차의 후운(喉韻)
차의 원래 용도는 약용이었다. 후에 해갈용으로 변하여 현재 마시고 있다. 차를 마실 때 후두(목구멍 안쪽 천장)로부터 부드러운, 매끄러운 맛을 느끼게 하여 즉시 건조함을 없애 주는 것이다. 후운은 차를 마시는 누구든지 먼저 만나는 차와의 첫 대면으로 차의 고수들은 지극히 중요하게 보는 특징이다. 후운을 특히 강조, 표방(標榜)하고 고급 차의 판매가를 결정짓기도 한다. 푸어차의 후운을 다시 삼등분하면 감, 윤, 조(甘, 潤, 燥)로 나눌 수 있다.
감(甘) 옛사람들이 시구(詩句)로도 널리 애송한 차(茶)의 회감(回甘)은 찻물을 마신 후 목구멍에서 단맛이 스며 나오는 후운(喉隕)을 모두가 사랑하고 은은히 풍겨 나오는 차향에 취하기도 한다. 왕왕 차는 쓴맛을 수반하여 단맛이 돌기 때문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며, 차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쓴맛을 대동한 차를 즐겨한다.
그 쓴맛 뒤에는 단맛이 감돌아 나오기 때문..푸어차는 쓴맛이 없고 단맛만 돌아 나오는 것이 우량차이다. 보통 쓴맛 후에 단맛이 도는 차로는 봉산차청으로 제조한 복녹공차, 맹해차창 제조 백침금연이 모두 고진감래 차의 표본이다. 동경노호원차는 진기가 근 100년이 되어 이미 쓰고 떫은 맛이 없어진 상태이고, 오직 미미한 단맛이 돌아 나올 뿐이다. 조기흥인 또한 회감(回甘)이 계속 끊이지 않은 아주 좋은 푸어차이다.
윤(潤) 한 사발에 목과 입술이 부드럽고 두 사발에 고민이 사라지게 한 다는 옛 선인의 말이 있다(노공). 차를 마시는 제 1목적은 옛날에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해갈과 고민을 사라지게 하는데 에 있다. 목을 축여 해갈을 하는 것이 첫째이고 충분히 수분을 모아 목을 매끄럽게 하여 수분이 모아 우울한 마음을 씻어주고 가슴과 장을 부드럽게 해준다. 일반 교목 노차수(老茶樹)의 차는 적당히 진화한 후에는 모두가 목과 입을 부드럽게 하고 고민을 사라지게 하는 윤화경계(潤化境界)에 이른다.
조(燥) 술이 너무 독하면 목과 근육을 긴축시켜 질식할 것처럼 어렵고 찻물이 너무 쓰고 떫으면 삼키기 어렵고 목이 마르고 타는 듯한 감각이 온다. 일부 운남성 외(外)의 변경푸어차의 하등품의 차는 쓰고 떫은맛이 적거나 없어 인후에 건조함을 느낀다. 이를 통상 조(燥)라 한다. 달리 소후(鎖喉)라고도 한다. 목을 잠근다는 뜻이다. 이는 정서가 불안하고 의식이 초조하다. 너무 밀봉하여 장기간 보관품을 갑작스레 열어 즉시 마시면 이 조(燥)적 현상이 온다.
이때는 큰그릇에 일정한 시간 공기를 유통시켜 안정을 취한 뒤 마시면 자연히 조감이 해소된다. 매변적 푸어차는 볶아서 매미를 제거할 수 있고, 그래도 매미가 있을 때는 삶아서 널어 말리면 향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너무 볶거나 과열하여 너무 말리면 조(燥)감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여름과 가을에 딴 차는 조금은 조감이 있다. 일단 조감이 있으면 좋은 차라고 할 수 없다.
④푸어차 의 생진(生津)
양협생진(兩頰生津) 비교적 하등품(下等品)의 차(茶)는 떫은맛이 너무 강하여 오히려 침이 생기지 않고 양 뺨안의 근육에 자극을 주어 경련을 일으키게 하여 침이 생기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를 "섭이불개(澁而不開)"라 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푸어차 즉 신선하고 30년 미만의 단기 진화 푸어차에서 양협생진(兩頰生津)현상이 있다. 변경푸어와 진기가 덜 오래된 신선한 푸어차가 생진작용(침을 생기게 하는)이 활발하다. 그 예로 료복산차, 홍태창원차, 일부 광동병, 7562 전차, 은호타차, 광운공병 및 일부 현재의 청병생차 등이다. 땀을 많이 흘리고, 체내에 수분을 많이 빼앗겨 갈증이 심할 때 이상의 양협생진 푸어차를 마시면 적격이다. 해갈과 고민에 특효과가 있는 좋은 차이다. (1995년 기준 진기년도)
설면생진(舌面生津) 학리적 각도에서 볼 때 침은 입의 내벽과 혀끝아랫 부분에서 분비되는 것이다. 혀의 면은 맛을 보는 부분이고 침이 나오는 것과는 무관하다.
사실상 혓바닥에서 침이 생기는 현상은 일반 푸어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말이다. 모든 것은 경험적 사실로 보아 긍정적이다. 어쨌거나 혓바닥에서 침이 나는 듯한 감을 받는 것은 단순히 느낌의 문제이다. 40∼60년 된 조기 및 후기 푸어차는 모두 혓바닥에서 침이 생기는 효력이 있다. 찻물이 입에 들어가자 입안에서 서서히 침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뺨에서 급히 강하게 생기는 침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감각이 아주 부드럽고 순하게 침이 많이 생긴다. 혀 끝 위로부터 느낌이 오게 되어 부드럽고 매끄러운 촉촉한 기가 계속 끊이지 않고 침이 생겨 혀끝 양변 입안에 자연스럽게 침이 흐른다.
무대 뒤에 드라이 아이스를 놓아 백색 젖빛의 짙은 안개가 서서히 무대 위에 가득 차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혓바닥에 침이 생기면 자연 해갈되고 생리적인 작용이 아주 부드럽게 몸의 안팎으로 퍼져 양뺨에서 침이 생기는 그 이상의 경지라고나 할까?
양뺨의 침이 생기는 것은 야성(野性)적인 패기요, 급하고 거친 반면, 설면생진(舌面生津)은 온순하고 온화하고 세밀하여 완전한 푸어차를 표현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잘 만들어진 미의 결정체이다. 이들 설면생진(舌面生津)차품으로는 동경호, 경창, 강성, 정흥원차, 복녹공차, 홍인, 녹인 등 조기적 푸어차품으로 기회가 되면 음미해 보아 설면생진(舌面生津)의 효과를 직접 봄으로서 더욱 진년(陳年)푸어차를 애호하게 될 것이다.
설저명천(舌底鳴泉) 차를 마실 때 혀끝 밑에 찻물이 흘러 피압박감으로 흘러나와 거품이 생기는 것 같은 감각을 명천이라고 한다. 이는 단지 기술성(技術性)의 명천이고 일정하게 차를 이렇게 마시는 것은 아니다. 마실 때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이와 같이 느낄 수 있다. 50∼60년 이상의 선기적 푸어차, 홍지원차, 동경노호, 말대긴차 등은 찻물이 이미 지극히 부드럽고 유향 무미적 경계에 도달했다.
찻물이 입에 흘러 혀 끝 밑에 이르렀을 때 서서히 침이 돌아 끊이지 않고 미세한 거품이 이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진정으로 설저명천이다. 장구한 세월동안 진화한 푸어차는 이미 찻물이 지극히 부드러워졌고 입에 넣자마자 즉화하는 경계에까지 도달하였기 때문에 초기의 강한 탄닌산이 모두 소실되어 양협생진(兩頰生津) 혹은 설면생진(舌面生津)의 경계는 이미 뛰어넘어 설저명천(舌底鳴泉)의 효력만이 일어난다.
⑤푸어차의 기(氣)
정(精), 기(氣), 신(神) 이들은 모두 우리 중화문화의 총체적인 근원으로 여타 무예, 의학, 문철(文哲), 산복술(算卜術) 및 음식 주거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 없다.
기는 구체와 추상의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왕왕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중간적인 교량역할로도 이어지고, 서양의 체육운동은 전부체력강화 라 부르지만 근본적으로 연기적 설계가 없다.
중화민국의 전통문화 중에는 대양혈(對養血), 보기(補氣), 첨신(添神), 개별적인 독특한 처방과 방법(方法)으로 처리하고 있다. 때문에 기는 의학, 무예, 명리풍수 방면(方面) 등 과학적인 신기(神奇)의 경계를 뛰어 넘은 데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인체경낙 중에 전체적 기능활동을 촉진하고 발전시키는 진기(眞氣), 정기신(精氣神)의 기(氣)는, 현대 중의학(中醫學)에서 이미 인식된 생물능(生物能), 또는 신경능(神經能)이라 한다.
중국의 장경천연식물유한공사(長慶天然植物有限公司) 제품으로 "도차(鍍茶)"는 그 설명 중에 "도차는 중국명차의 하나이다. 고대궁중에 어용으로 만들었고, 암차를 채집하여 다른 여러 천연식물과 정련(精練)하여 만든 것으로 맛은 짙고 순하며 화학물질을 섞지 않은 국보적인 음료이다.
고정밀도의 게르마늄이 함유되어 있고, 늘 마시면 담을 제거하고 혈당, 혈압을 내리고 신진대사 촉진, 경신익기, 노화방지 등에 좋은 최고의 차이다." 운남성은 열대와 아열대의 다습한 지대로 물, 열 자원이 풍부하고 제 4기적 지질년대로 천 수백만 년이래 최후적 빙하기의 내습을 받지 않는 최원시 삼림 지역으로 수목이 장대하고 수근이 깊어 지하에 뿌리내려 상록 활엽 교목대 삼림 지구이다. 더욱이 지하의 풍부한 광물자원으로 영양분이 충분하고 토양이 비옥하고 지표 거의 대부분이 적황토로 운남차 속의 대엽차종이 교목으로 서식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곳으로 이들 찻잎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기운을 보호하는데 가장 좋은 차 음료의 하나이다.
차기(茶氣)는 푸어차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푸어차의 주요 특색의 하나로서 운남대엽교목 노차수(老茶樹)의 차엽은 그 차성이 짙고 풍부하여 제조후 장기간 보존 진화하면 차속의 당분과 게르마늄이 일정하게 화학작용을 하여 차를 우릴 때 녹인 찻물이 용해되어 체내로 흡수되어 전신경락지중(全身經絡之中)에 운행되어 그 진기가 보기(步機)의 효과를 더한다.
고금이래 차를 마신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진정 그 차의 기를 알고 그 기의 미묘함과 그 경계를 아는 이 얼마일까? 허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오는 차에 대한 시구(詩句)는 220여수에 달하지만 차의 기(氣)에 대한 것은 9수로 차기에 대한 인식을 한 시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의 시구와 기에 대한 일부를 원저자와 상의 하에 번역에서 제외합니다.)
*푸어차의 종류
금과공차(金瓜貢茶)
푸어차태상황금과공차(普
茶太上皇金瓜貢茶)
청(淸)나라 옹정(擁正)7년(1729년) 운남총독 악이태(鄂爾泰)가 푸어부녕어현(普 府寧縣)에 공차 차공장을 설립하여 최고급의 푸어차를 만들어 황실에 공급하기 시작하여 약 200여년 동안 존속되었다.
그 당시 사모현은 차엽의 집산지로서 6대차산에서 1급의 춘차를 채취하여 견고한 단차를 만들 때 대중소(大中小)로 만들어 황실에 진상한 후 민간에 판매를 허가하였다.
큰 것은 5근으로 모양이 사람머리 모양을 하였다하여 인두공차(人頭貢茶)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서양참외모양에 황금색을 띄어 금과공차라고도 부른다. 1963년 북경고궁을 정리하다가 궁중의 차 창고에서 약 2톤 정도의 차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서 위의 이 차가 발견되었다.
중국차인협회 비서장 왕욱봉 선생이 이차를 시음(試飮)해본 결과 "탕이 색깔이 있고 차맛이 오래 진화되어 담박하다."고 하였다. 보관상태가 좋아 매변현상이 없었으며 무게는(5근반)3300g으로 현재는 절강성 항주시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엽구소에 보관, 연구중이다. 이 차를 이름하여 푸어차의 태상황(太上皇)이라 하고 있다.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
청나라말 이전에는 의방차산(후에 개칭:의방차구)의 푸어차가 대환영을 받았었다.
특히 소엽종 푸어차는 청나라 궁중에 공납하는 주요 차였으며 의방차구 내에는 많은 차 공장이 들어서 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 때로부터 근래까지 전승해온 차공장사료(史料)에 의거 참조해보면 송운호(宋雲號)와 원창호(元昌號)의 양가 차공장은 청 광서초(淸 光緖初) 에 동시에 창업하였다. 송운호는 창업 이후부터 계속 차를 생산하여 오다가 중화민국 초에 잠시 휴업했다가 중화민국 10년(1921년) 재개업 매년 푸어차 100여담씩 생산하여 중국 사천(四川)지방으로 판매하였고, 원창호 공장은 개업이래 매년 400∼500여담씩 생산하여 사천지방과 북방지역으로 판매해 오다가 중화민국 초년 폐업하였다.청나라 중엽부터 이무산(易武山) 푸어차 사업이 활발하여 조정에 공납하는 길(道路)이 개설되기 시작하였고 그 후 돌로 포장하여 마차가 운행할 수 있도록 이무진과 의방차구까지 연결되었다.
이무진과 의방차구까지는 수십여 리가 떨어져 있었으나 이 두 지역의 차잎이 공차용소엽차종으로 최적합하였고, 한편 양질의 향이 뛰어난 대엽종이 동시에 생산되었다. 많은 일반차 공장들도 이들 두 지역에 거의 같은 시기에 차공장들이 문을 열었다. 원창호는 광서년중기(光緖年中期) 이무(易武) 큰길가에 지점을 개설하여 복원창호(福元昌號)라 불렀으며 차를 만드는 전문기술자를 고용하여 이무산 대엽종 푸어차잎을 골라 차를 제조하여 해외시장까지 판매하였다.
광서말년 운남 남부의 치안이 불안하고 유행병이 창궐하여 많은 차공장이 문을 닫았다. 의방의 원창호와 이무의 복원창호도 폐업의 위기에 처하여 원창호는 폐업하였고 복원창호는 명맥만 유지하다가 1921년 전후 재도약의 해로 운영하였다. 원창호와 복원창호의 주인은 여복생(余福生)으로 원창호 차는 현재 볼 수 없고 복원창호 차만이 극소량 수장가에 의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으나 이미 시중의 차 가게에서는 진품을 보기 어려우며 몇 편의 복원창원차를 홍콩의 노이선생(老李先生)으로부터 할애 받을 수 있었다.(1995년 당시 88세) 노이(老李)선생의 구증(口證)에 의하면 이 복원창원차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을 당시 이미 68년간 보관한 차로서 이미 90년 이상 된 차라고 하였다.
< 복원창원차 차통 >
복원창원차는 최우량 대엽종 3급 차잎으로 만들어 잎이 크고 두꺼우며 밤색에 회색이 섞이고 윤기가 돈다. 차의 기는 강하고 이무정산 푸어차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남색과 자주색의 내비차는 양기(陽氣)의 강성차이고, 백색(白色)내비는 음기(陰氣)의 부드러운 차이다. 이 두 가지의 차는 특성이 다르다. 최근 발견된 조잡한 복원창차는 조기적 모조품으로 차운은 햇차이고 떫은 맛이 있고, 잎은 짙은 밤색으로 흑색에 가깝다.
차잎은 크고 억세며 낱잎으로 되어있다. 차의 표면으로는 진위가 판별하기 어렵고 필히 차를 물에 타보아야 알 수 있다. 복원창원차는 당당하고 중후한 기색으로 모든 것을 충족하는 푸어차의 웅장한 남성미를 가진 차로 현재의 푸어차 중에 왕이라 할 수 있다. 등교수에 의해 할애 보관 수장중이다.
차순호(車順號)
차순호(車順號) 차공장은 청(淸) 광서(光緖) 26년(1901년) 차순래(車順來)에 의해 이무(易武)에 창건되었으며 연간 생산량은 50∼100여담(擔)으로 자본금은 일만은원(一萬銀元), 영업액 5만원(五萬元)으로 말(馬) 10필(匹)로 영업을 하였다.
(이상은 역자가 이무현지에서 수집한 자료에 의거 발취한 것임.)
근래에 차순호차 1통(筒)이 발견되어 푸어차 고수(高手)들과 등시해 교수가 감정하여 2편(片)은 이미 소모하였고 5편이 대만 수장가의 손에 있다.
(이 차순호 편은 원저서책(原著書冊)에는 없으며 최근 입수한 자료를 받아 첨부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이 밖에도 오래된 차(茶)가 발견 되는대로 첨가, 발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차를 발견하게 된것은 "카나다 화교"가 1통을 소장하고 있는것을 홍콩의 차상인이 발견하여 us$500에 구입하여 홍콩$ 12,000에 대만의 수장가에게 팔았다고 한다. 이중에서 그 편은 푸어차의 고수(高手)들과 등시해교수와 함께 마시고, 1편은 등교수가 수장하고 나머지 4편은 상당량 이미 소모 되었다고 한다.
동경노원차(同慶老圓茶)
6대차산을 이무차구(易武茶區)라고도 하며 이무진은 6대차산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을 지나야 이무차구로 들어갈 수 있다.
이 6대차산 중 만산산(漫
散山)은 다른 다섯 산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고 이무진(易武鎭)에 붙어있는최남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무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1825년 청나라 원복저(院福著)「푸어차기」에 의하면 유락, 혁등, 의방, 망지, 만전, 만산 등 6대차산 중에 의방, 만전산 차의 맛이 제일이다.
< 동경노호 내표>
<동경노호원차 내비>
궁중에 공차용으로 공납한 차는 소엽푸어차(小葉普
茶)를 주로 위의 의방(倚邦) 만전(蠻전)산 차잎으로 차를 만들었다.
이와 같이 이무지방의 좋은 차 생산으로 인하여 많은 모차(毛茶) 공장이 이 지역에 설립되었고, 좋은 차 원료의 공급이 원활함으로써 좋은 차를 생산할 수 있었으며 또 기술 발전도 도모할 수 있었다.
이무지구 6대차산을 통칭 이무대차산(易武大茶山)이라 하고 6대차산 중 만산산(漫
散山)을 이무산, 이무정산(易武正山) 또는 정산(正山)이라 불렀다. 1984년 주무관청(官廳)의 결정으로 망지산, 의방산, 만산산 북쪽을 만쇠산이라 개칭하고, 남쪽산을 이무산으로 분리하여 이무산차구가 지금은 축소되었다.
동경호(同慶號)차 공장은 1736년 이무에 가장 큰 모차공장을 설립하여 생산했고 가장 오래된 차공장이다. 동경노호는 용마상표를 내표 및 내비로 사용하다가 1920년 경신년 쌍사자기도(雙獅子旗圖)로 상표를 바꾸었다.
중공정부에 의하여 개인차공장이 국유로 흡수되기 시작하자 폐업하였으며, 동경호차의 품질은 가장 훌륭한 푸어차품으로 오늘날 인정받고 있다. 동경노호 용마상표는 그 종류가 많으나 시중에서 구입 가능한 것은 1종류뿐이었으며 다른 2∼3종류의 차와 함께 가장 오래된 푸어차 중의 하나이다.
차령은 약 100년으로 일반 상인들은 청말(淸末) 국보급 백년푸어차라고 부른다. 홍콩의 금산루(金山樓) 찻집은 푸어차와 음식을 함께 파는 홍콩식 음차영업(飮茶營業)을 하는 곳으로 주인이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후 점포를 휴업하고 창고를 봉쇄하였었다.
홍콩의 찻집은 대부분 푸어차 영업을 하였으며, 그 이유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차를 마실 때 음식과 함께 하고 둘째는 점심을 육식의 기름기 음식이 주이기 때문에 식후에 푸어차를 마시는 것은 지방질을 분해하는 차성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한자리에 앉으면 한나절을 보내는 것이 홍콩인들의 일상습관이다. 오래된 푸어차는 지방질을 분해시켜줄 뿐만 아니라 위를 상하지 않고 자극흥분 시키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푸어차를 구하려고 찻집을 찾게되고, 고급 푸어차가 시중에 귀하게 되자 품질 낮은 차를 찻집에서 종종 국화꽃을 띄워 마시는 국화푸어차가 생겨났다. 5년전(1990년) 국화푸어는 발암물질이 있다하여 의학계에서 정밀 분석해 본 결과 황국화꽃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고 푸어차에서는 오히려 암을 죽이는 물질이 발견되어 암 예방목적으로 푸어차 붐이 더욱 일게되었다. 그리고 97년에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됨에 따라 많은 외국인 회사가 철수하거나 또는 새로이 사업계획을 세우는 등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 있었다.
<동경노호 차통>
푸어차도 또한 이런 영향아래 금산루(金山樓)와 용문차루(龍門茶樓)도 그의 창고를 열게 되었으며 이때 창고에서 동경호, 경창호, 강성호, 홍인, 녹인갑을 등 고급 푸어차가 출고되었고 이때 대만지구에도 푸어차 마시는 것이 유행을 이루어 홍콩 상인의 대만차 친구를 통해 대만에 판매하게 되었다. 때문에 대만에는 현재 오래된 고급 푸어차 수장가가 많아 동경호차는 그 동향을 쫒아 "동경푸어차 동호회"를 발족하여 공동으로 감정 품평하는 등 차 활동이 시작되어 푸어차 품과 수장품이 이렇게 형성되었다.
동경노호차는 근 일 백년이 된 오래된 차로 보관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포장 방법은 운남산 품질 좋은 넓은 대잎으로 방파, 방습, 방취적 효과를 포장한 통(筒) 윗면에 주사(朱砂)로 양춘(陽春)이라 가로로 썼고 우측에는 위에서 아래로 이무정산(易武正山), 왼쪽에 세로로 양춘눈첨(陽春嫩尖)이라 씌어 있다. 그리고 중앙에 동경자호(同慶字號)라고 먹으로 썼다. 매통 제1병과 제2병 사이에 용마상표 내표가 한 장씩 덜어 있다. 내비와 내표는 그림과 같다. 동경노호 용마표원차는 삼월양춘에 이무산의 3,4,5등급의 가늘고 긴 찻잎을 골라 만든 차로서 장기간 보존되었고, 차 표면은 짙은 밤색이고 금황색의 차싹으로 가는 줄기와 가지가 있다. 차의 직경은 20㎝ 무게는 약340g 배면은 비교적 큰 배꼽으로 주먹으로 눌린 것 같이 움푹 들어갔다.
차의 형태는 거의 완전하나 차의 테두리 부분은 푸석거리고 부서지기 쉽다. 차 형태는 차 향보다는 못하고 붉고, 윤기는 볼 수 없다. 이는 차를 3∼5급의 차품(茶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중의 대부분 노(老)차상들은 변경푸어로 취급하여 시중의 차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1∼2년 후에는 그 상황이 바뀌어 4∼5배의 가격으로 폭등하였으며 이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 차가 국보급이라는 것을 알고 값이 치솟았다. 차의 탕색은 짙은 밤색이고 투명하며 그윽하고 우아한 난향이고 입에서 느끼는 찻물은 가늘고 부드럽고 매끄럽고 순하다. 차 맛은 담박하고 아주 연한 사탕수수의 햇순단맛이다. 동경노호의 전체적인 맛을 느끼는 것은 몽롱하고 황홀하여 도가(道家)의 경지에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혀 쓴맛을 느낄 수 없고 떫은 맛 또한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최고의 찬사로 쓰는 설저명천(舌底鳴泉)이라 한 것이 이를 말함이리라. 이 설저명천은 푸어차가 일정기간 오래 숙성된 차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70∼80년 이상된 좋은 푸어차에서만 이 설저명천(舌底鳴泉)의 기세를 느낄 수 있다. 후기적 차품(茶品)중에는 동경원차(同慶圓茶)의 쌍사기도(雙獅旗圖)원차와 홍인원차 등 이런 것들은 기의 강하기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槪世)하는 차이다. 기를 인체내에 흡수하면 전신의 경락에 스며들어 내가 듣기로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한다고도 한다. 복원창호를 푸어차의 왕이라하고 한다면 동경노호는 푸어차의 황후랄 수 있다.(소장중임)
동경원차(同慶圓茶)
18세기 말과 19세기 초가 푸어차의 전성기로서 이때 차잎을 채취하기 위한 입산자가 매일 수십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민간교역도 활발하여 서장 신강 서강등 지역과 해외시장으로는 홍콩을 위주로 하여 동남아 구미에 이르렀으며 사모지역(思茅地域)에는 세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동경호는 본사를 석병(石屛)에 두고 재조창은 이무산대가(易武山大街), 차밭은 이무산에 두었다. 석병에있는 동경호(同慶號)를 운남석병동경호(雲南石屛同慶號)라 하고 이무산대가 차창은 이무동경호차창(易武同慶號茶廠)이라 칭하고 제작된 차는 석병으로 옮겨 총 발매하였다. 일부분은 즉시 판매하고 나머지부분은 창고에 보관 장기진화숙성 시켰다.
동경호차는 모조품이 많이 나돌게 되어 1920년 8월에 용마상표(龍馬商標)에서 쌍사기도(雙獅旗圖)로 상표를 바꾸었으며 용마상표의 동경호차를 동경노호원차, 쌍사기도 상표 동경호차를 동경원차라 칭하였다. 현재에 일반 푸어차 애호가들은 이들 두 푸어차를 보배처럼 생각하며 국보급 푸어차라 칭하고 있다.
지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중화민국 초기의 생산품으로 약 60여년 되었다. 동경원차의 재고는 현재 극히 희소하며 시중에서는 볼 수 없고 소장가에 의해 있으며 낱개로 밖에 볼 수 없는 진귀한 차이다.
매병 사진과 같은 내비 1장씩 덜어 있고 직경 21㎝, 중량 약320g으로 줄기가 길고 율황색으로 윤기가 돈다. 야장향으로 진운(陳韻)은 충분하고 수성이 원활하고 목에서 단맛이 느껴지고 차의 기는 아주 강하며 설저명천(舌底鳴泉)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고급 푸어차 중의 최고품이다.
홍지원차(紅芝圓茶)
나의 아버지는 중국 광서성 출신이고 어머니는 그 조부가 광동출신으로 아버지가 젊어서 단신으로 말레이시아에 기술공으로와 어머니를 만났다.
우리 집은 푸어차 가정으로 매일 큰 주전자에 좋은 푸어차를 끓여 통상으로 마셨다. 그 당시는 시장의 푸어차 값이 고급품이나 보통 품의 가격이 별로 차이가 없어 좋은 차를 큰 주전자에 많이 넣어 우려 마실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최고품의 푸어차는 동남아 각 국 노(老)화교들이 즐겨 마셔 일반 차 상인들은 진품의 행방을 잘 알지 못했다. 수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머니께서 집안을 정리하던 중에 오래된 다관 1개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백철다관 1개를 아무런 표기도 없이 부서진 푸어차를 담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되었다.
모친께서 아버지의 푸어차 즐기심을 승계할 자가 나라고 생각하시고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으로 이 다관을 가지고 저의 집에 오셨다. 그 날 저녁 이 차를 함께 마셔보고 어머니에게 가까이 가서 옛집에 더 남겨 놓은 다관이 없느냐고...(?) 나는 이 차의 이름을 홍지원차라고 붙였다. 차의 진운으로 보아 100여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며 표기도 없고 완전한 형태의 차가 없어 더 이상 알 길이 없었다.
차는 이미 산차(散茶)형태이고 차의 외관 색깔, 줄기색, 찻잎조각, 잎의 형태, 탕맛, 차향 등으로 보아 최고품의 차임이 분명하였다. 야장향(野樟香)으로 목에서 단맛이 돌아 나오고 무미지향(無味之香)과 혀 밑에서 침이 돌아나는 설저명천(舌底鳴泉)의 경계의 차이고 차의 기가 강하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차 중에서 가장 최상의 차이다.
홍색은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최고급 푸어차에 대한 대표색이고, 영지(寧芝)는 진귀한 약재(藥材)의 하나이다. 여기서 홍지원차(紅芝圓茶)의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 이 적은 양의 차를 보고 제조연도, 이름, 제조창 등을 알아보기 위하여 푸어차 전문감정가들에게 같이 시음해본 결과 그 누구도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진귀하고 훌륭한 차라는 것 밖에 밝혀진 것이 없다. 미루어보아 차 제조기술이 뛰어난 어느 개인이 만들었거나 혹은 푸어차명품 수장자 선배 노인(老人)이 습관대로 내표 내비를 제거하고 수장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소량 수장중임)
경창원차(敬昌圓茶)
만쇄차산(曼
茶山)의 위치는 라오스 변경으로 포괄적으로 서쌍반나 이무(易武)의 만쇄(曼
), 만흑(曼黑), 만내(曼乃)와 만랍(曼臘)등 4개 지역에 걸쳐 있다. 만내는 만랍의 북쪽에 있다.
만쇄차산은 이무산의 북산으로 이무산차와 거의 대등하여 이무산의 다음 등급쯤이다. 만쇄차산은 강성현과 연결되어 있는 지역으로 서쌍반나의 지역에 포함된다.
만쇄차산의 차는 모두 강성현을 통과해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강성 푸어차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중화민국 초기 경창호차 공장은 강성지방에서 최고로 유명한 차 공장이었다. 초기의 개인차공장 제품으로 동경호의 제조공정과 같다.
<경창원차 내표(동경노호 내표와 같다.)>
제조기술, 포장기술 등 최우량품의 포장재료를 사용하였으며 내비, 내표 인쇄 및 저장방법 등이 모두 최고급이었다. 현재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경창호는 그 수량이 극히 희소하여 구하기가 아주 어렵다.
경창원차는 만쇄 차산의 최고급품을 원료로 사용하여 만들었다. 교목(喬木) 대엽종으로 차의 몸통이 속과 겉이 풍만하고 촉감이 강렬하다. 차잎을 쩌서 눌러 형틀에 넣어 형을 만들 때 뒤섞인 차청을 한 가지로 배열하여 만든 것처럼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푸어차 중에서 가장 외관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차이다.
차의 직경은 20.5㎝, 무게 330g, 경미한 장향(樟香)에 차의 수성은 극히 가늘고 부드러우며 입에 닿는 즉시 화(化)하여 푸어차 중에서 가장 가늘고 매끄럽다. 1930년대 제품으로 매병 내비1장, 내표1장은 매통에 내장되어 있다. 내비와 내표는 그림과 같다. 시중에는 경창호 가짜가 나돌고 있으며 내비와 내표 등을 새로이 인쇄하고 차의 모양도 새로 만들어 전문가들은 쉽게 식별이 용이하다. 가짜는 낱개로 시중에 나돌고 차는 운남성에서 나는 햇차로 만든 급발효 숙차이다.
여기에 재차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 누룩균을 첨가한 속성 매변 가속진화로 효과를 노린 습창차이다. 가짜 경창호는 풋내와 곰팡이 냄새의 맛이 난다. 찻물, 맛, 향, 차성 등이 완전히 진품과 판이하다.(소장중임)
< 경창원차 내비 >
< 경창원차 차통 >
강성호(江城號)
운남성에서 제조하는 차들은 기술과 차의 품질을 모두 일정수준 이상으로 억제하고 판매와 가격도 통일가격로 정했다. 1950년대에는 청모차수구가구(靑毛茶收購價區:차 원료 구입가격 제한지역)의 강성현(江城縣)과 서쌍(西雙)반나가구의 란창현(瀾滄縣)이 통일가격으로 제정하였다.(운남성차엽진출구 공사誌)
강성현의 푸어차품과 서쌍반나의 푸어차품이 기술이나 품질이 평등하고 우수하였으며 특히 강성지방은 만쇄차산의 차잎의 운송필수 경유지였다. 이 지역의 차의 품질은 모두가 우수하여 경창원차 같은 최우량의 푸어차가 출현할 수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그 많은 강성지방의 조기 차가게, 차공장의 자료들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것이 강성의 푸어차품으로는 경창원차와 강성원차 뿐이다. 이 강성원차는 동경노호원차와 경창원차와 함께 홍콩의 금산루에서 매출하였으며, 그때 강성원차는 극히 수량이 적어 현재 시중에서는 볼 수 없고 "할애(割愛)"방식으로 유통되는 희귀품이다.
< 경창원차 내표 >
강성원차와 보경원차는 같은 형태이고 내표는 있고 내비는 없다. 내표는 그림과 같이 모든 것이 수제로 하여 예술성이 뛰어나고 판본이 일정치 않다. 도안, 문안, 문서 내용은 같으나 필체는 각각 다르다. 이전의 푸어차 중에서는 극히 드문 현상이다. 차의 외형은 견실하고 압모(눌러 찍어낸) 기술은 특수하고 차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변두리 가장자리가 일정치 않다. 차의 직경은 19.5㎝, 320g, 촉감은 강하고 찻잎의 줄기는 길고 색은 황율색으로 유광(油光)이 나며 차의 외형은 경창원차와 차이가 거의 없고 전형적으로 푸어차 대엽종의 외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약한 장향에 농후한 청향적인 노(老)차향이 저장 연도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확실히 훌륭한 푸어차라 할 수 있다. 일설에는 강성원차가 상해 항일 영웅 류우춘(雨春)장군이 상해에서 패한 후 홍콩에 와서 차사업을 하려고 운남성에 가서 경창호와 강성호 차공장의 차제작을 한 푸어차라고도 하며, 강성호와 경창호는 자매차이다. 중화민국정부 30년 즉 1941년대의 생산품으로 다방면의 이 차의 평가감정은 강성호의, 차운은 경창호에 뒤따른 것으로 내표의 5성(五星) 도안 등으로 보아 열렬한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50년대에 생산된 산품 임을 알 수 있다.(소장중임)
< 강성원차 차통 >
양빙원차(楊聘圓茶)
푸어차 역사 중 육대차산(六大茶山)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뒷날 육대차산을 이무차구(易武茶區)로 개칭되었으며 원(元), 명(明)에 이어 청조에 이르러서는 5대차산이 유명하게 알려졌다. 만송산(曼松山), 만공산(曼拱山), 만전산(曼
山), 이무산(易武山), 우곤당(牛滾塘)산의 반쪽과 만랍산(曼臘山) 반쪽을 합하여 5대차산이라 하였다. 그중 만송산, 만공산, 만전산, 우곤당(牛滾塘)의 반쪽산(半山)을 합쳐 의방차구(倚邦茶區)로 분류하였다. 청나라 중기이전에는 이곳 의방차구가 푸어차 생산량이 최대량이었고 품질 또한 최우량품이었다. 훗날 위의 6대차산과 인접해 있는 유락산(攸樂山) 일명 공명산(孔明山)을 포함해 6대차산이라 하였다. 청나라 초기 석병(石屛) 사람들이 이곳 의방차구에 와서 차밭의 열기를 일으켰으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초기에는 이미 사천성의 차농가가 이곳으로 대량 이주하여 소엽차종의 주류를 이루는 의방차구를 만들었다. 의방차와 이무차를 비교하면 의방차잎은 가늘고 잎이 작고 짧으며 부드럽고 운남성 내에 처음으로 소엽차종을 생산한 차산이다.
소엽차는 보통 사천지방 및 그 이북지방 사람의 취향에 맞는다. 그 당시 1급의 어린 차싹으로 신선한 푸어여아차를 만들었고 차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두금과공차를 만들었다.
의방공차 역사상 황제의 명에 의해 매년 약 일백여담씩 조정에 공차케 하였으며 건융황제 초기에는 이지역 인구가 8∼9만으로 거의 모두가 푸어차에 관여하여 생활하였고, 의방차구의 4곳의 번화가는 의방가, 만공가, 만전가, 우곤당가였다. 의방가(倚邦街)를 중심으로 하여 주위에 모여 있었으며 교통, 차마교역이 가장 번영하였으며 광서31년 갑자기 쇠퇴기를 맞아 민국 초년까지 이르렀다.
이 시기는 치안 불안, 관리의 악폐, 지주의 혹사, 박탈, 위생악화, 질병유행 등으로 차(茶) 또한 생산할수 없어 좋은 차의 안전한 운송판매가 불가능하여 차 공장 및 가게가 속속 휴업하였다. 민국 초에 행정구역이 크게 바뀌고 도로가 신설되어 이무산구가 차를 개발 촉진하여 푸어차 교역에 박차를 가하자 이무산으로 차사업장은 옮겨져 의방차구는 몰락하여 불과 130여호에 인구 천 여명에 불과하였다. 양빙호는 대략 1921년경 의방대가(倚邦大街)에서 개업, 제조, 경영하였으며 그 이상의 자세한 기록과 증빙 자료가 없어 밝힐 수가 없고 남아있는 차조차 현재 알려진 바로는 10여 개에 불과하여 역사의 물증으로 전해질뿐이다. 사진과 같은 내비가 매병 묻혀있고 내표는 1장 통(筒)에 덜어있다. 차의 크기는 비교적 작고 폭 19㎝, 280g , 사진과 같은 내비가 내장되어 잇다. 차의 색깔은 암율(暗栗)색이고 누런색 차싹이 유광(油光)이 돈다. 청향으로 물맛은 얇고 아주 약한 신맛이 들고 줄기가 작은 전형적인 의방소엽푸어차의 특성을 지진다.
동흥조기원차(同興早期圓茶)
동흥호차공장의 조기는 동경호나 경창호와 같은 형태였다. 전문가에 의해 정제된 고급 푸어차로 알려져 있으며 홍콩의 어느 노(老)상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시중의 동흥호차는 많지 않으며 품질이 우수하고 일반적으로 현재 동흥푸어 원차의 수량은 아주 적다.
완전한 통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보기 어렵고 현재 푸어차계에서는 몇몇 사람이 이 차에 대하여 알고 있을 뿐이다. 모조품이나 가짜품도 볼 수 없다. 차 공장의 지명도의 영향인 듯 유통되는 차는 극히 적다. (소장중임)
< 동흥조기원차 내비 >
< 동흥원차 차통 >
동흥후기원차(同興后期圓茶)
동흥호 차창의 원래 이름은 동순상(同順祥)호였으며 중신행(中信行)이라고도 하였다. 1733년 이무진에서 창업하였으며 1920년 전후(民國10年前後)에 동경호처럼 이무대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차공장이었다. 이때 생산량은 년(年) 약 500담으로 대형 차공장 대열에 끼였다. 현재 알려진 동흥호의 자료는 일부분이고 푸어차계의 어느 노(老)선배의 구전에 의하여 알려진 것이고 생산된 차는 비교적 훌륭하다. 저자가 소유하고 있는 두 종의 동흥호 차는 모두 원병차(圓餠茶)로 일종(一種)은 1920∼1933년 사이 제조된 것으로 내가 구분하여 "조기동흥원차(早期同興)"라 하였고 1933년∼1948년 사이 산품을 구분키 위하여 후기(后期)동흥호라 칭하였다.
차잎은 모두 의방차산의 만송정상차원(曼松頂上茶圓)의 찻잎으로 품질은 보통 이상으로 좋은 소엽 차종이다. 동흥원차 내비는 "本號專辨易武倚邦 巒松頂上白尖嫩芽"라 표명되어 있으나 본인이 보건대 의방차산의 차품인 것만은 확실하나 만송산정상차품인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 동흥원차는 2종으로 제조시기가 약 20년 간격으로 두 차의 차성은 같으며 동흥호 차공장의 품질관리의 철저함을 발견할 수 있다.
만송채차잎(曼松寨茶葉)은 의방차의 최고급으로 동흥호차는 주로 만송차잎을 원료로 하였다. 의방차산은 소엽 푸어차 위주로 하였고, 소엽차수(小葉茶樹)는 그 생장이 서쌍반나 지역의 소엽 차종으로 운남성 남부에 여러 차나무의 종류가 함께 섞여 자란 특성을 잘 지니고 있는 "푸어차성(茶性)"이라 한다.
의방차구의 소엽 차종과 대엽 차종은 공통 푸어차성 이외에 독특한 것은 소엽의 청향과 대엽의 짙고 두터운 맛이 고루 갖추고 있어 차를 우려 마실 때 아주 적합한 신선미가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여아푸어공차(女兒普 貢茶)는 자희태후(慈嬉太后)가 청엄차성(靑
茶性)의 맛을 즐겨 은총을 내린 선택된 공차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의방의 푸어차는 어리면서도 노향(老香), 햇차이면서도 묵은 맛이 나는 가장 신선한 음료이기 때문이다.(소장중임)
동창호(同昌號)
동창호는 1869년 동치(同治) 7년 창설하여 청나라말 민국초에 휴업하였다. 1920년경에 많은 차공장 가게들이 이무차구에 창업 또는 재 개업할 무렵 동창호도 주관보(朱館寶)에 의해 재 창업 이무대가에서 이무정산 푸어차를 계속 생산하였다. 1929년도 푸어차 연 생산량은 400여담으로 차공장 규모도 상당히 컸다. 애석하게도 그때 만든 차를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차 공장, 가게 명호와 간단한 문자자료 뿐. 1930년대 동창호의 주인이 황문흥(黃文興)으로 바뀌어 영업을 하였고 초기에는 차의 내비의 낙관을 "주인황문흥근백(主人黃文興謹白)"이라 사용하다가 1949년경 동창호(同昌號)를 동창황기(同昌黃記)라 개칭하고 주인명 대신 황금당(黃錦堂)이라 쓰고 내비 낙관은 "동창황기주인근백(同昌黃記主人謹白)"이라 그림과 같이 바꾸었다.
< 동차원차 내비 >
< 동창원차 차통 >
동창호는 3종으로 ①동창원차(同昌圓茶), 내비는 "주인황문흥근백(主人黃文興謹白)" ②동창황기남원차, 내비는 "동창황기주인근백(同昌黃記主人謹白)" ③동창황기홍원, 내비는 "주인황금당근식(主人黃錦堂槿識)"등이다. 동창원차와 동창황기남원차는 외관이 거의 같으며 색택, 유광(油光)도 같다.
동창황기남원차의 줄기, 앞면, 차잎 등은 동창원차와 다르며 내비는 남(藍)자로 동창원차와 동창황기남원차는 같다. 동창황기홍원은 원차절병의 한 양식으로 단단하게 눌러 만든 것으로 경창원차의 미관을 많이 닮았고, 3, 4, 5등급의 차잎을 선별하여 만들었고 병면은 율홍색(栗紅色) 차잎은 어리고 가늘며 동경노호원차의 한 양식으로 유광(油光,기름기)은 비교적 엷고 내비는 홍색으로 크기와 형식은 동창황기남원차와 같다.
< 동창 황기남원차 내비 >
매통 속에 그림처럼 내표가 1장씩 들어있다. 이상 3종의 차를 엄밀 감정해 본 결과 이무산 푸어차의 기세는 없고 의방차구의 품격에 가깝다.
차향은 의방차산의 특색인 청향이고 이들 차들은 50여년의 진운으로 같은 시기의 차가 지닌 신선함이 있다. 동차황기홍원차는 차의 외관이 결실하고 진화상태, 차운(茶韻)등으로 보아 1970년대 산품의 한 양식이다.
유경험자들이 흔히 말하는 변경 푸어차잎은 수성이 엷고 유순하며 차의 기가 약하다. 이런 것들은 이무정산의 푸어차 특색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이고 동창황기홍원차의 내표에 "이차여중부동(此茶輿衆不同)"이라는 표현에 제현들은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장중)
< 동창 황기남원차 내비 >
<동창 황기남원차 내비>
<동창 황기남원차 차통>
보경원차(普慶圓茶)
전통적인 푸어차의 포장이며 더욱이 외관미(外觀美)가 뛰어난 푸어차의 대표적인 차 모양으로 모든 것이 전통적 방법으로 압제한 형태이며 차창, 상호, 내비가 묻혀 있고, 품질, 상호 종류 등이 잘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자기 상표를 확실히 알리고 가짜를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매통에 큰 상호 내표가 덮여 있다.
극히 일부 수량에는 내표가 있고 내비는 없는 것이 있다. 이는 모조품을 만드는데 용이한 것 같이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방편으로 생각되며, 내가 이차의 두 종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내비가 없고 내표만 있는 보경원차(普慶圓茶)이고, 다른 하나는 부서져 산차(散茶)처럼되어 그 모양 형태 규격 등을 알 수 없다.
내표는 그림과 같이 내장되어 있고, 그 내용은 중화민국 2년(1913년) 이 내표를 개용하고 차공장은 이무진에 있고 이무정산 차잎으로 만든 차라고 설명되어 있다.
5병(餠)의 보경원차를 처음 발견당시 시음해 본 결과 차성이 모두 의방차구 차잎으로서 이무차구의 차맛을 발견 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이 내표는 그 소지한 상인이 필히 5병을 고가로 판매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며 차의 품질을 보건대 청향, 진운, 수성 및 생진 등 5방면의 표현 등은 그렇지가 않았다.
기타 의방차품에서처럼 같은 느낌의 차이다. 이 5병의 차가 보경호 차공장 산품인지 어쩐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고 다만 한 사람의 자료를 획득한 것뿐이다.
정흥호(鼎興號)
50년대 이전 맹해에는 널리 알려진 차공장이 여럿 있었다. 이들 공장의 생산품 중에는 품질이 고르지 못했고, 이들 차들은 대부분 서강 신강 서장 혹은 운남성 소수 민족에게 판매되고 이들은 차에 생강, 계피, 양유, 후추 등 여러 가지 다른 재료들을 혼합하여 마시기도 하고 갈고 삶아서 먹기도 했다. 차 잎이 농엄순후(濃 純厚)하여 적당한 방법으로 먹었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고급품은 수요가 적어 소량 생산되었고, 염가로 판매할 수 있는 보통 푸어차가 상당히 많았다. 한편으로 적은 수량이나 고급품을 선호하는 무리도 자연히 이루어지게 되어 푸어차 재조창은 이상의 요구에 부응코저 2개 부류로 나누어 생산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보통 품의 푸어차로는 송빙호, 홍태창호, 동창호 등으로 비교적 차 생산이 많은 공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고급 차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차공장은 동경호, 경창호, 정흥호 등 제조창으로 나누어졌다. 이와 같은 각 차 제조창은 수평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특별히 고급을 찾는 고급 차 생산부류와 보통 차 부류로 나뉘어졌으며 어떤 고급 차 공장은 차등(差等)으로 생산하여 차등품질을 같은 상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푸어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표와 상호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맛보고 비교하여 방심하지 말고 현명하게 선택하기 바란다. 정흥호 차창은 고급 푸어차를 위주로 생산하는 공장으로 현재 그 제품은 많지 않다.
본인이 원차 3종과 긴차 1종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중 1종 원차는 품질이 보통이고 나머지 2종과 긴차는 차등품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것은 그 품질의 차이가 많다. 좋은 것은 대부분 수장가 수중에 있고 시중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내비는 그림과 같이 문자 내용은 같고 안색은 다르다.
정흥호(鼎興號)
첫째 홍자, 둘째 남색자, 셋째 자색자. 첫째 홍자, 둘째 남색자는 품질이 같고 진기(陳期)도 60년 전후로 선기적(先期的) 푸어차로 우량품이며 자자(紫字) 내비차는 비교적 품질이 홍남자(紅藍字)에 비해 낮고 차잎이 많으며 단엽으로 윤기가 적고 잎이 세고 차 표면이 거칠고 두텁다.
홍자(紅字)와 남자(藍字)차는 가벼운 숙차 차청으로 유향야성적장향(油香野性的樟香)으로 푸어차 중에서 가장 농후한 차향이다. 이는 맹해 주위 소엽종 차원의차와 유락산 남산록 일대의 소엽차청이다. 자자(紫字)차품은 홍남자(紅藍字)에 비해 차성과 품미(品味)가 훨씬 못 미친다. 정흥원차의 미도는 담박하고 아주 약한 신맛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의방차구의 차성을 지니고 있을 뿐 이무차구와 맹해의 노차수(老茶樹)의 휘후농엄(揮厚濃 )한 맛은 없다.
목에서부터 순하고 매끄러운 단맛이 돌고 진하게 많이 마시면 단맛이 돈 뒤에 식욕이 느껴진다.(소장중임)
긴차(緊茶)
말대긴차(末代緊茶) (한 개의 긴차를 가지고 운남에 가다)
⑴전언(前言) 2000여년 전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지부(子虛之賦) 중에 자허가 오유선생 집에 가서 차를 마셨다 하는 대체적인 설이 있다. 타(
)는 타(
中國茶史)와 같이 썼고 당시 차를 타(
)라 불렀다. 고증하기는 어려우나 그 근거로 시경정풍(時經鄭風)편에 유여여차(有女如茶)라는 말과 유관하다. 이 뜻은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 것은 차가 있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으로 여(女)와 차(茶)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타(
)는 차잎을 비비고 비벼 차 덩어리를 만드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아름다울 타) 차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로 "하관풍, 타강수(下關風,
江水)"란 말은 하관의 바람으로 차를 말리고 타강의 물로 차를 달여 미시니 그 맛과 향이 순하고 감미로와 그 이름을 "타차(
茶)"라 한다고 하였다. 타차의 득명(得名) 시기가 언제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타단(
團)형의 차가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것만은 확실하다.
운남 푸어차 제조과정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차 만드는 방법을 계승하여 타단차(
團茶)를 만드는 독특한 품격을 오늘에까지 유지하고 있다. 오래일수록 향이 아름답고 찻잔의 풍미가 우러나는 이 차는 오늘날의 문화시대에 담아(淡雅)한 맛과 복고적인 감정을 연구하는데 일고의 깊은 정을 느끼게 하며 21세기에 복고적인 정신을 일으키게 하는 획기적인 차 중의 차라! 푸어차의 모양은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사발모양의 움푹 들어가게 만든 차를 타차(
茶)라 하고 버섯모양의 차를 긴차(緊茶)라 한다.
현재 운남푸어차창은 타차 생산이 충분하고 시중에서도 충분하다. 1967년 운남맹해차창에서는 긴차용 차잎을 전차(
茶)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심장형 또는 버섯형 긴차(緊茶)는 포장과 운반시의 불편 분실등 문제에 따라 전차(
茶)로 만들게 되었다. 그 중 일부 남은 오래된 긴차는 이미 수장가의 최고 수집품이 되었다. 80년대 초 운남하관차창에서 전문적으로 서장 종교 지도자 반선을 위한 반선차를 긴차 대신에 이미 만들기 시작앴다.
이 차는 신차수(新茶樹)를 원료로 하여 "보염패(寶焰牌)"라는 상표로 내비를 넣어 서장(西藏)지역의 절(佛)에서 사용할 양을 제조하였다. 약 2∼3년 전 대만돈 1만NT$를 주고 오래된 긴차 1개를 산 어느 중의사(中醫師)가 즐거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오래된 긴차가 순수한 맛 외에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담을 삭이고 암을 치료하는 고 가치의 치료용으로 사용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시중에 발견되는 긴차는 1만NT$로 거래되고 있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타이페이의 어느 차 가게에서는 이 차에 대한 소문이 구구해, 그 수량이 얼마인지, 품질이 어떤지 또는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 억측이 구구하기도 하다. 이 긴차를 관찰해 보건대 충분히 경하할 만하다. 본인이 이 차의 이름을 말대긴차(末代緊茶)로 이름을 붙인 것은 진귀(珍貴)함을 표시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이 말대긴차를 추측하컨데 60년 이상된 진 귀품임이 확실하고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긴차이다. 이 긴차에는 생차와 숙차의 2종으로 차령은 장구하고 이미 자연 숙성되어 부서지고 퍼석하여 산차처럼 부스러진다. 이 긴차는 원료, 제작, 저장 등의 좋고 나쁜 것을 말할 필요도 없고 푸어차계 차의 수집에나 수장품으로 진품이다. 이 긴차를 우연히 시장에서 몇 개를 볼 수 있었으며 오래된 것과 신차 모두가 수장가들로부터 유출된 것이었다. 신차는 80년대 서장 반선(班禪)의 전용품으로 하관차창서 생산 이미 소모되었고 근래 소량 긴차 생산품도 모두 소모된 상태이다.
⑵맹경긴차(猛景緊茶)
말대긴차 중 생차생산량은 많지 않다. 이차는 맹롱(猛弄)지방의 맹경(猛景)차창의 제품으로 맹롱은 현재 운남성 푸어진(鎭) 동북방의 맹롱촌장(猛弄村莊)이다. 이 지역에서 푸어차의 생산이 왕성하였고 맹고(猛雇)봉산(鳳山)은 운남성 중부의 차구로 생산이 활발하였다. 이 생긴차(生緊茶)는 늙은 차나무의 차잎으로 만들었고 볕에 말리고 건창으로 제조하여 장구한 세월 건조하게 보관되어 어떤 것은 색이 희게 바래지기도 했다.
손에 잡으면 아주 가볍게 느껴져 공중에 붕 뜨는 감각이 있고 한 개의 맹견긴차의 무게는 약 200g정도이고 차를 차호에 넣고 물을 부으면 차잎이 자연 팽창하여 차호에 가득차고 아울러 신선한 율홍색으로 환원되고 탄력성이 활발하게 나타나 60여년 저쪽의 세월의 생명력과 그 활력이 살아난다. 오래된 표면 주름살 모양은 두꺼비 등가죽 모양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푸어차 늙은 차나무의 차잎으로 만든 거칠고 억세고 뻣뻣한 잎이 가늘고 얇다. 맹경 생긴차(生緊茶)의 품미(品味)는 순하고 부드럽고 엷은 장향이 나고 오랜 세월동안 저장으로 잡미가 조금 감염되어 있다. 한두 번 끊여낸 후부터는 자연적인 장향의 청순미가 감돈다.
차탕은 율홍색이고 찻물이 입안에 느낄 때 수성이 부드럽고 쓰고 떫은맛이 전혀 없고 순한 가운데 맑고 단맛이 나며 혀끝과 인후에서 단 느낌이 돌아 나온다. 은은한 장향은 코를 거쳐 양뺨과 혀까지 미미하게 진동시킨다. 이런 훌륭한 중에도 미진한 것은 너무 늙은 찻잎을 사용하여 찻물이 비교적 빨리 빠지는 흠이 있다. 10번 이내 물이 엷어진다. 첫번째 찻물은 무미(無味)의 미와 단침이 생기는 노차수 특유의 좋은 차성의 차이다. 근래 시중에서 발견된 맹경원차(내비가 있는)를 감정해 본 결과 10여년 안팎의 차로서 습창, 매변, 가속 진화시킨 것으로 신차수관목(新茶樹灌木)잎으로 경미하게 발효압제 한 것으로 모방품으로 밖에 볼 수 없다.(소장중임)
⑷후기
말대긴차가 이미 월진월향(越陳越香)의 푸어차 특색을 인증했고 마셔보고 접해보아 직접적인 중화문화의 역사가 우리들의 육체 내에 융화되어 있다. 생긴차(生緊茶)를 황산(黃山)의 강한 양기의 기세라면 숙차긴차(熟茶緊茶)는 계림산(桂林山)의 음적인 부드러운 미라 할 수 있다. 운남성 서쌍반나 자치주 사모(思茅)에서 제 1회 국제푸어차연구회(國際普 茶硏究會)를 거행할 때 본인의 발표논문이 격찬을 받기전 전세계 푸어차 애호가 대표대회에 나의 논문과 1개의 말대긴차(末代緊茶)를 운남으로 보냈다.
중국 푸어차 국제학술연구회가 1993년 4월 4일 운남성 사모현에서 미국, 일본, 한국, 프랑스,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지구와 중국본토 등 십여 개의 국가에서 180여명이 참가 중국 푸어차 전문학자 연구 토론상 수십편의 유관토론 푸어차 및 중국 고 차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논문 발표(중국고차목 논문발표;中國古茶木 論文發表)에 본인이 재출한 "월진월향론(越陳越香論)의 문장에 대하여 대회에 보고 설명하였다. 그때 말대긴차(末代緊茶)에 대한 전시보고회장에대하여 관심이 특히 많아 장내 인원 모두가 주시한 가운데 신문등 언론매체 모두가 호응하고 격려하고 촬영해주었다. 제 2일 당시 사모신문(思茅新聞)보도에 "대만사범대학 등시해 선생이 소지한 1929년산 푸어수장품(收藏品)", "등교수 대회상선독논문소개장품(鄧敎授 大會上宣論文紹介藏品)"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회 중 미국 대표 양단계(楊丹桂)여사는 본래 이곳 운남성 산리족 후예로서 전 가족이 모두 푸어차를 만들고 팔며 매일 푸어차와 접촉하였었다.
부친은 미얀마, 인도 등 인근 나라로까지 푸어차를 생산코자 1949년 전 가족을 인도로 이민한 후 다시 미국으로 이민 현재까지 미국에 거주중이다. 현재 양 여사는 고령으로 퇴직하고 이번 푸어차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조기 푸어차 운송, 수출로 등 옛 차길과(古茶路)도구 등 푸어차의 역사적 가치를 영문으로 제출하여 찬사를 받았다. 그때 본인이 "월진월향(越陳越香)"의 보고를 마치자 양 여사가 즉각 내게로 와서 말대긴차(末代緊茶)를 보고 손으로 만져 보며 관찰하면서 유난히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이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늘 보고 때때로 쓰다듬던 긴차, 내가 그때부터 기념적으로 2개를 보관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보니 가히 기념적이라 먼 훗날 잃어버릴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보게되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고 내 생활이 푸어차와 함께 오늘에 이른 정경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하자 양 여사가 그 말대긴차를 사랑함이 지극하고 어린 미얀마 시절을 회상하는 표정이 역력하므로 회의가 끝나기 전에 본인이 본 대회에 대하여 "이 말대긴차를 맞아 내 스스로 맛보았고, 진품임이 공인되었고, 더욱이 멀리서 오신 양 여사께서 이 말대긴차에 어릴적 추억이 깃 든 듯 하여 이 차를 양 여사에게 드리는 것이 더욱 기념적이고 뜻 있는 일일 것 같으니 드리겠다."고 하자 갑자기 장내에 박수가 터져 나와 양 여사께서는 갑자기 당한 일에 어쩔 줄 몰라"고맙습니다"만 연발하였다. 말대긴차가 역사적으로 진품임이 증명되었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소장중임)
반선긴차(班禪緊茶)
대리하관차창건설의 그 주요 목적은 푸어차품을 서장 서역 등지에 수출,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푸어차의 명예와 시장을 널리 가진 것은 서장동포 생활습관에 하루라도 차가 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으로 동시에 푸어차의 짙고 텁텁한 맛이 그들의 입맛에 맞기 때문에 자연 1일 무(無)푸어차 생활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생긴차(生緊茶)의 수요가 이들에게는 최고로 좋아하는 차로서 생긴차(生緊茶)의 차성이 강렬하기 때문에 그들은 가장 좋아한다.
<반선긴차 내비.좌측은 일반반선긴차 내비 >
60년대에 접어들어 긴차를 전차(
茶)로 대체 생산하게 되자 이들 민족들은 심리적으로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들 전차는 차잎도 노교목(老喬木)차잎에서 소관목(小灌木)차잎으로 바귀어 차성(茶性)의 강도가 크게 감소되었고 70년대 들어 쾌속진화속성발효 성공으로 숙차적 푸어차품이 모두 온순성으로 바뀌어 서장동포들의 감각에는 푸어차의 좋았던 인상은 없어지고 과거 차성(茶性)이 농엄했던 생긴차(生緊茶)의 추억에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1980년 10월 20일 서장 종교지도자 반선(班禪)이 친히 하관차창(下關茶廠)을 방문, 참관한 것은 그 주요목적이 서장동포들의 "진정 푸어차"갈망의 표시였다. 그때 타차(
茶)압제공장을 참관한 반선은 실망한 나머지 극히 유감의 표시를 하고 "지금 마실만한 푸어차가 없는가?" 하자 하관차창 당사자가 그 뜻을 이해하고 1981년 생긴차를 만들어 상표를 보염패(寶焰牌)로하고 모두 반선불교영수(班禪佛敎領袖)에게 불사(佛寺)전용으로만 납품, 음용(飮用)케 했다. 때문에 시중에는 이 반선긴차는 판매치 않아 볼 수가 없으며 후일 아주 적은 양의 재고가 시중에 유입, 극소수 수장가의 손에서 수장되었다.
반선긴차는 신차수관목(新茶水灌木)차잎으로 만들어 2급차 차청으로 생차공정긴압성형제조(生茶工程緊壓成形製造)차이다.
차의 몸통은 견실치 못하고 이미 15년의 진기가 되었으나 차신(茶身)표면잎은 심율색(深栗色)이지만 내부는 아직 청율색(靑栗色)의 떫은 생차맛의 차운으로 청엽차향이며 수성은 아직 박하고 쓰고 떫으나 전형적인 생차 푸어차품이다. 뒷날 서장지역의 요구에 응해 80년대 말 계속 제조, 대륙지와 연결되어 있는 반선긴차는 서북지역에 공급하였고, 현재 하관차창에서 유일하게 일정량 생산한다. 반선긴차가 계속 진화하여 오랜 후에는 훌륭한 기념적 가치가 있는 차가 될 것이다.(소장중임)
< 하관차창 반선긴차 진열장면 >
< 생긴차 내비 >
가이흥전차(可以興 茶)
1926년∼1941년 사이 맹해현(猛海縣)에는 크고 작은 30여개의 차공장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7개의 큰 차공장이 있었는데 홍제차창(鴻濟茶廠), 항성공차창(恒盛公茶廠), 가이흥차창(可以興茶廠)등이 그것이다.
가이흥차창은 2차대전 전 매년 푸어차를 600타 생산하였고, 2차대전 후에도 계속 300타씩 생산하였다. 2차대전 전 맹해지구에서는 푸어차 생산량이 매년 26,000여담을 초과하였다. 이 중 가이흥차창에서는 1200여담씩 생산하였으며, 당시 이차창 책임자는 주문경(周文卿)으로 옥계방구(玉溪幇口)조직의 성원이었다.
조기에 운남성이 차잎 경영, 차밭개간, 식수 밑 차창 운영등은 모두가 이 지방 방파(幇派)조직에 의하여 조정되었다. 때문에 가이흥차창도 맹해지구에서 차를 대량으로 또는 순리적으로 생산키 위해서는 필히 다른 여타 세력처럼 지방세가 필요하였다. 현재는 가이흥호차품이 많지 않으며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전차(
茶)로 이 차에서 4가지의 특기할 푸어차의 역사성을 찾아보기로 하자.
①이 전차는 1개가 10양(兩)으로 일명 10량전(十兩 )이라 불렀다. 현재 운남에서 생산되는 대부분푸어전차는 모두가 250g(육향반:六兩半)으로 규격화되었다. 어떤 차는 상인의 광고용으로 크기를 크고 작게 만든 것은 볼수 있으나 오직 10량전이 전해오는 것은 가이흥전차가 표본이다. ②현재 푸어전차는 모두가 숙차방식(熟茶方式)으로 생산하여 비교적 쇤 차잎으로 만들었으나 문혁푸어전차(文革普 茶)와 가이흥전차가 생차방식으로 제조, 지금 남아있다. ③푸어차 역사상 이무차산과 맹해차산의 찻잎의 차이점이 세인에 알려지기는 이무차산 차잎은 율홍색의 최고급으로 조기 홍인차등과 같고, 맹해차산의 차잎은 흑색으로 녹인푸어차가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생산차잎을 나누면 긴차(緊茶)는 타차( 茶), 압차(壓茶)는 방차(方茶), 원차(圓茶)는 병차(餠茶)의 3종으로 압차는 가늘고 검은 차 잎으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이흥전차는 이 가늘고 검은 차잎을 사용한 맹해의 우수한 차의 대표랄 수 있는 흑색 푸어차엽의 표본이다. ④현재 일반 차엽계에 널리 인정하고 전차형을 사용한 것은 1967년 긴차에서 유래한다."긴차는 과거 만들 때 심장형으로 눌러 만들었으나 1967년부터는 포장 운송의 불편 때문에 전차로 만들었고 푸어전차는 1960년대에 출현하였다는 것이 일반 푸어차 문헌에 나타나 있다. 가이흥전차는 4개를 한 묶음으로 낱개는 포장치 않았다. 4개를 종이 포장한 뒤 대껍질로 재 포장하였다. 이와 같은 모양을 가이흥전 돈(墩)이라 한다.(소장중임)
첫댓글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좋아서 행하는것에는 고뇌가 따르죠 하지만 끝은 항상 아름답습니다.....등시해 교수님의 글에서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좋은 정보 잘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