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외 2편
──청주동 시대淸川洞 時代
최성민
어디서 다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와
음습하고 이끼 낀 간이목욕탕을
사부작사부작 기고 있는지
빛살 찬란한 명당자리 꼭대기
번듯한 집 한 채 이고 건들거리는
달팽이 마을에서 쫓겨나,
가랑비에도
갈라진 벽지가 젖는
남루한 유배지流配地에서
선승禪僧처럼 온몸으로
오체투지 하고 있는지
가도 가도 절벽뿐인 세상에서
언제나 홀로 서성이던 길 위에서
욕심[貪]내고 성[瞋]내고 어리석음[癡] 때문에
맨몸뚱이로 물 맞고 서 있는 나도
어느덧 민달팽이 뒤를 좇아
삼보일배三步一拜로 기고 있는지
막둥이
고향 등지고
생거진천生居鎭川 하신
밀짚모자
아버지
노상방뇨
겸연쩍은
이빨 빠진
미소
노인정 가면
막내야
막둥이랑께
유난히
하늘이 가까워
보이는
오늘
감옥
──최성민
여보게, 친구 들어 보게
임관석에 앉은 순경 지켜보는 삼류극장에서
부동자세로 소낙비 내리는 애국가를 경청하던 때가,
제삿밥 흰 쌀밥 선생님께 걸리까봐
콩알 몇 개 얻어 도시락 위에 올릴 때가,
감옥인줄 알았네.
화염병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쓰러져 피 흘리는 동무들을 볼 때가,
올림픽·월드컵 개최국 삼천리금수강산이
더욱 화려한 외모로 치장되어도
뒷골목 아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젊은이들의 이력서가 낙엽처럼 떨어질 때가,
감옥인줄 알았네.
민주화를 외치던 나랏님이 둘이나 이승을 등져도
뛰어내려고 불타죽고 매달아도
광장에 금 긋고 성벽 쌓아 올리며
<사대강 살殺리기> 위해 백성들의 입을 막는 때가,
부자들은 원성이 자자하고
서민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이 때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지
답답한 감옥은 아니라네.
절대로 아니라네.
왜, 시집 안 내냐?
──첫 시집 무렵
인생에도 살아가는 좌우명이나 지향점 혹은 지표가 있듯이 시창작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어떤 시인들은 일정한 기간동안 주제나 소재를 통해 표현하기도 하고, 일평생의 필력筆力을 다해 한 가지 주제나 철학을 통해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하기도 한다.
1992년 시 전문지 『시와 시학』 겨울호에 「양수리」외 10여 편으로 등단한 후 2000년 겨울에 시집을 묶은 근 10년 동안 그리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두 번씩이나 거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한 것이, 시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시를 창작해야하며, 첫 시집 또한 나의 철학을 펼치는 마당으로 삼아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마침 학위논문을 준비해야 할 때, 그동안 틈틈이 읽고 좋아하던 유치환과 아나키즘을 연결시키는 주제의 논문을 써보려고 본격적으로 아나키즘과 유치환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석사 학위논문으로 『일제강점기 유치환 시 연구』를 제출하게 되었고, 아나키즘에 대한 공부를 더욱 진전시켜가며 시창작에도 몰두하였다.
새천년이 시작하는 2000년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며 21세기를 시작하고 싶었고, 그해 연말 드디어 첫 시집을 간행하게 되었다. 시와 시학사에서 『아나키를 꿈꾸며』를 출판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이 시집은 김재홍 교수가 대표로 있는 시와 시학사에서 낸 마지막 시집이 되었다. 현재에도 시와 시학사는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영권을 이양하는 와중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 나는 양쪽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시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대전대학교 송기한 교수가 『문학사상』에 나의 시집을 평론한 원고를 보냈는데, 경영권을 이양 받은 시와 시학사 측에서 시집 출간을 확인하는 문학사상사에 그러한 시집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여 『문학사상』에 실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한 불행 속에서도 문화관광부에서 ‘올해의 좋은 책’으로 선정되어 400부가 전국에 있는 도서관에 기증되었고, 시집을 서점에 배포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교보문고’의 선전과 인천의 ‘대한서림’에선 2001년 1~3월달 베스트셀러 1,2위를 하며 꾸준히 팔리는 행운도 잠시나마 누렸다.(혹자는 작가가 다 사버린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또 지인知人들이 나서서 첫 시집에 대한 출판기념회를 인천 구월동 종합문예회관 건너편 <헤밍웨이>에서 했는데(주인의 반주에 따라 노래할 수 있는 라이브 주점), 그날 영하 15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시인과 문인들이 찾아주어서, 참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첫 시집의 평론을 이가림 교수님께서 써 주셨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이 시집을 묶으면서 가제假題를 「아들에게」로 정하고 가림 선생님께 원고를 드렸는데, 가림 선생님은 아나키즘과 연관한 「열린 아나키즘의 상상력」이란 평론을 써주셨고, 그 평론에 맞추어 시집의 제목을 「아나키를 꿈꾸며」로 정하게 되었다.
그러면 ‘아나키즘’은 무엇인가?
아나키즘을 문학용어 사전에서 살펴보면, 무질서無秩序 또는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로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명칭은 19세기 초 일본의 한 학생이 서양에서 유입된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이래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어왔다. 그러나 아나키즘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한 것이 아닌 편협한 번역으로 아나키즘을 상당히 오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나키와 아나키스트는 프랑스 혁명기 처음으로 정치적인 의미에서 ‘자유自由’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말 어원 아나르코스anarchos는 단지 ‘지배자支配者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며, 소극적 태도로는 “지배에 따르고 있지 않다unruliness”는 의미이거나 적극적 태도로써 ‘지배를 안 받겠다being unruled’ 의미의 용어로 사용된다.
모든 아나키스트는 권위를 부정하고 많은 아나키스트는 그것과 싸운다. 즉 아나키즘이란 기존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전망하며, 그러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의 이행하는 수단이라는 철학적 사상이다. 아나키즘은 주로 사회와 관련한 인간과의 상관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혁명에 있다. 그 방법은 폭력적 혹은 비폭력적인 사회적 반란이다.[그러나 폭력에 관한 의견은 아나키스트들조차도 분분하다. 특히 톨스토이는 도덕적 아나키즘을 주장하며 폭력을 부정하였고, 골드윈, 부르통도 평화적 운동을 강조했다. 크로폿킨과 바쿠닌은 폭력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아나키스트들이었다.]
이로 인해 아나키즘이 니힐리즘이나 테러리즘과 동일시되거나 부정적인 철학, 단순한 파괴의 철학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폭력에 대해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폭력은 아나키스트들의 목적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아나키스트들은 권위, 불평등, 경제적 착취의 폐지를 통해, 도덕적 사회를 견지하면서 진보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나키즘은 자연주의적 사회관에서 시작된다. 즉 인간은 자유와 사회적 조화 속에 살 수 있는 모든 성질을 타고났으며, 자기 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의사와 사회의 연대성을 정치적 기조로 삼고 있으며, 공통적 기본개념은 자유와 자율이고 자유사상과 자유연합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는 사회여야 하다는 사상체계이다.
아나키즘은 ‘운동運動’으로써는 한계상황에 부딪혀 성공하지 못했으나, 사상적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문학에서는 아직도 아나키즘은 상당히 유효한 철학적 개념이다. 특히 최근 인류의 평화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 에코아나키즘이 대두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필자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다는 확신이 선다.
몇 가지 미학적美學的 혹은 문예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유에 대한 갈망·유토피아[이상향, 무릉도원, 도원경 ] 사상1)
2) 선善에 대한 신념·도덕주의
3) 이데올로기의 부정不定·허무주의 경향
4) 권위나 권력에 대한 투쟁의식
5) 반형식주의·반제도주의
6) 생명애·인간애·자연주의
요컨대 아나키즘은 확정된 사상체계를 가지거나 독자적인 문예학적 이론을 가지지 못한 반면 열려있는 미학美學의 세계이다. 따라서 현대에도 아나키즘은 유효한 철학이며, 진행형의 철학인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삼아 첫 시집 『아니키를 꿈꾸며』를 발간하였다. 2001년 4월 KBS 제1라디오 “문화 싸롱”이라는 프로그램에 〈주목할 만한 신예시인〉으로 초대되어 연애시절 아내를 위해 쓴 시 「가을날 꽃 편지」를 직접 낭송하였으며, 「낀 세대」는 올해의 좋은 시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시인이라면 연가戀歌를 써보아야 한다’는 이가림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도원동 연가」 연작시를 쓰고 있으며, 첫 시집에 아들에 대한 시를 썼으니 「딸에게」라는 시를 쓰라 하여 딸내미의 강력한 항의로 그 제목 하에 연작도 시작하였다.
시집을 내라는 독촉 혹은 격려를 받고 있지만, 당초에 습작시절부터 시창작과 이론공부를 하던 친구들과의 약속처럼 10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낼 생각이다. 다작多作과 과작寡作 중 더 좋은 시창작 방법론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써 놓은 작품 중에서 자신의 감수성과 가슴을 울리는 시나 시적 본질本質에 접근한 시를 10년 터울로 묶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되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과연 나의 시가 독자들에게 유효有效하냐는 끊임없는 의구심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최성민 / 1992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아나키를 꿈꾸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