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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목요수필 카페에 올린 포토 에세이입니다.
혹여 우리가족들도 강릉 쪽으로 여행을 가시면 참고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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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한정순(한별)님과 김순재(비오는 날엔 꽃을 산다. 저자),
그리고 저(권예자, 봄비)가 어성전 별장에 살고계신
화가, 서예가,수필가인 손수자(들미소)선생님이 사는
금강소나무가 아름다운 어성전에 다녀왔습니다.
일기예보는 좋지 않았습니다.
날씨는 무더운데 김선생님은 에어컨 바람을 쐬면 안되는 분이시고,
태풍 갈매기는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그냥 떠나기로 했지요.
열시 반에 수원역에서 만나 차 한잔 마시고 강릉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김순재 선생님은 소녀처럼 들떠 계셨고, 한별은 슬슬 추임새를 넣었고,
들미소는 운전하면서 사전 지식을 들려 주느라 분주하였습니다.
모두들 들뜬 음성들로 참새처럼 새새거렸지요.
저요? 저야 아주 얌전하였지요. 권얌전이 제 다른 이름입니다.
바다열차를 예매하고 기다리는 동안 허난설헌 생가터와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2월에 산방산님과 제가 다정하게 사진 찍었던 계단에서
우리는 둘씩 사이좋게 사진을 찍었어요.
시비와 솔숲을 돌러보는 선생님이 아름답습니다.
김선생님은 허난설헌 생가터의 잘자란 배롱나무에 반하셨지요.
담넘어로 보이시지요.
저희가 탔던 바다열차입니다. 특실인 2호차에 탔습니다.
바다열차 내부입니다.
함께타신 분들은 어느 초등학교 교사들이었는데 재미있는 분들이었어요.
이 열차는 강릉~삼척 58km(약 80분 소요) 정차역 : 강릉, 안인, 정동진, 옥계, 망상,
묵호, 동해, 추암, 삼척해변, 삼척. 운행횟수 : 평일: 하루 왕복3회 운행(성수기: 왕복4)
그런데 마지막 열차는 왕복이 되지 않아서
저희는 삼척에서 택시로 강릉으로 돌아 왔습니다.
바다열차를 타실때는 미리 알아보시고 왕복으로 하셔요.
첫 날, 저녁 늦게 어성전에 와서 뒤에 보이는 산막에 여장을 풀었지요.
산막 이름이 [자작나무] 였답니다.
방 한 개, 거실겸 주방, 세면실, 작고 아늑한 곳이더군요.
저희 에게 아주 딱 맞는 공간이었습니다.
현관 도어에 십자창, 안방에 액자창, 주방에 애교창,
거실엔 남쪽 한면 전체가 모두 창이어서 어디서나
금강소나무들이 우리를 들여다 보고 있어 몸 가짐에 조심하여야 했습니다.
김선생님은 일찍 잠자리에 드셨고,
우리 셋은 사진 뒤로 보이는 탁자에 앉아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날씨가 흐려서 기대하던 별은 없었습니다. 태풍이 상륙중이었으니까요.
한별과 나는 거실에 누웠는데 영 잠이오지 않았습니다.
누워서도 보이는 잘 생긴 금강소나무들이,
잠결에 눈을 떠도 얘기하자 하는 바람에 잘들 수가 없었어요.
한별도 비슷하더군요.
이른 새벽에 한별과 나는 산책을 나섰지요.
윗쪽에 있는 '푸른하늘 은하수'란 팬션에서 작은 스피츠가 소리 높혀 짖어 대더군요.
제가 말했지요.
'얘, 심심하면 내려 와 같이 가자.'
놀라지 마세요. 이 녀석이 말을 알아 듣는 듯 쪼르르 내려와 제 곁으로 오겠지요.
계룡산 풍산개에 이어 두번째 경험입니다.
한별이 기가 막힌 듯 말하더군요.
"봄비는 전생이 강아지였나 보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 스피츠는 우리의 산책길에 계속 함께하였습니다.
나중에는 한별과도 친해져서 잘 따라 가더군요.
그래도 제가 안보이면 기다리더랍니다. ㅎㅎㅎ
(사진은 산책로 것이 없어서 비슷한걸로 )
김선생님 며느리가 준비해준 밑반찬과 한별님의 된장찌개로
윤선생님과 같이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 넷은 다시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들미소가 자랑하던 칙소에서 모두 사진을 찍었지요.
갈매기의 여파로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2월에 단체사진 찍었던 들미골 철재 구름다리입니다.
들미소는 나중에 제가 수필집을 내게되면 제목을 '차마 바라 볼 수 없네'라 하고,
이 사진을 저자 프로필 사진으로 쓰라면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다른 두분이 샘내실 정도로...
이 사진 말고도 좋은 곳에서 계속 사진을 찍어 주면서
"성님 얼굴을 저처럼 예쁘게 찍어 줄 사람 세상에 없을 터이니,
우리 사이 좋을 때 많이 찍어두셔요." 하네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이 찍으면 제 사진 속상해서 못봅니다.
들미소가 만날 때마다 이미지 사진을 찍어주어서
저는 앞으로 10년은 꺼떡 없습니다.
들미소네집 문패(?) 입니다. 돌에서도 소리가 들리네요.
둘쨋 날 저는 감자도 캐보고, 고추도 땃습니다.
점심에 먹는다는 고추를 탱탱하게 잘생긴 것만 따서 꾸중들었습니다.
만져봐서 말랑말랑 한것이 안맵고 맛이 좋다는 군요.
그래도 감자는 다소곳이 잘 캔다고 칭찬들었어요.
저와 한별은 감자를 벗기고,
김선생은 방아잎으로 향기로운 전을 부치고,
들미소는 강원도 어성전 특미 감자전을 부쳤습니다. 역시 윤성생님과 함께 식사했는데
아내의 감자전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일미라시며 칭찬을 하시더군요.
사실어었어요. 저녁에는 수필공부를 하였고,
여러 글 이야기와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여기가 들미소예요.
포크레인이 들미소를 부실때 저는 저기 바위에서 시를 썼어요."
그녀의 음성이 흥분으로 약간 떨렸습니다.
다행히 들미소는 주민들의 신고가 받아들어져
어느 정도 옛모습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비는 참 많이 끈질기게 오더군요.
들미소를 내려다보는 바위 위의 소나무를 제것으로 정하고,
김선생님은 풍만한 버드나무를 점 찍으셨어요. 한별은 사진을 찍고.
오후에 '솔 비치(?)' 호텔 구경을 갔답니다. 회원제라 하더군요.
규모도 크고 그림같은 곳이더군요.
조형물만 보아도 참 대단하지요? 좀 야하긴해도 그런대로 ...
호텔을 통하여, 해변으로 내려가서 먹장 구름속을 걷다가
돌아오는 길에 '섭국'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남자분들의 해장국이라면 딱 좋을듯 한 시원한 맛이라할까요.
비위약한 저도 먹을만 했습니다.
산책로 끝에 있는 흙집입니다.
셋쨋날 당초에 돌아가기로 한 날인데 태풍 갈매기를 품은 비가 억수로 내렸어요.
들미소가 하루 더 있다가 다음날 자기 수원 갈때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우리도 떠나기 싫던 중이어서
대전에 전화를 하여 한별이 남편과 통화 하였어요.
"저희가 오늘 가야하는데 여긴 비가 억수로 옵니다.
그런데 봄비가 자꾸 간다고 하네요." 하더군요.
얘기가 잘 되는것 같은데 갑자기 김선생님이 전화를 바꾸시더니,
"선생님 지금 쏙고 계신 것이라 예.
이기는 해가 쨍쟁하고 아주 좋아요. 비는 구경도 못했다 아입니까."
하시네요. 제가 머쓱해 있는데
"그쪽에 호우주의보 내린 것 알고 있어. 숙박비 안 받거든 오래오래 놀다와.
돌아와서 또 양양 어성전 가고싶다. 가고싶다. 하지말고..."
2월이후로 제가 계속 그랬었거든요.
그렇게 눌러 앉게 되어 한가롭게 다시 산책을 하였지요. 산책로 끝 흙집까지.
그 곳엔 10년차 장뇌삼이 빨간 열매를 달고 있어요.
초롱 꽃도 서로 어울려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편하게 꽃이 되어 보았습니다.
올 가을부터는 우리 고유의 장맛을 내어 판매도 할 예정이라는데
반들반들한 장 항아리가 참 고왔습니다.
이 등산로 계단 좀 보세요. 경사도가 7,80도는 되는 가파른 곳입니다.
지금 이 사진은 맑은 날 찍은 것이구요.
세쨋 날 오후는 비가 얼마나 왔던지 앞이 안 보였고,
사진 찍기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우리가...
오후에 들미소가 오더니 낙낙장송을 보러가재요.
첫 날부터 들었던 터라 귀가 솔깃했어요.
미끄럽지 않느냐? 물었더니 가다가 어려우면 돌아오면 그만이라구요.
우리 셋에게 내 키보다 큰 우선을 하나씩 주더니
멧돼지가 나오면, 우산 쓰고 죽은 듯이 있으래요. 그러면
그 놈이 바위인줄 알고 지나간다는 군요. ㅎㅎ~
아무튼 우리는 길을 나섯지요.
조금씩 조금씩 오르던 것이 이야기에 취해서 한 참을 올랐지요.
저는 팔 힘이 없어서 그 큰 우산을 쓰기도 힘들었습니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우산이 저를 가지고 놀더군요.
비는 계속와서 가꺼운 산 아래도 안보였어요.
들미소는 채찍만 안들었지 엄격한 유격훈련 교관 같았어요.
" 가시다 어려우면 그냥 내려가면 되어요.
무리하지 마세요." 하고 말은 참 곱게 하는데...
아래를 내려다 보니 까마득한것이 어찌 무섭던지 곧 내려 꽂힐 듯하고
내려가기가 더 어려울것 같아서 울며겨자 먹기로 올랐습니다.
저는 기왕에 젖은 옷이라, 우산을 지팡이로 사용하고, 비를 줄창 맞았더니,
옷에서 더운김이 모락모락 나더군요.
그런 중에 오늘 주일인데 미사도 못보았다는 생각이 나고...
한 손에 우산들고 한 손에 로프를 잡고 오르면서 한별과 김선생님이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안전한 운동화를 신었는데 두분은 굽은 낮지만 멋진 신발을 신으셨거든요.
미끄러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올라가시드군요.
한별은 힘이 드는지 여기 높이가 몇m나 되느냐고 자꾸 묻는데,
들미소는 대답도 안해요. 으이구!
김선생님은 기도하셨답니다.
" 하느님, 저희가 무사히 이 길을 가게 하시고, (독립운동인가?)
제가 이분들게 폐가 되지 않게 하여주세요.
만약에, 우리중에 누군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제일 나이 많은 저를...
( 데려가라고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하셨답니다.
나중에 끝말을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요.
선생님은 후회하시더군요.
"잘가게 해달라고만 하면 되는데, 건방지게 하느님 상대로 만약에...는 뭐야? "
우리가 또 웃었습니다.
한별이 감격해서 말하더군요.
"선생님 그래 넷을 차례로 살펴보니 부담되셨지요?
한별이를 보낼려니 조금 불쌍하고, 봄비를 보낼려니 남편이 걸리고,
들미소는 나이도 제일 어린데 더더욱 안되겠고.
그래서 선생님이 가시려구 했었수?" ㅎㅎㅎ
이렇게 힘들게 들미소가 사랑하는 낙낙장송에 올랐습니다.
바로 이 나무입니다.
이후로는 길이 별로 어렵지 않았아요.
풀이 많이 자라서 한별과 제가 잠깐 길을 잃기는 했지만,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기분좋게 걸었지요.
그런데 들미소가 또 재촉을 합디다.
내려가다 어두워지면 길을 잃는다고 빨리가야 한다면서....
누구 명령인데 거절을 하나요. 우리는 또 죽자사자 걸었습니다.
이 사진은 어성전 떠나는 날 아침 우리 산막 앞의 벤치입니다.
사진 멋지지요?
한별과 제 사진은 더 좋은데 몰래 숨겨둡니다.(믿거나 말거나)
김순재 선생님은 어성전 분위기에 압도되셔서 커피를 시시 때때로 마셨습니다.
컵에 마시고, 사발에 마시고, 컵에 마시고...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데, 솔직히 저 그때 여러분 다시 못 볼줄 알았습니다.
그날 비 맞은 덕으로 다음 날 감기에 걸려서,
돌아 올때는 들미소 차에 동승 못하고,
직행버스로 곧장 대전으로 왔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즐거운 빗속의 3박4일 이었습니다.
금강소나무와 여름 폭우를 몸으로 느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가 싶습니다.
우리만 즐기고 와서 죄송한 마음으로 보고합니다.
들미소님 여러 날 고마웠습니다.
오래 기억할게요.
유격훈련도 지나고 보니 정말 좋은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