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고3 자연과학 과정 학생들과 함께 수학 수업을 하면서 개념 설명은 한 학기 정도 미적분 과목을 가르칠 때다. 6월 정도면 진도를 모두 끝내고 대부분의 시간을 문제 풀이를 공유하는 데 활용했다. 학생들이 풀이 과정을 발표하고, 이 발표 횟수를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식이었다.
2013년 2년간의 석사과정 파견 연수를 마치고 신설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고3이 없는, 신입생만 있는 학교에 오게 되어 자연스럽게 1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학 수업을 했다. 파견 연수를 다녀온 후였기에 오랜만에 하는 수업이었고, 새로운 학교에서 처음 가르쳐보는 고1 수학이었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학생 중심 수업을 하고 평가도 새롭게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의욕이 샘솟았다.
1학년 수학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이 많아 생각보다는 학생들에게 여유롭게 시간을 줄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강의식 수업이 아닌 조별 수업을 좀 더 다양하게 도입해볼 수 있었다. 학생들의 수학 실력도 대부분 평균 정도이고, 수학을 힘들어하는 학생도 다수 있는 상황이었다. 극소수의 학생이 수학에 자신감과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4~5명을 한 조로 편성하면서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과 수학을 어려워하고 스스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학생이 조별로 골고루 배치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조별 수업 방식에 학생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서로서로 가르쳐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분위기는 수업 이후에도 학생들끼리 자연스럽게 수학을 공부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개념 설명 강의는 가급적 짧게, 학생들이 교과서를 읽고 스스로 내용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주고, 조별 탐구 후 발표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구성했다. 많은 문제를 수업 시간에 풀기보다 대표 유형 문제들을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해보게 하고, 조별 토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준비했다.
시험문제도 일부러 배배 꼬기보다, 수업 시간에 강조한 부분을 평가할 수 있는 교과서 수준으로 출제했다. 2년간 1학년 수업을 하면서 이전 고3 수업에서는 시도해보지 못한 다양한 수업을 실험하며 나의 수업 방식을 조금씩 만들어갔다.
활용도 최고, ‘나만의 수학 노트’
시간이 흘러 3학년생이 생기면서 고3 수업을 담당하게 됐다. 2년간의 경험으로 보다 다양한 조별 수업을 3학년을 대상으로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필요성을 느꼈던 ‘수학 노트’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활용하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나눠 주는 홍보용 노트는 너무 얇거나 일반 노트의 절반 크기였는데, 학생 상당수가 수학 노트로 사용하곤 했다. 노트 검사를 하다 보면 적잖이 불편했기에 학생들에게 수학 노트를 제본해 나눠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반고 역량 강화 예산을 활용할 수 있게 돼 ‘나만의 수학 노트’라는 이름으로 자연과학 과정 학생들에게 스프링 노트를 제작해 한 학기 동안 사용하도록 했다.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수업에 들어오던 학생들이 날짜를 떠올려보고, 오늘 공부할 단원명이 무엇인지도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날짜와 단원을 쓰는 칸도 만들었다. 학생들이 생각해보면 좋을 만한 요소도 미리 노트 양식에 담으니 나의 수업 철학이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듯해 좋았고, 자연스레 잔소리도 줄어들었다.
초성 퀴즈 형식으로 단원명과 배움 목표를 칠판에 적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날짜와 요일을 쓰면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단원명과 배움 목표를 초성 힌트와 교과서를 참고해 스스로 써보니 수업 내용을 먼저 알고 시작하는 장점이 있었다. 수업 내용은 각자 자유롭게 작성하되 수업에서 중요한 부분은 꼭 포함하도록 안내했다. 자연과학 과정의 특성상 남학생이 훨씬 많았음에도 ‘나만의 수학 노트’ 활용도는 매우 높았다. 처음엔 수업 후 항상 제출하고 검사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검사를 까다롭게 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한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다. 매시간 검사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그만큼 즉각적인 피드백이 되기 때문에 수업 참여도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또 노트에 발표 내용을 학생이 직접 작성하게 하니 어떤 수업에서 어떤 학생이 어떤 발표를 했는지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수행평가에 반영하기도 수월했고,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작성할 때도 편리했다.
학생들은 과제와 복습이 노트 한 권으로 모두 가능해서인지 편하게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국연합학력평가, 지필평가 오답 노트 양식을 노트에 포함하니 학생들 스스로 과제를 했다. 자기 주도 학습을 유도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수학 독서와 짝 프로젝트 수업 통해 수학 재미 느껴보기
2016년 고2 자연과학 과정 학생들 수업에서 ‘나만의 수학 노트’는 진가를 발휘했다. 고3 2학기 수업에서는 1학기보다 노트를 얇게 제작했는데도 활용도가 1학기보다 떨어졌다. 개념 학습이 거의 끝난 뒤이기 때문이다.
반면 2학년은 1학기뿐 아니라 2학기에도 활용도가 매우 높았다.
수행평가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일주일에 5개 반, 6시간씩 미적분 수업이 배정됐는데 5시간이면 충분히 진도를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한 시간씩 수학 독서와 짝 프로젝트 수업도 맡았다. 5시간은 조별 수업을 자주 하기 위해 2·2·1시간으로 쪼개 블록타임으로 운영했다. 모든 반에 한 시간씩 들어가면서 수학 독서 20분(나만의 수학 노트 독서 기록 양식 활용), 나머지는 짝 프로젝트 활동 시간으로 운영했다. 이 시간을 활용해 수학의 정의적 영역(학습에 대한 흥미나 자신감 등)을 학교 수업에서 해결하려 했다.
조금은 다른 수학 수업을 해보고 싶어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정규 수업에서는 하기 힘든 활동 수학, 동아리에서나 체험해볼 수 있는 스트링 아트나 프랙털 카드 만들기 등도 했다. 수학 수업 6시간 중 한 시간은 학생들이 수학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데, 수학 교양 도서를 20분간 읽는 것도 학생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읽어내는 능력이 발전해갔고, 다양한 수학 지식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흥미를 느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복습 도우미 역할도 맡겨봤다. 수업 시작 단계에서 지난 시간 학습한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게 하거나, 짧은 문제를 제시하고 풀이를 발표하도록 하는 식이었다. 복습 도우미를 도입해보니 학생들끼리 수업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교사가 얼개만 잘 짜주면 수업의 대부분을 학생들끼리 만들어가고, 그 속에서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차가 돼서야 다양한 수업과 평가를 새롭게 시도해 봤다. 올해 일반고와는 다른 환경인 과학영재학교로 옮겨왔다. 이곳에서도 학생들과 만나는 수업 시간에 나는 교사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여러 시도를 해나가는 중이다. 분명한 것은 강의식 수업보다는 학생들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