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Magga paccaya(도 조건)
Magga paccayo (도 조건) = 바른 길이 보내줌
·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는 바른 길이 있는 것처럼 나쁜 곳으로 이르게 하는 그른 길도 있다. (→ 필자 주: 2가지 도가 있다.)
· 바른 길은 팔정도가 있다.
· 정견 등의 바른 길, 팔정도를 따라 가는 이만이 진실한 행복인 열반에 이를 수 있다.
· 도 조건은 12가지 도의 구성 요소를 의미한다.
: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
그릇된 견해, 그릇된 사유, 그릇된 정진, 그릇된 집중
마음부수 9가지(지혜, 일으킨 생각,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마음챙김, 집중, 사견)
"도 조건이란 -
도의 요소들⁸⁵⁾은 도와 결합한 법들(마음과 마음부수)에게, 또한 그 도 때문에 생겨난 물질(마음에서 생긴 물질)들에게 도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⁸⁵⁾ 원인 있는 마음에 포함된 지혜, 일으킨 생각, 정어, 정업, 정명, 정진, 마음챙김, 집중, 사견이라고 하는 9가지
- 우 실라 사야도, '분명한 앎', 빤짜간다바라밀공덕회(2021)
1.
바른 견해를 다르게 말하면 '지혜'이다.
지혜의 기본은 선불선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것은 삼빠잔냐(알아차림), 담마위짜야(택법각지)로도 표현된다.
그릇된 견해는 무엇인가? 「범망경」(D1)에 나오는 62가지 사견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견들은 직접 보고 알아서 견해를 정립한 것도 있고, 추론의 결과로 견해를 정립한 것도 있다.
직접 보고 알아서 삿된 견해를 정립한 자들의 말도 거짓말은 아니다.
그들 역시 애를 쓰고 노력하여 마음의 삼매를 얻어 그 삼매의 힘으로 전생과 내생, 세상의 경계 등을 직접 본대로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으로는 일체지를 지닌 부처님처럼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보지 못하고 일부만을 알고 본다.
본 만큼의 사실을 토대로 견해를 정립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인과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견해를 정립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견해로 인해 스스로는 윤회에서 치달리게 된다.
이처럼 견해는 바른 길이나 그릇된 길로 가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바른 견해는 선처와 열반으로 인도한다.
삿된 견해는 악처와 윤회의 쳇바퀴로 인도한다.
2.
바른 사유는 3가지를 말한다.
출리, 악의 없음,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가 그것들이다.
이것들을 다른 말로 하면 '선업(선행)에 대한 생각'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바른 견해로 선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면, 선업 대상에 대해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선업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말과 행위와 생계는 저절로 청정해진다. 바른 정진 역시 저절로 증장된다.
악의 없음은 자애, 해코지 않음은 연민의 마음과 같다.
'출리'는 벗어서 떠난다는 뜻이다. 무엇으로부터 벗어 떠나는가? 번뇌가 되는 감각 욕망의 대상들로부터 벗어 떠난다.
앞서 선정 조건(Jhāna paccaya)에 대해 공부할 때 집중(ekaggatā)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집중이 없다면 이리저리 나쁜 길로 빠지고, 멀리 볼 수 없다. 선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집중 덕분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집중력으로 현재 대상을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다. 현재의 일상적인 대상에도 예쁘고 즐거운 것들이 많다.
그러나 우 실라 사야도께선 수행자들은 더 깊은 집중을 통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 안으로 자신의 정신과 물질뿐만 아니라 밖으로 다른 존재의 정신과 물질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준비 표상을 알고 볼 수 있다. 꽃 구경을 할 때 꽃이라는 대상, 아나빠나사띠를 할 때 숨이라는 대상 모두 준비 표상이다.
더 깊은 집중으로 우리는 이 준비 표상을 마음으로 익힌 표상, 닮은 표상이라는 더 예쁘고 즐거운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선정은 장애를 가라앉힘으로써 성취한다. 장애가 되는 것은 번뇌들이다.
익힌 표상, 닮은 표상을 거쳐 본삼매에 들어 우리는 갈애가 없는 순수한 행복을 누리며 시들지도 않고 비할 바 없이 더 예쁜 대상을 스스로 마음으로 만들 수 있다.
감각적 욕망은 결국에는 번뇌가 되는 한계를 지닌다. 무상하고 시들기 마련인 것이며, 하자가 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것이다.
이렇게 위험과 한계가 있는 것임을 알고 벗어떠날 때 우리는 그 힘으로 더 깊은 집중, 더 예쁜 대상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출리심은 감각 욕망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여 수행을 익게 만든다.
3.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모두가 '집중'이 있어야 가능하다.
선업을 놓치지 않아야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우 실라 사야도께서는 특히 바른 말에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바른 말을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은 나의 말이 아닌 부처님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진위와 사실 여부의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검증하시고 사실이라 말씀하신 말들을 그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쉽게 말하면 부처님이 책임지는 것이지,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부처님의 말을 하려면 많이 배우고 외워야 한다. 이해해야 바르게 말하고, 외워야 적재적소에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배우고 외우지 않은 자는 부처님 말이 아닌 자기 말을 하게 된다.
4.
바른 정진은 선행을 성취하기 위한 정진이다.
욕계 유익한 마음, 색계와 무색계 마음, 도와 과의 마음을 차례로 일으킨다면 따로 더 할 일이 없다.
바른 사유만 쭉 하고 있다면 바른 정진의 힘은 저절로 증장된다.
5.
바른 마음챙김은 개념이나 표상이 아닌 실제 법을 마음챙기는 것이다.
물질, 느낌, 마음, 법이라는 실제 '대상'을 마음챙긴다.
실제 법을 보려면 장애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념처경에서 부처님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라고 설하신다.
이는 먼저 감각적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장애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장애를 버리면서 신·수·심·법을 보라는 말씀이시다.
앞서 번뇌와 장애로부터 벗어 떠나는 출리를 함으로써 집중을 성취하고 선정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집중의 힘으로 장애를 태워버리고 실제 법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바른 마음챙김이다.
이렇게 신·수·심·법의 4가지 대상에 마음을 확립하는 것을 사띠빳타나(satipaṭṭhāna, 念處, 염처)라고 말한다.
바른 마음챙김, Sammāsati는 ① 불법승 삼보와 선업을 잊지 않는 것이고 ② 신·수·심·법이라는 네 가지 수행 대상을 잊지 않고 잘 챙기는 것이다.
①은 일상에서 선업을 잊지 않는 일반적인 사띠다. ②는 칠각지에서의 사띠의 의미로 깨닫기 위해 이 몸, 느낌, 마음, 법에 사띠를 확립시키는 것이다.
보시, 계율, 법문을 들음, 공경, 사마타 수행은 모두 사띠가 있는 일반 선업이다.
그러나 정말로 깨달으려면 신수심범, 사념처에 사띠가 확립되어야 계와 정으로 끝나지 않고 무상·고·무아를 아는 위빳사나 지혜로부터 도와 과까지 갈 수 있다.
실체가 없는 개념적 대상을 신·수·심·법으로 해체해서 그 중 하나를 대상으로 챙겨야 법의 일어남과 사라짐(samudaya-vaya)이 드러난다.
개념적 존재를 법들로 해체해야 무상·고·무아라는 제법의 보편적 특징(sāmañña-lakkhaṇa, 공상)이 드러난다. 이로써 위빳사나를 닦을 수 있다.
① 몸, 느낌, 마음, 법에서 무상·고·무아를 알아 (위빳사나 지혜, 도성제)
② 이 물질·정신, 오온이 고통임을 알고 (고성제)
③ 도 지혜가 계발되어 (도성제)
④ 정신과 물질에 대한 욕심(집성제)을 완전히 내려놓고
⑤ 온전한 행복을 성취한다. (멸성제)